농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9
밀란 쿤데라 지음, 방미경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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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루드비크는 마르케타에게 농담처럼 쓴 편지로 공산주의 학생 연맹에서 퇴장 당한다. 이후 군입대를 하고 탄광에서 수년간 일한다. 그런 와중에 루치에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수렁에 빠진듯 절망적인 삶을 살던 루드비크에게 새로운 인생이 찾아왔지만 결국 루치에는 떠난다. 탄광에서 나온 루드비크는 학생 연맹에서 자신이 퇴장 당하는데에 주역을 맡은 제마네크에게 복수심을 갖는다. 우연히 제마네크의 아내 헬레나를 만나 의도적으로 접근하여 동침한다. 그러나 헬레나와 제마네크는 이미 이혼 위기에 있고 제마네크는 헬레나보다 어리고 아름다운 여인과 함께 하는 중이다. 루드비크의 복수는 수포로 돌아가고 헬레나는 갑자기 돌변한 루드비크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자살을 시도하지만 그저 헤프닝으로 끝이 난다.
한편 루드비크는 학창시절 자신에게 도움을 받았던 친구 코스트카에게 루치에의 과거 이야기를 듣는다. 진정 루치에를 알고 사랑했다고 생각했지만 자신은 루치에를 제대로 사랑하지 못했다는 걸 알게 된다.
야로슬라프는 루드비크와 가장 친한 사이였지만 루드비크가 학생 연맹에서 퇴장당하고부터 서로 멀어졌다. 그는 계속해서 공산주의 연맹을 이어갔고 민속 축제를 이어갔다. 그러나 17년의 세월동안 세상은 변해갔고 민속축제는 이제 사람들 관심을 받지 못한다. 루드비크는 야로슬라프 결혼식때 함께 하자던 연주를 거부했지만 이번엔 스스로 연주를 하겠다고 나선다. 둘은 민속 축제에서 함께 연주한다. 그러다 야로슬라프는 심근경색으로 쓰러진다. 루드비크가 눈물을 흘리며 연주자들과 야로슬라프를 부축해 구급차로 향한다.


이야기는 1948년 2월 즈음에 시작한다. 세계 2차대전이 끝나고 얼마 안 된 즈음 공산주의가 추앙받는 이데올로기로 떠오르는 시기다. 주인공 루드비크는 공산주의 학생연맹에 가담했지만 농담섞인 편지 한통으로 인생이 뒤바뀐다. 자신이 진정 사랑했다고 믿은 루치에는 사실상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는 것, 그것은 루드비크가 공산주의를 잘 알고 학생연맹에서 활동했다는 것 또한 사실 자신을 잘 몰랐던 것 아닌가하고 연관지어 생각해보았다.
루드비크는 십수년 만에 친구 야로슬라프를 민속 축제 '왕들의 기마행렬'에서 만난다. '왕들의 기마행렬' 축제는 이제 더이상 사람들의 이목을 못 끈다. 당국에서도 적극적으로 축제 지원을 하지 않아 도로도 막아주지 않는다. 도로에서 말과 자동차가 서로 엉켜버리는 일도 생긴다. 이 한물 간 행렬은 루드비크와 야로슬라프를 비유하는 듯 하다.

[농담]은 총 7부로 구성되어있는데 각 부의 제목은 등장 인물의 이름이고, 등장인물의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서술했다. 그런데 유독 7부에서는 등장인물의 이름을 세 명이나 적어 놓았다. 루드비크, 헬레나, 야로슬라프. 밀란 쿤데라는 왜 이 세 인물을 마지막 부에 넣었을까?
루드비크와 야로슬라프, 헬레나의 공통점은 공산주의라는 이데올로기가 이제 한물 간 사상이 되는 과도기에 희생양이라는 것 아닐까. 심근 경색으로 쓰러진 야로슬라프가 루드비크에게 말한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그냥 여기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라고. 자기는 여기 있고 싶지 않고 들판으로 나가고 싶었다고, 특히 내가 왔기 때문에, 특히 내가 돌아왔기 때문에 그랬다고 아름다운 별빛 아래 우리는 정말 근사한 연주를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공산주의라는 사상에 갇히지 않고 변화하는 세상과 함께 변할 때 그곳에 갇혀있지 않고 들판으로 나갔더라면 그들의 삶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루드비크가 헬레나를 다른 사람에게 던지고 싶어한 하나의 돌멩이쯤으로 만드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가르치지만 철학이라는 일반적인 명칭 속에 점잖게 감추어 놓는 제마네크처럼 기회주의적인 사람처럼만은 아니더라도.

이야기는 1965년 12월 5일로 끝난다. 처음 이야기가 시작되고 2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뒤다. 세상은 변한다. 어떤 시대에 최고로 추앙 받던 이데올로기도 다른 것으로 대체되고 변하기 마련이다.

어떤 사람이 미친듯이 등불을 흔들어 대며 해안가를 어슬렁거리고 있다면 그는 미친 사람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밤에, 길 잃은 배가 거친 파도에 휩싸여 헤맬때, 이 사람은 구원자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지구는 천상과 지옥 사이의 경계에 있다. 그 어떤 행위도 그 자체로서 좋거나 나쁘지 않다. 오로지 어떤 행위가 어떤 질서 속에 놓여 있느냐 하는 것만이 그 행위를 좋게도 만들고 나쁘게도 만든다. p.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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