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리처드 포드 지음, 곽영미 옮김 / 학고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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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캐나다>의 작가 리처드 포드는 미국에서 꽤 유명한 작가라고한다. 그래서 그랬는지 어딘가에서 들어 본 적 있는 이름이다. 그렇지만 이 작가의 작품은 처음 접해봤다.
 리처드 포드는 난독증을 이겨내고 작가가 되었다고 한다. 옮긴이의 글에서 보니 오히려 난독증이 작가의 반열에 오르는 데 기여했다고 쓰여있다.  그는 난독증 덕분에 다른 사람들의 말을 더 세심하게 귀 기울이고 책을 천천히 읽게 되면서 문학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고 한다. 이건 <캐나다>의 주인공 델이 자신은 어쩔 수 없는 환경에 처해 있으면서도 좌절하지 않고 조금씩 노력해 나가는 모습과 닮아있다.
 
 주인공 델은 쌍둥이 누나 버너와 부모님 이렇게 넷이서 미국 몬테나주 그레이트폴스에 살고있다.
 
 지도를 찾아보니 그레이트폴스는 캐나다와 바로 인접해 있다. 주인공 델이 나중에 캐나다로 국경을 넘어가는데 그레이트폴스를  처음 배경으로 설정한 이유가 여기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캐나다>는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델의 부모가 은행을 털어 감옥에 가는 내용이고 2부는 캐나다로 국경을 넘은 델이 새로운 환경에서 살다가 뜻하지 않은 살인사건을 목격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고 3부는 이런 자신의 어린시절을 예순이 넘은 델이 회상하고 있다.

  델의 부모가 집에서 경찰에게 연행되고 난 뒤 델과 쌍둥이 누이는 누이의 남자친구와 함께 술을 마신다.  어른들이 없는 집에서 십대의 탈선을 보여준다. 그런데 그날 밤 델과 버너는 함께 잠자리에 든다. 근친상간이다. 나는 뜨악하고 놀랐지만 작가는 이 부분을 그리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다. 그들 또한 별일 아닌것으로 받아들이는 듯하다. 한걸음 물러나 생각해보니 부모의 부조리가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이 정도일 수도 있겠다는 작가의 의도로 보여졌다.

 책을 읽으면서 긴박감이나 흥미진진함으로 빠져들긴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44페이지나 되는 책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읽게 된 것은 첫 문장의 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우선 우리 부모가 저지른 강도 사건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다음에는 나중에 일어난 살인 사건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다.  <캐나다>의 첫문장.

 이렇게 리처드 포드는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리 이야기한다. 엄마가 자살한 것, 캐나다에서 만난 미국인 두 명이 살해당한 것까지. 미리 결론을 알고나면  싱거워야하는데 오히려 그 과정이 어땠는지 궁금해서 끝까지 읽게 된다.

 부모가 감옥에 갇히고 델은 국경을 넘어 캐나다에서 살게 된다. 힘든 환경임에도 델은 크게 불평없이 묵묵히 잘 견뎌낸다. 그 어디에도 델이 부모를 원망한다는 건 느낄 수 없다. 그것은 부모가 저지른 부조리가 방법은 잘못 되었지만 가족을 위한 일이었다는 데 있지 않을까. 만약 델의 부모가 폭력을 휘두르며 자식에대한 책임을 저버리는 부모였다면 델은 부모를 원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물론 그렇게 한다면 이 소설의 이야기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되겠지만.

델은 캐나다에서 호텔을 운영하고 있는 렘링거에게 맡겨진다. 렘링거는 또다른 부조리의 인간이다. 델의 부모가 부조리로 인해 죄값을 치르고 양심에 자유를 얻었다면  렘링거는 그 자유를 거부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사람을 살인하면서까지 끝까지 자신의 죄를 고백하지 않는다. 이러한 어른들의 부조리에도 불구하고 델은 자신만의 가치관을 구축한다.

p.267

 살아오는 동안 내  사고 습성은 인간이 개입된 모든 상황은 완전히 뒤집어질 수 있다는 걸 이해하는 방향으로 흘러왔다. 누군가가 내게 사실이라고 보장하는 모든 것이 반드시 사실은 아닐지 모른다. 세상이 의지하고 있는 모든 믿음의 기둥은 언제든 폭발할 수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많은 것이 지금 모습 그대로 오래 머물러 있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런 진리를 알았다고 내가 냉소적으로 변한 것은 아니다.  냉소적이라는 건 선이 존재할 수 없다고 믿는 것이다.  나는 선이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다만 아무것도 당연시하지 않고 언제 닥칠지 모를 변화를 준비하려는 것뿐이다.

 주인공 델이 힘든 일들을 겪고 캐나다를 떠날 때 챙겨가지 않는 물건이 있다. '양봉의 이해'라는 책이다. 델은 양봉에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캐나다를 떠날 때는 이 책을 가져가지 않았다. 그것은 완벽한 사회구성원들과 각자의 책임을 다하며 정직하게만 사는 벌들의 세계가 인간의 사회와는 거리가 멀다고 말하는 작가의 숨겨진 의도가 아닐까.

델은 15살 즉 자신의 삶을 아직 책임 질 수 없는 나이에 많은 일을 겪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환경속에서 견디며 노력한다. 어찌보면 우리도 뜻하지 않은 일들을 겪으며 묵묵히 노력하고 있는  델과 같은 존재가 아닐까. 환경이 나이를 고려하지 않듯 세상은 어느 누구도 고려하지 않는다. 이렇게 서글픈 인간의 삶에서 작가 리처드 포드는 그래도 기회가 있다고 말한다.

  내가 아는 것은 인생에 더 좋은 - 살아 남을- 기회는 있다는 것이다. 상실을 잘 견디고, 그 모든 상실에도 냉소적인 인간이 되지 않고, 이것을 저것에 종속시키고, 러스킨이 암시했듯이 균형을 유지하고, 인정컨대 선을 찾기가 간단치 않을지라도 동등하지 않은 것들을 선을 지키는 전체에 연결하려 애를 쓴다면 말이다. 누나가 말했듯이 우리는 노력한다. 노력한다. 우리 모두는. 노력한다. p544

나는 이 소설을 재미있다며 추천할 수는 없다. 솔직히 그렇게 재미있지는 않다. 하지만 좋은 문학작품이 그러하듯 사색을 하게 만드는 책이다. 깊이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해당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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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더맨 가방을 멘 아이
조르지아 베촐리 지음, 마시밀리아노 디 라우로 그림 / 머스트비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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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에는 8살 여자아이 입니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어요.
 
클로에가 이모와 함께 책가방을 사러 갔어요. 클로에는 스파이더맨 가방을 고릅니다. 이모는 클로에의 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정말 스파이더맨 가방을 사 줘도 되겠느냐고 묻습니다. 스파이더맨 가방은 남자아이들이나 매고다니는 가방이라 생각하기 때문이죠. 가방 가게 아저씨조차도 이렇게 묻습니다.
 "얘야, 네 오빠에게 줄 거니?"
그러자 클로에가 대답합니다.
 "스파이더맨은 남자애들 게 아니에요. 스파이더맨은 모두의 거예요!"
 참 당당하고 당찬 아이입니다. 그래요. 스파이더맨은 모두의 것이죠. 남자아이든 여자아이든 상관없이.  남자애들만 좋아하라는 법이 어디 있나요? 어른들의 편견이란 정말 말릴 수가 없습니다.
 
 
  학교에간 클로에는 친구들까지도 자기 가방을 보고 남자애것이라며 웃어대는 걸 보고 마음이 상합니다. 이 아이들도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편견에 물들어 버린거죠. 그렇게 아이들에게도 고정관념이 생겨버립니다.
 
 
클로에의 엄마가 페이스북에 스파이더맨 가방을 맨 클로에 사진을 올렸어요. 그러자 5000명 이상이 좋아요를 눌렀죠. 공감되는 댓글도 많이 올라왔어요. 클로에는 많은 사람들의 응원에 위로를 받는 답니다.

 이 책에는 요즘 우리가 사용하는 SNS,장난감, 케릭터 이름들이 그대로 나와요. '페이스북'이라던지, '좋아요'같은 용어는 2016 현재에 읽는 독자에게 현실감을 100%느끼게 해주네요.

 
 
 책의 중반부에서는 로사 '콘페토 이야기책의 이야기'를 들여줍니다.
 암컷 코끼리들은 원래 분홍색이었고 울타리 안 에서만 생활했대요. 그래야 분홍색을 유지한다고요. 그런데 어느날 한 암컷 코끼리가 울타리를 뛰쳐나와 회색 수컷 코끼리들과 진흙탕에서 실컷 뛰어 놀았어여. 그러자 울타리 안에 있던 다른 암컷 코끼리들도 모두 뛰쳐나왔죠. 그러고선 다시는 울타리 안 으로 들어가지 않았대요. 그래서 지금의 코끼리들이 모두 회색이라고 하네요.
 성차별과 성 고정관념에 대한 참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클로에는 남자애들, 여자애들 장난감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친구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하느냐고 아빠에게 물었어요. 아빠는 남자 것, 여자 것 가리지 말고 우리가 좋아하는 것을 가지고 놀고 우리가 입고 싶은 옷을 입어야 한다고 했어요. 그러면 다른 사람들도 모두가 그럴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을 거라고요. 그러자 클로에는 자신이 스파이더맨 가방을 메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깨닫습니다.
 
 사실 실 생활에서 우리가 그러긴 쉽지 않아요. 다른 사람의 시선에 신경쓰지 않고 당당하게 내가 입고 싶은 옷을 입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은 참 행복한 사람일테죠. 하지만 정말 용기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클로에는 정말 용기가 대단한 아이네요. 아마도 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갖지 않고 그 사람 자체를 존중해주는 훌륭한 부모님 덕이 크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부모의 시선이 바로 작가의 시선이겠죠.

 <스파이더맨 가방을 멘 아이>는 성 차별, 성 고정관념, 성평등에 대해 이야기해요. 이 책의 후반부에서는 동성간에 결혼에대한 이야기까지 나온답니다. 먼저 책을 읽어보지 않고 아이와 바로 함께 읽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 저는 살짝 놀랐습니다. 우리 아이는 어떻게 받아들일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기가 좀 이른건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저는 동성연애에 대해 반대하지 않아요. 그건 자신이 노력한다고해서 되는 부분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 민감한 부모라면 이 책이 조금 부담스러울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책의 마지막 장이에요.  클로에의 한 쪽 손에는 여자 인형이, 다른 쪽 손에는 스파이더맨 인형이 들려있네요. 이 그림은 성 평등이라는 커다란 상징으로 다가옵니다.
 앞으로 클로에는 이렇게 살고 싶대요.
 "나는 사랑, 행복, 평온이 있는 삶을 원해요."
 우리들 모두도 이런 삶을 살아가길 기도합니다.
 
 
 <해당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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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인문학 - 공부 비법 전도사 조승연이 들려주는
조승연 지음, 박순구 그림 / 세종주니어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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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애용하는 한우리 북까페에 '공부비법 전도사 조승연이 들려주는 <어린이 인문학>'이 서평 이벤트 도서로 올라왔다. 서평을 원하는 회원 분들의 댓글을 보니 저자 조승연이란 사람이 꽤나 유명한 사람인 것 같았다. 검색을 해 보았다. 5개국어 능통에 20대에 쓴 <공부 기술>이란 책이 50만부 이상 팔렸단다. 몇 달 전에는 예능 프로그램 라디오 스타에 나와서 많은 이야기를 했나보다. 뭐야, 또 나만 모르고 있던건가. 이렇게 유명한 사람이 이번엔 어린이를 위한 책을 썼다는데 나도 욕심내서 서평을 신청했다.

언어 능력을 높이는 길은 단어 하나하나의 유래와 정서를 음미하는 것

 언어 능력은 학습을 하는 데 있어 이해력을 한층 높여 줍니다. 이해력이 높으면 책을 읽거나 수업을 들을 때 그 내용을 쉽게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많은 시간을 공부하지 않더라도 학습 효과가 높을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중략-
어릴 때부터 다른 조기 교육 대신 언어 능력 향상에 힘쓴다면 중•고등학교 때 학습에 대한 부담을 훨씬 줄일 수 있습니다.

<어린이 인문학>의  프롤로그에서 저자 조승연이 쓴 내용의 일부다. 100% 공감가는 말이다.
아이들이 꼭 국어가 아니고 수학이나 사회 과목  시험을 볼 때 문제 지문 자체를 이해하지 못해서 틀리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그만큼 언어는 기본 바탕이고 공부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임이 확실하다.

 
<어린이 인문학>은 총 4 장으로 구성 되어 있다. 신화와 과학, 문화와 예술, 음식과 커피, 사회와 경제가 그것들이다. 저자는 이 영역들에서 우리가 흔히 들어봤고 자주 사용하는 언어들의 유래와 거기에 얽힌 사연들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재미있게 풀어놓았다.
 
처음에 나오는 건 아마추어인데 아마추어 어원을 알려고하니 그리스 신화까지 알게 된다.
 
한 이야기가 끝나면 짤막한 만화가 나온다. 만화마다 짧은 개그를 보는 것 처럼 큭큭큭 웃음이 나온다. 
 이 책은  순서대로 읽을 필요가 전혀 없다. 차례를 보고 관심가는 단어가 있으면 그것부터 찾아 읽어보면 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 책만 붙들고 다 읽을 필요도 없다. 공부하다가 지쳤을 때, 아주 아주 심심할 때 등등 언제고  읽고 싶은 부분을 찾아 읽기만 하면 된다.  그러다보면 그동안 알고 있던  단어들이 새롭게 다가온다. 더 나아가 여기에 언급되지 않은  다른 단어들의 유래와 역사에도 관심이 간다. 저절로 지식과 호기심이 확장되는 것이다.
 이 책은 초등학교 중학년 이상 아이들이 읽기에 좋다.  

 

 

<해당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 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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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80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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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독서 모임에는 상반기 헤밍웨이, 하반기 셍텍쥐페리를 만난다. 1월에는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다.
 책을 좀 더 저렴하게 구입할 요량으로 한 책에 네 작품이 들어있는 책을 샀다. 그런데 번역이 엉망이었다. 존대말을 하는 같은 사람 대화중에 갑자기 반말이 나오는가하면 스페인 지붕이야기를 하는데 '기와'지붕이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말이 대체 누가하는 말인지 너무 헷갈렸다. 이럴때마다 이야기의 맥이 끊겼다. 번역이 이렇게 중요한 것이었구나. 민음사로 다시 읽어보았다. 확실히 달랐다. 주인공의 괴로움이 더 와 닿았고, 주인공 제이크의 절친 빌이 이렇게 매력적인 케릭터였나하고 놀랐다.  일상적인 대화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재치와 친구를 생각하는 배려깊은 마음까지.  D출판사 번역본으로 읽을때는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다. 민음사것으로 헤밍웨이 세트 책을 다시 구입했다. 저렴하게 가려다가 오히려 돈을 더 쓴 꼴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번역의 중요함을 배웠으니 그 값으로 쳐야겠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의 시대 배경은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다. 헤밍웨이는 모든 게 무너지고 망가지고 혼란스러워진 시대적 배경과 그 혼란속에서 방황하는 세대들을 이야기한다. 등장인물들은 일명 '잃어버린 세대'다. 
 
 주인공 제이크는 미국사람이지만 파리로 건너와 기자생활을 하며 살고있다. 실제로 당시에는 미국의 물가가 많이 올라 파리로 건너온 예술가들이 많이 있었다. 제이크도 그런 인물 중 하나다. 제이크는 전쟁 참전 중 큰 부상을 입는다. 헤밍웨이는 사실 직접적으로 제이크의 부상을 언급하지 않는다. 책을 읽으며 독자는 자연스레 알게되는데 제이크의 부상은  성불구자가 된 것이다. 민음사의 책에서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위해 각주로 직접적으로 알려주지만 D출판사에서는 그런 언급은 안 했다. 그 점은 오히려 D출판사가 좋았다. (그러고보니 같은 작품을 여러 번역 본으로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든다.)
 제이크는 전쟁 중 부상으로 치료 중일때 애슐리 브렛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 뒤 브렛은 제이크와 헤어지고 이제는 마이크 켐벨과 결혼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그와중에 여전히 제이크를 사랑한다. 제이크도 그녀를 무척 사랑하지만 자신의 처지 때문에 괴로워 한다.
 애슐리는 여자가 봤을때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케릭터이다. 전쟁 중 남편을 잃는 아픔을 겪은 안쓰러운 여자이기도  하지만  재혼을 앞두고 있음에도 자신에게 집요하게 집착하는 로버트 콘과 밀회도 떠난다. 그러다 투우사 로메로와 사랑에 빠져 떠났다가 결국 제이크에게 돌아온다. 애슐리의 이런 방탕한 생활 중에도 제이크는 늘 그 자리에서 애슐리를 감싸안는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를 읽는 내내 가장 많이 나오는 것은 술일 것이다. 등장인물들은 늘 만나서 까페와 술집을 전전한다. 책을 다 읽을 때쯤에 나는 취한 기분마저 들었고 포도주가 먹고싶을 정도였다. 이들은 왜 이렇게 술을 많이 마시는 걸까. 독서모임의 총무님은 방황하는 세대들을 표현하고자 하는 헤밍웨이의 의도가 아니였을까 하고 말했다. 고개가 끄덕여졌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에서 인상적인 부분이 두 가지가 있다. 먼저 주인공 제이크와 빌이 낚시 여행을 간 대목인데 그 두 인물의 우정도 돋보이고, 그 시대의 목가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겨 무척 좋았다. 물론 그 시원한 냇가에 담가 놓았던 포도주도 한번 맛보고 싶었다.
 다음으로 인상깊은 대목은 등장인물들이 스페인으로 여행을 가서 투우를 관람하는 부분이다. 번역때문에 재미가 떨어졌던 D출판사의 책을 읽을 때도 이 부분은 무척 재미있었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가 빛나는 이유는 바로 이 투우 대목 때문일것이다.

  소들 중에는 거세된 황소가 있다. 이 소들은 다른 투우들이 서로 싸우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그 거세된 황소는 제이크를 상징한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의 가장 핵심적인 상징은 제이크의 성 불구자라는 낙인이다. 그것은 '잃어버린 세대'를 상징하는 것이다. 가족을 잃고, 나라를 잃고, 신을 잃은 세대.

 브렛은 로메로와도 인연을 계속 이어가지 못한다. 난처한 상황에서 결국은 제이크에게 도움을 청하고 제이크는 두말할 필요없이 브렛에게 달려간다. 그런데도 브렛은 제이크의 품에 안겨 한다는 소리가 마이크에게 다시 돌아가야겠단다. 아, 불쌍한 제이크. 어찌보면 브렛이 참 부럽다. 얼마나 매력적이기에 남자들이 그녀에게 현혹되버리고 마는가. 그리고 제이크와같은  늘 그자리에 굳건히 기다려주는 에로스적인 남자라니!

"아, 제이크, 우리 둘이 얼마든지 재미있게 시간을 보낼 수도 있었는데." 브렛이 말했다.
앞쪽에는 카키색 제복을 입은 기마 순경이 교통정리를 하고 있었다. 그가 바통을 들었다. 그러자 자동차가 갑자기 속력을 늦추고 브렛 몸이 내 쪽으로 쏠렸다.
"그래 맞아. 그렇게 생각하기만 해도 기분이 좋지 않아?"
내가 말했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의 마지막 부분이다. 나는 마지막 제이크의 대사를 보며  희망적인 느낌을 받았다. 제목 또한 희망적으로 받아들였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마지막 대사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다시 떠오를 테니까'처럼 말이다.  하지만 최복현 선생님은 독서 토론회에서 정반대의 이야기를 하셨다. 제목의 의미가 긍정적인, 희망적인 의미가 아니라 부정적인 의미라는 것이다. 태양은 다시 떠오르지만 인간의 허무는 달라지지 않는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알베르 까뮈가 실존과 부조리를 이야기하듯 헤밍웨이도 비슷하다고 했다. 하지만 이 둘의 차이는 분명히 있는데 그 차이점을 우리가 찾아야한다고 했다.

 그렇게 정반대의 시선으로 바라보니 내내 마음에 걸렸던  브렛의 말이 떠올랐다. 마지막까지도 제이크에게 자신은 마이크에게 돌아가겠다고 한 말.
  앞으로 제이크와 브렛은 어떻게 될까? 아마도 이들은 함께하지 못할것이다. 그렇게 허무한 것. 뜻대로 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인간의 삶이다.

 헤밍웨이가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의 작품이 시작 되기전에 언급한 [전도서] 제사가 새롭게 다가온다. 가슴 아픈 인간의 현실...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해는 뜨고 해는 지되 그떳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아가며 이리 돌고 저리 돌아 그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 전도서

 <에필로그>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를 도서관에거 검색 중 영화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빌려보았다. 무엇보다 스페인의 축제 중 투우장면들이 무척 기대되었다. 그리고 투우사 로메로를 어떻게 생긴 배우가 연기했을지도 무척 궁금했다.
 영화 처음 시작부터 이거 참 오래전에 만든 영화구나했다. 영화적 기술이 덜 발달 된 시기가 극명히 들어나 어색한 장면들이 많았다. 투우장면들은 창에 찔린 소가 흘리는 피 단 한 방울도 보여주지 않는다. 로메로의 외모는 내 기대 이하였다. 특히 연기를 너무 못 하는 것 같았다. 영화를 보고는 다소 실망했지만 책으로 읽고 상상한 부분들을 영상으로 만나보는 재미가 쏠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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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80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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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독서 모임에는 상반기 헤밍웨이, 하반기 셍텍쥐페리를 만난다. 1월에는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다.
 책을 좀 더 저렴하게 구입할 요량으로 한 책에 네 작품이 들어있는 책을 샀다. 그런데 번역이 엉망이었다. 존대말을 하는 같은 사람 대화중에 갑자기 반말이 나오는가하면 스페인 지붕이야기를 하는데 '기와'지붕이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말이 대체 누가하는 말인지 너무 헷갈렸다. 이럴때마다 이야기의 맥이 끊겼다. 번역이 이렇게 중요한 것이었구나. 민음사로 다시 읽어보았다. 확실히 달랐다. 주인공의 괴로움이 더 와 닿았고, 주인공 제이크의 절친 빌이 이렇게 매력적인 케릭터였나하고 놀랐다.  일상적인 대화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재치와 친구를 생각하는 배려깊은 마음까지.  D출판사 번역본으로 읽을때는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다. 민음사것으로 헤밍웨이 세트 책을 다시 구입했다. 저렴하게 가려다가 오히려 돈을 더 쓴 꼴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번역의 중요함을 배웠으니 그 값으로 쳐야겠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의 시대 배경은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다. 헤밍웨이는 모든 게 무너지고 망가지고 혼란스러워진 시대적 배경과 그 혼란속에서 방황하는 세대들을 이야기한다. 등장인물들은 일명 '잃어버린 세대'다. 
 
 주인공 제이크는 미국사람이지만 파리로 건너와 기자생활을 하며 살고있다. 실제로 당시에는 미국의 물가가 많이 올라 파리로 건너온 예술가들이 많이 있었다. 제이크도 그런 인물 중 하나다. 제이크는 전쟁 참전 중 큰 부상을 입는다. 헤밍웨이는 사실 직접적으로 제이크의 부상을 언급하지 않는다. 책을 읽으며 독자는 자연스레 알게되는데 제이크의 부상은  성불구자가 된 것이다. 민음사의 책에서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위해 각주로 직접적으로 알려주지만 D출판사에서는 그런 언급은 안 했다. 그 점은 오히려 D출판사가 좋았다. (그러고보니 같은 작품을 여러 번역 본으로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든다.)
 제이크는 전쟁 중 부상으로 치료 중일때 애슐리 브렛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 뒤 브렛은 제이크와 헤어지고 이제는 마이크 켐벨과 결혼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그와중에 여전히 제이크를 사랑한다. 제이크도 그녀를 무척 사랑하지만 자신의 처지 때문에 괴로워 한다.
 애슐리는 여자가 봤을때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케릭터이다. 전쟁 중 남편을 잃는 아픔을 겪은 안쓰러운 여자이기도  하지만  재혼을 앞두고 있음에도 자신에게 집요하게 집착하는 로버트 콘과 밀회도 떠난다. 그러다 투우사 로메로와 사랑에 빠져 떠났다가 결국 제이크에게 돌아온다. 애슐리의 이런 방탕한 생활 중에도 제이크는 늘 그 자리에서 애슐리를 감싸안는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를 읽는 내내 가장 많이 나오는 것은 술일 것이다. 등장인물들은 늘 만나서 까페와 술집을 전전한다. 책을 다 읽을 때쯤에 나는 취한 기분마저 들었고 포도주가 먹고싶을 정도였다. 이들은 왜 이렇게 술을 많이 마시는 걸까. 독서모임의 총무님은 방황하는 세대들을 표현하고자 하는 헤밍웨이의 의도가 아니였을까 하고 말했다. 고개가 끄덕여졌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에서 인상적인 부분이 두 가지가 있다. 먼저 주인공 제이크와 빌이 낚시 여행을 간 대목인데 그 두 인물의 우정도 돋보이고, 그 시대의 목가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겨 무척 좋았다. 물론 그 시원한 냇가에 담가 놓았던 포도주도 한번 맛보고 싶었다.
 다음으로 인상깊은 대목은 등장인물들이 스페인으로 여행을 가서 투우를 관람하는 부분이다. 번역때문에 재미가 떨어졌던 D출판사의 책을 읽을 때도 이 부분은 무척 재미있었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가 빛나는 이유는 바로 이 투우 대목 때문일것이다.

  소들 중에는 거세된 황소가 있다. 이 소들은 다른 투우들이 서로 싸우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그 거세된 황소는 제이크를 상징한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의 가장 핵심적인 상징은 제이크의 성 불구자라는 낙인이다. 그것은 '잃어버린 세대'를 상징하는 것이다. 가족을 잃고, 나라를 잃고, 신을 잃은 세대.

 브렛은 로메로와도 인연을 계속 이어가지 못한다. 난처한 상황에서 결국은 제이크에게 도움을 청하고 제이크는 두말할 필요없이 브렛에게 달려간다. 그런데도 브렛은 제이크의 품에 안겨 한다는 소리가 마이크에게 다시 돌아가야겠단다. 아, 불쌍한 제이크. 어찌보면 브렛이 참 부럽다. 얼마나 매력적이기에 남자들이 그녀에게 현혹되버리고 마는가. 그리고 제이크와같은  늘 그자리에 굳건히 기다려주는 에로스적인 남자라니!

"아, 제이크, 우리 둘이 얼마든지 재미있게 시간을 보낼 수도 있었는데." 브렛이 말했다.
앞쪽에는 카키색 제복을 입은 기마 순경이 교통정리를 하고 있었다. 그가 바통을 들었다. 그러자 자동차가 갑자기 속력을 늦추고 브렛 몸이 내 쪽으로 쏠렸다.
"그래 맞아. 그렇게 생각하기만 해도 기분이 좋지 않아?"
내가 말했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의 마지막 부분이다. 나는 마지막 제이크의 대사를 보며  희망적인 느낌을 받았다. 제목 또한 희망적으로 받아들였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마지막 대사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다시 떠오를 테니까'처럼 말이다.  하지만 최복현 선생님은 독서 토론회에서 정반대의 이야기를 하셨다. 제목의 의미가 긍정적인, 희망적인 의미가 아니라 부정적인 의미라는 것이다. 태양은 다시 떠오르지만 인간의 허무는 달라지지 않는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알베르 까뮈가 실존과 부조리를 이야기하듯 헤밍웨이도 비슷하다고 했다. 하지만 이 둘의 차이는 분명히 있는데 그 차이점을 우리가 찾아야한다고 했다.

 그렇게 정반대의 시선으로 바라보니 내내 마음에 걸렸던  브렛의 말이 떠올랐다. 마지막까지도 제이크에게 자신은 마이크에게 돌아가겠다고 한 말.
  앞으로 제이크와 브렛은 어떻게 될까? 아마도 이들은 함께하지 못할것이다. 그렇게 허무한 것. 뜻대로 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인간의 삶이다.

 헤밍웨이가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의 작품이 시작 되기전에 언급한 [전도서] 제사가 새롭게 다가온다. 가슴 아픈 인간의 현실...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해는 뜨고 해는 지되 그떳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아가며 이리 돌고 저리 돌아 그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 전도서

 <에필로그>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를 도서관에거 검색 중 영화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빌려보았다. 무엇보다 스페인의 축제 중 투우장면들이 무척 기대되었다. 그리고 투우사 로메로를 어떻게 생긴 배우가 연기했을지도 무척 궁금했다.
 영화 처음 시작부터 이거 참 오래전에 만든 영화구나했다. 영화적 기술이 덜 발달 된 시기가 극명히 들어나 어색한 장면들이 많았다. 투우장면들은 창에 찔린 소가 흘리는 피 단 한 방울도 보여주지 않는다. 로메로의 외모는 내 기대 이하였다. 특히 연기를 너무 못 하는 것 같았다. 영화를 보고는 다소 실망했지만 책으로 읽고 상상한 부분들을 영상으로 만나보는 재미가 쏠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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