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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미소 ㅣ 프랑수아즈 사강 리커버 개정판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최정수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2월
평점 :
프랑수아즈 사강. 프랑스 문단의 매력적인 작은 괴물, 19세에 <슬픔이여 안녕>으로 데뷔작부터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며 문학비평상을 수상한 천재라는 수식어가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작가이다.
연애, 알코올, 약물, 도박, 다양한 중독, 자유를 추구하고 화려한 삶을 살았으며, 코카인 소지 혐의로 기소 되었을 때 한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말로 너무나도 유명하다. 나는 그가 쓴 책보다 먼저 저 문장과 함께 떠오르는 이미지로 사강을 만났다. 어찌나 매혹적이던지.
<어떤 미소>는 사강이 <슬픔이여 안녕>을 출간한지 2년 후 발표한 작품이다. 데뷔작이 크게 성공하게 되면 후속작에 대한 부담감이 커지기 마련일텐데 이 책 역시 출간 당시 큰 사랑을 받았다고 한다. 1956년에 출간된 작품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현대적이라는 느낌이다.
베르트랑의 연인 도미니크는 그의 외삼촌인 여행가 뤽을 만나 사랑을 빠진다. 스무 살의 도미니크는 자신에 대한 자신도, 사랑도 없어 보인다. 그에게 있어 뤽은 베르트랑에게서는 느낄 수 없었던 정신적 행복, 지금까지 경험해본 적 없는 세계의 화려함을 알려 주며, 같은 보폭으로 인생을 들여다보는 것만 같은 존재이다.
하지만 이 사랑은 끝이 정해져있는 사랑이다. 아내인 프랑수아즈를 떠날 생각이 없는 뤽과 프랑수아즈를 좋아하는 도미니크, 그리고 도미니크에게 애정을 주는 프랑수아즈, 헤어짐이 정해져있음에도 불구하고 뤽과의 만남을 부정하고, 설레고, 사랑을 인정하고, 힘들어하는 도미니크의 복잡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열정적이면서도 건조하고, 시니컬하면서도 맹목적인 사랑의 심리를 너무나도 잘 보여주고 있다.
칸에서 함께한 이주일, 단 둘이 되었을 때 두 사람은 너무나도 행복했지만 더욱 사랑에 빠져드는 도미니크와 달리 뤽은 이미 헤어진 이후를 생각한다. 두 사람이 만나 사랑을 한다해도 서로 다른 방향을 보고 걸어간다는 것은 결국 남는 건 불행과 허무일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사랑함으로써 비로써 사람은 자기 자신의 존재를 발견하고 타인을 통해 자신을 좀 더 깊게 들여다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행복은 표시가 없는, 평평한 사물이다.
칸에서 지낸 그 기간 역시 나에게 그 어떤 상세한 추억도 남겨주지 않았다.’ (P126)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우리는 행복보다 불행의 순간을 더 강렬하게 기억한다. 불행했던 순간은 오래 상처로 남아 순간순간 강렬한 기억으로 돌아오지만, 행복한 순간은 지나고 난 후 그 순간을 돌아보면 마치 미지근한 물 속에 잠겨있는 것 같기도 하다. 잔잔하고 평온하게 행복하다.
결국 도미니크는 예정되었던 결말을 맞이한다. 하지만 자주 얼굴을 찌푸리던 도미니크는 이제 미소를 짓는다. 그에게는 칸의 음악이 남았고 사랑의 기억이 남아있으며 어제보다 한발자국 더 나아간 자신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