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매일 세시풍속
고성배 지음 / 닷텍스트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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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놀랐다. 매일매일, 1년 365일 만큼이나 다양한 세시풍속이 존재할 줄이야.

알고보니 단오에 청포로 머리 감기라던가 동지에 팥죽 먹기 같은 잘 알려진 풍속 외에도 쑥 연기 쐬기, 꿩알 줍기, 연줄 끊기, 검불 태우기 같은 생소하면서도 재미있는 세시풍속이 무궁무진하다.



클라우드 펀딩을 시작으로 <한국 요괴 도감>, <동양 요괴 도감>, <검은 사전>, <SF 괴수괴인 도해백과> 등을 통해 요괴, 악마, 괴수괴인, 찻잎점술, 고문헌 속 식물과 묘약 같은 기기묘묘한 소재들을 소개해 온 .TXT 닷텍스트(구 The Kooh)의 편집장이자 저자 고성배. 이번에는 그가 한국 세시풍속으로 돌아왔다.



2월 11일 경칩이자 연인의 날, 연인끼리 서로 은행을 주고 받고 연인과 함께 은행나무를 함께 도는 풍습인 ‘은행 선물하기’, 12월 10일 집 안에 귀신을 쫓는 의식 ‘메밀 삶아 뿌리기’ 같은 세시풍속들이 음력 1월부터 12월까지 음식, 금기, 놀이, 행동 365개의 풍속을 풍속 일자, 이름, 주로 행해졌던 지역과 시기, 기재된 문헌, 풍속의 내용과 이해를 돕는 개성 있고 귀여움 가득한 일러스트를 통해 다양한 세시풍속을 해당 날짜에 맞춰 실행해볼 수 있도록 편집되어있다.



세시풍속이란 ‘해마다 일정 시기에 되풀이하여 행하는 우리 고유의 풍속’을 말한다고 한다. 농경사회 풍속으로 대개 농사력에 맞추어 관례로 행했던 일들로 대체적으로 가정의 안녕을 빌고, 집안의 복을 부르고, 잡귀와 재액을 물리치고자 하는 기원이 담긴 다양한 비방들이 이에 속한다.



부잣집의 흙을 가져와서 자신의 집에 바르거나 마당에 뿌리는 ‘복토 훔치기’나, 남의 벼에 돈을 묶어 두었다가 그 벼를 베어(주인의 양해를 구한다고 한다) 밥을 해 가족이 함께 먹으며 자식에게 좋은 일이 있기를 기원하는 ‘벼에 돈 묶기’같은 풍습을 보면 좋은 뜻으로 생각하자면 복을 이웃과 나눈다는 의미일테지만 복토 훔치기의 경우에는 흙을 몰래 훔쳐오는 풍속이라고 하니 어떻게 생각하자면 복을 훔쳐 자신도 잘 살고 싶다는 염원이 담겼다는 생각에 애달프기도 하고, 그 시대에는 땅과 논밭이 얼마나 귀한 재산이고 부러움의 대상인가에 대해서도 역시 잘 알 수 있었다.



2월에 행하는 바람 점, 좀생이 점, 삼성 점, 개구리울음 점, 11월의 날짐승 점, 팥죽 점, 새알심 점, 고드름 점처럼 농사의 풍·흉년과 다음 해의 길흉화복을 점치기 위해서일까 유독 2월과 11월은 자연환경, 음식, 동식물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점을 치는 풍습이 많은 것 같아 보인다.



음력 2월 초 손바닥만한 송편을 나이 수대로 먹으면 한 해 동안 건강해진다는 ‘나이떡 먹기’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그럼 중년 이후에도 과연 나이 수대로 저 크기의 떡을 다 먹을 수 있을까하는 쓸데없는 걱정도 해보고, 음력 1월 돼지의 날에 콩가루로 세안을 하면 얼굴이 희고 고와진다고 하여 그 날은 콩가루로 얼굴을 세안하는 풍습이 있었다고 하니 우리 조상님들도 피부관리에 관심이 많으셨구나하는 생활감 넘치는 여러 생각들이 떠올랐다.



시대와 자연환경, 사회적 상황에 따라 이루어졌던 풍속들이다보니 지금봐도 과연 옛 조상들의 지혜는 훌륭하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풍속부터, 음...어째서?라는 의문이 살포시 드는 지금으로보자면 독특하다고 느껴지는 풍속들까지 다양하다. 하지만 결국 세시풍속이란 자신이, 가족이, 한해가 풍요롭고 행복하고,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행해졌던 것. 365가지 풍속들 속에 그 마음이 가득 담겨있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우리나라 풍속은 유감주술에 기본을 두고 있다고 한다. 현상을 모방함으로써 유사한 결과를 이끌어내는 원리로, 책 속에 소개하는 세시풍속을 따라해보는 것을 추천하고 있다. 그래서 읽는 내내 나도 해볼 수 있는 풍속이 있나 주의깊게 들여다보았다.

그 결과 일단 1월 1일 ‘콩알 볶기’는 가능하겠다. 콩을 볶으면서 ‘쥐 주둥이 지진다’라고 외치는 것인데 쥐가 곡식을 훔쳐먹는 일이 없도록 하기위해 행해지는 풍습이라고 하니 곡식은 아니지만 내 통장 어딘가 새어나가는 돈도 좀 줄어들지도 모르지 않는가. 물론 내 경우는 원인이 쥐가 아니라 나라는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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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바꾼 위대한 식물 상자 - 수많은 식물과 인간의 열망을 싣고 세계를 횡단한 워디언 케이스 이야기
루크 키오 지음, 정지호 옮김 / 푸른숲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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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식물과 인간의 열망을 싣고 세계를 횡단한 워디언 케이스 이야기


식물 운반용 상자 ‘워디언 케이스(Wardian Case)’ 이 책의 소개를 보기 전까지 들어본 적 없는 명칭이다. 하지만 이 생소하기까지 한 상자는 한 세기를 넘는 긴 시간 동안 살아있는 수많은 식물과 환경을 싣고 전 세계를 이동했으며 현재 우리 주변 식물 환경에 거대한 영향을 준 물건이기도 하다.



워디언 케이스는 1833년 영국의 아마추어 박물학자이자 의사인 너새니얼 백쇼 워드에 의해 소개되었다. 워드는 1829년 산업혁명으로 심해진 대기 오염 때문에 자택의 정원에서 식물이 자라기 어려운 환경 속에서 유리병을 밀폐해 온실과 유사한 환경을 만드는 등의 여러 실험을 통해 밀폐된 유리 상자에서 식물이 물 없이 장기간 살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워디언 케이스를 제작하게 되었고, 1833년 친구이자 해크니 종묘원의 대표인 로디지스와 함께 양치류 등의 식물을 담은 이 상자 두 개를 배에 실어 그 당시 런던에서 갈 수 있는 가장 긴 항로였던 런던에서 시드니까지 6개월에 걸친 항해를 거쳐 무사히 목적지에 식물이 살아있는 상태로 도착하는 성공적인 결과를 보여주었으며 그 이후 워디언 케이스는 식물 이동의 크나큰 영향을 주게 되었다.



물론 워디언 케이스 이전에도 식물이 이동은 있었지만 고비용에 비해 성공 확률이 무척 낮았던 과거 방식들에 비해 이 상자는 세계 여러 나라의 중요 농작물과 희귀 식물의 대규모 이동에 혁신적인 변화를 만들었다. 식물 애호가의 호기심에서 탄생한 상자인 만큼 양치류, 식충 식물 같은 희귀 식물이나 처음보는 외래 식물들을 수집하고 장식하는 용도로도 많이 사용되었으나 그 이상으로 경제적, 약리적 목적으로 더 많이 이용되었다.



특히 이 시기 유럽은 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 각지를 식민지배 하던 시절로 바나나, 고무나무, 차 같은 경제적 가치가 큰 식물을 식민지로 이식하여 대규모 상업 플랜테이션 농장을 조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워디언 케이스가 많이 사용되었다. 19세기 중국차에 대한 유럽의 열풍은 상상이상이었고 특히나 영국인들의 홍차 사랑은 각별했다. 그로 인해 중국으로의 은 반출의 부담이 커지자 그 당시 인도에서 재배한 아편을 은 대신 지불하여 중국 인구의 대부분이 아편에 중독되고 그 결과 중국이 아편 수입을 금지하는 과정에서 결국 아편전쟁으로까지 번질 정도였으니말이다. 영국은 같은 이유로 중국의 차 나무를 식민지에서 대규모로 재배하고자 스코틀랜드 정원사인 로버트 포춘 등을 비밀리에 파견했고 그들는 워디언 케이스를 이용해 2만 그루 이상의 차 묘목을 인도로 운반했다.



워디언 케이스 전파에 많은 도움을 준 워드의 지인 중 한 명인 후커가 관장으로 있던 영국 왕립 식물원 큐 식물원의 세세한 기록들을 통한 식물 이동의 기록들은 그 당시 식물 채집 탐사와 운반, 이식이 얼마나 활발하게 이루어졌는지, 아름답고 경제적 가치가 높은 식물에 대한 사람들의 열망이 얼마나 강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벌어진 식민지에서의 노동 착취, 아동 노동 등 진취적이고 탐구적이며 욕망 가득하고 잔혹하기도 한 다양한 면들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한 세기 넘게 식물 이동의 큰 축을 담당한 워디언 케이스의 마지막은 씁쓸하다. 흙을 넣어 토양을 만들어 살아 있는 식물을 운반한다는 것은 식물 뿐만이 아니라 병충해 역시 함께 이동을 한다는 것이었고, 묘목, 과일 등과 함께 들어온 해충과 식물병은 이식된 지역의 삼림에 큰 영향을 주기도 했다. 20세기 초 워디언 케이스는 관상용 식물, 경제성이 높은 작물을 담은 가치 높고 효과적인 상자에서 해충을 옮기는 위험한 도구로 점점 인식이 탈바꿈되어갔고 그 용도 역시 변경되어, 결국 해충의 천척을 이동하는데 이용되는 등 식물을 위협하는 해충에 대한 방제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으로 그 마지막을 장식했다.



19세기 식물애호가의 호기심에서 탄생해 등장부터 환영받았으며 한 세기동안 식물과 함께 전세계를 횡단하며 환경 변화에 큰 영향을 주었던 워디언 케이스의 여정을 통해 이제는 기억 속에 거의 사라진 이 작은 유리 상자가 인간의 역사와 식물 환경에 남긴 큰 자취와 그 속에 인간의 욕망을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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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는 뇌, 망각하는 뇌 - 뇌인지과학이 밝힌 인류 생존의 열쇠 서가명강 시리즈 25
이인아 지음 / 21세기북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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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가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명강의 ‘서가명강’ 25번째 강의는 서울대 뇌인지과학과 이인아 교수가 뇌의 학습과 기억의 관계, 인공지능과 인간의 뇌의 차이점 등을 뇌인지과학을 통해 이해하기 쉽게 풀어나간다. 최근에 읽은 뇌과학 관련 책 중에서 가장 편하게 읽은 책인 것 같다. 그러면서도 뇌에 대해 가지고 있던 가장 큰 궁금증 중 하나였던 기억에 대한 부분들을 여러 사례를 통해 잘 설명해주고 있어 과학책이라는 무거움 없이 읽어나갈 수 있었다.



과거 철학에서 탐구했던 ‘나는 누구인가’하는 질문에 현대 과학은 뇌라는 중요한 부위를 통해 또 다른 방향에서 답을 찾고 있다. 자신을 ‘나’라고 인식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바로 기억일 것이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쌓아온 기억이 나를 만든다. 아마도 점점 더 뇌과학 분야에 관심이 많아지고 관련 서적이 나올 때마다 눈길이 가는 큰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뇌에 대한 연구가 진행됨에 따라 자신의 마음, 기억, 행동원리를 이해할 수 있는 길이 조금씩 넓어지는 것 같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의 뇌가 지금의 형태로 진화해 온 것은 생존을 위해서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생존 확률을 높이기 위해 우리의 뇌는 학습과 선택을 반복하며 진화했다. 타인과 소통하고 공감하며 이해하려는 사회적 뇌 인지 기능 역시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사회적 환경 속에서 발달해왔다. 연비를 고려하면 뇌는 슈퍼컴퓨터보다도 훨씬 효율적이라고하니 이 얼마나 훌륭한 진화의 산물인가.



뇌의 기능과 역할은 알면 알수록 신비하다는 생각이 든다. 별다른 의식 없이 일상적인 활동을 하고 기억을 축적하는 동안 사실 우리의 뇌 안에서는 약 1000억 개의 뉴런이 1000에서 만 개의 시냅스로 연결되어 거대한 신경망을 만들어 신체를 적절하게 움직이고 일상 생활을 해나갈 수 있도록 고도의 작용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뇌는 매순간 변화하는 주변 환경 속에서 태어나서 죽을때까지 평생 학습을 한다고 한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인체의 기관 중에서 가장 바쁜 기관이기도 한 셈이다.



메멘토, 이터널 선샤인 같은 영화나 실제 환자의 경우를 들어 길을 찾거나 문을 열거나 자전거를 배우는 것 같은 행동을 몸으로 기억하는 절차적 기억과 장면을 떠올리거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일화기억, 회상, 재인 같은 서술적 기억, 해마, 뉴런, 신경망, 치매, 파킨스병, 알츠하이머, 인공지능까지, 뇌의 각 부분별로 어떤 기억을 저장하고,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지, 왜 기억은 완전하지 않은지, 이인아 교수가 들려주는 뇌인지과학의 연구 결과는 무척 흥미롭다.



기억은 사진이 아니고 객관적이지도 않다. 실제로 과거에 있었던 일들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다보면 큰 줄기는 같아도 세부적인 상황을 서로 다르게 기억하거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서야 기억을 떠올리는 경우도 생각보다 많다. 그 이유는 뇌는 상황을 핵심적인 부분만 저장하고, 그 기억을 꺼내는 과정에서 빈 공간을 그럴듯하게 메꾸는 전략을 구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과거의 상황을 자신이 납득할만한 그럴듯한 이야기로 만들기 위해 경험을 활용해서 재해석하고 재구성한다고 하니 그렇게보자면 기억이란 일종의 저장물의 2차 창작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 갑자기 내가 기억하는 시간들이 얼마나 사실에 가까울까하는 약간의 두려움이 섞인 궁금증을 가지게 된다.



아직도 뇌는 비밀이 많은 공간이다. 각 부위가 가지는 기능과 역할은 차례차례 밝혀지고 있지만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지에 대한 답은 아직 해결되지 않은 부분이 훨씬 많다. 뇌의 작동원리를 이해하고 간섭할 수 있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그것이 인간에게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지 역시 의문이다. 그럼에도 과학은 발전할 것이고 언젠가 뇌에 대한 신비를 들여다볼 수 있게 될 것이다. 과연 어떤 미래가 펼쳐질까. 두렵고도 기대된다.



하지만 그건 먼 미래의 일 것이고, 지금 나의 가장 큰 궁금증과 걱정은 기억의 상실이나 노화의 문제일 것이다. 신체의 노화는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마지막까지 나는 나 자신이고 싶으니까 말이다. 저자는 기억의 노화를 더디게 하는 최선의 방법은 뇌를 계속 쓰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 오늘도 책을 읽고 또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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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힘 (프레더릭 레이턴 에디션) - 최상의 리듬을 찾는 내 안의 새로운 변화 그림의 힘 시리즈 1
김선현 지음 / 세계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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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황색 드레스를 입은 한 사람이 몸을 웅크린 채 너무나도 편안한 표정으로 잠들어 있다. 보고 있자면 나 역시도 마음이 편안해지고 어딘가 나만의 공간에서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고 싶어진다.



2015년 출간된 이후 지속적인 사랑받아 온 <그림의 힘>이 프레더릭 레이턴 에디션으로 돌아왔다. 세계미술치료학회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 한중일 임상미술치료학회장, 대한트라우마협회 회장으로 활동 중인 미술치료계의 최고 권위자인 저자 김선현이 임상 현장에서 효과가 좋았던 명화들과 미술치료 사례들을 통해 스트레스를 줄이고 집중력을 높이며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건강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 그림의 힘을 느낄 수 있도록 친절하게 안내해준다.



예전에 지인에게도 추천을 받았던 책인지라 읽고 싶은 책 리스트에 올려두었지만 유독 이번 에디션에 눈을 뗄 수 없었던 이유는 아마도 내 자신이 생각보다 많이 바쁘고 지쳐있었기 때문이었나보다. 리커버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프레더릭 레이턴의 ‘타오르는 6월(Flaming June)’은 바빠서 너무 정신이 없을 때 보고 있으면 휴식의 심상을 느끼고 안정감을 주는 그림이라고 하니 지금 나에게 그야말로 딱 맞는 작품이었던 것이다.



그러고보면 평소 예술작품 감상이나 예술에 관련된 책을 보는 것은 좋아하지만, 힘들 때 도움 혹은 위로를 받기 위해 그림을 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작품이 주는 에너지나 감동뿐만 아니라 마음을 쉬고 싶을 때, 집중하고 싶을 때, 긴장이나 마음 속 화를 풀고 싶을 때 같이 다양한 상황에 적절하게 도움을 주는 그림을 통해 마음치료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 감탄했다.



빈센트 반 고흐의 ‘밤의 카페 테라스’의 노란 조명의 밤의 카페 테라스에서 홀로 여유있게 차를 마시고 동행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더위도 고민도 잊고 친구와 함께 카페에서 대화를 나누고 싶어지고, 카유보트의 ‘낮잠’ 속 풀밭에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는 이를 보면 나 역시도 느긋한 자세로 여유로운 휴식을 취하고 싶다는 마음과 편안함이 느껴진다. 로렌스 알마 타데마의 ‘기대’를 보고 있자면 마음이 뻥 뚤리는 것만 같은 시원한 느낌과 함께 기분 좋은 기대감이 몰려온다.



Work(일), Relationship(사람 관계), Money(부와 재물), Time(시간관리), Myself(나 자신) 이라는 다섯 가지 주제를 통해 빈센트 반 고흐, 앙리 마티스, 클로드 모네, 파울 클레, 카스파르 프리드리히, 구스타프 클림트 등의 위대한 예술가들의 작품으로 다정하게 건네는 저자의 글과 그림과 색을 보며 느껴지는 감정들을 통해 이것이 바로 그림의 힘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지치고 답답한 마음이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책을 읽고 그림을 보는 동안 많이 공감되고 힐링이 되는 기분이었다. 무기력하거나 힘들다는 생각이 드는 이들이라면 지치고 무더운 이번 여름 <그림의 힘>과 함께 자신의 마음 상태를 들여다보고 릴렉스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은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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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이 불안할 때, 에리히 프롬 - 내 안의 힘을 발견하는 철학 수업 서가명강 시리즈 24
박찬국 지음 / 21세기북스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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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를 가지 않아도 들을 수 있는 명강의 ‘서가명강’의 24번째 시리즈는 서울대학교 철학과 박찬국 교수와 함께 에리히 프롬을 만나는 시간이다. <사랑의 기술>, <자유로부터의 도피>, <소유냐 존재냐> 등의 책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에리히 프롬은 대중에서 많은 사랑을 받는 철학자이며 ‘사랑의 철학자’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사람의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가치 중에 하나인 사랑, 자유에 대한 프롬의 사상은 여타의 어렵고 난해한 철학보다 조금은 편하게 다가오면서도 삶에 대한 큰 화두를 던진다.



<자유로부터의 도피>를 중심으로 박찬국 교수가 펼쳐내는 에리히 프롬의 삶과 사상에 대한 이야기는 철학적 이론 뿐만 아니라 비판적이면서도 독립적이고 종교적, 철학적, 심리적인 다양한 통찰을 폭넓게 수용하는 삶을 살고자 했던 그의 모습을 통해 프롬의 사상을 조금 더 가깝게 접할 수 있었다.



현대 민주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있어 자유란 무척 중요한 가치이고 당연하게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개념이다. 중세의 왕정, 국가권력, 교회권력에서 해방되어 현대인들은 자신이 자유롭다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프롬은 오히려 제도적인 권위와 지배에서 해방된 사람들이 고독과 무력감에 대한 불안 등의 이유 때문에 다양한 방법을 통해 스스로 자유로부터 도피하고 있다고 말한다.



프롬은 자유로부터 도피하는 네 가지 방법으로 마조히즘, 사디즘, 네크로필리아, 기계적 획일성을 들고 있다. 속박이나 지배를 통한 관계를 통해 안정감을, 정치적 권위나 상업적 가치에 수동적으로 따르며 내면의 무력감과 불안감에서 벗어나려고 스스로를 진정한 자유에서 도피해 거짓된 자유에서 편안함을 찾는다는 말한다.



결합과 합일, 초월과 창조, 지향의 틀과 헌신의 대상, 프롬이 말하는 인간 고유의 세 가지 욕망에 따르면 인간은 다른 존재와의 결합과 합일을 본능적으로 추구한다고 본다. 정치적 집단에의 예속, 종교적 교리에 대한 광적인 집착, 우상 숭배 같이 욕망을 어긋난 방향으로 해소하는 형태가 바로 자유로부터 도피한 인간의 모습인 것이다. 독일에서 나치즘이 대두하게 된 원인 중 하나로 불안하고 낯선 세계에서 도피하여 강한 힘을 가진 공동체에 속함으로써의 안심을 얻고자 하는 심리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시대를 프롬의 시각으로 본다면 슬프게도 과거와 마찬가지로, 아니 과거보다 더 병든 욕구가 지배하는 사회로 보일 지도 모른다. 현대 자본주의의 시대는 예전보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지고 여가 시간 역시 많아졌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과거 보다 더 분리되고 서로간에 소외되어 있으며 고독하다. 세계 곳곳에서 극우파가 점점 더 영향력을 넓혀가고 물질적 탐욕 역시 나날이 강해지고 있다.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재산, 지위가 자신의 정체성을 나타낸다는 생각에 갇혀 결국 더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어떻게 해야 진정으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에리히 프롬이 생각하는 자유란 인간이 자신의 실존적 욕망들을 이성적인 방식으로 구현하는 것이다. 연대, 미덕을 실천하고 사랑과 책임감, 관심을 진정으로 자유로운 존재가 되기 위해 구현해야 할 덕으로 보았다. 프롬은 우리에게 소유욕과 탐욕에서 벗어나야하며, 모든 생명을 사랑하고 존중하고, 책임감과 타인과 사회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과거도, 미래도 아닌 지금 현재를 살아가며, 참된 자유를 추구하는 삶의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끝없이 수양하라고 말한다.



사실 진정한 자유를 얻기 위해 프롬이 제시하는 방법은 현실적으로 실현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삶이란 소유양식과 존재양식 양쪽 모두를 추구하지 않을 수 없고, 수도자와도 같은 수양은 현실적으로 실천하기 쉽지 않으며, 게다가 개인의 노력만이 아닌 사회구조의 변혁 역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랑과 자유를 말하는 프롬의 글을 통해 자신이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나에게 있어 자유란 과연 무엇인지, 현대인들의 고독과 불안함은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무엇을 잃어버렸고,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가야 할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과학의 시대인 지금에도 왜 우리에게 철학이 필요할까. 아마도 자기자신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보기 위해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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