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빛 그림 아이
숀 탠 지음, 김경연 옮김 / 풀빛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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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중 우연히 방문하게 된 작은 서점을 둘러보다가 인상적인 표지에 끌려 나도 모르게 펼쳐보게 된 숀 탠 작가의 <도착> 때문에 여행 중에 무거운 짐을 늘리지 않아야 한다는 평소 생각과 그래도 이 책은 사야해라는 강한 욕망 사이에 한참 망설이다 결국 책을 손에 들고 서점을 나선 기억이 난다. 그 이후부터 누군가가 가장 좋아하는 동화작가가 누구냐고 물어보면 제일먼저 생각나는 이가 바로 숀 탠이었고, 지금도 새 책이 나온다는 소식을 들을 때 마다 무척이나 기대하며 기다리곤 한다.



<개>는 전작인 2020년 영국의 케이트 그린어웨이를 수상한 <이너 시티 이야기>에 수록된 스물다섯 동물들의 이야기 중 하나인 개의 이야기를 별도의 그림책으로 출간한 책이다. 삭막한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과 동물의 이야기를 담은 이너 시티 이야기 속 여러 외롭고 쓸쓸하고 때로는 다정하고 먹먹한 이야기 중 강렬한 이미지와 긴 여운을 남겼던 개의 이야기를 좀 더 큰 사양의 하나의 책으로 다시 볼 수 있게 되어 반가웠다.



수많은 반려동물 중에서도 개는 인간에게 가장 친숙한 존재 중 하나이다. 약 1만 2천년 전부터 개와 인간이 함께 했던 기록들이 발견되었다고 하니 인류의 오랜 역사를 사람과 개는 함께 걸어왔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의 학명은 Canis lupus familiaris이다. 가족을 뜻하는 라틴어 형용사가 아종명으로 포함되어 있을 정도로 개는 인간과 친밀하고 안정감을 주는 동물이다. 개와 함께 함으로써 삶의 행복이 커진 사람의 이야기, 함께 했던 사람을 잃고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개의 이야기. 서로가 서로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 존재인가 여러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숀 탠의 <개>는 이런 사람과 개의 유대감을 잘 보여주는 이야기다. 서로를 잘 모르고 서로를 적으로 인식했던 때의 각자의 고독과 두려움, 그러나 서로는 좀 더 다른 관계를 원했고 가까워지고 나란히 함께 걸어간다. 여러 이유나, 거역할 수 없는 시간이라는 제약에 의해 헤어지기도 하지만 봄, 여름, 가을, 겨울, 긴 시간, 꽃이 피어나는 따뜻한 장소에서도, 참혹한 전쟁터에서도 서로를 기다린다.



그리고 어느 순간 우리는 다시 함께다. 나날이 변화하는 세상은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함께라면 외로움도 두려움도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

단순하고 동일한 구도 속에 변화하는 위치와 풍경, 색감을 통해서 변해가는 개와 사람의 관계를 표현한 숀 탠의 그림이 유독 인상적이었다. 작가의 작품을 만날 때마다 어떻게 이렇게 마음에 와 닿는 그림을 그려내는 것일까 매번 감탄하는 사실이지만, 이번 작품은 유독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이 세상은 우리 거야!’라고,

모든 것이 좋을 수는 없겠지만 함께 걸으며 이렇게 외칠 수 있다면 오늘을, 그리고 또 내일을 조금 더 씩씩하게 걸어갈 수 있을 것만 같다. 반려동물을 좋아해서일지도 모르지만 지금까지 만난 작가의 작품 중에서도 유독 위안과 힘을 주는 이야기였던 <개> 다시금 숀 탠이라는 작가에게 빠져들 수밖에 없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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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칵 뒤집힌 현대 미술 - 세상을 뒤흔든 가장 혁신적인 예술 작품들
수지 호지 지음, 이지원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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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창조 행위의 시작은 파괴 행위다.’ 파블로 피카소의 이 말은 현대 미술을 잘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신앙, 미, 전통적인 가치를 담고 숙련된 작품을 만들어내기까지 오랜 수련의 시간이 필요했던 전통적인 미술과 달리 현대 미술은 기존의 가치를 전복시키고 과거의 양식과 관습을 파괴하며, 기술보다 아이디어를 통해 사회적, 정치적 메시지를 담기도 하고, 때론 자신의 내면과 주장을 다양하고 파격적인 방식과 재료, 형태로 표현한다.



하지만 일단 현대 미술은 어렵게 느껴진다. 상징과 기호의 의미를 알면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는지 대체적으로 읽어내기 어렵지 않은 고전작품들에 비해 새로운 기법과 독창성으로 표현된 현대 미술은 예술가의 내면, 의도를 알지 못한 상태로 작품을 마주하게 되면 이 작품이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는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지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레디메이드(기성품의 미술작품)’라는 개념을 창안한 마르셀 뒤샹의 <샘>을 처음 봤을 때 느낀 감정은 당황스럽다 였다. 작가가 만들어낸 것이 아닌 시판하는 소변기에 서명을 하고 전시를 함으로써 기성품이 예술품으로 변화하였다. 그야말로 상상을 뛰어넘는 혁신적인 발상이다.



그와 동시에 과연 예술이란 무엇인가? 라는 강한 의구심이 들었다. 예술 혹은 미술이라는 단어의 어원적 의미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기술’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시대의 ‘예술’이라는 단어는 미적 작품을 형성시키는 창조 활동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예술의 형태가 시대에 따라 변화하듯 단어에 담긴 의미도, 미에 대한 정의도 함께 변화하고 있다.



1850년부터 현재까지, 인상주의부터 입체주의, 다다이즘, 추상표현주의, 팝아트, 미디어아트, 설치 미술과 퍼포먼스, 참여형 예술까지 <발칵 뒤집힌 현대 미술> 속 미술 세계를 뒤흔든 현대미술, 동시대 미술 50점의 작품에 담긴 이야기들은 그야말로 흥미진진하다. 미술계를 변화시킨 파격적이고 독창적인 작품들과 작가들의 새로운 재료를 사용하고 참신한 발상을 통해 만들어내는 세계는 기이하게, 때로는 도발적이거나 전복적인 방식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에두아르 마네, 파블로 피카소, 피에트 몬드리안, 살바도르 달리, 잭슨 폴록, 마크 로스코, 이브 클랭, 쿠사마 야요이, 데미언 허스트, 애니시 커푸어, 뱅크시까지 과거에 비해 훨씬 개성적이고, 복합적이며 다양한 방식으로 예술을 표현해온 예술가들에 의해 현대 미술, 동시대 미술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과거 작가에 의해 창조된 작품을 감상하는 위치에 있었던 관객은 이제 작가와 함께 예술작품을 완성시키는 존재가 되었다.



최근 리움미술관의 ‘인간, 일곱 개의 질문’ 에서 작품이 전시되기도 했던 이브 클랭의 강렬한 파란 색과 신체를 붓으로 변화시킨 인체 퍼포먼스는 작품을 이해하는 것은 솔직히 어렵지만 그 강한 인상은 오래 남아 계속 작품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다.

데미언 허스트의 죽은 동물을 이용한 설치미술은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내용 중 가장 직접 관람해보고 싶은 작품이다. 죽은 상어가 떠 있는 포룸알데히드 탱크를 바라보는 기분은 어떨까. 과연 두려움과 덧없음 중 어떤 감정이 더 깊게 다가올 것인지 무척 궁금해진다.



산업화는 삶의 방식을 변화시켰고, 그에 따라 예술을 향유하는 방법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디지털 혁명과 글로벌화와 함께 미술의 표현과 방법은 더욱더 넓어져갔다. 현대 미술은 때로는 격렬한 반발을, 때로는 엄청난 찬사를 받는다. 환호, 분노, 충격, 경악, 비판, 작품에 대한 반응의 방향을 각각 다르지만 현대미술이 예술을 좀 더 넓게 확장시켰다는 사실만은 확실하다. 현대 미술이 시대별로 어떤 모습이었는지 작품과 시대상을 통해 들여다보며 과연 예술이란 무엇인가, 현대 미술 작품을 어떤 방식과 마음으로 마주해야 하는가, 다양한 생각을 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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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인어들 - 전설 신화 속 신비한 인어를 찾아서 고래동화마을 11
차율이 지음, 가지 그림 / 고래가숨쉬는도서관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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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반신은 사람, 하반신은 물고기, 바다에서 일어나는 재해에서 사람을 구해주기도 하고, 은혜를 갚기도 하고, 때로는 유혹을 하고, 심지어 먹으면 불로장생을 한다는 세계 곳곳에 전해지는 여러 이야기를 품고 있는 인어. 인어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역시 안데르센의 인어공주다. 스타벅스의 로고이기도 한 세이렌, 인어고기를 먹으면 불로장생한다는 일본의 설화 등 다양한 인어 이야기들이 생각나지만, 아무래도 한국의 인어 설화는 조금 생소했다. 한국에 인어 전설이라고? 랄까.



이미 인어 동화책을 세 권 출판한 동화작가 차율이와 동양 전통문화를 재해석한 환상적인 그림을 그리는 가지 작가가 함께 엮어낸 <한국의 인어들> 목차와 후기를 보고 있자니 한국에도 이렇게 많은 인어에 대한 전설과 민담, 설화들이 전해져왔구나 하고 새롭게 다가왔다. 심지어 최근 영화로 개봉되기도 해서 익숙한 조선시대 정약전이 쓴 ‘자산어보’에도 인어에 대한 글이 남아있다고 한다.



어유야담의 ‘김빙령과 인어’를 시작으로 총 10가지 인어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한국 인어는 해를 끼치기보다 오히려 사람을 무서워하는 겁 많고 마음씨 착하며, 도움을 받으면 꼭 보은을 한다. 인어와 마주치는 사람들 역시 순박하고 착한 이들이다. 어부에게 잡힌 어린 인어들의 눈물을 보고 바다로 돌려보내주기도 하고, 굼들에 찾아오는 인어들과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며 다툼과 경계 없이 조화롭게 살아가기도 한다. 어부들에게 잡혀 팔려가려던 인어를 구해주었던 어부는 알고보니 용궁의 인어공주였던 인어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게 된다. 선행과 호의는 역으로 자신에게도 좋은 결과로 돌아오게 되는 법이랄까.



여러 이야기 중에서도 거문도에 전해 내려오는 <신지께가 된 은갈치>가 제일 눈길이 갔다. 인간이 되고 싶어 100년간 미역만 먹으며 물속에서 인간처럼 생활을 해야 했던 은갈치는 큰 태풍이 오는 날 한번 쯤은 용왕님도 모르실 거야 하는 마음에 눈을 뜨고 자는 바람에 결국 인간이 되지 못하고 반인반어로 남게된다. 비록 인간이 되지 못해 슬펐지만, 정이 들었던 어부들이 사고를 당하지 않도록 두려움의 대상이 되면서도 그들을 계속 도와주던 은갈치는 결국 거문도의 수호신인 신지께로 불리게 된다. 한 번 놓친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다는 교훈도 담겨 있지만, 처음 원하던 모습은 아니지만 또 다른 형태의 행복이 있을 수도 있다는 기분 좋은 결말이다. 쑥과 마늘만 100일간 먹어야 했던 웅녀보다는 미역을 먹어야했던 은갈치가 조금은 나았으려나라는 생각이 들어 웃음이 났다.



“암. 감히 미천한 인간이 넓디넓은 바다의 깊은 속을 어찌 휜히 다 알 수 있겠는가.

당장 내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닌 게야.” (P130)



자산어보에 인어에 대한 항목을 수록하려고 하자 실제 본 적이 없는 인어를 정말 추가할 것인지 묻는 창대에게 한 정약전의 대답이다. 그렇다.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존재만을 믿는 건 얼마나 재미없는 일인가. 인어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깊은 바다 어딘가에 존재한다고 믿어본다면 세상은 좀더 넓어지고 훨씬 재미있어지지 않을까.

한국의 인어들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 속에 담긴 삶의 지혜와 마음 착한 이들의 좋은 이야기를 통해 오랜만에 힐링되는 시간이었다. 동화책은 어린시절에 읽었을 때와는 또 다르지만, 성인이 된 지금도 언제나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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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괴수괴인 도해백과
고성배 지음, 백재중 그림 / 닷텍스트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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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부터 강렬하다. 옛날 만화 잡지에서 본 것 같은 이 컬러풀하고 개성적인 괴수괴인들은 대체 누구인가. 대체 이 책 안에는 어떤 내용들이 담겨 있는 것인가.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텀블벅 펀딩을 통해 전세계의 악마, 마물들을 모아놓은 ‘검은사전’, 한국 고문헌 속에 등장하는 이상한 식물사전 ‘괴초록’, 조선 민간 부적들을 모은 ‘잃어버린 조선의 부적들’ 같이 제목만 봐도 호기심을 유발하는 이색적인 책을 출판하는 닷텍스트(구 더쿠)는 매번 어쩜 이렇게 독특한 책을 만들어내는 것일까 신기해하며 다음 책을 기대하게 만드는 출판사다. 타이밍을 놓치면 구하기 힘들었던 전작들과는 달리 ‘한국 요괴 도감’, ‘동양 요괴 도감’같은 책들은 전국 서점 어디에서나 구매할 수 있게 되어 드디어 이런 장르의 책도 점점 더 읽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 같아 즐거워하던 차에 이번 역시 무척 흥미로운 책이 출간되었다.



이름하여 <전격해부 SF 괴수괴인 도해백과>. 초기 SF영화에 등장하는 괴수, 괴인 50종에 대한 백과사전이다. 괴수괴인들의 드로잉, 생태, 도해 각부 명칭 등을 통한 각각의 특징, 배경 등에 대한 다양한 설명과 등장 영화를 함께 소개하고 있다.



금성수, 바란 등 12종의 괴수, 아스트론델타인 같은 16종의 우주괴인, 모울맨, 아토믹 몬스터 등 22종의 지상괴인까지 1910년부터 1970년대 영화나 시리즈물에서 등장하는 괴수들의 탄생배경, 피해자, 약점, 은신처 같은 상상력이 흠뻑 가미된 정보들을 담은 재미있는 설명과 드로잉을 보고 있으면 괴인괴수 뿐만 아니라 등장하는 작품에 대해서도 궁금하게 만든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50편의 작품이 다 재미있을 것 같다. 이 책 구석구석 꼼꼼하게 볼수록 더욱 재미있다. 식집사가 될 수 있는 식인식물 오드리 주니어를 키우는 방법이나 골렘 제작 요령을 진지하게 읽고 있다니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은데 계속 눈길이 간다. ‘우주에서 온 10대’라는 1959년 영화에서 등장하는 아직 10대인 호전적 외계인 토르가 지구를 침략한 이유가 거대 랍스터인가 싶은 모습의 별미 괴수 가곤을 키우기 위해서라니, 고전영화 상상력 너무 멋지잖아!!! 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고전작품에 등장하는 괴수, 괴인은 그로테스크하고 무섭다기보다는 어딘가 묘하게 귀엽다는 느낌도 든다. CG나 그래픽 기술이 뛰어난 지금의 괴물과는 달리 많이 어설프지만 그것이 오히려 기억 속 향수를 자극한다. SF영화나 특촬물에 등장하는 괴물이 실존한다면 어떤 구조를, 어떤 스토리를 가지고 있을까. 글과 책 디자인을 담당한 고성배 에디터와 일러스트레이터 백재중 작가의 협업이 만들어낸 마치 어딘가에 존재할 것만 같은 괴인과 괴수의 세계를 통해 순간이지만 어린 시절 호기심과 즐거움이 가득했던 시간으로 되돌아간 것 같았다. 이것이 진정한 레트로의 세계인 것인가.

과거 만화잡지를 보는 것 같은 레트로 감성이 가득한 편집과 매 장마다 다른 구성, 심지어 8~90년대 문방구에서 볼만한 딱지놀이, 미니보드게임, 종이인형 같은 레트로 게임들도 중간중간 등장한다. 친구와 진지하게 늑대인간 딱지놀이를 하고 싶게 만드는 책이라니. 최고다.



책 한권으로 고전 영화, 레트로 게임, 괴인괴수에 대한 궁금증까지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재미와 정보, 게다가 레트로한 감성까지 모두 잡은 <전격해부 SF 괴수괴인 도해백과>. 책 한 권을 읽으면서 이렇게 많이 옷은 건 오랜만이었던 것 같다. 앞으로도 독특한 소재를 아카이빙한 책들이 계속 출판되기를, 닷텍스트의 롱런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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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리에 꼬리를 무는 암살의 역사 건들건들 컬렉션
존 위딩턴 지음, 장기현 옮김 / 레드리버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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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꿀 만큼 큰 영향력이 있는 암살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어떤 사건이 떠오를까. 나는 “브루투스, 너마저?” 로마의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원로원 등 암살자 무리에게 공격을 당하며 친구 브루투스에게 이렇게 외쳤다는(실제 카이사르가 한 말이 아닌 셰익스피어의 희곡 ‘줄리우스 시저’에서 나오는 대사라고 하지만) 카이사르의 암살이었다. 유럽문화와 종교, 사회 체제에 많은 영향을 준 로마 제국이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황제의 시대를 만든 인물인 카이사르가 암살당하지 않았다면 그 이후 로마 제국은, 유럽은 지금과는 또 다른 모습이었을까?



고대부터 오늘날까지 4,000년이 넘는 암살의 역사를 보여주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암살의 역사>는 기원전 2000여년전 이집트 파라오의 암살부터 중세시대 왕과 권력자, 오스만 제국의 왕위 계승을 둘러싼 살인들, 근대 프랑스혁명, 제1차, 제2차 세계대전, 유럽 열강의 식민 지배를 벗어나 새로운 나라와 국경을 만들어가면서 벌어진 암살들, 대통령, 언론인, 유명인, 극단주의자에 의한 사건, 현대의 민족해방을 이유로 벌어지는 수많은 암살 사건들의 역사, 그 속에 담긴 배경, 결과까지 암살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수의 암살자가 벌이는 암살은 그 대상자가 누구인가에 따라 수많은 무기와 인원이 동원되는 전쟁만큼이나 역사에 큰 변곡점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현재 이슬람 분쟁의 가장 큰 원인인 시아파와 수니파의 종파 갈등 역시 3대 칼리프 오스만과 4대 칼리프 알리가 암살당한 이후 후계자 계승 방식을 놓고 충돌하여 크게 두 파로 갈라지게 되었고 그 결과 아랍 세계는 1,500년 이상이 지난 지금도 수니파와 시아파의 분쟁으로 끊임없이 피를 흘리고 있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가 보스니아에서 암살당한 사건은 제1차 세계대전의 시발점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사건만으로 유럽을 뒤덮은 전쟁이 일어났다고 볼 수는 없지만, 아슬아슬한 국가 간의 분쟁 관계에 불을 붙이는 촉매재가 되었다는 사실만은 확실하다. 미국 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의 죽음은 방송으로 중계가 되어 더 큰 충격과 영향을 주기도 했다. 반대로 권력을 잡기 전부터 이후 독일 총통이 될 때 까지 여러 번 시도 되었지만 매번 실패로 끝난 히틀러의 암살이 성공했다면 어땠을까?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암살의 역사를 보다보면 혹시 이런 일이 없었다면? 이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케이스가 많았다.



고대, 로마제국과 중세시대, 기사도시대와 종교전쟁의 시대, 근대와 오늘날의 암살, 그리고 암살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이야기까지 시간의 흐름을 따라 펼쳐지는 암살의 기록들은 시대에 따라 암살의 목적도 방법과 그에 대한 인식도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권력에 대한 욕망, 정치적 명분, 이념 갈등, 종교, 복수, 경제적 이유까지 다양한 이유로 인류의 역사 내내 암살이 이루어 졌지만 시대별로 다른 주요 암살 목적을 통해 그 시대상을 엿볼 수 있다.



사실 암살이란 어떻게 생각해보면 전쟁보다 합리적일 수도 있다. 손자병법을 쓴 손무 역시 많은 인명과 자원을 투입하고 민간인이 피해를 입는 전쟁보다 대상자 한명을 살해함으로서 피해를 최소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암살을 뛰어는 전력으로 평가했다고 한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맹자 같은 위대한 철학자들 역시 폭군살해로서의 암살을 영웅적 면모로 보며 지지하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정치적 대의나 종교적 신념이 폭력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폭군이나 독재자를 살해함으로서 폭정이 없어지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볼 때, 책 속에서 등장하는 다양한 암살 사례의 성공률을 보자면 과연 얼마만큼 효과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암살이란 필요악인가, 아니면 없어져야 할 행위인가.

역사란 어떤 관점으로 보는가에 따라 매번 새롭게 다가온다. 암살이라는 독특한 주제를 통해 이번 역시 새로운 역사의 한 면을 바라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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