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무지는 심지어 측정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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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서양 식기의 세계 - 초보자가 처음부터 하나씩 배워가는 서양 식기의 모든 것!
카노 아미코.겐바 에미코 지음, 박서영.김경철 옮김 / 클라우드나인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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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차와 커피에 관심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동서양 식기에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한 카페에서 마이센의 쌍검 커피잔을 본 후 이전까지 식기에 욕심이 없었던 나로서 드물게 이건 꼭 소장하고 싶다는 생각에 집에 오자마자 열심히 인터넷 검색을 하다 아름다운 찻잔의 세계에 푹 빠져버렸다고 해야할까. 화려한 서유럽의 브랜드도 심플한 북유럽 브랜드도 어느 하나 눈길이 가지 않는 제품이 없었다.



막상 관심을 가지고 보니 서양 식기의 세계는 엄청나게 방대하고 빈티지나 라인도 다양해서 기초 지식 없는 상태로는 어려운 분야였다. 그러던차에 초보자가 보기 쉬운 서양 식기 입문서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은 나에게 식기에 대해 알아가기 위한 좋은 스타트가 되어 주었다.



저자 카노 아미코와 겐바 에미코 자매는 초보자를 대상으로 서양 식기 강좌를 진행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도자기의 정의, 원료, 유약, 제조방법, 도자기와 문양의 종류를 정리한 '기초지식' / 국가별 유명 브랜드, 브랜드별 히스토리를 담은 '브랜드' / 디자인 도안의 베이스가 되는 미술양식과 각 양식의 특징적인 요소들을 설명해주는 '미술양식' / 유럽 역사의 중요 흐름과 함께 식기 디자인이 탄생한 배경이 되는 '역사' / 도자기 역사에 등장하는 중요 인물들을 소개하는 '인물들' / 구입, 보관, 사용 포인트 등을 알려주는 '서양 식기 사용법'으로 카테고리를 나누어 서양 식기에 대한 기초 지식을 단계적으로 알아갈 수 있게 안내해준다. 브랜드 별 대표 식기를 소개해주고 있어 각각의 특색을 잘 알 수 있고 무엇보다 풍부한 사진과 일러스트로 특색있고 아름다운 서양 식기들을 볼 수 있어 눈이 즐거워진다.



12세기 중국 경덕진에서 처음 만들어진 백자는 마르크폴로를 통해 서양에 소개되어 많은 이들을 매혹시키고 17세기에는 금과도 같은 가치를 가지고 있었지만 서양에서는 그 제작법이 미스테리에 쌓여 있었던 자기는 18세기 초 동양의 도자기에 매료되었던 작센 왕국의 선제후 아우구스트 2세에게 고용된 요한 프리드리히 뵈트거에 의해 유럽 최초로 경질자기 제조에 성공하였고 <마이센>은 서양 자기의 개척자가 되었다. 작센 선제후이자 폴란드 왕이었던 아우구스트 2세는 자기를 외교에도 이용하였다고 한다. 마이센 도자기는 유럽 왕실간의 최고의 선물로 이용되었다고 하니 그 위상을 능히 짐작해볼 수 있다. 제작가인 뵈트거를 유폐하면서까지 지키려던 도자기 제작법은 떠돌이 장인처럼 유럽의 유명 가마를 전전했던 크리스토프 콘라트 훙거라는 마이센 장인을 통해 제조법 유출되면서 300년이라는 짧으면 짧다고 할 수 있는 시간 동안 서양 자기는 화려하고 다양하게 발전해왔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오스트리아, 헝가리, 러시아, 북유럽, 유럽 각국의 세브르, 웨지우드, 로얄 크라운 더비, 아우가르텐, 헤렌드, 로스트란드, 이딸라 등의 유명 브랜드의 대표 식기, 여러 양식과 도안을 통해 각각의 매력을, 바로크, 시누아즈리, 바로크, 신고전, 아르누보, 아르데코 등 미술 양식에 대한 설명을 통해 도안 모티브가 시대별, 양식별로 가지는 특징과 의미를 읽어낼 수 있었다.



흰색의 돌을 분쇄하여 가루에 키올린이라는 점토 광물을 첨가해 흙을 만든다. 그 흙으로 모양을 만들고 소성을 하고 유약을 바르고 재벌을 하고 페인팅을 한 후 마지막 소성을 통해 자기가 탄생한다. 복잡한 페이팅의 경우 몇달이 소요되기도 했다고 한다. 자기가 완성되는 과정을 보고 그 속에 담긴 역사와 의미를 알고 나니 서양 식기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헌데 문제는 호기심이 생기는 브랜드와 욕심이 나는 제품이 더 많아졌다는 것이다. 마이센 뿐만이 아니라 세브르의 팻 블루가, 로스트란드의 몬아미가, 여러 양식의 컵과 소서가 눈 앞에 아른거린다. 서양 식기에 대한 지식만이 아니라 무한한 소장 욕구까지 함께 높여주는 무서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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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와 프로파일러 - FBI 프로파일링 기법의 설계자 앤 버지스의 인간 심연에 대한 보고서
앤 울버트 버지스.스티븐 매슈 콘스턴틴 지음, 김승진 옮김 / 북하우스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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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미널 마인드, 마인드 헌터, 양들의 침묵, 세븐, 조디악,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 시그널 같은 영화, 드라마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프로파일러와 프로파일링 기법은 이제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가 되었다. 사건 해결을 위해 범죄를 분석하고 범죄자를 체포하는데 가이드라인을 제공하여 연쇄살인범이나 강력범죄를 해결하는 프로파일러들은 참으로 매력적이었다. 

저자 앤 올버트 버지스는 법과학 및 정신의학 전문가로서 20년 넘게 FBI와 함께 일하였고, 1970년대 간호학 분야 최초로 성폭력 피해자의 트라우마와 회복에 초점을 맞춘 연구를 수행한 전문가이며, 범죄자 성격 연구를 체계화하여 프로파일링 기법을 개발, 설계한 프로파일링 분야의 선구적인 연구자이다. '살인자와 프로파일러'는 그가 70년대부터 FBI 행동과학부 컨설턴트로 참여하여 1세대 프로파일러들과 함께 새로운 수사 기법인 프로파일링에 대해 연구, 개발하는 과정, 프로파일링을 통해 범인을 체포하는데 도움을 주었던 사례들에 대한 기록, 강연과 법정에서 전문가로서 증언 등의 활동을 통해 범죄와 연쇄살인범에 대해 신화의 대상이 되거나 엔터테인먼트로 소비되는 것을 막고 범죄에 대한 객관적 이해와 피해자들에 대한 회복을 돕기 위해 활동한 저자의 일생이 담긴 회고록이다. 

미국드라마 '마인드 헌터'의 중요 등장인물 중 한명인 웬디 카 박사의 모델이자 프로파일링 기법을 연구하여 1세대 프로파일러 존 더글라스, 로버트 레슬러 등 행동과학부 일원들과 함께 강력범죄 수사 및 분류 시스템인 'FBI 범죄 분류 매뉴얼'을 완성해 체계적인 범죄수사와 과학적 행동분석의 기틀을 마련한 앤 버지스의 최초 회고록이다보니 평소 프로파일러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하던 나로선 더욱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다. 특히 범죄 분석시에 최초로 피해자의 관점을 도입한 범죄자들의 심리 연구 체계를 수립해 수사 분석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이 놀라웠다. 통상적으로 흉악한 범죄가 발생했을 때 사건은 범죄자를 중심으로 이야기되어지고 정작 피해자는 잊혀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앤 버지스는 평생의 연구의 방향도, 이 책에서도 중요한 것은 피해자라고 거듭 말하고 있다. 절대 피해자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문장이 큰 울림을 주었다. 

프로파일링은 총 4단계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주무 프로파일러가 배경정보, 증거, 수사 기록 등 충분한 데이터를 모아 범죄의 핵심적인 요소들을 파악하는 1단계 '프로파일링 인풋 수집'

피해자와 가해자의 관점 모두에서 범행을 재구성해 사건의 인과관계를 밝히는 2단계 '범행 분석'

살해 유형과 스타일 등 일곱 가지 사건의 핵심 요소를 통해 인식 가능한 패턴과 알려진 범주로 조직화하는 3단계 '의사결정 과정 모델 도출'

주무 프로파일러와 다른 프로파일러들이 함께 검토, 협업, 회의를 통해 '범죄자의 프로파일을 작성'하는 4단계이다. 

심리학, 행동학, 범죄 피해자학, 언어심리학 등 다양한 관점으로 연쇄살인범의 사고방식을 패턴화하고 분석하고 읽어냄으로써, 이해하기 어렵고 불합리해보이는 범죄자의 마음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그 작동 논리를 이해하여 범인을 빠르게 파악하는 고도의 작업이다. 

이러한 이론을 실제로 적용한 BTK살인자, 유나바머와 같은 연쇄살인범에 대한 프로파일링, 리셀, 켐퍼를 비롯한 여러 연쇄살인범들의 인터뷰 기록들을 통해 범죄자들의 어두운 심연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앤 버지스가 실제 참여했던 사건들의 실제 녹취기록, 속기록 등을 바탕으로 한 객관적이고 마치 보고서와도 같은 기록들을 통해 범죄자의 심리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지배와 통제의 욕구가 어떻게 잔혹한 범죄로 발전하는지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연쇄살인범, 사이코패스, 동족 포식자, 시그니처, MO(범행 수법), 책에서 나오는 단어들이 익숙하게 들리는 것은 그만큼 프로파일링과 강력범죄가 익숙해졌다는 이야기이기도 할 것이다. 연쇄살인범이 우상화 되고 그 신화가 엔터테인먼트화 되는 것에 대한 저자의 염려는 이미 현실화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책에서 등장하는 범죄의 현장과 기록들을 섬뜩하다는 느낌과 동시에 흥미롭게 읽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려울 것 같다. 그렇기때문에 책 전체에 통해 보여지는 가장 중요한 것은 피해자라는 주제는 연쇄살인범이나 사건의 엽기성보다 피해자와 그의 가족, 슬픔과 트라우마에 대해 다시 떠오르게 해준다. 앤 울버트 버지스의 수십년간 연구와 활동에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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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들 I LOVE 그림책
므언 티 반 지음, 빅토 가이 그림, 신형건 옮김 / 보물창고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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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가 더 늦게 가기를, 마음은 더 강해지기를, 바다는 더 잔잔하기를, 집은 더 가까워지기를 소원하는 소녀가 있다. 생명을, 자유를 지키기 위해 가족의 일부와 고향을 뒤로 하고 새로운 세계를 향해 떠나는 소녀를 태운 배가 항해하는 물결치는 바다에 내리쬐는 태양의 색감은 아름답기만 하다. 하지만 그 배 안에 사람들의 상황은 절대 그렇지 못했을 것이다.



미국에서 활동하며 다수의 상을 수상한 작가 므언 티 반은 베트남 난민 출신으로 베트남의 공산화로 인해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베트남을 탈출한 자전적 체험을 소재로 간결하면서도 강렬하고 아름다운 글을 자아낸다. 뉴욕 일러스트레이터협회 금메달리스트인 빅토 가이의 선명하고도 부드러운 일러스트가 더해져 '소원들'은 짧지만 강한 여운과 많은 생각할 주제를 던진다.



난민은 먼 나라, 어느 과거 시점의 존재가 아니다. 학교를 다니고 친구들과 어울려 생활해야 할 나이에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는 아이들이, 가족과 스스로의 생명을, 때로는 자유와 자신의 사상을 지키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의 고향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이주하기 위해 난민이 되는 이들이 지금 어딘가에도 끊임없이 생겨나고 있다. 우리에게도 난민이란 낮선 단어가 아니다. 한국 역시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당시 많은 난민이 발생하여 주변 국가로 이주한 과거가 있다.



2022년 UN난민기구의 통계에 따르면 1억 명 이상의 난민이 존재한다고 한다. 우크라이나, 시리아, 아프가니스칸, 티베트, 미얀마, 세계 곳곳에서 전쟁, 정치적 상황, 테러, 빈곤, 자연재해 등을 이유로 삶의 터전을 강제로 떠나 난민이 되고 있다. 최근에는 지구 온난화, 심각한 기후위기의 영향으로 피해를 받는 기후 난민 역시 급증하고 있다.



하지만 난민들이 정주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난민 수용 여부는 어느 나라에서나 찬반 논란이 있는 문제이다. 한국에서도 2018년 제주도에 입국한 예멘 난민들의 지위 인정 요청이나 2021년 아프가니스탄 난민 수용 반대 논란 등으로 난민 수용 여부를 두고 찬반논란이 뜨거웠다. 대한민국이 난민 수용에 대해 반대 의견이 더 높은 상황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책을 읽으며 찾아보다보니 한국의 난민 인정률은 1.3%로 OECD국가 중 최하위권이라고 한다. 생각보다 더 낮은 수치에 놀라웠다.



난민 수용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존재한다. 난민 수용을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자국민 보호와 사회적 혼란, 경제적 손실 등을 이유로 난민 수용을 반대한다.

반대로 난민 수용을 찬성하는 입장에서는 인도주의적 관점과 선진국으로 발돋음한 지금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과 책임을 이야기한다. 또한 난민을 적극 수용하는 나라들의 경제성장률이 오히려 증가하는 사례나 외국인 범죄의 경우 국내 범죄의 절반 이하라는 통계로 반대하는 입장의 의견을 반박한다.



난민 수용 여부에 대한 찬반 의견의 쟁점을 보면 어느 한쪽만 옳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모두 결국 소중한 무언가를 지키기 위함일 것이다. 다만 작가의 말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나는 더 안전하고, 더 친절하고, 더 공정하고, 더 아름다운 세상을 바라고 있어요.

이 소망에 여러분이 동참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함께라면 꼭 실현할 수 있으니까요.

- 므언 티 반(작가의 말 中)


나 역시 더 안전한 세상을 바란다. 그와 동시에 더 친절하고 더 공정한 세상은 그렇지 않은 세상보다 훨씬 더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희망을 안고 거친 날씨와 열악한 상황 속에서 작은 배에 의지해 아주 작은 것들을 소망하는 소녀의 소원이 이루어지기위해, 지금도 어딘가에서 같은 소원을 빌고 있는 이들을 위해, 나 역시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일단 먼저 주변의 이들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함께 읽고 이야기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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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모나 바이올린 기행
헬레나 애틀리 지음, 이석호 옮김 / 에포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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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운명과도 같이 어느날 밤 웨일스의 작은 마을에서 클레즈머 음악과 함께 18세기 크레모나에서 만들어져 러시아까지 전해진 레프 바이올린의 선율을 만난 헬레나 애틀리는 16세기 바이올린의 탄생부터 현재까지 450년 바이올린의 역사와 레프 바이올린에 담긴 시간을 쫓아 이탈리아를 시작으로 유럽 각지를 거쳐 러시아까지 긴 여정을 떠난다.

 


스트라디바리우스, 아마티, 과르네리...바이올린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에게도 익숙한 이 바이올린들은 세계적인 연주자들의 손에서 아름다운 음악을 자아내며, 몇백억을 호가하는 가격에 거래된다. 이 명기들의 고향은 바로 이탈리아 크레모나라는 작은 마을이다.

 


음악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은 나에게는 생소한 지명인 크레모나는 17세기 현대적 바이올린을 탄생시켰다고 불리는 안드레아 아마티를 비롯해서 스트라디바리, 과르네리와 같은 바이올린의 명가들의 공방이 시작된 곳이며, 지금도 그 곳 크레모나 국제 현악기 제작학교에서 현악기 제작자를 꿈꾸는 이들이 모여 안드레아 아마티의 방식으로 바이올린 제작방법을 배우고 만들어내고 있다.

 


레프 바이올린의 역사를 찾기 위해 시작된 저자의 여정은 한 대의 바이올린이 완성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과 과정이 필요한지, 교회와 궁정, 재력가와 오페라, 작은 마을의 민속음악에서 제2차 세계대전까지 유럽 문화와 역사의 흐름과 함께 다양한 시간, 장소 속에 바이올린의 여러 모습을 따라간다.

레프의 바이올린 역사만큼 인상적이었던 부분 중 하나는 과거 바이올린 앞판 재료로 사용되는 25~30미터 높이, 수천톤 무게의 독일가문비나무를 알프스의 파네베조 숲에서부터 벌목꾼 보스키에리, 나무를 산 아래까지 이동하는 콘두토리, 산 아래 강가까지 도착한 통나무를 강 하류까지 원할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통나무 몰이꾼 메나다, 뗏목꾼 차티에로라는 여러 전문가들을 통해 산과 강을 지나 베네치아까지 이동해 바이올린 제작자에게 구매될 때까지의 과정이었다. 훌륭한 바이올린은 제작가의 재능뿐만 아니라 나무의 상태, 이동과정까지 뭐 하나 빠지면 완성되기 어렵다는 사실은 나무의 여정을 통해 잘 알 수 있었다.

 


연주자 그레그에게 레프의 바이올린은 자신의 일부를 소리로 표현할 수 있는 동반자와 같은 악기지만 동시에 큰 가치가 없는 물건이라는 감정을 받은 악기이기도 하다. 과연 레프의 바이올린는 어디서 만들어져 어떤 사람들을 만나 먼 러시아를 거쳐 그레그에게까지 인도되었으며, 정말 가치가 없는 악기일 뿐일까. 저자만큼이나 나 역시 이 오랜 세월을 보낸 악기에 담긴 이야기가 궁금해져 책을 손에 놓을 수 없었다.

 


유명 바이올린이 만들어진 배경부터 레프의 바이올린의 일대기까지 저자는 긴 시간 다양한 장소에서 하나 또 하나 그 흔적을 찾아간다. 물건은 그 안에 담긴 역사와 시간을 통해 누군가에게 의미를 남긴다. 레프 바이올린 역시 누군가에게는 삶의 한 순간에 큰 영향을 준 악기로, 다른 누군가에게는 가치 없는 물건으로 평가되었다. 책 곳곳에 표시되어 있는 QR을 통해 볼 수 있는 스트라디바리가 제작한 '메시아'를 비롯한 여러 현약기들을 책을 다 읽은 후 다시 보니 왠지 처음 볼 때보다 더 우아하고 유려하게 느껴진다. 크레모나에서 시작된 바이올린 기행은 나에게도 바이올린을 조금 더 가까이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계기를 만들어 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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