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푸른 상흔 프랑수아즈 사강 리커버 개정판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권지현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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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작가는 과연 어떤 이야기를 쓸까. 작품을 만나기도 전에 프랑수아즈 사강에 끌린 이유이다. 그리고 그의 작품의 그 발언 만큼이나 자유롭고 시니컬하다.

<마음의 푸른 상흔>은 어린 나이에 데뷔작부터 큰 사랑을 받고, 발표하는 작품마다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사강이 첫 작품으로부터 18년이 지난 1972년 발표한 작품이다. 에세이와 소설을 넘나드는 독특한 구성으로, 연보에 이 작품이 자서전으로 구분되어 있기도 할 정도로 그의 자전적 모습을 많이 담고 있다. 다양한 주제에 대한 사강의 생각뿐만 아니라 소설에서 에세이로, 에세이에서 소설로 이어지는 과정 속에서 작가가 인물을 어떻게 만들어내고 이 인물들을 통해 어떻게 이야기를 이어가는지,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 또한 볼 수 있어 여러 재미를 동시에 주고 있다.

‘이렇게 쓰고 싶다. “세바스티앵은 휘파람을 불며 계단을 성큼성큼 올라갔다. 조금 숨이 찼다.” 십년 전 인물들을 다시 불러내는 것도 재미있을 텐데.’로 책이 시작된다. 이 작품 속 소설의 주인공 엘레오노르와 세바스티앵 반 밀렘 남매는 사강이 1960년 발표한 희곡 <스웨덴의 성>의 등장인물이라고 한다. 과거 작품 속 인물을 10여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후 다른 이야기 속에 등장한다는 것은 이 인물들이 얼마나 흥미로운 존재인가 보여주는 것 같다.

매력적인 엘레오노르와 세바스티앵은 마치 한 발은 현실에, 또 한 발은 허공에 떠 있는 또 다른 세계에 걸쳐진 채 살아가고 있는 것 같은 인물이다. 많은 이들이 그들을 원하지만 선명한 환영처럼 결코 손에 잡히지 않는다. 수중에 돈이 없으면 일을 한다가 아니라 자신들을 먹여 살릴 사람을 구하고자 하고, 가진 것이 없어도 아쉬워하지 않는다. 아름답지만 덧없고 두 사람은 자신들 이외의 사람들에게 어딘가 초연하기에 더욱 주변 사람들은 그들에게 매혹되고 원하고 좌절한다. 엇갈린 인간의 욕망은 마음에 상흔을 남긴다. 두 사람의 화려한 파리 생활은 사랑과 관련된 글에서 종종 보게 되는 더 많이 사랑하는 자가 지는 것이라는 말을, 때로는 두려운 것도, 원하는 것도 없다면 자유라는 카잔차키스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소설과 교차하는 에세이는 사강의 18년 간의 예술가로서의 시간동안의 삶, 문학, 추구했던 것,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작품에 대한 이야기에서 사랑, 상실, 중독, 자살, 사회문제, 무엇보다도 작가로서의 삶에 대한 사강의 목소리를 만남으로서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이미지의 그와 또 다른 모습의 그를 동시에 만나는 느낌이었다. 냉소적이고 고독하지만 한편으로 삶을 이해하고 불사르고 싶어하는 자신과 생에 성실한 사람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예술 역시 그렇지만 글을 읽는다는 것의 장점은 평소 만나지 못하는 세계를 만나고 자신과 다른 인물의 감정을 마주치고, 사는데 바쁘다는 이유로 미뤄두었던 삶의 중요한 주제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때론 나와 같은 마음에 공감하고, 한편으로는 반박하고 싶은 생각으로 가득할 때도 있다. <마음의 푸른 상흔>덕분에 모처럼 마음 한편이 기분좋게 소란스러웠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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