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인어들 - 전설 신화 속 신비한 인어를 찾아서 고래동화마을 11
차율이 지음, 가지 그림 / 고래가숨쉬는도서관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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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반신은 사람, 하반신은 물고기, 바다에서 일어나는 재해에서 사람을 구해주기도 하고, 은혜를 갚기도 하고, 때로는 유혹을 하고, 심지어 먹으면 불로장생을 한다는 세계 곳곳에 전해지는 여러 이야기를 품고 있는 인어. 인어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역시 안데르센의 인어공주다. 스타벅스의 로고이기도 한 세이렌, 인어고기를 먹으면 불로장생한다는 일본의 설화 등 다양한 인어 이야기들이 생각나지만, 아무래도 한국의 인어 설화는 조금 생소했다. 한국에 인어 전설이라고? 랄까.



이미 인어 동화책을 세 권 출판한 동화작가 차율이와 동양 전통문화를 재해석한 환상적인 그림을 그리는 가지 작가가 함께 엮어낸 <한국의 인어들> 목차와 후기를 보고 있자니 한국에도 이렇게 많은 인어에 대한 전설과 민담, 설화들이 전해져왔구나 하고 새롭게 다가왔다. 심지어 최근 영화로 개봉되기도 해서 익숙한 조선시대 정약전이 쓴 ‘자산어보’에도 인어에 대한 글이 남아있다고 한다.



어유야담의 ‘김빙령과 인어’를 시작으로 총 10가지 인어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한국 인어는 해를 끼치기보다 오히려 사람을 무서워하는 겁 많고 마음씨 착하며, 도움을 받으면 꼭 보은을 한다. 인어와 마주치는 사람들 역시 순박하고 착한 이들이다. 어부에게 잡힌 어린 인어들의 눈물을 보고 바다로 돌려보내주기도 하고, 굼들에 찾아오는 인어들과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며 다툼과 경계 없이 조화롭게 살아가기도 한다. 어부들에게 잡혀 팔려가려던 인어를 구해주었던 어부는 알고보니 용궁의 인어공주였던 인어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게 된다. 선행과 호의는 역으로 자신에게도 좋은 결과로 돌아오게 되는 법이랄까.



여러 이야기 중에서도 거문도에 전해 내려오는 <신지께가 된 은갈치>가 제일 눈길이 갔다. 인간이 되고 싶어 100년간 미역만 먹으며 물속에서 인간처럼 생활을 해야 했던 은갈치는 큰 태풍이 오는 날 한번 쯤은 용왕님도 모르실 거야 하는 마음에 눈을 뜨고 자는 바람에 결국 인간이 되지 못하고 반인반어로 남게된다. 비록 인간이 되지 못해 슬펐지만, 정이 들었던 어부들이 사고를 당하지 않도록 두려움의 대상이 되면서도 그들을 계속 도와주던 은갈치는 결국 거문도의 수호신인 신지께로 불리게 된다. 한 번 놓친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다는 교훈도 담겨 있지만, 처음 원하던 모습은 아니지만 또 다른 형태의 행복이 있을 수도 있다는 기분 좋은 결말이다. 쑥과 마늘만 100일간 먹어야 했던 웅녀보다는 미역을 먹어야했던 은갈치가 조금은 나았으려나라는 생각이 들어 웃음이 났다.



“암. 감히 미천한 인간이 넓디넓은 바다의 깊은 속을 어찌 휜히 다 알 수 있겠는가.

당장 내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닌 게야.” (P130)



자산어보에 인어에 대한 항목을 수록하려고 하자 실제 본 적이 없는 인어를 정말 추가할 것인지 묻는 창대에게 한 정약전의 대답이다. 그렇다.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존재만을 믿는 건 얼마나 재미없는 일인가. 인어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깊은 바다 어딘가에 존재한다고 믿어본다면 세상은 좀더 넓어지고 훨씬 재미있어지지 않을까.

한국의 인어들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 속에 담긴 삶의 지혜와 마음 착한 이들의 좋은 이야기를 통해 오랜만에 힐링되는 시간이었다. 동화책은 어린시절에 읽었을 때와는 또 다르지만, 성인이 된 지금도 언제나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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