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폰스 무하, 새로운 스타일의 탄생 - 현대 일러스트 미술의 선구자 무하의 삶과 예술
장우진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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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누보의 대표적인 화가이자 보석 디자이너, 실내장식가, 총체적 예술가인 ‘알폰스 무하(Alphonse Mucha)’의 작품을 처음 접했던 건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황도12궁’이었다. 중앙에 위치한 여인의 온화한 미소, 우아한 머리카락, 그 위에 배치된 12별자리, 화려하고 섬세한 장식, 단순한 아름다움을 넘어 신비한 매력이 있는 화풍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체코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화가가 되기 위해 고향을 떠나 빈, 미쿨로브, 뮌헨을 벨 에포크 시대 파리에서 고갱, 로댕 등의 동시대 예술가들과 교류를 하고, 일러스트레이터와 여러 작품 활동을 하며 그 꿈을 키워나가던 무하는 1894년 우연한 계기로 당대 최고의 여배우 사라 베르나르가 주연을 맡은 연극 ‘지스몽다’의 포스터 주문을 맡게 되면서 한순간에 커다란 명성을 얻게 된다.

 

 

배우의 매력을 잘 표현한 신비로운 분위기, 비잔틴식 모자이크 배경의 이국적이고 장식적 느낌, 그 당시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는 폭이 좁은 장방형 크기의 포스터는 120여년이 지난 지금 봐도 매력적이다. 무하가 그린 포스터에 무척 만족한 사라 베르나르는 그와 바로 계약을 했고, 무하는 그 후 6년간 ‘햄릿’, ‘메데’, ‘토스카’, ‘사마리아 여인’ 등 그의 연극 포스터를 제작했을 뿐만 아니라 무대장치, 의상, 소품, 보석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연극에 다양한 부분에 참여했다.

 

 

세기말의 파리 센세이션한 반응을 불러 일으킨 사라의 연극 포스터를 시작으로 무하의 명성과 인기는 폭발적으로 높아져갔고 광고 포스터, 잡지 표지, 책 속 삽화, 보석, 인테리어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대중적 유행을 주도했다. 사계, 네 개의 예술, 하루의 시간 같은 연작 장식 패널은 상류층의 저택에서도, 가난한 거리의 주점에서도, 어디서나 볼 수 있었다. 무하가 제작한 자전거, 주류, 담배, 향수, 비스켓 같은 다양한 분야의 광고 포스터를 통해 작품을 감상하는 즐거움과 동시에 세기말의 파리의 광고, 상품, 문화를 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파리에서 활동하던 시절 화려한 디자인, 우아하고 유려한 곡선, 환상적인 장식성을 담은 아르누보적 장식 미술가로서의 삶이 그의 전반기를 대표한다면 후반기는 체코로 돌아가 웅장하고 묵직한 깊이감을 담은 ‘슬라브 서사시’를 제작한 민족주의적 화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던 조국의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고, 슬라브 민족의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 조국으로 돌아간 무하가 체코에서 제작한 포스터는 파리에서 제작한 포스터와 많은 차이를 보인다. 화려함과 섬세함보다는 강인함과 민속적인 느낌이 강하다. 체코의 말과 글을 가르치기 위한 학교를 설립하기 위해 발행된 복권을 홍보하기 위해 제작된 ‘브르노 남서 모라비아를 위한 국민 연합 복권’ 포스터에 그려진 노트와 펜을 쥐고 앞을 바라보고 있는 소녀의 강한 눈동자는 무척 인상적이다.

 

 

무하는 조국과 슬라브 민족을 위해 20년에 가까운 시간에 걸쳐 ‘슬라브 서사시’를 그려냈다. 역사, 문화, 전쟁, 종교적 테마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한 20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거대한 작품인 슬라브 서사시는 책 속의 작은 그림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많은 고심과 열정, 슬라브 민족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작품을 완성했는지, 예술이 가진 힘과 전달력이란 어떤 것인지 느낄 수 있었다. 언젠가 꼭 직접 그 앞에 서서 오랜 시간을 들여 감상해보고 싶은 작품이다.

 

 

 

예술 여정을 담은 그의 일생에 대한 이야기와 더불어 풍요로운 색감, 화려하고 장식적인 문양, 섬세함, 웅장함까지 다양한 스타일의 작품들이 시대별로 가득 채워져 있어 읽는 내내 무척 만족스러웠다. 알폰스 무하의 작품과 다시금 사랑에 빠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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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테일로 보는 서양미술 - 르네상스부터 동시대 미술까지 디테일로 보는 미술
수지 호지 지음, 김송인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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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무엇을 보느냐가 아니라, 무엇이 보이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서문 中)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한다. 어느 분야에서나 통용되는 말이지만, 미술 작품을 감상할 때 더욱 자주 떠오르는 문장이다. 사전지식 없이 작품을 마주했을 때 받는 감동 역시 크지만, 그 작품 속에 담긴 저자의 의도나 배경, 상징성을 이해하고 마주했을 때 오는 감동과 여운은 더욱 크게 다가온다.

‘디테일로 보는 서양미술’은 제목 그대로 작품의 디테일에 주목한다. 1500년 이전부터 16~19세기, 1900년 이후까지 종교적 전통이 지배하던 15세기 미술부터 르네상스, 표현주의, 입체주의, 매너리즘, 인상주의, 후기인상주의, 추상주의, 입체주의, 팝아트에 이르기까지 세계 최고의 예술작품으로 손꼽을 수 있는 탁월한 작품들 100점에 담긴 다양한 요소들에 주목하여 다각적 관점에서 소개한다.

많은 음악 아티스트들의 앨범 자켓으로 사용되었고, 마이클잭슨의 앨범 표지작업에도 영감을 주기도 한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세속적인 쾌락의 정원’같이 상징과 비유가 가득한 작품은 그 의미를 알지 못한다면 그냥 기괴하고 잔인한 작품으로만 보일 수도 있다. 추상주의의 선구자 피에트 몬드리안의 ‘노랑, 파랑, 빨강의 구성’과 같은 작품은 화가의 의도와 양식을 모른 채 보고 있자면 작품의 구조가 가지고 있는 내면적 의미를 이해할 수 없다. 등장인물이 착용하고 있는 소품, 시계, 거울 같은 장식만으로도 많은 것을 읽어낼 수 있다. 19세기까지의 작품들도 마찬가지지만 1900년 이후 추상주의가 대두한 이후의 작품들은 더욱 더 기본 지식 없이는 그 의도를 읽어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초현실주의적인 르네 마그리트의 ‘인간의 조건’, 입체주의인 마르크 샤갈의 ‘나와 마을’, 파블로 피카소의 ‘게르니카’, 팝아트의 거장 앤디 워홀의 ‘마릴린 두폭’ 같은 추상주의 작품들에 대한 소개가 더욱 반가웠다. 현대미술은 너무 어렵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던 나에게 한걸음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

한 작품마다 먼저 페이지 한 면을 가득 찬 작품을 만나고 나면, 그 다음으로 예술가에 대한 소개, 시대적 배경이나 사회적 맥락, 개인적 상황 같은 작품에 영향을 준 다양한 요소, 작품의 주제, 기법, 비유, 상징적 의미 등을 클로즈업해서 부분별로 설명하고 있다. 특이한 기법, 소품 하나하나에 담긴 상징성 같이 미처 보지 못하고 지나갈 수 있는 부분에 대한 설명을 보고 난 후, 전 페이지로 돌아가 다시 작품을 들여다보면 그 전에는 보지 못했던 곳들이 눈에 들어오고, 새롭게 알게 된 부분들로 인해 작품을 보는 즐거움이 더 커져간다.

산드라 보티첼리, 마켈란젤로, 디에고 벨라스케스, 프란시스코 고야, 카라바조, 폴 세잔, 클로드 모네, 마르크 샤갈, 르네 마그리트, 페이트 몬드리안, 앤드 워홀 같은 예술가들의 훌륭한 작품들을 한번에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반가운 일인데 더불어 그 작품을 한층 더 심층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눈이 즐거우면서도 유익한 책이었다. 마치 미술관에 방문해서 도슨트 해설을 듣는 것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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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오디세이 : 라이프 - 인간.생명 그리고 마음 과학오디세이
안중호 지음 / Mid(엠아이디)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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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 인류, 마음의 근원을 향한 과학적 여정

 

 

인간은 아주 오래전부터 자신의 근원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해왔다. ‘나는 누구인가?’, ‘인류의 기원은 어디서 왔는가?’와 같은 근원을 탐구하는 질문들에 대해 답을 과거에는 철학이나 종교에서 찾았다면, 21세기에는 비약적인 과학 발전을 바탕으로 뇌과학, 생물학, 물리학, 진화심리학 같은 과학 분야에서 그에 대한 구체적인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저자는 <라이프 - 인간․ 생명 그리고 마음>, <유니버스 - 우주․ 물질 그리고 시공간> 2권으로 이루어진 과학 오디세이 시리즈를 통해 세상, 인간, 우주에 대한 궁금증을 최신 학설과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과학적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그 중 <라이프>는 인간의 기원과 생명의 탄생, 유전자, 뇌과학을 통해 마음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과거 종교나 신화에서 그 근원을 찾던 인류의 기원을 오늘날 유전자, DNA분석 같은 과학적 분석을 통해 원시영장류에서 원숭이, 유인원을 거쳐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한 사실을 밝혀냈다. 인간은 꼬리가 없는 최초의 유인원에서 직립보행, 도구의 제작, 육식, 화식을 통해 뇌가 폭발적으로 커지면서 언어, 사회성을 발전시키는 여러 단계를 거쳐 현생인류 호모 사피엔스(슬기로운 사람)로 진화했다. 반복되는 혹독한 자연 환경으로 멸종의 위기를 극복하고 1만년전 신석기 시대 400만 명 정도였던 호모 사피엔스는 농업혁명, 과학혁명 등을 거치면서 오늘날 78억 명에 달하는 거대한 종이 되었다. 저자는 다른 동물에 비해 약한 신체와 소수로 이루어진 집단이었던 호모 종이 지금의 모습으로 진화할 수 있었던 다양한 특징에 대해 설명하면서도 그 특성들이 인류 고유의 것만이 아님을 보여줌으로써, 인간만이 특별한 종이 아닌 지구상의 다른 존재들과 동등한 일원임을 자각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1장에서 소개하는 인종과 관련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1000 게놈 프로젝트’를 통해 인간은 유전적으로 매우 가까운 한 종 밖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백인과 흑인, 아시아인 사이의 유전정보 차이는 평균적으로 5~10%에 불과하며, DNA를 분석해보면 서울 시내에서 임의로 선택한 두 사람 보다 한국인과 아프리카 마사이족 간의 평균 차이가 더 크다고 하니 인종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비과학적인지, 인종차별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무의미한지 다시금 상기시킨다.

 

 

개인적으로 기억, 마음, 웃음, 예술, 자유의지 같은 인문학이나 철학적 영역이라고 생각했던 분야를 과학을 통해 설명하는 3장 ‘마음은 어떻게 만들어질까?’가 흥미로웠다. 웃음의 기원을 위험 상황이 아님을 주변에 알리는 행위로, 타인과의 감정적 소통을 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며, 감정을 공감하는데 사용되는 뇌의 거울뉴런과 함께 설명하고 있다. 자연스러운 감정의 표현이라고 생각했던 수단이 생존을 위한 진화의 결과로 볼 수 있다는 점이나, 뇌가 착각이나 오류에 취약하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플라시보 효과’, 기억을 강화하는 방법, 잠과 뇌의 관계 같은 부분에 대한 과학적 설명을 통해 평소 궁금했던 부분이 많이 해소되었다.

 

 

과학적 영역에서 보자면 폭력이나 이기심 뿐만 아니라 도덕, 이타심 역시 무리생활에서 생존에 유리하기 위해 발전된 본능이라고 해석한다. 다른 동물에 비해 약한 신체를 보완하기 위해 무리생활을 하는 호모 사피엔스는 불공정이나 이기적 행위가 공동체의 위협, 나아가서는 생존의 위협으로 간주하여 협동성이라는 고도의 사회적 본능을 만들어냈다고 말한다.

 

 

우리는 삶에서 파생되는 많은 궁금증을 과학적 논리로 대답이 가능해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마음은 뇌의 뉴런의 작동 원리로 해석되고, 미토콘드리아를 분석하여 인류의 모계조상 ‘미토콘드리아 이브’를 추정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마음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행복의 추구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삶은 무엇인가. 같은 근원적 질문에 아직 과학의 영역에서 설명할 수 있는 부분은 미비하다. 또한 인간의 모든 행동을 과학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너무 단편적인 일면이 아닐까.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과학적 사실를 바탕으로 한 객관적 관점과 깊은 철학적 사유의 조화가 필요한 시대가 아닐까하는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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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모든 사람을 위한, 그리고 그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책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이진우 옮김 / 휴머니스트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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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가 스스로 자신의 저서 중 가장 독보적이라고 평했으며, 서양에서는 성서 다음으로 많이 읽혀지는 고전이라고도 하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모든 사람을 위한, 그리고 그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책’은 매년 독서목록에 올려놓곤 하지만, 매번 시작도 못하고 실패하곤 했다.

이번에 출간된 책은 니체 전문가로 손꼽이는 이진우 교수의 충실한 해석과 역주와 자연스러운 문체로 번역되었다는 문구를 보고 ‘이번에야말로!’라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는데....역시나 자신의 철학적 부족함만을 철저히 깨닫고 만 계기가 되었을 뿐이다. 어려운 철학적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우정, 이웃, 몸, 결혼 같은 보편적인 주제를 통해 삶의 통찰과 실존적 고뇌를 담은 그의 문장은 어떻게 읽자면 문학이나 잠언, 독백처럼도 읽혀지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너무나도 이해하기 어려운 글이기도 했다. 분명히 글을 읽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글의 의미가 이해되지 않고, 문장이 머릿속으로 들어와 고스란히 날아가는 것만 같은 느낌에 당혹스러웠고, 연속성 없는 글과 수많은 상징과 비유 속에 담긴 의미들을 읽어내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아쉬움이 컸다.

사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위버멘쉬(초인), 영원 회귀, 신은 죽었다, 힘에의 의지 같은 그의 주요 철학적 사상이 집대성되어 있기 때문에, ‘이 사람을 보라’, ‘도덕적 계보’같은 기존의 니체의 철학서를 읽고 난 후에 읽어야만 깊은 이해가 가능하다고 한다. 덕분에 이 책을 읽으므로서 니체의 사상에 대한 호기심이 더욱 커졌다.

서른 살에 고향을 떠나 산 속으로 들어가 십년동안 지혜를 쌓고 그 깨달음을 나누어주기 위해 산으로 내려가는 차라투스트라는 성자를 만나 ‘신은 죽었다’고 말한다. 신 중심의 중세의 관념을 벗어나 인간적인 삶의 의미와 자유의지를 가지고 진리를 발견하고자 하는 그의 사상을 시작부터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다.

“나는 그대들에게 초인을 가르치려 한다.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다.

그대들은 인간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

지금까지 모든 존재는 자신을 넘어서 무엇인가를 창조해왔다. 그런데 그대들은 이 거대한 밀물의 썰물이 되기를 원하며 자신을 극복하기보다는 짐승으로 되돌아가려 하는가?“

(1부. 차라투스트라의 머리말, P19)

처음 그가 도시로 내려와 시장에 모여 있는 군중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극복되어야 하는 존재이며 초인이 되어 한다고. 그리고 초인이 되는 과정을 낙타-사자-아이로 표현한다. 삶의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묵묵하게 걸어가는 인내력 많은 정신인 낙타는 이미 오래전 창조된 가치가 말하는 ‘너는 해야 한다’에 맞서 ‘나는 원한다’라고 자신의 자유의지를 말하고 쟁취할 수 있는 강한 사자로 변신한다. 하지만 진정한 초인이 되려면 새로운 시작의 상징이자 순진무구함과 망각의 힘을 지닌 어린아이가 되어야 한다. 과연 나는 낙타와 사자, 아이 중 어떤 존재인가.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가.

 

“모든 직선은 우리를 속인다. 모든 진리는 곡선이며, 시간 자체도 하나의 원이다.”

(3부. 환영과 수수께끼에 대하여, P285)

니체는 영원 회귀 사상을 통하여 시간과 생은 자신의 꼬리를 물어 신성한 원을 만드는 우로보로스(orobouros)와도 같이 영원히 반복하고 순환하는 원과도 같다고 본다. 시간은 직선적이지 않고, 영원히 동일하다면, 모든 시간은 지금 내가 서 있는 현재로 인식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미래의 희망보다, 과거의 후회보다 지금의 삶을 충실하고 치열하게 살라고 말하고 있는 것만 같다.

수많은 상징과 비유를 담긴 니체의 문장 속에 그가 담은 의미를 이해하려면 과연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릴지 읽을수록 막막해졌다. 철학을 하는 이유는 결국 ‘나’라는 존재와 나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기에 어려운 길일지라도 느릿한 걸음으로 차라투스트라의 말을 따라 걸어봐야겠다는 마음으로 다시 한번 첫 페이지를 시작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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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더트
제닌 커민스 지음, 노진선 옮김 / 쌤앤파커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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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아카폴로의 어느 오후, 가족과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며, 자신이 운영하는 서점에서 만난 친구와 진정한 우정을 나누고, 카르텔로 인해 벌어지는 폭력과 유괴, 살인은 주변에 다른 이들에게 일어나는 슬픈 일이라고만 여겼던 리디아의 평온한 일상이 한순간에 산산이 부서졌다. 언론인인 남편 세바스티안이 쓴 카르텔에 관한 기사의 보복으로 가족파티에 갑자기 난입한 카르텔 ‘로스 하르디네로스’의 시카리오들에게 남편, 어머니, 언니, 조카를 포함한 가족 16명이 살해당하고 리디아와 아들 루카만이 살아남았다. 두 모자는 계속되는 카르텔의 추적을 피해 살아남기 위해 희망의 땅 ‘엘 노르테’로 향하는 가혹한 여정을 시작한다.

 

 

누가 카르텔과 연결되어 있는지, 누가 이웃이고 누가 적인지 모든 것이 의심스러운 상황에서 결국 리디아는 루카의 손을 잡고 ‘안돼, 이건 미친 짓이야!’를 마음속으로 되뇌이면서도 또 다른 지옥이라고 불리는 중앙아메리카 난민들이 국경을 넘기 위해 이용하는 화물열차 ‘라 베스티아(짐승)’ 지붕에 올라타고, 저마다의 이유로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국경을 넘을 수 밖에 없는 이들, 난민에게 도움을 주고자하는 일반인들과 구호단체, 그런 그들을 막거나 착취하는 수비대와 자경단을 만난다. 

 

 

사람은 악하지만 선하다. 극한의 상황에서도 욕망을 우선시하고, 살기 위해 도망치는 이들의 재산을 빼앗고, 때로는 그보다 더한 것들을 강요하고 빼앗아가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자신과 무관한 타인을 위해 나눔과 선의의 행동을 하고, 타인의 불행에 슬픔을 공감하기도 한다. 생존을 위한 여정에서 만나는 호의와 악의, 도움과 폭력 속에서 인간이 얼마나 이율배반적인 존재인가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두렵고 위험천만한 그들의 매일이, 그 감정들이 손에 땀이 날 정도로 생생하게 다가온다. 또 다른 사연을 안고 엘 노르테로 향하는 온두라스 출신의 솔레다드, 레베카 자매와 만나 처음으로 고가도로에서 열차 지붕으로 뛰어내리려고 망설이는 그 순간 ‘뛰어내려!’라고 마음속으로 리디아의를 응원하며 함께 초초해하고, 솔레다드의 고통에 함께 분노하며, 계속해서 싸울 용기와 선함을 잃지 않는 루카에게 박수를 보낸다.

 

 

저자가 이 책을 마무리 한 2017년, 전 세계에서 1시간 20분마다 난민 1명씩이 죽어갔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대규모 난민사태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실종된 인원은 통계에 포함되지 않았으니, 실제로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이들이 어딘가에서 살아남기 위해 국경을 넘다가 죽어가고 있다.

살기 위해 국경을 넘을 수 밖에 없는 이들, 그 곳에 정착해 이미 오랜 시간을 살아가며 자식을 낳고, 직장을 다니며 생활하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추방되어 가족과 헤어질 수밖에 없는 사람들,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하루가 갑자기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생존을 위해, 소중한 사람을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걸음을 멈추지 않는 있다는 사실을, 유대와 용기가 삶에 있어 얼마만큼 힘이 되는가를, 리디아와 루카, 솔레다드와 레베카의 4천 킬로미터가 넘는 그들이 걸은 긴나긴 길을 통해 다시금 되새기게 된다.

 

 

'장벽 이쪽에도 꿈이 있다.(Tambien de este lado hay suenos.)'

'작가의 말' 마지막 문구가 계속 머리속에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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