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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사 - 볼가강에서 몽골까지
피터 B. 골든 지음, 이주엽 옮김 / 책과함께 / 2021년 1월
평점 :
역사학에서 비교적 중요하게 여겨지는 유럽, 미국, 중국 등의 역사에 비해 유구한 역사를 가진 중앙아시아사는 상대적으로 역사적 변방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는 편이다. 생각해보면 과거 우리나라의 역사와도 많은 관련이 있는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중앙아시아의 역사는 잘 알지 못하는 이야기인 것만 같고, 어딘가 낯설게 느껴지곤 한다. 책을 읽는 내내 실크로드 무역의 중심이었던 소그드인을 비롯해 쿠차, 호탄, 헤픈탈, 차가다이 울루스, 화리즘 제국 같은 생소한 지명들이 많이 등장해 중앙아시아에 얼마나 다양한 민족들이 존재했는지 다시금 실감했다.
중앙아시아는 과거 수 천년동안 동서양의 역사와 민족의 교차로였다. 실크로드의 중심적 위치로, 단지 물품의 교역로가 아닌 샤머니즘, 불교, 조로아스터교, 마니교,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등의 종교와 투르크, 몽골 유목민, 이란계 등 여러 민족들의 다양한 문화의 교류의 장이자 이동 경로이며, 다채로운 생활방식이 존재하는 매력적인 공간이었고, 중국, 인도, 이란, 러시아, 지중해를 비롯한 넓은 지역에 영향을 주었으며, 돌궐제국, 몽골제국 등의 큰 제국들이 존재했던 유라시아 역사의 중심축이기도 하다.
유목 생활의 기원부터, 초기 유목민, 유목사회와 정주사회의 관계, 다양한 오아시스 도시국가, 중국, 중동, 유럽의 주변부까지 정복해 강력한 몽골제국을 구축한 징기스칸을 비롯해 돌궐제국과 티무르제국 거대한 제국들의 흥망성쇠, 16세기 이후 러시아와 청나라에 의해 포위되고, 정치적 분열을 겪으면서 점점 쇠퇴하는 과정과 20세기에 들어 몽골, 신장,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즈스탄 등으로 독립하는 과정까지, 기원전 38000년경 인류가 중앙아시아에 진출부터 근대 중앙아시아 민족국가가 탄생까지의 흐름을 압축해 읽기 쉽고 간결하면서도 객관적으로 서술하고 있어 중앙아시아 역사의 흐름을 순차적으로 그려볼 수 있게 해준다.
이슬람교, 불교와 근대 중앙아시아 민족 정체성의 형성의 관계처럼 종교의 전파가 문화적 동화현상에 미치는 영향이나, 다양한 종교가 융화되어 새로운 형태로 변형되는 과정, 몽골인의 독특한 계승 문화 같이 흥미로운 지점이 많았던 반면, 중앙아시아 지역에 대한 지식이 얼마나 빈약했는지 다시금 인식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역사서를 선택할 때 중요하게 고려하는 점 중에 하나는 얼마나 ‘객관적인가’이다. 역사란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내용이 되기도 하고, 한 방향으로 치우친 역사관은 선입관을 만들기 쉽기 때문에 주관적 의견이 많이 반영된 역사서보다는 균형적 시각을 가진 책을 많이 찾는 편이다. 물론 마치 소설을 읽는 것처럼 생동감 있는 역사서 역시 매력 있지만, 관련 지식이 적은 지역일수록 더욱 객관적이고 체계적인 내용이 중요하다. 중앙아시아사 분야의 대석학으로 평가받고 있는 저자 피터 B.골든이 최신 연구 성과들을 반영하여 옥스퍼드대학 출판사가 펴낸 새 옥스퍼드 세계사(The New Oxford World History) 시리즈의 일환으로 집필한 <중앙아시아사(Central Asia in WorldHistory)>는 그런 점에서 중앙아시아 역사를 개관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책인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