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더트
제닌 커민스 지음, 노진선 옮김 / 쌤앤파커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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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아카폴로의 어느 오후, 가족과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며, 자신이 운영하는 서점에서 만난 친구와 진정한 우정을 나누고, 카르텔로 인해 벌어지는 폭력과 유괴, 살인은 주변에 다른 이들에게 일어나는 슬픈 일이라고만 여겼던 리디아의 평온한 일상이 한순간에 산산이 부서졌다. 언론인인 남편 세바스티안이 쓴 카르텔에 관한 기사의 보복으로 가족파티에 갑자기 난입한 카르텔 ‘로스 하르디네로스’의 시카리오들에게 남편, 어머니, 언니, 조카를 포함한 가족 16명이 살해당하고 리디아와 아들 루카만이 살아남았다. 두 모자는 계속되는 카르텔의 추적을 피해 살아남기 위해 희망의 땅 ‘엘 노르테’로 향하는 가혹한 여정을 시작한다.

 

 

누가 카르텔과 연결되어 있는지, 누가 이웃이고 누가 적인지 모든 것이 의심스러운 상황에서 결국 리디아는 루카의 손을 잡고 ‘안돼, 이건 미친 짓이야!’를 마음속으로 되뇌이면서도 또 다른 지옥이라고 불리는 중앙아메리카 난민들이 국경을 넘기 위해 이용하는 화물열차 ‘라 베스티아(짐승)’ 지붕에 올라타고, 저마다의 이유로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국경을 넘을 수 밖에 없는 이들, 난민에게 도움을 주고자하는 일반인들과 구호단체, 그런 그들을 막거나 착취하는 수비대와 자경단을 만난다. 

 

 

사람은 악하지만 선하다. 극한의 상황에서도 욕망을 우선시하고, 살기 위해 도망치는 이들의 재산을 빼앗고, 때로는 그보다 더한 것들을 강요하고 빼앗아가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자신과 무관한 타인을 위해 나눔과 선의의 행동을 하고, 타인의 불행에 슬픔을 공감하기도 한다. 생존을 위한 여정에서 만나는 호의와 악의, 도움과 폭력 속에서 인간이 얼마나 이율배반적인 존재인가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두렵고 위험천만한 그들의 매일이, 그 감정들이 손에 땀이 날 정도로 생생하게 다가온다. 또 다른 사연을 안고 엘 노르테로 향하는 온두라스 출신의 솔레다드, 레베카 자매와 만나 처음으로 고가도로에서 열차 지붕으로 뛰어내리려고 망설이는 그 순간 ‘뛰어내려!’라고 마음속으로 리디아의를 응원하며 함께 초초해하고, 솔레다드의 고통에 함께 분노하며, 계속해서 싸울 용기와 선함을 잃지 않는 루카에게 박수를 보낸다.

 

 

저자가 이 책을 마무리 한 2017년, 전 세계에서 1시간 20분마다 난민 1명씩이 죽어갔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대규모 난민사태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실종된 인원은 통계에 포함되지 않았으니, 실제로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이들이 어딘가에서 살아남기 위해 국경을 넘다가 죽어가고 있다.

살기 위해 국경을 넘을 수 밖에 없는 이들, 그 곳에 정착해 이미 오랜 시간을 살아가며 자식을 낳고, 직장을 다니며 생활하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추방되어 가족과 헤어질 수밖에 없는 사람들,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하루가 갑자기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생존을 위해, 소중한 사람을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걸음을 멈추지 않는 있다는 사실을, 유대와 용기가 삶에 있어 얼마만큼 힘이 되는가를, 리디아와 루카, 솔레다드와 레베카의 4천 킬로미터가 넘는 그들이 걸은 긴나긴 길을 통해 다시금 되새기게 된다.

 

 

'장벽 이쪽에도 꿈이 있다.(Tambien de este lado hay suenos.)'

'작가의 말' 마지막 문구가 계속 머리속에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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