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인칭
꼬마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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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성매매, 상식의 블랙홀> 이후로 성매매 여성이 등장하는 작품을 골라 읽고 있다. <O 이야기>는 뒤로 갈수록 동정의 여지가 없는 능동적 성노예가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그런데, 소년은 눈물을 그쳤나요>에선 사창가를 전전하던 자신의 빚을 갚아준 정부에게 그 이상의 시련을 겪는 모습이 소년인 주인공의 시선에서 그려진다. 남성 독자로서 말하자면 이 작품들의 섹슈얼한 묘사는 구역질과 연민, 치욕스러움과 절망을 안겨주면서도 내가 남성이라 그런지 상상력이 자극돼, 성적으로 자극적으로 읽히기도 했다. 

 만화 <3인칭>은 일본 AV 배우를 사랑하게 된 한국 남자 노조기를 3인칭의 시선에서 바라보면서 전개되는 이야기다. 우연히 접한 몰카 설정의 AV를 본 노조기는 그전까지 한 번도 야동을 본 적도, 관심도 없었기에 그 영상을 진짜 몰카로 생각한다. 그런데 문제는 처음에 그 영상을 보고 화가 났으면서도 두 번째 세 번째 찾아보면서 그 여자를 만나야만 한다는 강렬한 생각에 사로잡혀 무작정 일본으로 가면서 시작된다. 


 이제 그는 일본에서 살고 있는 고등학생 동창 집을 거점으로 삼으면서 자신이 본 몰카 속 공간을 마치 사막에서 바늘 찾듯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일종의 광기에 사로잡혀 하염없이 매달린다. 동창인 종원은 친구의 모습이 여간 이상해 보여 자초지종을 물었는데, 고등학생 시절부터 성에 관해 유독 보수적이고 꽉 막힌 사고방식을 갖고 있던 노조기가 그토록 뒤틀린 '사랑'에 빠진 것이 웃기면서도 압도당해 그에게 진실을 알려준다. 영상 속 그 여자는 나도 알고 있는 여자다. 

 몰카 영상이 실은 컨셉이 있는 AV였고 그 여자가 AV 배우인 나카지마 후미히메임을 알자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노조기의 너무나 꽉 막혀서 대화가 통하지 않는 그의 사고방식이 유일한 걸림돌인 상황이었다. 자신이 혼자 짝사랑한 여자가 실은 AV 배우였던 것도 그의 입장에서 충격적인데 AV 업계에 너무나 박식한 동창의 모습도 그로선 역겨운 나머지 일본에서 체류할 동안 집에서 재워준 동창에게 적반하장 따지기까지 한다. AV 보는 게 정상이냐고. 


 실상이 어떻든지 간에 자신이 몰카라고 생각한 영상 속 당사자를 사랑하고 직접 찾으러 나선 사람이 할 말은 아니었고, 정상이고 어떻고 떠나 성적으로 유난히 무균 상태인 듯한 인간은 솔직히 말해 무슨 말을 하건 공감이 되기는커녕 공허함만 주기 마련이라 노조기가 'AV 보는 게 정상이냐'고 따지는 것이 우습게만 들린다. 그 나름대로는 진지하게 사랑을 하는 것일 테지만, 그 사랑의 고충에서 오는 화를 남한테 풀거나 누군가에게 이해받으려는 듯한 모습은 어떻게 봐도 호감은 아니다. 설령 그의 사랑이 영상 속 배우와 결실을 맺어 짧게나마 진실된 관계를 맺었다 해도, 그가 나중에 동창이나 이 일과 관련된 몇몇 사람에게 달라진 모습을 보여줬다 해도 그가 비호감에서 호감으로 완전히 바뀐 것은 아니다. 적어도 내 안에선 노조기는 답답하기 그지없으나 그놈의 진실된 태도로 평생 그 누구도 경험하기 힘든 일을 경험한 행운아에 불과하다. 

 행운아? 일본인도 아닌 한국인이 일본 AV 배우와 동거를 하고 관계를 가진 것을 두고 나는 그를 행운아라 여긴 것일까? 오해할까봐 하는 말이지만 그건 아니다. 노조기가 후미히메를 AV 배우라 사랑한 것이 아닌 것처럼 그가 단지 사랑하는 누군가와 짧지만 진정성 있는 사랑을 나눈 것이 행운아라 여겨졌다. 비록 외국인이라 말이 100% 통하지 않지만, 본편에서 나오지 않은 그의 일기 속 내용을 보면 때론 언어만이 소통을 좌우하는 것이 아니리란 생각도 든다. 물론 노조기가 일본어를 배우지 않았더라면 애초에 성립될 수 없는 관계였을 테지만, 언어보다 중요한 것은 후미히메의 영상을 본 것을 계기로 자신이 자신도 모르게 꽉 막힌 인간이었음을 자각한 것이 둘의 관계에 대해 얘기할 때 가장 핵심적인 부분일 것이다. 그렇기에 AV 배우와 뒤틀린 애정을 가진 남자의 사랑이 그리 자극적으로 읽히지 않았던 것이겠다. 


 그럼에도 자초지종을 모르는 종원은 후미히메와 헤어진 노조기에게 '태극기 꽂았다'고 말한다. 술김에 한 말이지만 오히려 술김이었기에 진심이었을 것이다. 결국 이 작품의 제목 '3인칭'은 1인칭도 2인칭도 아닌 3인칭의 시선에선 타인의 진심이나 사랑 같은 감정은 한낱 얘깃거리에 불과하고 자기 관점을 보태 이야기의 무게를 퇴색시키기 마련임을 강조하기 위한 제목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렇기에 타인의 이야길 듣고 전달하는 일을 조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노력하고 노력해도 결국 내 흥미를 잡아끄는 방향으로 이야길 각색하고 전달하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라 할 수 있겠으나 그래도 의식적으로 조심하다 보면 미연에 큰 실례를 방지할 수 있으리라 본다... 그래서, 이건 여담이지만, 맨 처음에 언급한 <O 이야기>나 <그런데, 소년은 눈물을 그쳤나요>의 경우 내가 감상을 남기면서 필요 이상으로 성적인 요소를 부각하며 글을 쓰지 않았는지 생각해보게 됐다. <O 이야기>는 성적인 요소를 부각시킬 수밖에 없는 작품이었지만 <그런데, 소년은 눈물을 그쳤나요>는 어땠을는지... AV 배우를 등장시켰음에도 섹슈얼한 묘사는 극히 적었던 <3인칭>을 생각하며 나 역시 글을 더 조심히 써야겠다는 다짐이 들었다. 

정말 이기적인 생각이지만.... 그 일방통행이란 말, 들어도 그 사람한테 듣고 싶어. - 9화 만남



누구나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사랑의 무게가 있는 것이 아닐까? 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얼마나 진실하게, 사랑을 끝까지 감당해냈는가 하는 것이 아닐까? - 권혁주의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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