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의 내일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3
하라 료 지음, 문승준 옮김 / 비채 / 2021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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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전편 이후로 14년만에 출간된 이 후속작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전편 이상으로 실망스러웠다. 그나마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에선 금방 출간됐기에 망정이지, 정말로 일본 독자들처럼 10년 넘게 기다린 결과물이 이거라면 속이 부글부글 끓었을 것 같다. 사실상 시리즈에 대한 애정과 캐릭터들의 캐미, 찰진 대화에 의존하며 읽었지 순수하게 흡입력이 넘치는 이야기라 완독에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어찌나 논점을 알기 힘든 이야기던지 두 번의 시도만에 완독할 수 있었다. 처음엔 내가 이해를 못해서 재미가 없는 건가 싶었지만 두 번째 읽으니 설령 완벽하게 이해를 하고 파악을 마쳤다 해도 변함없이 재미없을 이야기란 결론이 나왔다. 

 전편에 비해서 재미가 없다는 것도, 기대가 커서 실망이 컸다는 얘기도 아니다. 책 뒤에 소개된 '소설의 진정한 재미, 그것만을 생각하며 쓰고 또 썼다'는 작가의 말이 무색하게 소설의 진정한 재미를 논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서사를 지니고 있는 작품이었다. 행방이 묘연한 의뢰인을 쫓는 전개는 전형적인 하드보일드스러운 도입부였고 사와자키가 탐문을 하는 이상한 집념, 니시고리를 비롯해 경찰에게 유난히 비협조적인 태도, 이번에도 어김없이 개입되는 세이와카이 등 이미 전편에서 다룰 대로 다룬 서사이고 이번이라고 흥미롭게 비틀지도 않는다. 지나치게 아날로그적인 사와자키의 모습도 작위적으로 비쳐졌고 - 전화 안내원은 덤이다 - 작품 말미에 녹아든 3.11 대지진에 대한 언급이나 감상도 다소 구태의연해 14년의 집필 기간치고 여러모로 애매한 깊이감을 지닌 작품으로 다가왔다. 하도 오래 고치고 쓰고를 반복했으니 시의성이 떨어지는 건 이해하겠지만, 가이즈란 캐릭터의 골때리는 면모와 은행 강도 장면 저도를 제외하면 의뢰인의 행방이나 의뢰의 동기 등 전편과 비교하나 객관적으로 보나 하드보일드적인 서사로 풀어내기에 보잘것없어서 내가 애당초 이 시리즈를 왜 좋아하게 됐는지도 가물가물해질 지경이었다. 


 데뷔작은 분명 이렇지 않았는데. 두세 장에 한 줄씩은 메모를 하고 싶을 정도로 문장력도 뛰어났고 복잡하지만 냉소적이고 분위기 넘치는 플롯과 사건 묘사는 이 작가를 가히 '아시아의 챈들러'라 불러도 부족함이 없겠는데 싶을 정도의 '품질'을 자랑했다. 매번 이만한 품질의 작품을 선보이니 도가 지나쳤다고 말해도 무방할 만큼 과작 작가임에도 독자들이 이해해준 것인데... 2부 들어서 작풍만이 아니라 품질도 저하돼 내 눈이 의심스러웠다. 차라리 작품을 빨리 쓰던가, 아니면 20년, 아니 30년이 넘어도 좋으니 어디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완성도의 작품을 쓰던가, 어느 한쪽을 잘 골랐으면 좋겠다. 

 일단 후속작이 나오면 읽긴 할 텐데, 이 작품의 마무리가 영 어정쩡해서 후속작에서 잘 이어나갈지 약간의 궁금증이 일기 때문이다. 그 안에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부터 읽어야겠다. 뭐랄까, 흐릿해진 눈을 그 작품으로 정화시켜야겠다. 

묻지도 않은 말에는 대답할 수 없지. 물어봤다 해도 답하고 싶지 않은 질문엔 대답하지 않아. 그다지 자랑은 아니지만 탐정도 그런 점에서는 경찰과 같아서 말이지. - 33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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