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즌 호텔 1 - 여름
아사다 지로 지음, 양억관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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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나는 아사다 지로하면 <칼에 지다>나 아니면 최민식 주연의 영화 <파이란>의 원작 소설인 '러브 레터' 같은 눈물어린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그 이미지와는 정반대의 작풍이라서 일단 깜짝 놀랐다. 소위 말하는 '병맛'이 바로 이런 것이리라. 첫 장에 나오는 프리즌 호텔 안내문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조폭을 위한 호텔로 신변 보호는 물론이고 극진한 대접까지 해준다고. 소재만 보면 흡사 개그 만화인 것만 같은 이 작품은 아사다 지로의 '프리즌 호텔' 연작의 첫 작품이다. 사람들 입에서 익히 들어왔는데 가벼운 마음으로 읽었다가 이건 정말 예상 외라서 당혹스럽던 기억이 난다.

 내가 원체 조폭 얘기를 싫어하는지라(그래서 우리나라 영화에 이런 소재가 나온다 싶으면 치를 떨며 기피하디시피 한다) 처음 주인공의 인격 묘사나 세계관에 대한 간략한 소개만 봐도 두드러기가 날 정도였다. 확실히 재밌는 있었지만 우리가 사는 세계 속에서 어느 정도 범람하는 갖은 폭력을 기반으로 한 웃음이라서 그렇게 유쾌하진 않았다. 이른바 블랙 유머라고, 씁쓸한 맛이 뒤에 감도는 그런 느낌이었다.


 이 작품은 '프리즌 호텔' 시리즈의 첫 작품으로 앞으로 3편이 더 남았지만 더 읽을 생각은 그렇게 들지 않는다. 단순히 소재만 문제냐고? 그렇다.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지만(당연하게도 나는 내 입으로 내 개인적인 감상만 말할 수밖에 없다) 조폭과 의리의 세계를 그리는 것만큼 흥미가 떨어지는 설정도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도 그랬고 이 작품에서도 역시 그랬다.

 저자의 약력을 보면 중학생 시절까지는 유복하게 지내다가 가문이 몰락하자 삐뚫어져 야쿠자 노릇을 하며 살았다고 한다. 이러한 본인의 독특하기 이를 데 없는 경험은 작품 속에 잘 살아있긴 했지만 그런 디테일함과는 별개로 담아내고 있는 얘기들은 내 취향과도 맞지 않았거니와 그걸 차치하고서라도 상투적인 감성을 요구하는 부분이 적잖았던지라 흥미가 가시지 않을 길이 없었다. 그래도 처음에는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다였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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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
시마다 소지 지음, 한희선 엮음 / 시공사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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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시마다 소지하면 <점성술 살인사건>에서의 싸가지 없는 미타라이와 토막 살인의 기괴함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 이 작품을 먼저 읽었더라면 느낌이 완전 달라졌을 듯싶다. 이래서 첫인상이 중요하구나. 시마다 소지 특유의 아주 직설적인 주인공의 대사 덕에 같은 작가라는 것을 매치시킬 수 있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지나치게 정의로워 존재감은 상대적으로 흐릿한 주인공 형사나 묵직한 메시지로 인해 다른 작가로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위의 제목은 너무 길고 긴 만큼 또 너무 직설적이라서 별로지만 확실히 작품이 담고 있는 작가의 취지는 결코 가벼이 넘길 수 없었다. 일본과 우리나라의 부끄러운 만행이 요즘도 도사리고 있는 와중에(유명 연예인의 열애설로 덮어지고 있는 게 문제인데 둘에게는 악감정은 전혀 없지만 정말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주 시의적절하게 읽은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이렇게 시마다 소지 같은 양심적인 일본인이 많았으면 좋겠다. 이건 여담이지만 역사에 관해서는 정말 일본만큼 양심적인 사람이 적고 무지한 사람이 대부분이고 비양심적인 사람이 다 망치는 나라도 또 없는 것 같다.


 시작은 매우 단순했다. 정신이 이상한 노인이 가당찮은 이유로 여자를 살해한 것만 같았다.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했고 대부분의 경찰도 그렇게 생각했다. 주인공인 요시키 형사만이 뭔가 의심을 품었을 뿐이다. 이른바 형사의 감에 이끌려 모두의 만류와 비웃음에도 불구하고 심층 조사에 들어갔더니 이건 누구도 예상치도 못한 엄청난 그늘이 드러나는 것이다.

 노인을 아는 사람들은 절대 살인을 저지를 위인이 되지 못한다고 말하는 부분에서부터 관심이 가기 시작한다. 분명히 노인이 여자를 죽였다. 하지만 그를 알던 사람은 이를 부정한다. 그렇다면 처음에 밝혀진 살인의 동기가 완전히 잘못된 게 아닐까? 그런 의심에서 비롯된 대수사극은 훌륭한 사회파 추리소설의 장으로 발전해 나간다.


 사실 본격 추리소설적인 부분도 있긴 했는데 개인적으로 그렇게 눈길이 가진 않았다. 시마다 소지 특유의 허황된 맛이 가미됐는데 솔직히 제목에서처럼 '기발한 발상'이긴 했지만 개인적으로 사회파 추리소설을 지향했던 작품의 방향과는 좀 따로 놀지 않았나 싶다. 순수하게 사회파적인 부분에만 집중하고 싶어서 트릭 부분을 대충 읽어보긴 또 처음인 것 같다. 이렇게 말하긴 그렇지만 작중의 주임 말마따나 범인(결과)은 변하지 않으니까. 다만 그 속내가 궁금했지.

 예상치도 못하게 한국인의 심금을 울렸던 작품은 일본인에게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한국인으로선 대단히 반가우면서도 '기특하기' 그지없었다. 약간 얼떨떨한 감도 있었지만 한편으론 좀 늦었다 싶을 만큼 진즉에 들었어야 할 말이었으니 감사하기도 했다. 사과를 받았는데 왜 감사한지는 모르겠지만 그러고 보면 사과도 너무 고프면 감사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떻게 생각해도 참 가슴 아픈 일이네 그래.


 대단히 흡입력을 갖추거나 하진 않았지만 사회파 추리소설의 요소, 살인의 의미를 파헤치고자 하는 그 의의를 잘 드러냈고 거기다 작가 나름의 한국에 대한 진지한 사과도 있어서 덩달아 진지하게 읽었던 작품이다. 그게 다였다는 느낌도 들지만 그게 다라도 상관없다는 심정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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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의 별 2 유다의 별 2
도진기 지음 / 황금가지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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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어둠의 변호사' 시리즈는 6년만에 읽은 것이다. 그 사이에 작가의 다른 탐정인 진구가 등장하는 책들을 접하긴 했지만 이 시리즈는 어떻게 보면 작가의 원점인 만큼 더욱 신작이 기대가 됐는데 어쩌다 보니 이제서야 읽게 됐다. 작가에게 있어 가장 긴 분량의 작품이고 내용을 봐도 작가가 심혈을 기울인 게 자명한 진일보한 서스펜스가 나를 반기고 있었다. 시리즈 최고의 재미까지는 아니었지만 작가의 노고가 가장 돋보인 작품으로 다 읽은 내 입장에선 높게 평가 받을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한국추리문학 대상도 받고 영화로도 제작이 된다니 꽤 인정받은 셈이다. 데뷔 때부터 한국 추리소설의 질을 드높인 작가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이리라.

 현직 판사라는 직업에서 오는 지식을 유감없이 작품 속에 녹여내는 작가는 이번에 희대의 사이비 종교인 백백교를 소재로 쓴다. 작가 말마따나 이제까지 다뤄지지 않은 것이 신기한 엄청난 소재인데 그렇다고 그걸 또 조사해서 바쁜 와중에 집필한 작가도 참 대단하다. 어쨌든 우리 앞에 당도한 이 이야기 속에는 또 다시 고진과 이유현이 콤비로 등장해 시리즈 최대의 활극을 펼쳐준다. 긴 분량에 걸맞는 거대한 스케일을 갖추고서 말이다.


 지금부터 꺼낼 말이 느닷없긴 한데... 거대한 스케일을 갖추다 보니 작가가 데뷔 때부터 지향했던 트릭 위주의 본격 추리소설 특유의 재미는 다소 빛을 보지 못한 느낌이다. 이야기 속에서 분명 중요한 역할을 하는 완전범죄는 밀실, 알리바이 등 여러 요소를 엄청난 난이도를 띄고서 질적으로도 양적으로도 작가가 발명한 다른 트릭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하지만 그런 트릭조차도 진상이 별로 궁금해지지 않는 주변의 서사에 의해 주위가 분산됐던 것도 사실이다. 모든 진상이 밝혀지는 막판의 추리 쇼가 이렇게 '아무래도 상관없다'며 기대가 안 들어보기는 또 처음이다. 그렇게 생각해놓고 막상 정체를 알고 꽤나 감탄한 나였지만 어쨌든 예상치도 못하게 본격 추리소설의 백미가 묻혀 읽으면서도 참으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작가는 결코 그렇게 받아들이지 못하겠지만 위의 말은 고도의 디스가 아닌 일종의 칭찬이다. 어떻게 보면 본격 추리소설 스타일만 그리실 줄 안다는 내 고정관념이 완전히 깨부순 것이 바로 이 작품이기 때문이다. 보물 찾기를 비롯한 수수께끼 풀이, 기기묘묘한 분위기, 정의감을 갖지 않을 수 없는 극악무도한 악인은 추리소설은 물론이거니와 범죄 소설에선 빼놓을 수 없는 것들인데 아주 탁월한 솜씨로 다양한 요소를 집약시켜서 꽤나 안정적이지 않았나 싶다. 이 말은 작가 스스로의 영역을 넓힌 것이라서 영락없는 거장의 탄생을 목도한 게 아닌가 하는 감탄을 자아내기도 했는데 솔직히 처음엔 소재가 너무 거창해서 소화하지 못했을까 걱정도 했지만 그건 정말 범인凡人의 기우에 불과했던 것 같다.


 고진과 이유현 말고도 화미령 변호사, 김종노 노인, 사이비 교주 용해운 등 다른 진영에 속한 인물들이 등장해 이야기를 활력있게 굴리는 것도 볼만했고 실제로 있었지만 80년이나 묵은 백백교 사건을 갖고서 이만큼 허구를 가미해 완전히 토속적이면서도 극한의 긴장감을 낳는 스릴러를 그린 것도 대단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이 책의 제목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배신자 유다의 별은 사람의 나약한 마음에서 비롯되는 광신의 무서움과 그를 이용하는 개쓰X기의 잔학무도함을 드러내는 것으로 매우 적절했다고 생각한다. 제목에서 드러나는 서늘함이 그야말로 시리즈는 물론이고 이번 작품의 처음부터 결말까지도 대변하고 있는 것 같아 오싹함을 느꼈던 것 같다.

 위에서도 말했듯 본격적인 추리소설의 부분이 예상 외로 부각되지 못했지만 그를 만회하고도 남을 서스펜스를 겸비하고 있었고, 게다가 이러한 퀄리티의 이야기를 뽑아낸 것에서 작가의 집필 열정을 엿볼 수 있었는데 이를 통해 이제까지 잘 해주셨지만 앞으로도 더욱 기대하게끔 만들어버렸다. 그야말로 한국 최고의 추리소설가의 위엄을 드러낸 작품이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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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입니까 반올림 24
김해원 외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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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최근에 <불량한 주스 가게>로 청소년 문학 엔솔로지를 맛보고서 흥미가 생겨 이것 저것 알아봤더니 꽤나 저변이 넓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니, 그걸 떠나서 내가 옛날에 산 책 중에도 그에 속하는 작품들도 몇 있었는데 기왕 흥미가 생긴 김에 더 읽어보게 됐다. 출판사 바람의 아이들에서 펴낸 바람단편집의 6번째 출간작인 <가족입니까>. 예전에 인상 깊게 읽은 <열일곱살의 털>의 저자인 김해원 씨를 포함해 총 4명의 작가가 참여했는데 작가들의 개성까지는 미처 파악하지 못했지만 릴레이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읽으니 이것 참 신선하다는 느낌은 물씬 들었다. 제목 그대로 가족에 관해 묻는 4개의 단편이었는데 주제를 드러낼 소재를 명확하게 잘 잡아서 읽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자라는 건 나무토막이 아니다!' 김해원

 

 <열일곱살의 털>을 쓴 김해원 씨의 작품으로 연기자를 꿈꾸는 여자애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자신이 배우가 되는 것을 꿈꾸는 엄마를 둔 여자애가 주인공이다. 이는 큰 차이가 있다. 자의가 아닌 타의로 인해 꿈을 꾸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그래서 주인공은 자신의 처지가 불편하다. 극성인 엄마도 불편하지만 자신을 위해 희생한다는 그 의심의 여지 없는 진실한 마음 때문에 섣불리 내칠 수도 없다.

 가족애를 드러내는 핸드폰 광고에 지원하지만 오디션에서 떨어지고 만다. 아쉬워하는 엄마와 기쁜지 아쉬운지 모르겠는 자신의 갈팡질팡한 마음, 그리고 깨달음. 그렇게 일반적인 소재는 아니지만 분명히 이 세상에는 주인공과 같은 처지에다가 비슷한 엄마를 둔 나머지 극성에 시달리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그를 캐치해 가족에 휘둘리거나 혹은 가족에 휘둘리도록 무기력하게 가만히만 있던 소극적인 태도를 드러내고 그를 떨쳐내는 변화를 이끌어내는 구조가 신선했다.



 '지금 하세요!' 임태희


 위의 작품에서 나온 핸드폰 광고가 어떤 식으로 만들어졌는지, 그 과정이 드러난다. 광고를 기획한 주인공은 고객의 의견에 맞게 가족애가 담긴 광고를 만드는데 아빠, 엄마, 딸, 아들을 연기할 배우가 필요하게 된다. 문제는 유명 배우를 쓰기에는 돈이 많이 드니 일반인 중에서 연기자를 뽑아야 하는데 주인공이 엄마 역할로 캐스팅되고 만 것. 마흔 가까이 독신으로 산 주인공이 배우도 아닌데 당연히 엄마 역할을 잘 해낼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 그러나 광고는 찍어야만 한다.

 결국 촬영 당일을 맞았고 연기가 도저히 풀리지 않던 주인공은 조언에 따라 약간 데면데면한 자신의 엄마와 통화하며 연기의 실마리를 잡게 된다. 그와 동시에 일에 치이느라 자발적으로 가족으로부터 외톨이가 되어야 했던 자신의 삶과 가족이란 울타리의 온기를 느끼게 된다.

 '가족'이란 테마를 떠올렸을 때 당연히 청소년이 주인공인 줄 알았지만 이렇게 성인 주인공이 나오니 신기하다. 신체적으로나 법적으로나 성인이 됐지만 우리는 아직 누군가의 자식이고 새로 가족을 만들기 이전에 어느 가족에 소속돼 있음을 상기시켜주는 따뜻한 이야기였다. 단순하지만 제법 효과적으로 의미가 전달된 작품이라 생각한다.



 '관계자 외 출입급지!' 김혜연


 이런 부류의 갈등이 내가 학교 다닐 때도 많긴 했지만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손톱만큼도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비단 나만이 아니라 누구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애들이 핸드폰에 껌뻑 죽는 것은 공감할 만하지만 그래도 한 달에 요금이 24만원 나오는 게 말이 되는가. 어쨌든 주인공은 지도 지가 잘못된 걸 알지만 적반하장격으로 자신을 꾸짖는 엄마에게 반항해 가출을 하는 되먹지 못한 녀석이다. 엄마도 말이 심했지만 그걸 감내하지 못하는 걸 보면 확실한 어린애란 생각이 든다.

 이런 어린애가 어떻게 성장하는지가 작품의 관건이었다. 가출한 녀석이 보금자리로 삼은 곳은 이모의 집으로 아직 독신이고 자신을 편하게 하는 구석이 있어 염치 불구하고 찾아갔다. 이모는 주인공을 흔쾌히 맞이하지만 조건이 있다고 한다. 자신이 기획한 핸드폰 광고에 아들 역할을 연기해달라고.

 이 작품은 부모 자식 간의 화해를 그리고 있다. 그 장면이 내가 바란 대로 시원시원한 맛이 없어 좀 실망이었지만 으레 화해란 서로 양보하고 이해하는 것이라서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갈등의 소재가 하나도 이해는 안 가지만 실제로 이런 이유로 문제가 생기는 걸 주위에서 한두 번 본 게 아니니까 현실성은 충분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르고스의 외출' 임어진


 개인적으로 이 작품이 가장 공감이 안 갔었다. 제목도 좀 뜬금없는 것 같고 주인공 나름의 가족관이나 갈등이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자신이 퇴근했을 때 비어있는 집에 불만을 갖는 아저씨들이 많다는 것은 익히 들어왔지만 이해가 안 가기는 매한가지다. 일종의 이기심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이 아저씨가 핸드폰 광고의 아빠 역할을 맡는다는 그 연결고리하고는 접점이 그다지 많은 이야기가 아닌 것 같아서 어색함이 많이 느껴졌고 별개의 이야기라고 상정하고 읽어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줄곧 깨금발을 딛고 높은 곳을 향해 손을 뻗고 있었구나. 그래서 앞으로 혹은 뒤로 넘어질까 봐 무척이나 겁을 냈구나. 난 혼자니까 모든 걸 잘 해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지. 모르는 게 있어서도 안 되었고 아파서도, 지쳐서도 안 되었어. 외로움은 나약한 것, 나와는 상관없는 것이라고 믿어 버렸지. 하지만 외로운 사람들이 자꾸만 눈에 밟히는 것은 왜일까. 엄마의 마음이 곧 내 마은인 것철머 느껴진는 것은 왜일까...... 어쩌면 나는 이제껏 엉뚱한 곳을 향해 손을 뻗고 있었던 게 아닐까? - 111~11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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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커 - 추정경 장편소설
추정경 지음 / 놀(다산북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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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아무리 재기 발랄하게 문단에 데뷔해도 두 번째 작품에서 미끄러지는 신인은 정말 많다. 극히 일부의 소설가가 아닌 한 이 '이야기의 홍수' 속에서 안착하기는 절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매우 냉정한 이야기지만서도 말이지.

 이 작가는 <내 이름은 망고>로 제4회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했다. 캄보디아를 배경으로 한 그 성장 소설은 군대에서 아주 재미있게 읽었는데 그래서 두 번째 작품도 사뭇 기대하게 됐다. 그래서, 신작이라고 하기엔 벌써 3년 전에 출간됐지만 어쨌든 작가의 두 번째 작품을 드디어 읽게 됐다. 이미 다수의 독자들에게 찬사를 받아서 나름대로 기대가 팽배해진 상태에서 말이다.


 그렇게 기대감이 드높아진 상태에서 읽은 이 작품은 못내 실망감을 안겨줬지만, 한편으론 작가가 던지는 출사표가 느껴졌고 무엇보다 모든 것을 만회하는 기막힌 반전이 등장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 발상 자체는 정말 충격적이었다.

 제목에 나오는 저 벙커를 무의식이 피하는 자신만의 공간쯤으로 묘사한 것이나 그 장소에서 이야기의 대부분을 전개시킨 것은 고루해서 내가 지금 이 책을 읽어야 하는지 의문을 줄 정도였지만 분량이 워낙 짧아서 그냥 한 번 참고 읽어봤다. 그런데 결말에서 아주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뒤집는데 그게 아주 신선해서 다시 보게 됐다.


 나 또한 이런 생각을 많이 해봤다. 내가 나 아닌 다른 누군가였으면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았을지에 대한 상상을 말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현상황이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을 때 그런 상상이 더욱 잘 가동됐던 것 같다. 이런 상상을 비단 나만 한 것은 아닐 텐데 이를 캐치해서 작품에서 줄곧 얘기했던 상처받은 아이들의 이야기에 접목시켜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충격을 안겨준 것은 제법 파격적이었다. 개인의 파괴가 다름 아닌 세상의 파괴라니. 바로 전에 읽은 <영원의 아이>가 장장 1500페이지에 걸쳐 디테일하게 푼 이야기를 아주 짧고 효과적으로 표현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결말도 뒷맛이 개운하면서도 희망적인 여운도 짙어져서 나쁜 기억은 죄다 사라지고 말았다.

 기본적으로 밝은 분위기의 데뷔작과는 확연하게 다른 작풍의 소설이었는데 자신의 글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할지에 관한 포부를 보다 확실히 선포한 작품인 것 같아서 흡족하며 책장을 덮을 수 있었다. 다음 작품도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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