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생활에서, 조금 더 자유롭고 싶고, 조금 더 규칙적이고 싶고, 조금 더 평탄하게 잘 돌아가는 회사를 꾸리고 싶고, 하와이로 하루라도 빨리 가서 살고 싶고, 잘 달리고 싶고, 심지어 이제는 triathlon에도 관심이 가고, 등등의 이유로 주말 근처부터 하루키의 책을 몇 권 연달아 읽었다.
















몸의 상태를 보면서 꾸준히 노력을 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발전이 더딘 달리기. 한 달간 달리는 총 거리도 늘리고 싶고, 스피드도 더 좋아져야 하지만, 늘 아직은 한 달 40마일 정도를 맴돈다. 물론 거기에 80마일은 더 걷고, 매주 3-4회 정도의 근육운동을 이어가는 것으로 gym의 부제를 달래고는 있지만, 그래도 달리기의 거리가 늘어나고 속도가 붙는 건 매우 정직하게 쏟아부은 만큼 금방 느껴질 수 있는 진전이라서 그런 욕심을 버리지 못한다. 무리를 하다가는 영영 달리기와 작별할 수도 있는 나이가 되어버렸고 그러기 전 어린 시절부터 athletic했던 것이 아니라서 정말 주의하면서 조금이라도 통증이 오는 부위가 있으면 하루는 숫제 쉬어버린다. 또 마음을 다스려야 하므로, 즉 달리기가 고통으로 인식되지 않도록 하기 싫은 날은 조금 고민을 하다가 도저히 아니라고 생각하면 그저 걷기와 줄넘기로 만족하는 방향으로 conditioning을 하여 그저 그만 두는 일이 없도록 노력하는 것 또한 이 나이에는 받아들여야 하는 것 같다. 다만 남들보다 뭐든 10년은 늦어버린 인생이라서 내 지금의 나이에서 딱 10년을 뺀 나이라고 자신을 설득하면서 사는 것이 내가 하는 만용과 몸부림의 중간인다. 


먼저 '달리기...'를 읽었다. 용기와 영감을 얻기 위해서. 덕분에 내일부터는 지금의 상황에 너무 좌우되지 말고 그저 내가 할 수 있을 걸 규칙적으로 꾸준히 계획에 맞춰 진행하기로 다짐할 수 있었다. 오전에 출근하면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지 말고, 가급적 메일이나 전화를 오후로 미루고 3-4시간 정도 소중한 머리를 꼭 필요한 일에 집중할 것. 오후에는 메일과 전화를 처리하고 머리를 덜 써도 되는 업무를 처리할 것. 새벽에 달리기/걷기와 오후 늦게 퇴근 전 운동으로 마무리할 것. 하루키가 지난 40년간 글을 쓰고 달리면서 살아온 모습을 비록 평범하기 그지 없는 나의 일상이지만 RPG를 하는 마음으로 살아보려고 한다. 


'위스키...'는 딱히 그걸 마시고 싶은 맘이라기 보다는 여행에 대한 그리움으로 읽었다. 어디론가 근처라도 떠날 수 있었던 것이 거의 일년이 다 되어 간다. 작년 이맘 때 몬트레이와 칼멜을 돌아다니면서 커피를 마시고 작은 겔러리에서 착한 주인을 만나서 지하의 reserve 저장고에서 천천히 그림을 감상한 것을 마지막으로 연말을 거쳐, COVID-19으로 지나가버릴 2020년을 만난 것으로 당분간 여행은 꿈도 꾸지 못할 상황이 되어 버렸으니. 에딘버러에 이어 아일리를 거쳐 더블린으로 가는 여행을 그려본다. 마시고 걷고 느끼고 보고. 여건이 된다면 혼자 떠나고 싶다.


'바람의...'는 하루키의 첫 번째 작품이지만 내가 처음 읽은 그의 작품은 아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럴 것 같은, '상실의 시대'가 그 첫 번째였는데, 어쨌든 하루키를 전업작가의 세계로 보내준 작품이라서. 아무런 관련성은 없지만 뭔가 초심으로 가는 마음에서 읽었다. 


내가 젊은 시절 즐겁게 시간을 보낸, 대학교를 나온 도시의 유명한 서점 두 곳이 모두 사라졌다. 한 곳은 이미 3-4년 전에 문을 닫았고 이번에 가보려고 찾으니 다른 한 곳도 작년 12월에 주인이 은퇴하면서 문을 닫았다. Logos라는 헌책방은 그러나 같은 이름으로 UC Davis가 있는 Davis 다운타운에 있으니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다. 다른 한 곳, 그 이름도 거창한 '문학의 단두대' 정도로 해석될 'Literary Guillotine'은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 같다. 


그렇게 시간이 하나씩 둘씩 익숙한 것들을 바꾸어 버린다. 거울 속의 나도 그렇게 나만 느끼지 못하면서 계속 모습을 바꾸어 가는 것 같다. 운동을 끝낸 지금, 에너지가 솟기 보다는 뭔가 센티멘탈 해지는 아침이다. 


늙은 어느 시절에 젊은 시절의 모험과 활극을 회상한다면 이렇게 하는 것도 좋다. 세상의 중심에 서본 적이 있는 사람의 경험과 평생을 아주 보통으로 살아낸 사람의 그것이 같을 수는 없겠으나 부러워하는 건 죄가 아니다. 하물며 그것이 소설이라면. 사실 멋지게 늙는 모습은 제라르 준장보다는 아르투로 페레즈의 '검의 대가'의 주인공 같지만 프랑스인 특유의 허풍과 허영도 이 나이가 되면, 그리고 꼰대가 아닌 어른으로 늙을 수 있다면 어느 정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준장의 모험은 국역판이 없는 듯 아직 reference를 찾지 못하고 있으니 언젠가 내 손에 들어올 날을 기다린다. 





조승연과 제인 마운트 덕분에 갑자기 충동적으로 사들인 책은 또 언제 읽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전: 근육운동. 1시간 39분, 윗몸 전체, 배, 허공격자 800회. 844칼로리.


어제보다는 통증이 많이 가라앉았지만 걷기나 달리기는 조금 무리가 될 것 같다. 


위에 쓰고 나서 오후에 너무 답답해서 결국에는 3마일을 걸었다. 51분, 286 칼로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양장)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윤성원 옮김 / 문학사상사 / 200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전히 그렇게 무라카미 하루키의 세계에서. 이 첫 작품 또한 세 번 아니면 네 번째 읽는 것 같다. 그를 닮아 규칙적이고 절제하면서도 꾸준히 수행하고 삶을 즐기며 남은 반생을 보내고 싶은 마음. 달리기와 걷기, 근육운동 등 무의 수행으로 가기 위한 준비를 이어가면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라카미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여행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윤정 옮김, 무라카미 요오코 사진 / 문학사상사 / 200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위스키를 비롯한 독주계열보다는 와인이나 맥주, 막걸리계통의 술을 더 좋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으면 위스키의 세계가 궁금해진다. 물론 엄선된 이 책의 싱글몰트나 블렌딩 위스키는 1000불대의 고가라서 좀처럼 마실 일은 없겠지만...여행 가고 싶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북깨비 2020-08-31 14: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몇년전까지 위스키는 딱히 취향이 아니었는데 Ardbeg Uigeadail을 만나고 스모키한 위스키 맛에 빠져들면서 위스키를 즐기기 시작했어요. Ardbeg 다른 것들도 나오지만 Uigeadail은 자신있게 추천합니다.

transient-guest 2020-09-01 05:48   좋아요 1 | URL
가격대가 일단 적절하네요. 다음에 기회가 되면 한번 구해서 시음해봐야겠습니다.

북깨비 2020-08-31 15: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Uigeadail 추천드리고 Ten이랑 같이 나란히 마셔보니 Ten도 괜찮네요. 근데 저한테는 우거다일이 첫사랑이라 그냥 텐보다 좋아요. ㅎㅎ 아마 우거다일이 텐보다 좀 더 비쌀꺼에요.

transient-guest 2020-09-01 05:49   좋아요 0 | URL
Ten은 Ten High인가요? Ten으로 찾으니 Ten High 아니면 top ten 위스키 브랜드가 나오네요.

북깨비 2020-09-01 12:00   좋아요 0 | URL
아. 둘 다 아드벡이에요. Ardbeg Uigeadail (추천) 이랑 Ardbeg Ten Years Old (요것도 괜춘).

transient-guest 2020-09-02 02:11   좋아요 0 | URL
궁금하네요.ㅎ 위스키 마실 때 찾아서 마셔보고 후기 남길게요.ㅎ
 

새벽 8.52 마일 걷기 무릎이 아픔 823칼로리 해변의 절벽을 띠라 맑은 공기를 마시며 행복을 느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