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이렇게 좋은 노래를 여태 모르고 살았을까? 전적으로 '응답하라 1994' 덕분에 옛날을 추억하면서 새로운 옛날 노래를 알게 되었다. 그래도 국민학교-중학교 시절 꽤나 의식화 되어있던 나였고, 김광석이나 노찾사의 노래는 거의 다 알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기막히게 재밌는 율동과 함께 듣고 있으면 다 식어버린 줄로만 알았던 피가 다시 끓어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조금은 고색창연한 '해방세상'이라는 말도, '주춧돌'이라는 말도, 전혀 촌스럽지 않게 들린다.
데모를 하든, 매일 술을 쳐마시든, 그럭저럭 괜찮은 학교 출신이면, 아니 대학 졸업장을 받으면 취업이 가능하던 386세대와는 달리, 아주 어릴 때 IMF를 겪고 자란 지금의 이십대에게 의식화를, 사회변혁을, 민중의식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이십대는 이십대 자신의 기준으로 필요한 것을 찾고, 그게 우리 사회의 미래가 되어가는 것이다. 그래도 이런 노래를 듣고 가끔은 조금 낭만적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과거는 언제나 추억하기 나름이기는 하지만, 대충은 좋은 쪽으로 기억된다. 이건 심리학적으로도 어느 정도 증명이 된 부분인데, 그래서 그런지 지금이 분명 그때보다는 좋을 나도, 그떄가 그립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아마도 우리는 '젊음'을 그리워하는 것일게다.
91년 지금은 희안하게도 공원으로 바뀐 모 도시의 시민회관에서 내 생애 처음으로 '가수'의 '콘서트'를 갔더랬다. 당시 정의사회구현 사제단으로 사회운동에 참여하시던 본당 주임신부님에게서 나온 두 장의 표를 들고 갔던 어린 나의 첫 공연관람은 그렇게 '노찾사'로 시작되었다.
지금도 가끔 나는 굳어가는 손가락으로 기타를 튕기면서 이 노래를 부르곤 한다. '젊기'도 전부터 '아아 짧았던 내 젊음도 헛된 꿈이 아니었으리'라는 가사를 들을 때마다 SS 나 SA에 다름아닌 백골단과 전경의, 대공수사본부, 그리고 그놈에 안기부의 무시무시한 탄압에도 굴하지 않던 대학생 형 누나들의 그야말로 선망의 대상이었다. 약하디 약하면서도 어찌나 강해 보이던지...
그리고 이 분. 떠나지 말았어야 했을 사람. 수구언론과 기득권 세력의 핍박으로 잘한 것도 못한 일로 치부되었던 사람. 그 실책과 공과는 분명히 구분되어야 하겠지만, 그래도 우리 역사에 다시 없을, 정말로 보통사람인 그. 시대를 살아가는 자칭 그의 '추종자'들의 일치하지 않는 말과 행동을 많이 접하지만, 그래도 노무현은 그립다. 그가 상징하는 upper mobility가, 순수함이, 직구가 그립니다. 일본에 던지던 준업한 메세지가, 군부에 '부끄러운 줄' 알라고 일갈하던 그가 그립다. 도무지 부끄러움이라고는 눈을 씻고 또 씻고 찾아봐도 볼 수 없는 국대 금융사단 두목 가카와, 사실상의 친위쿠데타로 국가권력을 탈취한 박근혜씨를 보면 더욱 그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진다.
자기는 박근혜씨라고 말한 적이 없다는 모씨. 한 당파의 수장이 될 자격이 있는지 참 모르겠다. 불복이라는 말에 벌벌 떠는 머저리당. 야당이라는 자리가 부끄럽다. 정당한 절차가, 법규가 지커지지 않았을때, 그 승부에 승복하지 않는것은 상식이다.
어쩌면 이십대가 아닌, 우리가 행동의 주역이 되어야 하는건지도 모르겠다. 다들 대기업에서 퇴사하고 짐싸서 시골로 내려갈 준비라도 하고서 말이다. 우리의 선배들에게 부끄럽고, 후배들을 대하면 면목이 없다.
PS. 12월 19일은 영화보는 날입니다. 저는 여기서 볼 수 없지만, 한국의 그대들은 이 영화를 많이 보고 그리움도 달래길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