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어하우스 플라주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0
혼다 데쓰야 지음, 권남희 옮김 / 비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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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봐, 응석 부리지 마. 세상은 자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전과자에게 엄격해. 인생을 다시 시작하고 싶은 건 성실한 사람도 마찬가지야. 하지만 그것도 어지간한 인내로는 어림도 없어. 자네 같은 멍청이가 다시 시작하고 싶다느니 가볍게 말할 게 아니라고.” (p17)

 

 

각성제 복용으로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요시무라 다카오, 살던 집에 불이 난 바람에 졸지에 당장 머물 곳이 없어진다. 전과자인 그는 집을 구하기 쉽지 않지 않은 상황,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찾아간 보호사 고스게의 소개로 다행히 그에게 집을 알선해 줄 수 있는 부동산 업자를 만난다. 그렇게 찾아간 곳이 바로 이 책의 제목, 혼다 데쓰야의 장편소설 셰어하우스 『플라주』. 이곳의 입주자들은 저마다 심상치 않은 내력을 지니고 있다. 평범한 사람은 들어갈 수 없는 곳, 왜 굳이 전과자들만을 위한 셰어하우스를 운영하는 걸까? 한달 월세 5만엔, 각 방에는 방문없이 커튼만 달려있다. 플라주의 집주인 아사다 준코는 셰어하우스와 가게를 운영해 살림을 꾸려간다. 다카오의 입주로 플라주의 6개 방이 모두 꽉 차고 서로의 과거도, 현재도 묻지 않는 플라주의 생활이 시작된다. 솔직히 각성제 흡입이 이렇게 엄격한 형벌에 처하는지 처음 알았다. 일본 사회는 그런 건가? 마약하고 나서 잠시 자숙의 시간을 가지고 바로 복귀하는 연예인들만 봐서 그런지 한번의 실수로 나락까지 떨어진 다카오의 삶이 조금은 안쓰러웠다. 이래서 사회적 분위기가 중요한가 보다. 나조차도 마약에 대해 무감하니 말이다. 다시 사회에 정상적으로 복귀하고 싶은 다카오는 절실하다. 하지만 이미 전과자로 낙인 찍힌 그의 삶은 결코 녹록치 않다.

 

 

“다카오 군은 약, 나는 살인…… 룰을 깨고 반칙을 한 거지. 다카오 군은 옐로카드, 난 완전히 레드카드. 경우에 따라서 한 방에 퇴장…… 사형이란 것도 있지. 인제 시합에는 나갈 수 없어. 아니, 영구 추방인가. 두 번 다시 경기장으로 돌아갈 수 없지.” (p175)

 

 

내 옆방에 살인자가 산다면? 상상만 해도 후덜덜하다. 세상에, 살인 사건은 뉴스에서만 접했지 실제로 사람을 죽인 사람을 본 적도, 만나 적도 없으니 말이다. 서로가 굳이 과거를 떠벌리고 다니진 않지만 일련의 사건으로 다카오는 자신과 함께 지내는 사람들이 다범죄자라는 걸 인식한다. 자신도 범죄자이지만 아직은, 자신도 그들과 같은 처지라는 걸 받아들이지 못한다. 담담하게 자신의 범죄 사실을 말하는 미치히코의 고백에 다카오의 얼굴은 돌처럼 굳는다. 미치히코에게도 사정이 있었다. 그가 날 때부터 악해서 계획적으로 범죄를 저지른 건 절대 아니다. 오히려 어린 나이의 의협심을 주체하지 못해 재수 없게 사건에 휘말렸다는 게 더 정확해 보인다.

 

“다카오 군은 어느 쪽이 무서워? 무얼 했는지 모르는 나, 엄청난 짓을 했다 해도 무얼 했는지 아는 나. 어느 쪽이 무서워?” (p223)

 

 

다카오는 전과자가 되기 전 일했던 여행 업계에는 다시 발을 디밀지 못한 상황. 개과천선하고 싶어도 이전과 같은 삶을 살 수는 없다. 남자 넷, 여자 셋, 청춘 남녀가 한 지붕 아래 오손도손 모여 사니 사랑이 싹트기도 한다. 자신도 전과자라는 사회적 시선에 힘들어했으면서 눈길 가는 여자가 어쩐 범죄를 저질렀는지 아는 걸 두려워한다. 모르면 몰랐지 한번 범죄자로 인식하면 그만큼 색안경을 끼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그렇지만 사랑의 힘은 위대하다. 소설 후반부에는 셰어하우스 사람 모두 힘을 합해 위기에 빠진 미와를 구하는데 이때 전과자라는 낙인이 얼마나 큰 걸림돌이 되는지 뼈저리게 느낀다. 쉬이 경찰조차 부를 수 없는 처지인 사람들. 한번 죄를 지은 사람은 죽을 때까지 용서받지 못하는 건가(p357). 작가는 독자들에게 묻는다. 다만 플라주의 입주민들은 겉보기에만 흉악 범죄일 뿐 실상 파고들면 다들 악의보다는 사고에 가깝다. 이들에게는 플라주 같은완충지대가 다시 사회로 복귀하는 데 꼭 필요하지만, 뼛속부터 악인인 범죄자들은, 단지 형기를 다 채웠다 해서 사회가 용서해야 하나 의구심이 든다. 일단 벌을 받은 사람에게 재출발할 기회를 준다. 그 정도는 사회가 보장해주어도 좋지 않은가. 이 생각이 그대로 플라주를 만든 동기가 됐다(p347). 자신의 생각이 확고한 준코와 달리 솔직히 지금 이 상태에서 나는 작가의 소설에 전적으로 공감할 수도, 반박할 수도 없는 것 같다. 법 없이도 살 만큼 착하게 살자는 것이 이 책의 주제인 건가. 가볍게 펼쳤다가 너무 어려운 질문을 받았다. 엄청난 흡입력에 빠르게 페이지를 넘겼지만 뒤로 갈수록 이 책이 주는 충격은 엄청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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