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드헌터
요 네스뵈 지음, 구세희 옮김 / 살림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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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뇌스뵈와는 두번째 만남이었다. 그의 전작 [스노우맨]을 너무나 공포스럽게 읽었기에 다음 작품이 나오면 한 번 더 읽어보리라 결심하고 있었더랬다. 새로운 작가를 발견하게 되면 적어도 3권에서 5권 정도만 읽으면 이 작가의 매니아가 될지 뻔한 전개에 주인공 이름만 갈아치우는 작가인지 판단이 되기 때문에 기존 작가의 작품보다는 새로운 작가들의 작품을 읽을 때 좀 더 꼼꼼히 읽는 편이다. 특히 요 뇌스뵈의 경우는 더 그랬다. 익숙한 구석이 하나도 없었으니까. 북유럽 작가라는 점도 그러했고 그곳 사람들의 이름도 생소했지만 그 특유의 분위기도 일본소설이나 미국 소설가들처럼 익숙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스크림을 퍼먹듯 천천히 단어들을 녹여가면서 읽어내려가야했다. 그리고 이내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스노우맨]의 공포가 쏘옥 빠진 이번 작품 [헤드헌터]는 그림 사냥꾼에 대한 이야기다. 그림 사냥꾼이라 하니 먼저 한 영화가 떠올랐다. 오래된 영화라 이미 더빙판으로도 몇년 전에 TV에서 방영했지만 그래도 그 잔잔하면서도 세련된 영화가 다시 보고 싶어진다. 젠틀한 배우 피어스 브로스넌은 상위 1%의 남자지만 그림 감상이 취미인 사람이다. 미술관에서 모두 다 알 정도로 미술관에서 매일 살다시피하며 품격있게 그림 감상을 하곤 했다. 우리에게 장돈건이 있다면 헐리우드에는 피어스 브로스넌이 있는 셈인가.

 

그 멋진 모습도 잠시. 절묘한 타이밍과 철저한 계산으로 그는 명화들을 미술관에서 빼내는데, 아무도 그를 용의자로 상상조차 하지 않는 상황에서 미모의 여인이 나타나 그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의 로맨스와 함께 이야기는 달콤함을 더한다. 그 영화에서처럼 달콤함을 기대했다면 너무 큰 기대였을까.

 

작가 요 네스뵈는 달콤함 대신 뒤통수를 때리는 복수극으로 두 남자를 링 위에 올려놓았다. 헤드헌터를 찾아온 남자와 헤드헌터가 직업인 남자. 채 170도 안되지만 화랑을 경영하는 근사한 아내와 부족함 없이 살고 있는 남자. 그런 그의 취미는 인터뷰하러 오는 임원급 면접자들의 집에 값비싼 그림이 있는지 스리슬적 알아보고 훔쳐내는 일. 순전히 스릴 때문이라고 밖에 이해가 되지 않는 그의 도둑질에 테클이 들어왔다.

 

어중이 떠중이들 속에서 보석 하나 건져냈나? 싶었더니 그림을 훔치러 들어간 그의 집에서 발견된 것은 위작인 그림과 아내의 불륜현장. 질투심에 사로잡힌 그의 앞에 펼쳐지는 앞으로의 상황들은 덮어쓰기 딱 좋은 살해된 시체들과 증명할 수 없는 알리바이들뿐.

 

작가 더글라스 케네디의 [빅픽쳐]에서 주인공이 도망에 도망을 거듭하듯 해결보다는 자꾸만 수렁에 빠져들고 마는 주인공은 자신을 궁지로 몰아가는 아내의 불륜남에게 대적하기 시작하고 그가 일부러 자신에게 접근했음을 아는 순간 거꾸로 복수의 날을 들이세웠다. 그리고 통쾌하게 그의 복수전이 시작된다.

 

세상에 이렇게 면접자를 뒤통수 치는 헤드헌터와 헤드헌터를 살인자로 몰 계획으로 접근하는 면접자가 가득하다면 살벌해서 살아갈 수 있겠는가. 다행스럽게도 이 이야기는 소설 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사냥하는 두 남자의 맞대결은 똑똑하게 사건을 풀어나가는 여느 추리소설이 주는 재미보다 더 박진감 넘치는 재미를 전달하면서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라는 말을 실감케 한다.

 

모든 사건을 스스로 해결하고 다시 인생을 되찾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내에 대한 용서부분이었다. 사람인데, 어떻게 그 의혹들을, 그 순간들을 깨끗히 털어버릴 수 있을까. 작가의 로망이 담긴 그 마지막 부분을 제외하고는 아주 훌륭한 소설이었다고 말해주고 싶다. 독자로서 다음 작품을 또 기다리면서도 한 번은 공포, 다른 한 번은 스릴러였으니 다음 작품의 장르는 어떻게 될지 궁금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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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터 송한나의 뮤지엄 스토리 -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에서 황학동 도깨비 시장까지
송한나 지음 / 학고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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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은 죽은 자의 기록이 담긴 집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큐레이터 송한나의 소개를 받고 보니 박물관엔 살아있는 큐레이터와 이전에 살았던 사람들의 기록이 담긴 집이었다. 결코 그들은 죽지 않았다. 우리가 그들을 찾아가는 한.

 

통통하고 앳되고 어리게만 보이는 그녀는 의외로 당찬 모습으로 자신이 아는 박물관들이 어떻게 만들어져왔는지 전하고 있다. 때로는 슬픈 마음으로, 때로는 재미난 눈으로 구경하게 되는 박물관은 무덤 속의 부장품만 가득 채워놓은 곳은 아니었다. 세계 속엔 좀 더 다양한 박물관들이 세련되게 지어져 사람들에게 또 하나의 스토리텔링을 전하고 있다.

 

눈물 그렁그렁하게 구경하게 만든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은 위안부 할머니들이 겪은 삶의 기록이 담긴 곳이다. 초대 정대협 대표인 윤정옥 이화여대 영문과 교수는 "꽃분이"라는 어린 시절 동무를 정신대 때문에 잃고 평생을 가슴아파하다 은퇴 후 정대협을 위해 여생을 바쳤다고 한다.

 

나는 알지 못했다.

위안부 할머니가 그림을 그릴 수 있음을. 그저 열두살, 열 다섯살 무렵에 일본에 끌려가 몹쓸 짓을 당하고도 평생을 숨어살아야했던 고통받은 여성의 모습으로만 기억되었을 할머니인데, 강덕경 할머니가 그린 위안소는 알록달록한 색채로 예쁘게 그려져 있었다. 줄서있는 일본병사들이 보이고 앉아 있는 어린 날의 자신의 모습도 그려져 있지만 그 슬픈 풍경이 화사하게 색칠되어 있어 더 슬프게 만든다. 인생에 있어 이처럼 꽃같이 예쁠 시기에 그녀는 전쟁터로 끌려갔다. 타의에 의해.

그림을 보면서 깨닫는다. 더 많은 것들을 꿈꾸고 이루고 누리고 살 수 있었을 그녀들의 인생과 하늘로부터 받은 재능에 대한 보상은 늦은 사과와 금전따위로 결코 메워질 수 없음을.

 

박물관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으면 좋겠다. 세계인들에게도 알려져서 그들이 찾는 장소가 되었으면 좋겠다. 홀로코스트박물관들처럼 알려져서 자신들의 만행을 인정하지 않는 일본인들이 머리 숙여 사과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나는 알지 못했다.

반나절 만에 민간인 504명이 학살될 수도 있음을. 미군이 여성과 어린이, 노인이 전부인 손미마을 사람들을 학살했을 때 종군기자가 사진을 찍고 있었다는 사실이 더 충격적이었다. 물론 그 사진이 있어 오늘날 밀라이 학살 박물관에 기록사진들이 전시될 수 있었겠지만.

 

사진이 실사이기에 더 잔인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예를 갖춘다고 바지를 꿰 입으며 나오는 노인의 사진 뒤에 바지를 다 꿰 입은 노인을 사살한 사진이 이어지고, 헬기로 공습하는 미군을 피해 바닥에 납작엎드려 동생을 감싸 앉은 꼬맹이 사진 뒤에 그들이 죽었는지 확인 사살까지 해대는 사진은 인간이 아니라 악마의 소행이라해도 믿을만큼 잔인한 행위였다. 그 기록들이 고스란히 담긴 박물관을 베트남 여행길에 꼭 들러봐야되겠다 싶어진다. 송한나가 아니었다면 나는 이 가슴아픈 역사의 기록을 모르고 지나칠뻔 했다. 숙연한 마음으로 둘러보게 되리라.

 

한군데 더.

이 책에 등장하는 박물관 중에 꼭 가보고 싶은 곳은 "존재하지 않는 그가 존재하는 곳"이라고 소개된 셜록 홈스 박물관이다. 지금도 어디에선가 홈스가 톡 튀어 나올 듯한 곳이기에 더 궁금하고 솔깃해지는 곳이기도 하다. 보통의 박물관은 살아있던 이의 기록이 담긴 곳이며 감탄하거나 숙연해지거나 둘 중 하나의 마음으로 둘러보게 되는 것과 달리 이 곳은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 둘러 볼 수 있는 박물관이라 더 끌리는 곳이다. 홈스는 코난 도일의 작품 속 인물이다. 책 속 캐릭터가 실제 생가(?)처럼 꾸며진 박물관도 가지고 주소지도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근사하지 않은가.

 

 

큐레이터의 어원은 라틴어 "쿠라"라고 한다. "돌보다, 치유하다"라는 뜻이라는데 지하 전시실에 물이 고이면 양동이로 퍼내고 예산이 부족해 철물점에서 구입한 재료로 전시대를 직접 만들어야하는 환경에서 일하고 있는 그녀를 보면 딱 들어맞는 단어같기는 하다. 우아하게 보이지만 열심히 발을 놀려야하는 백조처럼 "큐레이터 송한나"는 전시를 준비하고 강의하고 박물관들을 소개한다. 더 사랑받고 알려지기를 원하는 마음이 담겨 있는 것을 알기에 서평을 쓰면서도 그녀의 마음이 되어 보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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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뷰티를 홍보한다 - 베네피트 홍보팀장이 전하는 화장품 회사에서 일하는 법!
김혜경 지음 / 페이퍼북(Paperbook)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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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핫한 정보들이 내가 20대 때 넘쳐났다면,

현직 전문가들이 전하는 발빠른 정보가 손에 쥐어 졌다면,

 

어떤 인생이 펼쳐졌을까. 요즘의 20대들이 부럽기만 하다. 뭔가 멋진 일에 도전해 볼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 것이. 물론 취직이 어렵고 경기는 좋지 못하다. 하지만 그 핸디캡을 뚫고도 누군가는 일하고 있고 또 누군가는 승진하고 이직한다. 더 나은 조건으로.

 

취업준비 끝에 아모레퍼시픽에 입사했던 저자는 현재 베네피트 홍보팀장으로 일하는 이 바닥의 11년차 베테랑이다. 화려하고 세련되다 못해 근접하기 어려울 것처럼 예상되던 외모와 달리 그녀의 외모는 동글동글하고 앳되보이는 인상이라 친근감이 갔다. 에디터라는 직업군이 한동안 관심의 대상이 된 적은 있지만 코스메틱의 뷰티홍보가가 되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은 국내에서는 본 일이 없었는데 그녀가 화장품 회사에 입사하는 법에서부터 일하는 법까지 한 권의 책으로 엮어낸 것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글자가 너무 작고 촘촘하게 편집되어 읽는 내내 눈의 피로감 때문에 자주 책을 손에서 놓아야했고 뷰티홍보가라는 이미지가 전달하는 기대감 때문에 제품에 대한 정보나 사진, 회사내 사진 등등을 기대했었지만 단 한 장의 사진도 없이 글자로만 빽빽히 채워진 책이라는 점이었다. 물론 정보는 충분했다. 그러나 볼거리가 조금 더 풍족했더라면 화장품 회사에서의 업무에 대한 이해도를 조금 더 높일 수 있지 않았을까.

 

심리서마냥 전공서마냥 편집된 내용이 조금 아쉽긴 했지만 정보를 위해 책을 선택했다면 올바른 선택이라고 등을 두드려주고 싶을만큼 포인트만 집어서 집필된 책이긴 했다. 이제껏 각 브랜드에서 1위 판매왕들의 화려한 스펙을 읽어본 일들은 있다. 핑크색 외제차에 외국여행에 그들이 받은 보상도 어마어마했지만 누군가에게 입을 떼 물건을 사도록 만드는 그 입담이 대단하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내용들이었다. 그런데 현장에서의 판매가 아니라 판매를 위해, 제품을 위해 그 홍보를 하는 전문가의 직종은 또 어떤 자리인지 궁금했는데 11차 홍보전문가가 전하는 외국계 화장품 회사는 입사부터 만만치가 않았다.

 

준비된 자에게 열리는 자리임과 동시에 학교에서 1등이라고 해서 뽑아주는 곳도 아니었다. 여러 경로로 입사가 가능하다지만 인턴 사원의 경우 무엇보다도 주변 사람과의 친화력이 최우선시 되고 있었고 인턴사원을 거쳐 입사를 하는 쪽도 있지만 동종업계로 진출하는 인재들도 있었다. 인턴제의 장점이 바로 이 점이 아닌가 싶어지는 대목이다.

 

중간중간 메이크업 아티스트 우현증 대표, 전 베네피트 코리아 영업부장 정호숙 부장, 인턴을 거쳐 현재 코스모폴리탄 코리아 피쳐 기자인 이미연,뷰티 디렉터 김현수 대표, 케이블 TV PD 김지원,타블로이드 매거진의 배미진 기자 와의 인터뷰틑 현장감은 물론 다양한 각계의 전문가들이 바라본 홍보전문가의 모습이 담겨 있어 흥미로웠지만 역시 이력 옆에 이들의 멋진 사진이 한장씩 찍혀 있다면 더 좋은 편집이 되지 않았을까 싶어 아쉬웠다. 인터뷰의 주인공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궁금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일테니까.

 

물론 아쉬운 점만 보였던 것은 아니다. 뷰티 홍보가가 일터에서 어떻게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는지도 알게 되었고 그들의 일은 물론 취업에서 이직까지의 정보를 한 사람으로부터 얻게 되었으니 책 한 권을 통해 얻게 된 정보로서는 아주 만족스러운 양의 정보였다. 또한

 

P95

면접자리까지 갔다는 것은 더 이상 이력서의 스펙이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라는 좋은 생각을 취업준비생들이 면접시 가슴에 달고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자신감이 가장 큰 무기가 되고 미소가 그들의 가장 큰 포장이 되어 줄 수 있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홍보와 마케팅을 전공했지만 뷰티가 아닌 다른 일터에서 일해온 나로서도 솔깃한 일터가 바로 외국계 화장품회사다.

 

자유롭게 일하면서도 아름다움을 추구할 수 있다는 것!!

여성으로 태어난 이상 아름다워지고 싶은 욕구를 포기할 수 없는데, 나의 아름다움을 업그레이드 하는 동시에 타인의 아름다움까지 책임져줄 수 있다니....이 얼마나 매력적인 직종인가.

 

하지만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곳은 아니었다.

반대로 누구에게도 닫혀 있는 직종도 아니었다.

 

탄탄히 준비가 되어 있고 도전할 용기가 있는 사람이라면 성별 상관없이 도전해보라고 등떠밀어주고 싶은 곳이었다.충분히 매력적인 직종이며 책을 읽고나니 더 욕심나는 일터이기도 했다. 베테피트 홍보팀장이 전하는 화장품 회사에서 일하는 법이 많은 취업생들에게 사랑받게 되기를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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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의 맛있는 여행
황교익 지음 / 터치아트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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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을 기획했으나 3년만에 완성되었다니 고르고 고르며 얼마나 정성을 들였을 것인가. 소설만 탈고작업을 거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한 맛칼럼니스트의 책을 보고 알게 되었다. 전복, 딸기, 밤,대추,옥수수...색색의 조화와 더불어 맛나게도 찍혀 있는 그 맛깔스런 표지 때문에라도 나는 이 책을 꼭 넘겨 보아야했다.

 

건강을 잃고나서 제일 걱정이 되었던 것은 입맛이었다. 쇠(?)도 씹어 먹겠다는 말을 들을만큼 먹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었고 탐하는 편이었는데 그만 입맛을 잃고나니 기운도 없고 어지럽고 정신도 혼미해져갔다. 덜컥 겁이났다. 먹은 것도 없는 속에서는 계속 게워내기를 반복하기만 했고 음식 냄새만 맡아도 거식증이 발동되기 시작했다. 격한 다이어트의 끝도 아니었고 음식 먹기를 거부했던 것도 아니었는데, 사고도 병도 아니었던 나의 알 수 없는 병증은 그렇게 나의 몸과 정신을 건강체에서 멀어지게 만들고 있었다.

 

인스턴트 음식은 아예 목구멍으로 넘어갈 생각조차 하지 않았고 물이나 음료만 겨우 몇방울  들어가곤 했는데 그때 병상에 누워서 생각했던 음식들은 제철과일과 채소들이었다. 앞으로는 몸이 건강해지는 음식들만 섭취해야지 맘먹어서일까. 서서히 입맛이 돌아오고 나서도 내 목구멍은 라면을 비롯한 각종 인스턴트 음식은 일절 받아주질 않았다. 한식 위주로만 된 밥상 앞에서 "감사"하며 숟가락을 들게 된 것이다.

 

요즘엔 하우스의 영향으로 4계절에 왠만한 채소나 과일은 맛볼 수 있게 되었지만 그래도 자연의 섭리상 그 계절에 맞는 재료들이 몸에 좋은 법이다. 주부로 살아오지 않았기에 그들을 알 수가 없던 차에 맛칼럼니스트 황교익의 [맛있는 여행]은 내게 건강을 위한 사계절 식재료들을 계절별로 알려주는 고마운 소식통이었다. 올 여름, 원래 물많은 과일을 좋아하는 편이었지만 병으로 인해 수분이 많이 필요하기도 했던 내게 효자 과일이었던 수박을 뒤로 하고 이 계절 가을, 나는 무슨 먹거리가 있는지 집중적으로 살펴보기 시작했다.

 

미꾸리나 양미리,과메기 등은 워낙 질색팔색을 하는 지라 비린 것들은 뒤로 제쳐두고 고소한 가평 잣, 소금구이로 먹으면 맛있을 남당리 대하, 달달하고 따뜻하게 끓어마셔 감기를 예방할 보은 대추, 언젠가 먹어 본 일이 있는 춘천 막국수,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피부에도 좋을 간월도 자연산 참굴, 너무나 좋아하는 울진 대게에 이르기까지 가을에서 겨울까지의 먹거리는 참으로 풍부했다.

 

몇년 전 항구에서 쪄서 실컷 먹었던 대게가 입맛을 돌게 만들고 있다. 벌써부터. 올 겨울엔 친구와 함께 다시 대게를 맛보러 고속도로를 달려보아야겠다 싶어질만큼 겨울이 기다려지게 만드는 녀석이 바로 맛난 대게다. 뿐만 아니라 환절기를 잘 날 수 있도록 호두,대추,잣의 도움을 받아야겠고 대하와 사과를 옆에 끼고 살면서 건강을 회복해야겠다 싶어졌다.

 

이렇게 가을과 겨울을 나고 나면 봄에는 한재 미나리를 부쳐먹고 골뱅이무침에 넣어 먹어 그 향기로운 향을 입안에 가득 담아보아야겠고 진주 딸기와 통영 멍게를 실컷 먹고 나면 완전 건강해질 것 같다. 뿐만 아니라 광양 매실로 매실액을 좀 담아볼 계획이고 하동 녹차 맛에 길들여져 커피를 좀 줄여봐야겠다 싶어진다. 구경하다보니 녹차, 재첩이 유명한 하동에는 먹거리도 구경거리도 풍부한 곳이라 이전 여행에서 놓쳤던 것들을 꼭 다시 살펴보기 위해 여행가고 싶어진 여행지 1순위로 올려놓았다.

 

수박과 참외,토마토, 멜론 만으로 지나친 여름 속에 김천 자두와 장호원 복숭아, 영암 무화과가 있었더랬다. 몰랐기 때문에 찾아 먹을 수 없었던 금싸래기 같은 과일 들인데 김천 자두와 장호원 복숭아는 그 때깔부터 고와 손으로 톡톡 만져보고 싶어질만큼 탐스러웠고 무화과는 단 한번도 맛본 적이 없어 그 부드럽고 달콤하다는 맛을 내년 여름엔 꼭 맛볼 예정이다. 다만 가격이 그리 비싸지 않기를 바라면서-.

 

역시 봄엔 야채나 숲에서 얻을 수 있는 재료들이, 여름에는 과실들이, 가을에는 몸을 따뜻하게 덥힐 수 있는 열감 식재료들이, 겨울에는 보양할 수 있는 것들이 가득했다. 우리 나라가 삼면이 바다이고 4계절로 나뉘어져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이 모든 것을 맛볼 수 있는 것도 다 그 까닭임을 알기 때문에 더 감사하다.

 

웰빙, 자연주의 가 강조되는 요즘 사람들이 제철음식으로 더 풍성한 밥상, 더 건강한 밥상을 받게 되었으면 좋겠다. 아프고 나서 깨닫게 되는 것이 아니라 건강할 때 그 건강을 위해 맛나는 것들을 입 안으로 쏘옥 넣으며 행복해했으면 좋겠다. 눈으로 보고 즐겁고 옆구리에 끼고 찜해놓은 전국의 맛재료들을 찾아낼 생각으로 즐겁고, 그들이 입에 들어오는 순간 행복하고.....! 먹는 즐거움은 절대 포기할 수도, 포기될 수도 없는 것임을...입맛을 되찾은 지금, 깨닫고 행복하게 감사하며 살고 있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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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은 재능이다 - 병으로 병을 없애는 재능화 프로세스
오노코로 신페이 지음, 박은희.송은애 옮김 / 좋은책만들기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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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독특했다.

병을 다스리거나 병의 원인과 치료법이 적힌 책이 아닌 병과 마음과 나의 상태를 접목한 책을 읽게 되리라 생각해 본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제목처럼 병은 재능은 아니었다. 하지만 병이 온 이유를 알고 병이 온 부위에 대한 전문 지식을 습득하면서 그들이 왜 탈이 났는지, 나의 성격과 환경과 그 시점에서의 현재성을 대비하고 보니 다 맞는 말이었다.

 

큰 한방병원의 전문의에게서 언젠가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환자의 지금을 보는 것이 아니라 발발 시점 이전의 그의 마음가짐과 몸상태를 알아야합니다. 가령 같은 교통사고라도 사고 직전 아주 무리를 해서 몸이 상한 상태의 사람과 건강한 사람의 사고 이후 몸에 가해지는 충격은 다르기 때문입니다"라고.

 

평소 건강했다면 나는 이 책을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아프기전까지는 건강에 대한 지나친 맹신이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인간인 이상 나 역시 남들과 다르지 않았다. 어느 순간 크게 건강을 잃고서는 망연자실했고 근 1년 가량을 재활에 시간을 쏟아붓고 있기 때문이다. 건강을 잃고나니 건강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알게 된 것이다. 바보처럼.

 

많은 책들을 들춰보며 몸에 대한 공부를 했지만 이 책만큼 명쾌하게 나를 웃기면서 울리는 책은 없었다. 진작에 알았다면 좋았겠지만 이제부터라도 이 책을 틈틈이 뒤적거리며 나의 건강과 마음 상태를 체크해나가는 일이 숙제처럼 주어졌다.

 

17년간 2만건의 카운슬링을 실시했다는 저자 오노코로 신페이는 의사가 아니다. 하지만 증상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쉽고 간단하게 설명해주는 것은 물론 병의 심리까지 파해쳐주니 "병"이라는 녀석이 단순히 부정적이고 싫은 것이 아니라 더 건강한 삶을 위한 경고음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그 메시지는 심지어 더 나를 이해할 수 있는 발판이 되어주어 신기하기만 했다.

 

간세포 수명 150일, 여성의 월경주기 28일, 적혈구 세포수명 120일....1년 안에 건강을 되찾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고 말하는 이가 바로 저자 오노코로 신페이다.

 

가령 비염의 경우 코를 제일 먼저 떠올리겠지만 저자는 수분대사를 먼저 언급한다. 음식물이 잇몸에 잘 끼이는 사람은 콧속 점막도 잘 붓기 때문에 비염환자가 되기 쉬운데 이는 점막의 수분대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상이며 이로 인해 타격을 받는 기관은 위장이라고 했다. 비염환자는 맵고 짠 음식을 좋아하며 커피나 홍차를 즐겨마시는 공통 습관이 있으니 물을 많이 마시고 몸 속에 고여있는 물들은 밖으로 자주자주 배출해야한다고 충고한다.

 

이렇듯 간단한 증상에 대한 언급도 있지만 뒤 페이지로 갈수록 병명은 심각해지지만 병을 앓았던 역사속 유명인들까지 언급되면서 나만 앓고 있는 증상이 아님을 알게 해 안심되게 만든다. 당뇨병은 단순히 인슐린을 섭취해야하는 병이 아니라 왜 인슐린이라는 에너지를 몸이 거부하고 있는지를 설명하고 인슐린을 만드는 장기인 췌장에 대한 그림을 보며 병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만든다. 특히 "다른 사람에게 좋은 얼굴을 하고 싶은 사람"이 잘 걸리는 병증이라고 하니 내게 그런 면이 있는지도 순간 돌아보게 만들었다.

 

병의 심리를 읽어나가면서 지금은 아니지만 내게도 있는 면들이 불러 일으킬 병들에 대한 관심과 그 예방법을 꼼꼼히 읽게 만들었고 평소 팔을 괴는 습관이라든지 다리를 꼬는 습관에서 알 수 있는 진단법,건강을 위한 체조등이 첨부되어 있어 골고루 건강을 살피게 만들기도 했다.

 

꽤 짧고 정리가 잘되어 있다고 느끼긴 했지만 이토록 색다르게 "병"에 대해 접근하면서 골고루 도움 받을 수 있는 책을 만날 수 있어 고마웠고 살아온 시간이 아닌 살아갈 시간을 위한 준비서로 손색이 없기에 좀 더 많은 이들에게 권해주어야겠다는 마음으로 서평이 저절로 쓰여졌다.

 

병이 마음에서부터 온다고 했던가. 그 마음이 신체 장기들을 어떻게 움직이며 그들을 병들게 하는지 알게 된다면 그 마음을 조금은 털어버리고 여유로움으로 채워, 생활습관을 바꾸어나가며 건강한 삶을 도모할 수 있음을 머리로 이해하게 만드는 현명한 책이 바로 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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