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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의 맛있는 여행
황교익 지음 / 터치아트 / 2012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1년을 기획했으나 3년만에 완성되었다니 고르고 고르며 얼마나 정성을 들였을 것인가. 소설만 탈고작업을 거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한 맛칼럼니스트의 책을 보고 알게 되었다. 전복, 딸기, 밤,대추,옥수수...색색의 조화와 더불어 맛나게도 찍혀 있는 그 맛깔스런 표지 때문에라도 나는 이 책을 꼭 넘겨 보아야했다.
건강을 잃고나서 제일 걱정이 되었던 것은 입맛이었다. 쇠(?)도 씹어 먹겠다는 말을 들을만큼 먹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었고 탐하는 편이었는데 그만 입맛을 잃고나니 기운도 없고 어지럽고 정신도 혼미해져갔다. 덜컥 겁이났다. 먹은 것도 없는 속에서는 계속 게워내기를 반복하기만 했고 음식 냄새만 맡아도 거식증이 발동되기 시작했다. 격한 다이어트의 끝도 아니었고 음식 먹기를 거부했던 것도 아니었는데, 사고도 병도 아니었던 나의 알 수 없는 병증은 그렇게 나의 몸과 정신을 건강체에서 멀어지게 만들고 있었다.
인스턴트 음식은 아예 목구멍으로 넘어갈 생각조차 하지 않았고 물이나 음료만 겨우 몇방울 들어가곤 했는데 그때 병상에 누워서 생각했던 음식들은 제철과일과 채소들이었다. 앞으로는 몸이 건강해지는 음식들만 섭취해야지 맘먹어서일까. 서서히 입맛이 돌아오고 나서도 내 목구멍은 라면을 비롯한 각종 인스턴트 음식은 일절 받아주질 않았다. 한식 위주로만 된 밥상 앞에서 "감사"하며 숟가락을 들게 된 것이다.
요즘엔 하우스의 영향으로 4계절에 왠만한 채소나 과일은 맛볼 수 있게 되었지만 그래도 자연의 섭리상 그 계절에 맞는 재료들이 몸에 좋은 법이다. 주부로 살아오지 않았기에 그들을 알 수가 없던 차에 맛칼럼니스트 황교익의 [맛있는 여행]은 내게 건강을 위한 사계절 식재료들을 계절별로 알려주는 고마운 소식통이었다. 올 여름, 원래 물많은 과일을 좋아하는 편이었지만 병으로 인해 수분이 많이 필요하기도 했던 내게 효자 과일이었던 수박을 뒤로 하고 이 계절 가을, 나는 무슨 먹거리가 있는지 집중적으로 살펴보기 시작했다.
미꾸리나 양미리,과메기 등은 워낙 질색팔색을 하는 지라 비린 것들은 뒤로 제쳐두고 고소한 가평 잣, 소금구이로 먹으면 맛있을 남당리 대하, 달달하고 따뜻하게 끓어마셔 감기를 예방할 보은 대추, 언젠가 먹어 본 일이 있는 춘천 막국수,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피부에도 좋을 간월도 자연산 참굴, 너무나 좋아하는 울진 대게에 이르기까지 가을에서 겨울까지의 먹거리는 참으로 풍부했다.
몇년 전 항구에서 쪄서 실컷 먹었던 대게가 입맛을 돌게 만들고 있다. 벌써부터. 올 겨울엔 친구와 함께 다시 대게를 맛보러 고속도로를 달려보아야겠다 싶어질만큼 겨울이 기다려지게 만드는 녀석이 바로 맛난 대게다. 뿐만 아니라 환절기를 잘 날 수 있도록 호두,대추,잣의 도움을 받아야겠고 대하와 사과를 옆에 끼고 살면서 건강을 회복해야겠다 싶어졌다.
이렇게 가을과 겨울을 나고 나면 봄에는 한재 미나리를 부쳐먹고 골뱅이무침에 넣어 먹어 그 향기로운 향을 입안에 가득 담아보아야겠고 진주 딸기와 통영 멍게를 실컷 먹고 나면 완전 건강해질 것 같다. 뿐만 아니라 광양 매실로 매실액을 좀 담아볼 계획이고 하동 녹차 맛에 길들여져 커피를 좀 줄여봐야겠다 싶어진다. 구경하다보니 녹차, 재첩이 유명한 하동에는 먹거리도 구경거리도 풍부한 곳이라 이전 여행에서 놓쳤던 것들을 꼭 다시 살펴보기 위해 여행가고 싶어진 여행지 1순위로 올려놓았다.
수박과 참외,토마토, 멜론 만으로 지나친 여름 속에 김천 자두와 장호원 복숭아, 영암 무화과가 있었더랬다. 몰랐기 때문에 찾아 먹을 수 없었던 금싸래기 같은 과일 들인데 김천 자두와 장호원 복숭아는 그 때깔부터 고와 손으로 톡톡 만져보고 싶어질만큼 탐스러웠고 무화과는 단 한번도 맛본 적이 없어 그 부드럽고 달콤하다는 맛을 내년 여름엔 꼭 맛볼 예정이다. 다만 가격이 그리 비싸지 않기를 바라면서-.
역시 봄엔 야채나 숲에서 얻을 수 있는 재료들이, 여름에는 과실들이, 가을에는 몸을 따뜻하게 덥힐 수 있는 열감 식재료들이, 겨울에는 보양할 수 있는 것들이 가득했다. 우리 나라가 삼면이 바다이고 4계절로 나뉘어져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이 모든 것을 맛볼 수 있는 것도 다 그 까닭임을 알기 때문에 더 감사하다.
웰빙, 자연주의 가 강조되는 요즘 사람들이 제철음식으로 더 풍성한 밥상, 더 건강한 밥상을 받게 되었으면 좋겠다. 아프고 나서 깨닫게 되는 것이 아니라 건강할 때 그 건강을 위해 맛나는 것들을 입 안으로 쏘옥 넣으며 행복해했으면 좋겠다. 눈으로 보고 즐겁고 옆구리에 끼고 찜해놓은 전국의 맛재료들을 찾아낼 생각으로 즐겁고, 그들이 입에 들어오는 순간 행복하고.....! 먹는 즐거움은 절대 포기할 수도, 포기될 수도 없는 것임을...입맛을 되찾은 지금, 깨닫고 행복하게 감사하며 살고 있다.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