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도 이후_아케로 마냐스의 <노벰버>(2003)를 봤다. 재미란 말이 재미가 없는 것처럼(이는 금정연이 어느 글에서 썼던 표현이다), 시도란 말에 '시도스런' 기운은 없다 


A 시도란 것에 시시함을 느끼고 있음을 표해야 우리는 그 동여낸 마음을 갖고 그나마 상처를 덜 받고 살겠거니 하는, 그런 세상에 살고 있다. 어쩌면 방금 꺼낸 그 말을 괜시리 왜 하냐고 이죽거려야 하는 단계까지 와 있는지 모르겠다 


B <노벰버>는 '선언'과 '시도'에 관한 영화다. 작품은 순진하고 우직하다. 그래서 더 생각할 거리를 준다. 


C <노벰버>는 '수행성'에 관한 영화다. 언어는 표현될 때 그 자체의 힘으로 인간을 얼마만큼 움직이게 하는지, 더 나아가 고뇌에 빠뜨리게 하는지 영화는 그 곤경을 그려낸다. 어떤 강제와 어떤 자율이 이상하게 섞인 상태에서 '노벰버'라는 극단의 인물들은 수행성의 덫에 갖히고 만다 


D 애초에 자신들의 시도를 견고히 해줄 극단 내 '약속의 언어'가 자유 대신 감옥이 될 때, 인간은 예술 앞에서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E 우리가 한 번쯤은 들은 대답일 수도 있겠으나 이 영화가 후반부에 에너지를 쏟아붓는 공연 씬은 , 왜 인간이 '시도 이후'의 예술에도 결국 '시도'를 찾게 되는지를 우스꽝스럽게 보여준다. 요즘 시대엔 점점 찾아보기 힘든 어떤 대의를 위한 자기 희생적인 우스꽝스러움을.


 F 이 영화의 결말을 보고 나서 숙연해지거나 혹은 야유를 보내거나. 이 틈을 비집는 새로운 질문을 여전히,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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