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통의 '맛'이든, 고통의 '멋'이든, 둘 다 변태적인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고통스럽지 않은 시간에 고의적으로 혹은 우연하게라도 '고통의  극한상태'를 나를 대상으로 느껴보게 하려는 이 변태같은 짓을 한 번 이상은 시도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손톱을 건조한 공책 종이에 박박 긁어보는 것? 책을 정리하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다가온 종이 모서리라는 칼날? 밍밍한 속을 멈출 수 없어 손가락을 입 깊숙이 넣고 마음껏 토하기? 이런 '고통의 순간'을 경험하면, 다시 이 순간을 만나지 않으리라고 다짐하지만, 그 다짐이 만들어 놓은 '잔상'은 오래 가고 또 오래 간다.

꿈은 이 잔상이 실현되는 '곳'이다. 깨어 있음과 고통이 결부되었을 때 나오는 그 인간적인 두려움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두려움. "두렵지 않아", "아니, 두려워"같은 '두려움'을 둘러싼 인간의 표현으로 인하여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시도는 꿈에서는 일단 부차적인 문제다. 꿈을 꾸고, 꿈 속에서 예기치 않은 고통의 순간들이 다가오면 인간은 무방비 상태로 꿈과 맞닥뜨릴 뿐이다. 그리고 깨어나서 '꿈-고통'을  자기 스스로 혹은 타인에게 '이야기'로 풀어보기도 한다. 여기서 '이야기'는 고통을 담아두거나 혹은 고통의 체감을 약하게 하려는 장치일 수 있다. '이야기를 함'으로써 인간은 자신이 꿈과 대면했던 순간을 '인간이라는 존재'로 지켜냈다는 약간의 위로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 2

 

흔히 꿈은 우리가 살면서 일어나지 않으리라 믿는 것, 혹은 우리가 살면서 일어났던 일들 중 다시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것에 대한 '삶 속의 반란'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꿈이 '고통'과 결부되어 있다면 우리는 꿈의 '위상'에 조용히 혹은 거창하게 감탄하게 된다. 이러한 감탄은 꿈에 대한 신뢰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꿈에 대한 불신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혹은 꿈과 현실의 상이함을 습관적으로 들며, 꿈을 현실에 복속시킨다. 현실을 잘 살아가기 위한 방편으로 꿈은 현실의 부속체로 작용하는 것이다. "야. 그거 다 너 잘되라고 나온 꿈이야? 알지?" 여기서 꿈은 꿈 그 자체로 인정받지 못한다. 의미는 현실에 부착되도록 조정되고, 꿈은 조용히 물러나야 한다. 그리고 꿈은 꿈이어야 한다는 자리 찾기가 인간을 통해 실행된다. "정말 꿈만 같아"라는 '습관어'들 속에서 알 수 있듯이.

 

#3
 

그러나 그 '꿈만 같은 일'들이 현실에서 일어났을 때. 우리는 '꿈 / 현실'에 놓인 이 ' / ' 라는 경계가 사실은 인간이 스스로의 존재에 대한 안전을 추구하기 위해 쌓아 놓았던 막임을 알게 된다. 이 막이 붕괴되는 '현실'을 경험했을 때, '꿈과 현실'의 경계를 잃어 버리는 순간은 혼란스럽고 소란스럽기까지 하다. 우리는 이 혼란과 소란에 대해 정작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음을 자책한다.  그러나 이 자책이 손 쉬운 '애도'와 '연민'으로 바로 직진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인간의 불완전함/불안전함을 시인하면서 그것이 곧 새로운 희망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성찰'의 힘은 진부한 듯 하지만 배제할 수 없는 보약이라고 여전히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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