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슬 씨의 일을 통해, 문득 '대자보'에 대한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학생회 시절,총학생회 친구들에 비해 그닥 정치적인 이야기를 적을 거리가 없었던(아니, 적으려고 했지만, 한계로 인해 적지 못했던 게 맞겠다)  때, '총학'에 있는 친구들을 보러 학생회관에 가면, 긴 천에 거무룩한 굵은 글씨가 무섭게 적혀 있었다. '타도'라는 말이 무섭기도 하면서 가슴 설레였고, '비판'이라는 말이 책이 아닌, 학생들의 정성스런 글씨 한 톨,한 톨에 박혀 있을 때, "그래도 아직은.."이라며, 희망 찬가를 마음 속으로 만들곤 했다. 긴 천에 또박또박 글씨를 적느라, 시간도 없었을텐데, 다음 날 아침, 학교에 가 보면, 학교 벽 군데군데, 총학 친구들이 적어놓은 다량의 대자보가 보인다. "너무 세게 나가면 친구들이 두려워하니까, 위트있게 가자구" 란 말이 상상될 정도의 개그콘서트 유행어를 섞어 놓은 재치들, 그리고 예능 프로그램의 한 컷을 따라한 카피들. 그런 '유연함'을 보는 건, 어느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뜨거운 현재진행형의 추억으로. 누군가에게는 함께 하고 싶지만 주저하는 이들의 투명한 지지로,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공부 때문에 숨가쁜 시간 속에서, 약간의 웃음을 만들어주는 계기가 된다. 

 매체의 관점에서 봤을 때, 대자보는 대학생들의 시간과 공간과 연관된 대학생 특유의 재기발랄함이 넘치는 커뮤니케이션 도구라고 나는 여전히 생각하는 쪽이다. 학생들의 관심을 받기 위해 그 주목도를 올릴 수 있는 곳은, '도서관'. 그래서 대학 도서관은 대자보의 경연장이기도 하다. 한 친구가 사회에 대한 울분을 털어놓거나, 한 학생이 신입생에게 성희롱을 한 사건이 발생하자, 그것에 대한 사과를 촉구하는 글들이 올라오고, 폴리페서에 대한 찬반양론이 때론 인터넷 덧글 달리는 모양새 마냥 대자보를 통해 확산된다. 대자보가 주는 파장은 요즘 시대에는, 어떤 영향력의 행사보다는, 책만 파야 하는 학생들의 고리타분한 시간을 채워주는 약간의 '희소성'있는 에피소드로 그친 감이 없잖다.  

대자보는 학생들이 활발히 활동하는 시간에 붙여지기도 하지만, 경험상, 남들이 자고 있을 즈음, 누군가의 사부작사부작 거리는 소리, 청테이프 뜯는 소리가 밤 귀뚜라미 소리와 어우러질 때 그 맛이 더 있었던 것 같다. 아니, 이게 언제 붙어있었지? 누군가가 부지런하게 격문을 붙이고 간 시간. 사람들은 도서관 문을 들어가기 전, 유심히 글을 읽어본다. 누구는 "야, 또 누가 글 올렸냐" 속닥속닥거리고. 누구는 진지하게 안경을 매만지며 정독한다. 

대자보는 한 때 국가에서 관리가 들어갔던 매체이기도 했다. 1994년 10월 15일 김예슬 씨가 다니기를 거부한 고려대학교에 당시 국무총리인 이영덕 씨가 학교를 방문한다. 이영덕 씨는 학교를 둘러보더니,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교내로 들어오면서보니, 벽보가 없는 대학이 너무 깨끗해" 이런 말이 나오게 된 건 당시 총장이었던 홍일식 씨의 친절한(?)보고 때문이었다. 

"고려대 안에는 현재 각종 벽보와 대자보 등 불법부착물이 모두 사라졌다", "총장이 직접 나서 매일 같이 학생들이 붙이는 벽보를 치우자, 학생들도 결국 이에 협조하고 있다" (동아일보, 1994년 10월 16일자 기사) 

대자보는 비단 학내 일만 부각하는 매체는 아니었다. 학교 주변의 일들을 챙기고, 학생들과의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준 분들을 위한 위로를 담기도 했다. 1993년 4월 고려대 앞에서 23년간  <고모집>이란 이름의 막걸리집을 운영했던 한정숙씨. 당시 한정숙씨가 건강 상태로 가게를 그만둔다는 이야기와 함께, 학생들이 외상값을 갚지 않아 경영이 악화되었다는 소문이 퍼지자, 고려대학교 총학생회는 대자보를 통해, 학생들에게 얼른 외상값을 갚을 것을 부탁했다. 또 맥주집 대신 <고모집>을 더 애용해줄 것을 부탁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동아일보, 1993년 4월 17일자 기사) 

시대가 시대였던 걸까. 1989년 고려대학교 복학생협의회는 대자보를 통해, 술집과 카페출입을 자제해줄 것을 부탁했다. 지금으로선 아마 엄청난 뒷담화의 공세에 시달렸을 것 같지만, 당시 사회적 분위기에서 '생활개조운동'이라는 무시무시한 말이 대학 내 그리 부자연스럽지 않았던 상황.  

대자보는 이렇듯 단순한 성명을 발표하거나, 총학생회라는 조직의 선전 수단이 아닌, 대학이라는 울타리에 있는 모두가 함께 생각해보고 싶은 이야기들의 경연을 위한 매개였다.   

그리고 지금 한 친구가 당당한 제목의 글을 대자보를 통해 공개했다.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그 친구는 과감하게 적들의 이야기라는 수사를 통해 우리 시대의 대학의 의미를 되묻는다.  

요즘 김예슬 양의 일이 있은 이후로, 가끔 학교에 들려 하는 일이 여기저기 붙어 있는 대자보를 정독하는 것이다. 때론 내가 부끄럽고, 때론 뜨거워진다.  

가끔 대자보로 더러워진 학교를 상상해본다. 관리 아저씨도 감당하지 못할 많은 격문들이 붙고, 그 격문 안에서 희망과 행복을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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