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부터 학교에 가기 싫어서, 연구실이 있는 건물은 거의 가질 않았다. 대신 신촌에 몇몇 카페를 돌아다니며, 책을 읽고, 사람구경을 하며, 논문을 다듬는 게 요즘 내 일이다. 카페에 있으면, 공부가 잘 되요? 묻는 이들이 있는데, 나는 대체로 잘 되는 편에 속한 것 같다. 내가 아지트로 삼은 곳은 서강대 가는 길 O 카페, 이화여대 가는 길 쪽 M 카페 정도다. 그러다가 가끔 신촌역 2번 출구로 나오는 길에 바로 보이는 T 카페에도 종종 들려 몇 시간을 죽친다.  

워낙 사람구경을 좋아하는 나이기에 (나는 참고로 토익 첫 시험 때 토익 시험을 실제로 치기보다는, 이런 시험을 치러 오는 사람들이 어떤지 구경하러 갔었다) 눈에 들어오는 카페 속 장면들이 있다. 무엇보다 자리 잡기에 대한 장면들이 카페를 들릴때마다 겹쳐, 조용히 생각해보게 된다.  

자리를 잡을 때 보면, 나와 같은 소심한 이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느낀다. 분명 카페 안에 빈 자리가 많은데도, 남자친구와 손을 랄라라 잡고 온 어떤 여자분은 빈 자리보다, 뭔가 빽빽한 기운에 질식당할 것 같은 지, 남친의 옷자락을 잡고 그냥 나가자고 한다. 왼손에 토익 교재를 한 꾸러미 잡고 온 어떤 여자분은, 자리를 빙 둘러보더니, 분명 빈 자리가 몇 개 있는데도, "야, 자리 없다."라는 말이 같이 온 친구에게 쉽게 나온다. 나도 한 때 그랬다. 카페에 분명 빈 의자와 테이블이 보이는데도, 뭔가 빽빽한 분위기가 감지되면, 같이 온 친구에게 그냥 나가자고 말한다. 그러다가 다른 카페를 찾고. 결국 처음 발견한 그 카페를 돌아가게 되는 경우가 잦다.  

어떤 인지일까. 나는 좀 엉뚱하게도 지하철 7호선 온수역, 지하철 용산 역 동인천 방향으로 가는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전쟁을 치루듯이 자리를 잡는 그 광경이 겹친다. 이 상황도 웃기고 흥미롭다. 사람들이 그렇게 우르르 달려들어도 빈 자리가 보인다. 그런데, 그 자리에 앉지 않고, 꿋꿋하게 창에 기대는 친구들이 있다.(나도 사실 이 쪽이다) 무슨 심리일까.  요즘 그런 장면들을 워낙 자주 보다보니, 그런 사람들에게 마음 속으로 짜증이 날 때가 있다.  솔직히 어떤 자리에 앉을 지 지나치게 신경쓰는 이들이 이해가 안 가는 경우가 제법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건 어쩌면 그런 사람들과 비슷한 나에게 짜증을 내는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자리 잡기의 또 다른 맥락. 나는 늘 앉는 데만 앉는 습관이 있다. 이건 많은 이들이 실제로 해 봤을 것 같다. 수학으로 비유하자자면 나는 왼쪽을 기준으로(1.1) 자리를 참 좋아했다. 늘 그 자리에 앉으면 마음이 차분해졌고, 교수님의 강의도 귀에 잘 들어왔다. 하지만, 시험은 달랐다. 시험 때는 주로 뒤로 앉고 싶어 했다. 시험 때, 문제를 가장 먼저 받아, 뒤로 넘기는 그 순간이 나는 이상하게 싫었고 불안했다. 실제로 자리에 따라 성적도 상이했는데, 뒤에 앉아서 시험을 봤던 날은, 점수가 잘 나왔다. (찍는 것도 잘 되었던 것 같다 ㅎ) 

앞에서 이야기한 카페에서 자리 잡기와 조금 다른 맥락. 나는 빈 자리가 많은 식당을 좋아한다. 내 친구 참참은 붐비는 분위기가 아니면 여기서 나가자고 내 옷자락을 휘휘 잡으며 흔들지만, 나는 이상하게 그런 식당이 끌린다. 맛이 없어도 자주 가는 편이다. 그러다 단골이 되고, 주인의 사연을 듣는다. 동네 집값 이야기, 음식 재료 시장에서 떼어 오는 이야기, 나라 이야기, 날씨 이야기 등등. 이야기하다보면, 과일이 나오고, 매번 보던 반찬에서 계란말이 하나, 소세지 하나가 더 얹어져 있다.  지난 여름이었던가. 인천의 냉면 골목에 참참과 함께 갔다가, 나는 냉면을 먹고 온 것이 아니라, '마시고' 온 것에 심한 불쾌함을 갖고 있었다. 긴 대기줄, 사람들은 언제 빈 자리가 생기나 요리조리 눈치를 본다. 앉아 있는 사람들. 주문하자마자 나오는 냉면에 신기해하면서도, 이야기도 하지 않고, 겨자 소스 한 번, 식초 한 번 뿌리는 시간, 후루룩 세 번의 시간 그리고 물 약간 마시는 시간. 한 남자는 연인의 늦은 식사 시간을 자신의 빈 그릇으로 재촉한다. '야, 나 다 먹었어. 사람들 몰려와. 왜 이렇게 늦게 먹니?' 무언의 압박.  (난 개인적으로 '맛집'이라는 걸 그닥 신뢰하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않는다. 맛집에서 느끼는 자리의 강박. 진중권의 말이 생각난다. 한국인들은 휴식도 일처럼 한다고. 맛집은 붐비는 분위기, 그 분위기 안에 나도 동참해봤다는 경험 경제의 하나일 뿐. 정작 나는 그 맛이 그 맛이더라) 

또 내가 잡아야 할 자리는 무엇이 있을까. 부산 사직구장 명당자리?(응원단과 최대한 가깝게) CGV 아이맥스 영화관 명당 자리?(아바타 볼 때) 동네 큰 교회 명당자리?(설교시간에 적절히 졸기 좋은, 새신자카드 작성하라고 재촉 안 받는 좋은 자리?) 예비군 안보시청각 훈련 때 명당자리?(휴대폰으로 게임하기 좋고, 자는 것도 눈치 안 보이는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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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4-20 15: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얼그레이효과 2010-04-20 16:33   좋아요 0 | URL
아. 그러셨군요.^^ 서강대 근처에 잘 가는 주점이 하나 있는데, 언제 한 번 편안하게 세상사 이야기 할 날이 오길 고대합니다.^^ (대신 졸업논문부터 좀 처리하겠습니다. 쿨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