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100216090718&section=03 

-> '금메달'도 모자라 싹쓸이 타령인가? 

정희준 교수가 <프레시안>에 올린 본 칼럼을 보면, 어떤 관습적 사고를 볼 수 있습니다. 글이 워낙 감정적이어서, 칼럼으로서의 어떤 격을 상실한 것은 일차적인 문제로 치더라도, 평소 스포츠에 관해 색다른 견해를 종종 제시하던 필자가 이런 '식상한 시선'을 견지한 글을 너무 자랑스러운 태도(그것도 격앙된 태도를 덧붙여)로 내놓은 것이 아리송하기도 합니다. 정희준은 정확히 왜 사람들이 이호석에 분노를 느끼고 있는지 모르는 것 같습니다. 덩달아 이 칼럼을 손 본 편집기자들도, 인터넷 매체를 다루는 기자들이라면, 좀 온라인 상에서 돌아가는 정황을 알고, 필자와 의견을 공유하는 과정을 거칠 수 있었을텐데, 아무래도 이 칼럼은 인터넷 용어로 '떡밥을 한 번 던져보겠다'라는 의도가 강해 보입니다.(아마 언론의 속성상 편집부가 그런 성향을 더 드러냈겠고, 정희준이라는 필자가 때마침 있었던 것이겠지요)  

칼럼의 전문을 보면서, 어떤 부분에서 제가 처음에 언급한 '관습적 사고'가 발견되는지, 지적해보겠습니다. 아래는 칼럼의 전문입니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당시 어찌 보면 도발적이고 어찌 보면 무례한 슬로건을 앞세운 나이키 광고들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여기에 기념품이나 교환하러 온 게 아닙니다(I didn't come here to trade pins)." "당신은 은메달을 획득한 게 아니라 금메달을 놓친 겁니다(You don't win silver, you lose gold)."

1984년 올림픽 수영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던 에이미 화이트는 이 광고가 누구든 금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의 얼굴에 따귀를 때리는 격이라고 비난했고, 많은 이들이 나이키가 올림픽의 이상을 내동댕이쳤다고 꾸짖었다. 그런데 나이키 외에도 오랜 세월 선수들에게 따귀를 때려온 이들이 있다. 언론이 바람을 잡으면 '온 국민'이 한마음 한뜻으로, '거국적'으로 집단 따귀를 때린 사람들이 있다. 바로 한국에 사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은메달, 동메달을 딴 세계 최고의 선수들도 '패배자'로 여겼다. 금메달 획득에 '실패'해서 안타깝고 실망한다는 사람들이다. 지려면 미리 져야지 결승에서 지면 역적이 된다. 국민에게 실망감을 안겨 줬다나. 그래서 젊음을 불태우며 국가에 은메달, 동메달을 바친 젊은이들은 머리 처박고 뒤로 물러서 있어야 했다. 한국은 '1등만 기억한다'지 않는가. 

-> 필자는 한국이 '1등만 기억한다'는 점을 부각시키고자, 나이키 광고의 한 사례를 들었는데, 이런 장황한 사례를 들만한 수고가 없었더라도, 한국 사람들 스스로도 한국 사회가 '1등만 기억한다'는 점 자체는 내부적으로 성찰하고 있는 지점입니다. 근데 저자는 이 점을 환기시키고자, 유난히 한국사람들이 이 점에 대해 아직 각성하고 있지 못하는 경우로 자신의 비판대상을 정하고, '한국에 사는 사람들'이라는 표현으로, 한국 사회의 부정적 폐해 - 여기서는 금메달 지상주의가 되겠지요-를 한국인들이 이제 좀 버려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라고 논지를 전개시키는데,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이번 '이호석 사태'는 '금메달 지상주의'와는 다른 방향의 이야기들을 좀 경청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 또 다른 시선으로 공분이 일어났는지 말이죠.

지난 베이징 올림픽에서 유도 금메달을 땄던 최민호가 그랬다. 그는 4년 전 아테네 올림픽에서 부상과 체중 감량의 고통 속에서도 불굴의 투지로 동메달을 땄다. 체중 조절에 문제가 생겨 경기 3일 전부터는 땀복을 다섯 개나 입어 숨도 못 쉴 정도의 고통 속에 사우나만 드나들며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물만 먹었다고 한다. 그 고통을 한국 사람들은 알까. 그들은 금메달만 안다.

그런 상태에서 출전한 경기에서 그는 동메달을 땄다. 고통을 이겨낸 동메달에 자신은 너무 기뻤다고 한다. 그런데 그는 곧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사람들의 눈초리를 싸늘했다고 그는 기억한다. 그는 졸지에 '루저'가 된 것이다.

그는 "사람들이 시선이 무서웠다…동메달을 따니 외면하고 혼자 외로웠다"고 했다. 특히 금메달을 딴 1년 후배 이원희만 챙기는 협회와 언론, 그리고 국민들을 보며 너무 속이 상해 혼자 소주 7병을 마시기도 했다고 한다. 그 외로움과 절망감을 한국 사람들은 알까. 그들은 금메달만 안다.

혹시 장미란 이야기는 아시는가. 그는 "도하 아시안게임 때 은메달을 따낸 뒤 박태환과 함께 입국할 때 비참한 심정이었다"고 했다. 그 이야기 정말 모르시는가. 하긴, 그 비참한 심정을 한국 사람들은 알까. 그들은 금메달만 안다. 

-> 고로 최민호의 이야기 등등등은 그의 잘못된 방향으로 인해, 어설픈 부연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밴쿠버 동계올림픽 남자 1500미터 결승에서 이호석과 성시백이 충돌해 한국의 금·은·동 싹쓸이가 날아갔다고 한다. 결승선을 앞둔 마지막 코너에서 이호석이 성시백을 인코너로 추월하다가 스케이트 날이 엉키며 두 선수가 모두 넘어져 버리자 누리꾼들은 이호석을 맹비난 하는 중인가보다. 한국의 금·은·동 싹쓸이가 날아갔다면서. 이정수가 금메달을 따지 않았는가. 금메달도 모자라 이젠 싹쓸이 타령인가.
 

한 언론 보도를 보니 이호석의 싸이월드 미니홈피에는 14일 하루에만 30만 명이 넘는 네티즌들이 다녀갔고 이들은 1000건이 넘는 비판 댓글을 쏟아냈다고 한다. 미니홈피가 닫힌 15일에도 이날 오전까지 6만 명이 넘는 누리꾼이 방문했다고 한다. 

-> 소위 언론이 이런 경우를 '마녀사냥'이란 표현으로 잘 쓰고 싶어하지요. 근데 저는 더 나아가, 이런 상황에서 지식인들이 어떤 개념을 가지고 현상을 바라보는가에 더 관심이 있습니다. 뭔가 아리송한 상황에서, 한 사람이 '지나치게 욕을 먹고 있다' ; 그래서 이 '지나침'을 좀 거두어라, 대중들이여 ' 물론 개인의 미니홈피에 들어가, 욕지거리를 남기는 사람들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해야한다는 또 하나의 대립적 구도로 이 칼럼을 비판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정희준이 좀 정성을 들여 '이호석 사태'를 바라봤다면, 사람들의 분노가 "너때문에 금,은,동 될 걸, 금만 되었잖아"라는 의견만 있었다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을 겁니다.  이런 경우는 지식인들이 자신만의 견고한 입장을 제시할 때, 즉 남들이 예!할 때, 아니오!라고 본인이 말을 할 때, 그래도 이 '아니오!'라는 입장에 대해 남모를 지지가 분명 있을 것이다, 분명 양심있는 자들이 있을 것이다!라는 기대감과 만나는 것일텐데요. 그런 기대감이 주는 공명이란, 보통 칼럼을 읽었을 때, "그래 내가 봐도 너무했어."라는 응답을 초래하게 되는 경우일겁니다. 하지만, 이번 칼럼은 좀 게을러 보입니다. 이 상황에서 "또 이런 시선이야!"라는 반응이 가장 먼저 왔습니다.


어느 누리꾼은 한 포털사이트에 글을 올려 "정당하게 아웃코스에서 추월하려는 것도 아니고, 인코스가 뻔히 막혀 있는 상황에서 그쪽으로 무리하게 치고 들어왔다"며 "분명히 잘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고 한다. 결승선을 앞두고 마지막 코너를 도는 쇼트트랙 선수들에게 인코스, 아웃코스가 어디 있나? 쇼트트랙이 마라톤인 줄 아나.

또 어느 누리꾼은 관련 기사에서 "이호석 선수가 금메달 100개를 따와도 반갑지 않다"고 했단다. "올림픽 경기 중이라도 이호석 선수와 그의 담당 코치를 징계해야 한다"고도 했단다. 한국에 이렇게 정신 나간 분들이 많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솔직히 이런 분이 둘만 되도 참 문제다. 이런 분에겐 이호석을 대신 해 한 마디 해드리고 싶다. "네가 타라. 스케이트."

그럼 이호석은 무엇을 위해 올림픽에 나가 승부를 거는 걸까. 국가 대표는 누굴 위해 올림픽에 나가는 것일까. 국가를 위해서? 그런 생각 별로 안 할 거다. 국민을 위해서? 조금 하긴 하지만 그게 그렇게 절실한 것은 아니다. 이호석은 자신을 위해, 자신이 초등생일 때부터 매달렸고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젊음을 불살랐던 빙판에서의 승부를 위해, 엄청난 땀과 고통의 결실을 맺기 위해 태평양을 건너 간 것이다.

그럼, 두 번째로 국가? 웃기지 마라. 이호석 같은 선수들은 어린 그를 데리고 1년을 하루 같이, 아니 십몇 년을 하루 같이 훈련장으로, 대회장으로 다니며 코흘리개를 국가 대표로, 올림픽 선수로 키워 준 부모님을 위해 뛴다. 이게 내 자식 잘 되는 길이라고 굳게 믿고, 내가 굶어도, 내가 힘들어도 내가 참는 게 내 새끼 잘 되는 길이라며 낳은 죄를 즐거움 삼아 뒷바라지 해온 어머니를 위해 뛴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유도에서 금메달을 딴 하형주가 경기 후 온 국민이 듣는 가운데 고향에 있는 어머니와의 통화에서 뭐라 했나. "어무이, 이제 고생 끝났심다."

그럼 세 번째로 국가? 미안하지만 아니다. 그를 길러준 감독님이다. 그 다음은? 그 동안 지원해 준 협회일 것이다. 그럼 국가는? 내가 열심히 뛰었는데 그렇게들 좋아하시니 그게 그저 고맙고 감사할 뿐이다.

성시백과 이호석이 미끄러지면서 싹쓸이를 놓쳤다. 그래도 이정수가 금메달을 따지 않았나. 그렇게 좋아하는 금메달을 땄으면 그걸로 만족하고 좋아하면 되지 왜 엉뚱하게 최선을 다했던 선수를 비난하나. 이호석이 이미 2006년 토리노 올림픽에서 금메달과 은메달 두 개나 국민들에게 바친 사실은 싹 잊었는가.

싹쓸이가 뭐가 그리 중요한가. 언제 은메달, 동메달 쳐주기나 했나. 대접해 주기나 했나. 싹쓸이가 금메달보다 '폼'이 더 나서 그런가. 그게 그리 근사해 보이는가. 욕심도 좀 점잖게 부려라. 그 경기, 그 순간에 혼신의 힘을 다 한 젊은이를 욕하지 말고. 국가 대표 선수가 무슨 스트레스 해소용인가.

이호석은 양보하기 위해 올림픽에 나간 것이 아니다. 그는 세계 최고의 스케이터다. 당연히 승리를 위해, 금메달을 따기 위해 태평양을 건너갔다. 그의 신체와 머리는 오직 승리를 위해 프로그램 되어있다. 그리고 쇼트트랙은 경기의 특성상 마지막 20~30초에 승부가 결정된다. 또 쇼트트랙에서 신체 접촉은 경기의 일부다. 그래서 올림픽 같은 초특급 선수들이 겨루는 시합에서는 마지막 코너에서조차 승부를 가늠할 수 없다.

마지막 코너를 도는 그런 상황에서 이럴 땐 양보하고, 저럴 땐 치고 나가고 식의 작전은 존재하지 않는다. 상대 견제 등의 작전도 마지막 바퀴 전까지의 이야기지 마지막 바퀴에서는 혼신에 사력을 다한 질주만이 있을 뿐이다. 없는 틈도 만들어 돌파해야 하는 게 쇼트트랙 선수다. 이호석은 자기 할 일을 한 것이다.

아무리 봐도 이번엔 너무 했다. 어느 멍청한 국가 대표가, 어느 못난 운동 선수가 올림픽에 양보하러 나가는가. 제발 바랄 걸 바래라. 그 순간에 파고들지 않으면 그는 운동 선수 아니다. 그 상황에서 양보가 스포츠맨십인가. 그게 도대체 어느 나라 스포츠맨십인가. 그건 승부 담합이다. 승부 조작이다. 건달도 아닌 '양아치 스포츠맨십'이다.

그리고 금메달 아니면 '루저'라는 공식은 누가 만들어냈나. 언론이 만들어 놓고, 그리고 그 공식을 한국 사회가 이제까지 철저하게, 그리고 비정하게 지켜와 놓고 왜 이제 와서 은메달, 동메달 날아갔다고 죄 없는 선수를 죄인 만드나. 논란은 무슨 논란. 나라도 그렇게 할 건데.

하나 더 있다. 인기와 관심도 금메달이 싹쓸이 하지만 이거야 잠깐의 신기루일 수도 있고 실질적인 가치, 즉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경제적 가치'도 이참에 한 번 따져 보자. 국위 선양한 운동 선수들에겐 연금이 주어지는데 이것도 금메달만 대접한다. 점수로는 올림픽 금메달 90점, 은메달 30점, 동메달 20점. 연금 액수로는 금 월 100만 원, 은 45만 원, 동 30만 원. 상식적으로 예를 들어 80만 원, 60만 원, 40만 원 뭐 이런 식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세상에 차별 치고도 이렇게 더러운 차별이 어디 있나.

각설하고, 이호석은 들어라. 당신을 욕하는 사람 신경 쓸 것 없다. 국가? 집어치워라. 올림픽 무대에 선 운동 선수에게 국가는 무슨 국가. 올림픽이 무슨 국가 대항전이더냐. 자신을 위해 뛰어라. 너를 위해, 너만을 위해 뛰어라. 이깟 수준도 안 되는 비난에 굴하려 지난 4년을 기다렸느냐. 

 

 
   

고로 정리를 해 보면 이렇습니다. 정희준은 '한국인'이라는 비판 대상을 내세워 소위 '박노자 놀이'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제가 정희준의 '박노자 놀이'가 좀 엉뚱한 이유를 짚어보겠습니다.   

http://yhhan.tistory.com/1150 

-> 쇼트트랙 그리고 사이버 민중주의  

한윤형이 본인의 블로그에 올린 이 칼럼은 똑같이 '이호석 사태'를 다루고 있습니다. 사실 칼럼의 분위기는 지극히 '상식적'입니다. 다만, 한윤형의 이 지적은 인터넷 분위기를 나름 열심히 살펴봤다는 느낌을 줍니다. 

   
  동계올림픽의 어느 쇼트트랙 경기에서 스스로 반칙을 저질러 실격하고 동료까지 넘어뜨려 한국 대표팀의 금, 은, 동 싹쓸이를 무산시킨 어느 선수에 대한 웹상의 비난 여론이 거세다. 피상적으로 보자면 WBC 결승전 마지막 순간에 이치로에게 얻어맞은 임창용에 대한 분개처럼 과잉된 '스포츠 민족주의'의 발현처럼 보이지만 문제가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다. 네티즌들의 문제제기는 '한국의 메달 획득을 방해했다'고 비난하는 차원을 넘어서 있기 때문이다.


네티즌들이 이 사건에서 읽어내는 것은 실력을 견주는 공정한 경쟁을 왜곡하는 스포츠계의 고질적인 파벌주의다. 과거의 기사들과 경기동영상을 토대로 네티즌들은 문제의 선수가 어떤 파벌에 속해 있으며, 국가대표 선발전과 세계대회 등에서 그 파벌선수들의 승리를 위해 어떤 반칙을 범해왔는지를 고발한다. 살펴본 것만으론 근거가 너무 정연해서 반박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이 네티즌들의 의견에 반대근거를 내세우려는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이 사건은 한국 사회의 '사이버 민중주의'가 어떻게 발현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네티즌들이 제시하는 자료는 몇년 전에 이미 완성된 것들이었다. 그 말인즉슨 인터넷상에는 이미 이 논란이 예전 대회에서부터 이어져왔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비리'가 폭로되었을 때, 보통의 사회에서라면 문제해결과 재발방지를 위한 조처가 취해졌을 것이다. 비리가 없는 사회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비리를 남들이 모두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떠벌리고 다니는 사회도 희소하다. 체제는 자신의 정당성을 강변하기 위해 적어도 명명백백하게 드러난 비리에 대해서는 제재를 가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판례에 따른다면 명백한 범죄행위를 '삼성 예외주의'를 적용하여 면죄해주는 한국 사회가 회피하는 부분이다. 네티즌들이 비리를 폭로해도 누구도 이 의혹에 대해 해명하지 않는다. 권력을 가진 자는 여론에 신경을 쓰지 않고 자기 기득권을 유지한 채 그저 '별 일 없이 산다
 
   

그렇습니다. 정희준이 '박노자 놀이'를 통해 살펴보고자 한 것은, 이제 워낙 많이 나온 일종의 '인민재판주의'에 대한 비판일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러한 시선이 분명 필요함을 느끼면서도, 대중들의 행위 방향이 이런 시선틀 안에서, 마치 당연한 행위들만을 딱딱 들어맞게 보일 것이라는 지식인들의 안이함을 질타하고 싶습니다. 

본 칼럼은 이제 지식인들이 이러한 상황(언론에서 마녀사냥이라고 관습적으로 표현하려는 경우)에 대해 어떤 시각과 열의를 가지고 상황을 좀 더 입체적으로 볼 수 있을 것인가를 과제로 내놓은 것 같습니다. 정희준은 국가지상주의, 금메달지상주의라는 이데올로기를 걷어버려라!고 외치기 이전에, 대중들이 과거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발을 두고 나름대로의 치밀함을 갖고 한국 사회의 파벌주의를 질타했다는 점에 대해 조사를 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기껏 싸이월드에 폭증하는 비난 글로, 이 상황이 가진 오류를 다 파헤쳤다는 그 자신감넘치는 격분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국가우선주의와 개인의 욕망을 대립한 채, 한국사람들이 가진 국가우선주의에 대한 부정성을 비판하는 것도, 저는 좀 시각이 다른데요. 차라리 이 말은 인터넷을 좀처럼 하지 않는 나이 드신 분들에게 칼럼의 한 자, 한 자를 확성기로 읊어가면서 했다면 좋은 설교가 되었겠지만, 분명 지금의 이 분노에는 '국가우선주의'와 '금메달지상주의'가 이호석이라는 개인을 지나치게 궁지로 몰아가고 있다는 입장으로 귀결된 것이 아닙니다. 

한윤형이 '사이버 민중주의'라고 개념화한 것에서, 나름대로의 그 긍정성을 보여준 것이라면, 네티즌들이 이호석 사태를 통해,개인의 오류를 사회적 구조 안에서 함께 지적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 지점은 바로 한체대 와 비한체대 간의 파벌 싸움이라고 저는 들었습니다. (여기서 안현수와 이호석의 관계를 짚고 넘어가, 안현수의 손을 들어주는 그런 입장도 있던데, 여기에서는 좀 더 신중하고 싶습니다) 

정희준 선생은 자신이 <프레시안>에 기고한 칼럼 전문을 한 손에 들고, 유명한 한국의 인터넷 커뮤니티에 들어가 '이호석 사태'에 대한 정황들을 좀 점검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이 사태는 정작 '이호석'사태가 아닌, 한국 사회의 깊숙한 '파벌주의'가 문제화되고 있는 지점이라는 걸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덧붙임) 물론 이호석과 파벌주의 연관성이 확실한 사실인지, 아니면 짐짓 추리해봄으로써 나온 '편집된 견해'인지는 쇼트트랙 당사자들 만이 알고 있는 숨겨진 진실이겠지요. 그런데 이번 사건은,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라는 것이 제 솔직한 입장입니다.

근데, 더 큰 문제는 언론의 게으름이지요. 정말 우리나라 언론사 종사자들, 공부 안 한다는 것을 이번 칼럼을 통해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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