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연인도 되지 마라 - 김현진의 B급 연애 탈출기
김현진 지음, 전지영 그림 / 레드박스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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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이 있기 이전부터, '글세계'에서 상처를 글로 표현하는 사람은 많았다. 그렇기때문에, 김현진의 포지션이 그다지 새롭지는 않다. 하지만 김현진의 글에는 '김현진다운' 또 그런 맛이 있다. 그것 또한 부인하기 어렵다. [누구의 연인도 되지마라]는 개인적으로 [당신의 스무살을 사랑하라]와 함께 '상처판매' 2부작으로 묶고 싶은 책이다. '상처판매자'라는 표현이 좀 거북스러울 수 있겠으나, 솔직히 말해서 김현진이 자신의 위치를 어느 정도 '글세계'에서 확보할 수 있었던 것에는, '상처의 폭로'가 바탕이 되었음은 사실의 측면이 아닐까 싶다.(난 이 지점을 부정적으로 마냥 깔 생각은 없다) 김현진은 '상처의 폭로'를 공격적으로 밀어 붙였다. '공격적'이란 표현 안에 포함된 것은 흔히 사회에서 말하는 '남성적 언어'였다. 그녀의 말에는 사회가 간주하는 '남성적 언어'가 고루 섞여 있었다. 그리고 그 전략(?)은 저널리즘 기자들이 표현하기 좋아하는 시선으로 비유하자면, '아리따운 외모에서 전혀 상상할 수 없는 날 것의 (남성적) 언어들의 소화'였다. 하지만 언어에 주인이 어디 있겠는가. '18'이라는 단어가 남자들이 전세 / 월세 내고 마냥 쓸 수 있는 언어도 아니고 말이다.  김현진의 '날 것'으로의 언어에서 뿜어져 나오는 '시원한 우울함'은 준 벅 처럼 귀여운 맛이기도 하지만, 갓 파더처럼 씁쓸한 달달함도 내장되어 있는 것 같다. 시원하지만, 우울한 끝 맛. 그래, 그게 김현진에게 늘 기대하는 맛이다. 자신의 상처를 때론 정말 '상처처럼' 보여주기, 때론 너무 달달하게 묘사함으로써,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내가 이렇게까지 공감을 표하며 웃어도 되나'할 수 있을 만한 그녀가 지탱하려고 하는 윤리관의 고수. 그녀는 글 속에서 늘 자유분방하게 비행하는 것 같지만, 사실 그녀가 고수하는 지정된 동굴이 있는 느낌을 계속 받는다. 그리고 그 동굴 안에서 놀고 싶어하는 분위기는 이 책에도 여전하다. 사랑까지 지나친 원칙으로 둘러싸인다면, 우리 여자들 어떡하라고! 하는 자유와 해방의 설파도 있지만, 그것을 무조건 용인하지 않는 현실적인 풍경 덧입히기.  

그 안에서 나는 누가 김현진을 좋아할까라는 제법 대담한 상상을 해본다. 그냥 연애의 비애에 빠져 그녀의 글에 위안을 받는 익명의 여성 '선영이'들? 글쎄, 그건 정말 대담하지 못한 식상한 상상이다. 글쎄, 저자인 그녀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어떤 연애를 하고 싶은지. (글에는 다 풀어 놨지만, 왠지 가면이 있는 기분이다) 당신은 정녕 어떤 남자를 만나고 싶은지. 그런 면에서 그녀는 이런 질문에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위치는 아닐 것이다. 여기서 위치라는 것은 그만큼 김현진의 연애 내공이 이런 질문을 식상하게 느낀다는 차원이 아니라, 글을 써가면서 만들어간 자신만의 '연애상'에 의해, 스스로 분열적인 연애를 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의 차원이다. '경험주의자' 김현진에게 연애상이란 없을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은 많은 위로와 조언들을 담아 주고 있지만, 그 '요법'들은 실천이기보다는 관객으로서 누릴 수 있는 얇은 비평의 위치에 머물 수밖에 없다. 그래서일까, 정작 김현진은 예전부터 자신의 '정리 안 된' 그 모습을 드러내놓고, 그 '정리 안 됨'을 상처로 품어가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어미새 역할을 하면서도, 어떤 틈, 어떤 분열 속에서, 자신이 정작 비판의 대상으로 삼는 '토이남'의 일정한 모습을 품고 있는 게 아닌지 생각한다. 그 일정한 모습이란 곧 '깔끔한 연애'를 하는 것. 쉽게 말해서, 자신의 상처를 잘 치유하고, 잘 흡수하며 살아가지만(혹은 살아가는 척 하지만) 그 치유와 흡수의 과정 속에서 정작 사랑이란 이름으로 있을 줄 알았던 '타인'은 없는 것. 그 지점에서 김현진의 일관된 '상처인류학'은  가장 많은 애정을 표면적으로 나타내는 것 같지만, 그 애정이 '나'의 차원에서 '관리/ 계발'되고 있지는 않은지. 그것이 이 책에서, 그리고 지난 번 책 [당신의 스무살을 사랑하라]에서도 줄곧 그녀가 강조/비판하는 '자기계발'담론과 무엇이 다른지는 모르겠다.   

사실 이 책에서 재미있는 것은 이 책을 추천해준 이들이다.이 책의 추천사를 써 준 이들의 이름을 보면, 그녀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녀를 '소비하는' 소위 지적인 남자들의 레퍼런스가 그려진다. 좀 더 과하게 표현하면 계보라고 할까. 정치적으로 진보적이고, 자신의 '먹물끼'를 속죄하려고 그녀가 털어놓는 연애담에 껄껄 거리고, 자신의 토이남 기질을 좀 벗어내려고, 자신의 '속물끼'를 그녀 앞에 다 고해성사하며, 외부에서는 참 '대단하고 존경받을만한' 그 어떤 부류들. 김현진은 소위 자신을 소비하고 있는 '지식인 오빠들'을 한 번 비평해보는 게 어떨지 제안해본다.  

김현진의 이번 책에서도 느꼈지만, 김현진의 책은 참 재미있다. 하지만, 그 재미있음의 방향 혹은 단계가 한 번 더 나아갔으면 좋겠다. 이건 단지 글이 가볍다 / 무겁다 수준으로 그치는 문제는 물론 그리고 전혀 아니다. 나는 이 책에서 삶의 진지한 두께를 매만질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분 또한 감출 수 없다. 다만, 그녀의 '상처인류학'이 말하는 연대가 왠지 김현진 자신이 계속 구축해왔던 '똘끼의 소비'로 이어지는 것 자체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진 않은가 그녀의 책을 좋아하는 한 독자로서 묻고 싶은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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