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자서전 - 어느 베스트셀러의 기이한 운명
안드레아 케르베이커 지음, 이현경 옮김 / 열대림 / 2004년 11월
평점 :
품절


'책'을 다루는 책들이 있다. 오르한 파묵의 <새로운 인생>, 박주영의 <백수생활백서>와 같은 소설을 읽으면, '책'에 대한 형형색색의 애정이 느껴진다. 베르나르의 <여행의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오르한 파묵의 <새로운 인생>은 책에 대한 애정이 무엇인지를 유려한 문체로 때로는 아이처럼 순수하게 보여주는 작품이어서 그 잔상이 오래 간다. '이런' 책들을 읽을 때면, 책의 존재를 생각하게 되고, 책에 대한 입장을 다시 정리해 보게 된다.  

이 책의 작가인 안드레아 케르베이커는 애서가의 수준을 넘어 수집가의 일반적 속성을 가진 것 같다. 물론 이 얇은 소설에서 그것을 진득하게 경험하기란 어렵지만, 작가는 책을 사랑하는 자신만의 방법을 표현하려고, 그리고 나누려고 시도한다. 그 표현과 공유의 순간에 책 속 문자의 힘이 매개가 되는 것은 우리에게 책과 책을 이어주는, 그리고 그 책을 집어들고 있는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역할로 인식된다.  

하지만 작가는 이 책에서 인간의 입장으로 책을 바라보지 않는다. '책'의 입장을 묻는 이 작품에서, 주인공은 '책'이 된다. 책의 물질성이 확보되면서, 그 물질성으로 인해 말을 하고,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책의 행위는 단순한 의인화의 효과를 넘어, 책을 매만지고 있는 '인간'의 행위에 대해 묻는다.  

책에 대한 입장에서, 책의 입장으로. 우리는 책을 사랑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사랑이 정말 책과 함께 나누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책의 입장을 묻고, 또 묻는 것은 전혀 미련한 행동이 아니다. 우리는 오히려 그 행동을 너무나 간과해 왔다. 그렇다면 책의 입장을 묻는다는 것은 어느 것일까. 자신이 가는 서점, 도서관, 카페에서 어느새 매만지고 있는 책의 형태를 살피기, 그리고 책 속 구절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언어들을 관찰하기, 마지막으로 이리저리 방치되어 있는 내 방 속 책들의 존재를 자주 들여다보기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인 '책'은 '책을 다루는 어느 책'처럼, 자신을 대신할 새로운 매체들의 등장에 관심을 가진다. 안드레아는 이 상황 속에서, 그리고 안드레아 뿐만 아니라, 안드레아처럼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가지는 공통된 희망,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은 살아남을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남겨둔다.   

책의 입장이 나타나는 이 작품에서, 작가는 책의 목소리를 통해, 책을 둘러싼 비평도 시도한다. 책의 불안전한 존재로 인해, 그 존재를 에두르는 해석이 책의 균열을 혹은 책의 평화를 가져다줄지는 사실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아직' 책은 살아남았다는 것이며, 인간은 여전히 '읽는다'는 것을 좋아한다는 점이다. 책의 존재는 그래서 잊혀질 수 없고, 지나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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