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정치의 겉과 속 - 한국 정치는 왜 늘 복마전인가?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유시민의 [후불제 민주주의]를 살까, 아니면 강준만의 신간을 살까 하다가, 결국 후자를 선택했다. 강준만의 다작에 스며든 글쓰기-메커니즘이 이제는 좀 눈에 보이는 듯한데, 그의 글을 꾸준하게 접한 지도 햇수로 9년 정도는 된 듯하다. 이 책은 내 눈치로 보자면, 그가 근래에 냈던 [지방은 식민지다]의 기운이 잔존해있다. (참고로 아직 나는 그 책을 사 보진 못했다 그러나 이 책에서 비판하는 서울 일극체제에 대한 이야기는 제법 익숙한 테마다) 강준만은 언제나 그렇듯이 이론의 식민화에 매몰된 학계를 비판하고, 현상마저 외국의 것을 좆아, 우리 실정에 맞지 않는 태도를 보이는 지적 경도를 준엄하게 꾸짖는다. 그리고 그 범주 안에 정치와 미디어가 결속되어, 미디어가 정치를 너무 안일하게 바라보는 것은 아닌가라며, 그가 속해있는 커뮤니케이션학 본령의 사명에 대해 숙고할 것을 제안하는 어조로 글은 정리가 되어 있다.

강준만은 특히 정치판에 대한 한국사회의 엄청난 냉소에 대하여, 무조건 정치인만 힐난하고, 비난하며 살아가는 대중들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그는 정치인이 작동하는 정치 장의 메커니즘을 알아야하며, 외국 이론의 수입과 무비판적 적용으로, 늘 ‘신선한 현상’만을 좇는 한국 학문의 현실을 바로 깨닫고, 지성인들이 그 어떤 편견과 오인을 초월하여, 우리나라 상황을 직시할 수 있는 지적 토대가 만들어져야 함을 역설한다.

이론의 식민성과 탈식민성에 대한 논의는 사실 학계 내에서 그동안 엄청난 말과 글들이 쏟아졌고, 강준만은 그것을 주장한 대표적 학자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아마 그가 지향하는 논조의 대상을 볼 때, 그러한 학계의 솔직한 풍경을 대중들에게 따가운 장면 그대로 전달하려고 노력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특히 이번 책의 중심 테마인 ‘정치’와 관련되어, 그가 나의 편견을 뒤집은 것은 한국이야말로, ‘정치 과잉 사회’라는 것이다. 투표 참여율 저조와 젊은 세대들의 정치에 대한 혐오 및 정치인들의 변함없는 무능함 같은 것으로 대변되는 우리나라 정치판에서, 그것으로 말미암은 부정적 이미지들은 괜히 우리나라가 정치적으로 ‘최소 국가’가 아닌가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기도 하지만, 그것은 강준만의 논리에 입각하자면, 정말 ‘이미지’일 뿐인 것이다. 강준만은 현미경을 들고 우리나라를 대상으로 올려, 한국 사회의 현실을 해부할 것을 요청한다. 그러다보면, 한국 사회는 정치에 있어 정말 뜨거운 나라이며, 지금 우리가 정치를 어둡게 바라보는 것도, 어쩌면 민주화 이후의 또 다른 소산이자 효과 중 하나로 봐야함을 주장한다.

나는 요즘 ‘정치사회학’이라는 과목을 수강하면서, 과연 우리 시대에 정치라는 것은 무엇이며, 옛날부터 정치라는 것은 어떻게 이야기되어 왔는가라는 역사적 관점에 관심이 많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강준만이 늘 지향하는 ‘역사적 요인과의 접촉과 이로 인한 현재와의 지점 만들기’가 여전히 드러난 저작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강준만의 매력은 역시 ‘지적 안전주의’에 대한 철저한 비판이다. 그는 지식의 교전과 충돌을 좋아하는 학자 같다. (나는 막스 베버와 게오르그 짐멜의 견해를 우리나라에 적극적으로 소개해 준 김덕영 교수의 <논쟁으로 보는 사회학>을 읽고, 강준만의 얼굴이 떠올랐다. 우리는 정말 논쟁을 싫어하는 게 아닐까. 논쟁으로 인해 서로가 주고 받는 지적 자극의 효능에 대해 너무 무심한 것은 아닐까.) 강준만은 꼭 좌와 우로 보려는 시각, 한국 사회의 이념과 파벌(이 역시 그가 짚는 영원한 한국인 코드이자, 그가 늘 강조하는 주제다)의 형성이 빚어내는 ‘중간파’들의 억울한 희생을 꼬집는다. 꼭 좌와 우, 보수와 진보 어느 한 쪽에 치우쳐야, 논객도 논객 대접을 받고, 현실 정치인도 현실 정치인다운 우리나라의 정치 장 가운데, 과연 대중들은 어떤 사고를 가지고 그들과 우리를 경계짓는가도 이 책을 통해 발견할 수 있는 포인트다.

강준만이 결국 결론으로 내세우는 것은 ‘정치교육’의 일상화다. 나 역시 ‘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바, 어떻게 하면, 나를 포함한 우리 20대들이 정치를 너무 잔인하게 혹은 그릇되게 보지 않을까를 고민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이 책의 결론에서 느껴진 기운을 예전에 읽었던 어느 논문 속 기억나는 한 구절로 마무리하며 글을 맺고 싶다.

“민주주의가 대화를 만들어간다는 생각은 중요하지만..대화가 민주주의를 만들어간다는 생각은 더욱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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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9-04-05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 년 전에 나온 <노무현과 국민사기극>에서도 우리나라 보통사람들이 정치인들을 욕하는 태도를 비판한 내용은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논쟁으로 보는 사회학>에서는 평소 관심이 있던 칼 람프레히트와 독일 역사학파 경제학자들이 매우 자세히 소개되어서 좋았습니다.방법론 논쟁은 경제학에서도 취급합니다만 요즘 경제학에서는 아무래도 100년 전의 독일,오스트리아 쪽의 지적 풍토는 소홀히 다루는 것 같지요? 방법론 논쟁은 나중에 다른 학자들의 저서로 한 번 더 공부해 볼 생각입니다.

얼그레이효과 2009-04-06 0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 경제학쪽은 전혀 모릅니다만...노이님께서 말씀해주신 경제사상사 논쟁 부분은 어렴풋이 기억나는군요..저는 요즘 막스 베버의 <경제와 사회>를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도 역시..제게 논쟁형 인간은 위르겐 하버마스로 남는 군요. 제가 과학사회학쪽도 관심있는 편이라, 칼 포퍼를 둘러싼 논쟁도 흥미로웠던 것 같습니다. 들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09-04-06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경제와 사회> 번역본이 나왔습니까?

얼그레이효과 2009-04-06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이에자이트님 반갑습니다. 제가 알기론 나남 출판에서 번역본을 출간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있는 동네 서점에도 꽂혀 있더군요. 알라딘에 찾아보니 번역본이 있네요.

노이에자이트 2009-04-07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그렇군요.열심히 공부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