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뒤흔든 16인의 왕후들 - 당당하게 절대 권력에 도전했던 왕후들의 이야기
이수광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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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왕들의 계보를 노래삼아 외우고 있을 정도로 왕들에 대해서는 친숙하지만, 그에 비해 뒤에서 보필하고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정쟁에 휘말려 숨은 울음을 참던 왕후들의 역사에 대해 접해본 경험은 상대적으로 적다. 중학생이었을 때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온 '왕비열전' 전집은 그 나이의 학생이 소화하기엔 낯뜨거운 내용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정사를 다룬다기보다 야사 위주의 책이었던 셈이다. 그 외에 혜경궁 홍씨나 인현왕후가 직접 저술한 기록이 읽히고 있다고는 하지만, 많은 왕비들의 삶이 음지에 묻혀있는 편이다. 이 책이 반가운 것은 그러한 왕후들의 삶을 중심에 두고 역사를 들여다볼 수 있어서이다.

여성이 전면에 나서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던 조선사회에서는 왕족이라고 하여 그러한 규범을 벗어날 수 없었다. 책 표지에는 '당당하게 절대 권력에 도전했던 왕후들의 이야기'라는 문구가 박혀 있지만, 소개된 16명의 왕후들이 모두 그러한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니다. 수렴청정 속에서 어린 왕을 조종하여 권세를 누린 대비들은 예외라 할지라도, 기가 센 후궁의 위세에 짓눌리거나 왕의 뒤에서 조용히 내조하며 정쟁의 한파를 헤쳐나가고자 애썼던 위태로운 삶들이 자주 보인다. 때로는 장희빈이나 폐비 윤씨처럼 끝이 처참했던 왕후들도 있다.

태종이 왕 위에 오르는 과정에서 큰 역할을 담당했던 원경왕후 민씨는 후에 태종에 의해 친정가문이 몰살당하는 슬픔을 겪는다. 공교롭게도 16인의 왕후들 중에는 권력의 암투 속에 친정식구들을 사지로 보내고 피눈물을 삼켜야 했던 분들이 많다. 화무십일홍이란 말이 딱 들어맞는다. 역사를 돌아보면 이런 사례가 부지기수라서 세자빈 간택을 막아야 할 지경이건만, 당시의 상황에서는 과거 몇백 년의 역사를 반추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혹은 알더라도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 때문에 눈앞의 부귀영화를 마다하기란 인간으로서 어려웠으리라.

'이수광 조선팩션 역사서'라는 부제처럼 이 책에는 저자의 상상력이 어느 정도 가미되어 있으리라 생각한다. 조선왕조실록과 그외 여러 책들을 참조한 과정이 본문에 나오긴 하나, 읽기에 딱딱하지 않고 소설처럼 부드럽게 읽히는 것은 저자의 능력인 동시에 군데군데의 부드러운 덧칠의 결과가 아닐까 한다. 무엇보다 왕후의 시각에서 역사를 바라봤고, 대원군과 명성황후의 대립이 식민사관의 잔재란 점을 지적하는 등 툭정 사건에 대한 일반적 역사관에 대해 다른 해석을 시도한 점이 눈길을 끈다. 역사를 지금의 시점이 아닌 당시의 시대적 상황으로 보는 동시에 유교적 관점에 싸인 남성의 시각을 걷어올린다면, 인물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가 가능해진다. 몇몇 건에서 저자의 그러한 문제 제기가 역사를 여러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각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었다. 유난히 젊은 나이에 갑자기 세상을 떠난 왕들이 많아 독살설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조선왕조에서 그렇게 남편을, 또는 자식을 떠나보낸 왕비의 감정과 생애에 초점을 맞출 수 있어 신선하고 의미 있었던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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