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악하악 - 이외수의 생존법
이외수 지음, 정태련 그림 / 해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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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사와 비난이 고루 존재하는 책 '하악하악'을 '보았다'. 읽기 전에 먼저 주루룩 훑어보기를 하고 있는데, 섬세한 물고기 세밀화가 내게 말을 건넨다.
'나는 반찬이 아니에요. 얼핏 보면 다 똑같이 생긴 것 같아도 나는 엄연히 한 생명이고 꿈을 가진 존재랍니다.'
이놈들. 오징어의 눈을 무서워하고 피보는 게 싫어 생선 다듬기를 꺼려했던 내가 이제는 지느러미 척척 자르고 내장을 손으로 직접 빼내는 가공할 만한 무뎌짐을 갖게 됐는데, 이렇게 감성을 건드리면 어쩌란 말이냐!

때마침 간 마트에서 갈치와 고등어를 사고 있는데, 우럭 한 마리가 얼음 위에서 숨을 쉬고 있다. 그 찬 얼음 위에서 아가미가 들쑥날쑥 움직인다. 눈동자를 보니 먼저 간 옆자리 친구보다 말갛고 투명한 것이 생명의 기운이 느껴진다. 이럴 경우 안락사는 어떻게 시켜야 하나? 한때는 물 속에서 신나게 헤엄쳤을 우럭의 모습이 상상 속에서 빠른 속도로 기운차게 움직인다. 얼른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나며, '하악하악'의 물고기들을 떠올렸다.

그런데, 물고기와 '하악하악'은 무슨 관계? 관련이 없는 것 같으면서도 왠지 어울린다. 그것이 열대어와 같은 외국산 물고기가 아니고 우리의 토종 물고기이기에, 한국적 된장찌개와 같은 이미지의 이외수 씨와 뭔가 맥이 통하는 바가 있다. 거기까지는 좋다. 왜 마음이 거북한가 생각해 보았더니, 무의식중에 여백이 아깝다고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글을 한데 몰아붙이고 사이사이에 물고기 그림 넣으면 양이 팍 줄어서 책값도 내려갈 수 있을 텐데... 동양화도 아닌데, 꼭 여백의 미가 필요하나?'
생각해 보니, 여백의 효과는 나름 존재한다. 물고기 그림을 더 돋보이게 할 뿐 아니라, 글 하나 읽고 난 사이의 여백만큼의 여유 속에서 마음이 넓게 퍼져나가는 것 같기도 하고... 기분인가?
어떡하나? 그래도 아깝지 말입니다. 

책을 읽으니, 짧은 문장의 내용들이 가히 촌철살인이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울림을 주며 와 닿는다. 개중에는 그냥 우스개이거나, 이외수 씨의 개인적 생활을 담은 것도 있지만, 색깔과 맛이 다른 나물들이 모여 맛있는 비빕밥이 되듯이 짬뽕되어 '하악하악'이라는 책의 이미지를 완결시켜 놓고 있다.
어쩌면, 이외수표 비빔밥이라서 더 맛있는 것 같기도 하다. 다른 사람이 똑같은 비빔밥을 내왔다면, "아저씨, 비빔밥의 나물과 나물 사이의 간격이 너무 넓네요. 양에 비해 값이 비싸요." 하면서 흠을 잡았을지도 모르겠다. 

책이란 게 무엇이더냐. 지식 전달, 재미있고 놀랄 만한 이야기, 마음을 잔잔히 울리는 글모음. 시대에 대한 발전적 비판. 그 모든 게 책의내용이 될 수 있다. '하악하악'은 그 어느 쪼개진 범주 안에 넣기에 다소 애매하며 우리가 블로그에 가끔 끄적이는 듯한 글의 냄새를 풍기고 있어, 이거 나도 쓰겠네 하며 덤빌 만한 도전의식에 불을 지피는 면도 있다.
그러나, '때로는 날 보고 이외수 닮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쩐다.'라는 48번의 글에 '이외수'란 말 대신 다른 사람의 이름을 넣으면 맹숭맹숭하다. 이 문장엔 이외수란 이름이 딱이다. 이 책은 이외수가 썼기 때문에 더 빛이 나는 책이 맞다.
이것이 칭찬인가, 흉인가? 나도 모르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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