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위안 - 불안한 존재들을 위하여
알랭 드 보통 지음, 정명진 옮김 / 청미래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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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세상의 빛을 본다. 떨어지지 않는 눈을 가까스로 뜨고 엄마 아빠의 얼굴을 보며 힘차게 울음을 터뜨린다. 엄마 품에 안겨 엄마의 젖꼭지를 물고 배를 채우기 시작하면서 인생의 첫 걸음을 내딛는다. 부모의 품에서 시작된 인생은 다 자라서는 부모의 품을 대신할 반쪽을 찾아서 방황한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고는 생존할 수 없는 신체적으로 불완전한 존재인 동시에 사랑하고 사랑받고자 하는 정서적으로도 불완전한 존재이기도 하다. 존재의 불완전함은 불안이라는 결과를 가지고 온다. 개인의 불안은 가정의 불안을 그리고 사회의 불안으로 이어진다. 불완전함에서 오는 그 불안을 작가는 철학이라는 도구를 통해 해소하고자 한다.

 

1. 인기 없는 존재를 위하여 : 너무나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에 의문을 품고 질문을 하는 이들은 무시되거나 비난의 대상이 된다. 그러기에 인기 없는 존재가 된다. 소크라테스는 그들에게 힘을 준다. 너무도 명백한 것이라거나 당연한 것으로 선언된 것들 중에서 실제로 그런 것은 거의 없다. 이런 사실을 인정하면 우리는 이 세상도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유연하다는 진리를 배우게 될 것이다. 왜 그런가 하면, 기존의 확고한 견해들도 완벽한 추론 과정을 통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종종 몇 세기에 걸친 지적 혼란 상태에서 나타났기 때문이다. 모든 것들이 현재의 모습 그대로여야 할 이유는 결코 없다. p.34”

타인에 의한 불쾌한 평가와 비평은 두 가지에서 나온다. 첫째는 그들의 찬성과 동조로 인해 나에게 물질적, 정신적인 이득이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다른 이들과의 의견의 차이는 내가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크라테스의 말을 빌려 작가는 말한다. 자신의 입장을 포기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다른 사람들이 그런 결론에 도달하게 된 논법을 고려해야 한다. p.44, ”하나의 관념이나 행동이 유효하느냐 않느냐는 그것이 폭넓게 믿어지느냐 아니면 매도당하느냐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논리의 법칙을 지키느냐의 여부로 결정되는 것이다. p.62“

 

2. 가난한 존재들을 위하여: 행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가난이 행복에 걸림돌이 될까? 알랭 드 보통은 철학자 에피쿠로스를 불러와서 가난이 불편할 수는 있지만 행복의 걸림돌이 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에피쿠로스의 행복=쾌락의 등식에서 쾌락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의 품목이 제시된다.

 

*우정: 우리 인간은 자신이 존재하고 있음을 지켜봐줄 누군가가 없다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내뱉는 말은 다른 누군가가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는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지낸다는 말은 끊임없이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받는 것이다. 친구들은 우리를 알아주고 돌봄으로써 우리에게 무력함에서 벗어날 수 있는 힘을 불어넣는다. p.80”

 

*자유: 그들(에피쿠로스와 그의 친구들)은 자신들이 좋아하지 않는 자들을 위한 일을 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자기들에게 치욕을 안겨줄지도 모르는 변덕스러운 자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기 위해서 아테네 상업 세계의 고용관계에서 자신들을 제외시키고 독립을 누리는 대가로 보다 검소한 생활방식을 택하면서 일종의 공동체라고 할 수 있는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그들이 가진 돈은 보잘 것 없었을지 몰라도 대신 그들은 다시는 불쾌한 상관들의 명령을 따르지 않아도 되었다. p.82”

 

*사색: 불안을 다스리는 데는 사색보다 더 좋은 처방은 없다. 문제를 글로 적거나 대화 속에 늘어놓으면서 우리는 그 문제가 지닌 근본적인 양상들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문제의 본질을 파악함으로써 우리는 비록 문제 그 자체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부차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부정적인 것들, 말하자면 혼란, 배제, 마음의 고통 등을 예방할 수 있다. p.83”

 

3. 좌절한 존재들을 위하여 : 좌절은 뜻하는 바가 이루어지지 못했을 때 일어난다. 그것은 자신의 의지에 반해서 일어나는 사건들과 그 결과물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반발심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철학자 세네카는 주장한다.

 

동물은 자신의 목을 맨 밧줄에서 벗어나려고 버둥거리지만, 오히려 밧줄을 더 단단히 조이는 결과가 된다..... 멍에에 저항할 때보다 순응할 때 묶여 있는 동물을 더 다치게 하는 멍에는 이 세상에 결코 없다. 저항할 수 없는 악에 맞서 고통을 경감시키는 한 가지 방법은 숙명에 굴복하고 인내하는 것이다. p.146”

 

자신의 의지와 충돌하는 숙명에 수긍하고 복종해 받아들일 수 있는 유연함을 가질 때를 아는 것. 그것이 좌절의 고통을 줄일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다.

 

4. 부적절한 존재를 위하여: 근 현대의 가장 큰 역사적 유물은 이성이다. 이성에 반하는 모든 것들은 옳지 않으며 적절하지 못하다. 그러기에 감성은 언제나 이성의 통제 하에 존재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언제 그 야만성을 드러낼지 모르기 때문에... 몽테뉴는 그런 생각에 도전한다. 그리고 외친다. 이 세속의 감옥에 사는 동안 우리에게는 순전히 육체적이거나 순전히 영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살아 있는 어떤 존재를 둘로 나누는 것은 해로운 짓이라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p.177”

 

5. 상심한 존재를 위하여: 삶은 고통과 상심으로 가득 차있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문제들이 나만의 고통인 것처럼 느껴지며 이런 불운을 가져다 준 운명을 저주한다. 하지만 세상에는 수많은 나와 같은 이들이 존재한다.

 

“..... 그러나 비극적인 사랑의 이야기를 읽음으로써, 사랑을 거부당한 사람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극복한다. 그는 더 이상 혼자서만 고통 받고 외로워하고 혼란을 겪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다. 마침내 그는 인류사에 종의 번식을 위해서 애 쓰느라 다른 인간을 사랑했던 수많은 인간군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 그의 고통은 약간 통증이 누그러지면서 보다 이해할 수 있는 것이 되고, 개인적인 저주는 조금씩 빛을 잃게 된다. 이런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는 사람에 대해서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말한다.

-그 자신의 삶의 여정에서 그리고 삶의 불행에서 그는 이제 자신의 개인적인 운명보다는 전체로서 인류의 운명을 더 돌아볼 것이다. 따라서 그는 고통받는 존재로서보다는 세상을 아는 존재로서 행동해야 할 것이다.- p.273-274“

 

6. 어려움에 처한 존재들을 위하여: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어려움과 성취는 함께 온다. 하나를 밀쳐내고는 다른 하나를 이룰 수 없다.

 

가장 훌륭하고 가장 알찬결실을 남긴 사람들의 삶을 찬찬히 뜯어보면서, 그대 자신에게 악천후와 폭풍을 견디지 못하는 나무들이 자라에 거목으로 훌쩍 자랄 수 있을지 한번 물어보라. 불운과 외부의 저항, 어떤 종류의 혐오, 질투, 완고함, 불신, 잔혹, 탐욕, 폭력, 이런 것들이 호의적인 조건에 속하지 않는지 곰곰이 따져보라. 이런 것들을 경험하지 않고는 어떤 위대한 미덕의 성장도 좀처럼 이룰 수 없다. p.289-290”

 

쉽고 편안한 길, 풍요와 만족만이 최고의 가치로 여겨지는 현대인들은 여러 불안요소를 떠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런 불안한 삶의 여행자인 우리에게 알랭 드 보통은 6명의 철학자를 소개하면서 그런 삶 속에서 추구할 수 있는 행복의 방법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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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 개정판
김훈 지음, 문봉선 그림 / 학고재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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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덧  겨울의 한 중턱에 있는 조선. 온 마을과 고을이 쥐 죽은 듯이 고요하다.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소리와 그 주위를 짖어대는 개들, 빨래하는 아낙네들의 떠들썩한 모습들은 추위와 배고픔으로 사라진지 오래다. 주위는 청군으로 둘러싸인 성벽에 갇혀 옴짝달싹할 곳 없다. 줄어드는 먹을 것과 뼈 속까지 미어지는 추위에 조선군은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은 마음뿐이다. 여기는 남한산성이다. 정묘호란이후 본격적인 청의 침입을 피해 택한 곳. 지금 임금은 남한산성에 있다.


 그러나 임금은 남한산성에 없다. 분명 수백의 신하들과 군대를 이끌고 남한산성으로 피신했지만 남한산성 어디에도 임금은 없다. 언제나 그렇듯 명분만을 내세우며 현실을 외면하는 자, 자신의 자리만을 내세우며 자신의 의무는 과감히 버리는 자들뿐이다. “-민망한 일이다. 하지만 성이 위태로우니 충절에 귀천이 있겠느냐?  - 먹고 살며 가두고 때리는 일에는 귀천이 있었소이다. -이러지 마라. 네 말을 내가 안다. 나중에 네가 사대부들의 죄를 묻더라도 지금은 내 뜻을 따라다오. p.227" 시끄러움. 잡음. 변명. 행동이 아닌 입만으로 조정을 이끌던 이들의 목소리가 왕의 심장을 관통해 서글픔을 이끈다. 

”아침에 김상헌은 서날쇠를 묘당에 천거했다. 품계없는 대장장이에게 임금의 문서를 맡길 수 없으며......문서를 맡겨 멀리 내보내려면 먼저 품계를 내려서 보내야 한다는 말과 돌아올지 안 돌아올지 알 수 없으므로 돌아온 후에 품계를 내려야 한다는 말이 부딪쳤다.....p230"


 제대로 된 전투 한 번해 보지 못했다. 단지 기다림. 그 기다림 속에서 오가던 것은 성문을 열어야 된다는 최명길을 욕보이는 일. 칼이 아닌 말로 전투를 하는 그들은 단지 명에 대한 충정과 조선을 위한다는 명분만을 보이면 된다는 생각밖에 없다. 그 말 속에는 굶주림에 배를 움켜쥔 백성, 죽음의 공포 속에서 하루를 이겨내는 병사들은 없다. 애초에 성을 지켜내고자 하는 마음이 아닌 그들의 명성과 목숨만을 지켜내고자 하는 마음뿐 이다. 그렇다. 그들의 목소리에는 오직 그들만이 존재한다.


 봄비가 치럭치럭 내리는 성 너머로 녹아내리는 눈과 얼었던 강이 녹아내리는 소리가 들린다. 얼은 강에 얽혀있던 시체들도 다시 흘러내리는 강과 함께 어디론가 흘러내려간다. 겨울내내 어는 손과 발을 동동구르며 지킨 성은 화이포 한 방에 날아가고 없으며 인조는 쓸쓸이 청의 칸에게로 발걸음을 옮긴다. 수척해진 얼굴과 어딘지 모르게 기죽은 모습에서는 지낸 인조반정 때의 당당함과 자신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모든 것을 포기한 모습으로 칸에게 절을 하고 주위의 왕자들은 눈물만을 흘린다.


 삼전도의 굴욕 다음 날 남한산성의 농부들은 다시 곡괭이를 집어 들고 농사를 지으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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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중독자 - 멸종 직전의 인류가 떠올린 가장 위험하고 위대한 발명, 내일
다니엘 S. 밀로 지음, 양영란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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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있었던 일들의 정리와 일어날 일들의 정리와 계획으로 하루를 마감하고 시작한다.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몇 년의 앞을 내다보려고 노력하면서 산다.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이런 동작이지만, 완전한 직립보행을 하지 못하는 동물들은 계획이라는 단어가 없다. DNA에 입력된 정보들을 제외하면 미래라는 용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동물들이 지금 여기에 닻을 내리고 있다는 것이 그들에게 유추능력이 없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의 이 같은 앎엔 계획이라고는 손톱만큼도 들어 있지 않다....물론 겨울을 준비하는 동물들도 존재한다. 그렇지만 월동준비를 위해 다람쥐나 곰이 가을 내내 분주하게 일을 하는 까닭은 계획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DNA에 그렇게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구상에서 앞날을 예측하는 동물은 오직 인간들뿐이다.” p.190-191

 

기이하게 크고 발달된 인간의 뇌는 아프리카를 떠나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원동력이다. 이런 이동은 앞으로 있을 법한 일에 대한 대비를, 그리고 다음 행동에 대한 계획을 하도록 만들었다. 정착을 하고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기 시작하고 배를 만들며 뭔가를 발견하고 발달시켜 나간다. 그 이면에는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고민하는 뇌가 있다. 그런 뇌에게 과학의 발달과 분업은 뇌에게 시간적 여유를 준다. 하지만 태생이 미래에 대한 짊을 떠안고 있는 뇌에게 그런 휴식은 오히려 무기력을 가지고 온다.

 

우리 조상들에게 불을 제어하는 능력을 부여하고 아프리카를 떠나도록 종용했으며 위임하는 역량을 발휘하도록 부추긴 것도 바로 전두엽 뉴런인데, 오늘날에 와서 이들은 일을 한다기보다는 무기력한 상태에 빠져버렸다......일을 하는 것이 왜 그토록 중요할까? 그야 불을 제어하기 시작한 이래 인간은 단 하루만 충실하게 일해도 일 년 동안 필요한 모든 것을 생산해낼 수 있게 되어 나머지 364일 동안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되는 처지였기 때문이다......‘인간에게는 완전히 휴식을 취하는 것보다 더 견딜 수 없는 일은 없다.....그렇게 되면 인간은 자신의 허무, 방치, 불충분함, 의존성, 무기력, 공백을 느낀다. 더 이상 절제하지 못하고 그는 마음 깊숙한 곳에서 권태와 암울함, 슬픔, 서글픔, 원한, 절망 등을 끄집어낼 것이다. p.269-271”

 

오늘을 살지 못하는 호모사피엔스인 우리는 오늘도 내일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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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심리학 - 천 가지 표정 뒤에 숨은 만 가지 본심 읽기
송형석 지음 / 청림출판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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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는 상대방의 심리를 알 수 있는 방법이 기술되어 있다. 예를 들어 설명해두기는 했지만 지은이가 밝힌 것처럼 반복적인 연습을 통해 가능할 듯... 2부에서는 여러 유형의 인간을 분석해 보고 거기에 대한 대처법이 기술되어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 책에서 제시된 유형 중에 한 가지 딱 집어 라고 할 수 없다는 점이다. 적어도 두 가지이상의 유형이 복합적으로 섞어 있는 것 같다. 바꾸어 말하면 타인을 대할 때 어느 정도의 분류는 가능하겠지만 그 이상은 전문가들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섣부른 판단과 어설픈 지식으로 타인을 판단하고 규정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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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르니에 선집 1
장 그르니에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199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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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라는 존재는 배움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 가정에서는 부모님에게, 학교에서는 선생님에게, 사회에서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자연스럽게 그런 가치를 배우게 되고 거기에 다다르지 못하는 책은 가십거리정도로 취급된다. 언제나 이성이 우선시되고, 이성에 의해 감성은 자제되도록 교육을 받는 환경에서 어쩌면 그건 당연하다.

 

하지만 이성을 담당하는 좌뇌와 감성을 담당하는 우뇌의 존재는 어느 것이 더 우월 하느냐의 문제로는 설명되는지는 않는다. 생존의 필요에 의해 그렇게 진화해 온 것이니 동등하게 그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논리적인 사고와 정확한 분석을 통한 사고는 수학처럼 딱 떨어질지 모르지만 주위를 보지 못한다. 가을이면 떨어지는 낙엽을 보고 논리적으로 분석적으로 과학적으로 생각하는 인간만이 존재하게 된다.

 

책이라는 존재는 배움만을 전제로 깔고 있지 않다. 활자로 된 세상은 우뇌를 자극해 감성이라는 안테나의 반경을 더욱 넓혀주며 더 날카롭고 예리하게 해 준다. 그냥 스쳐지나갈 작은 세상들, 너무나 평범해서 존재조차 깨닫지 못하던 것들을 느끼게 해주며, 인지하게 해주며, 공감하게 해 준다. 따라서 책이 꼭 배움을 전제로 할 필요는 없다. 우리의 촉각을 곤두세울 수 있는 책이라면 그 자체로 좋다.

 

하지만 =배움이라는 공식에 익숙한 나에게 마음을 움직이는 아름다운 글귀들은 풀리지 않는 난해한 수학문제처럼 이해되지 못하고 머리 속에서 맴돌기만 한다.

 

겨울 숲 속의 나무들처럼 적당한 거리에 떨어져 서서 이따금씩만 바람소리를 떠나보내고 그러고는 다시 고요해지는 단정한 문장들. 그 문장들이 끝나면 문득 어둠이나 무, 그리고 무에서 또 하나의 겨울 나무 같은 문장이 가만히 일어선다. 그런 글 속에 분명하고 단정하게 찍힌 구두점. 그 뒤에 오는 적막함, 혹은 환청, 돌연한 향기, 그리고 어둠, 혹은 무, 그 속을 천천히 거닐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p.16-17”

 

이 책을 옮긴 김화영의 말처럼 글을 만져보고 냄새맡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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