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마음
임이랑 지음 / 허밍버드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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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이랑 작가에게 홀로 내적 친밀감을 가지고 있다. 한참 식물에 관심을 가질 때 작가의 책 몇 권을 읽은 적이 있었다. 식물을 좋아하는 사람이 쓴 글은 언제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인지 저자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는데 마음에 드는 제목의 산문집을 만나 저자의 이름을 확인했더니 기억하고 있던 이름이었다. 바로 '임이랑' 작가! 그가 전하는 밤의 글이 궁금했다.

'매사에 객관적인 사람' 같은 건 없다.

매사에 객관적인 건 애초에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

짧은 문장들이 계속 서성인다. 오래 전 혹은 현재 진행 중인 감정들을 글 속에서 만났다. 깨닫기도 전에 지웠던 지난 감정들이 떠올라 당혹스럽기도 했지만 대체로 반가웠다. 연필을 들고 공감가는 글에 밑줄을 치다가 내 생각을 얹을 때면 못내 표현하지 못했던 지난 날들이 담담하게 생각났다. 감정이란 속절없이 흘러가서 미처 예상하지 못한 지점에 달하고는 하는데 이를 잘 제어할 수 있기를 언제나 희망했던 것 같다. 파도같던 감정은 언제나 강했고 쉬이 잠잠해지기 어려웠지만.

수없이 많은 밤을 쌓아 올린 평안도 순간의 불안 앞에선 불구덩이 안에 던져진 종잇조각처럼 순식간에 불타 사라진다. 정신이 망상과 싸우는 동안 몸이 백기를 흔들고 만다. '몸이 정신에게 지는 건 이렇게 초라한 마음이 되는 거구나'하며 슬퍼진다. 나약한 내가 강인하려는 나를 훼방 놓는다.

평소 부유했던 생각들이 글로 정리된 것을 보는 건 언제나 벅찬 일이다. 「밤의 마음」의 글을 조금 더 빨리 만났으면 어땠을까. 컴컴하고 실체없는 불안에 둘러싸였던 어느 시절에 이 책을 만났다면 내게도 단단한 위로가 되어 주었을텐데. 어린 시절의 내게 잠 못 드는 밤들 사이에서 용기를 얻을 수 있도록 「밤의 마음」을 선물하고 싶은 깊은 밤이다.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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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의 살림 일력 365 - 일상을 돌보는 다정한 시간
정이숙 지음 / 라이프앤페이지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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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후 살림을 꾸려나가기 시작하면서 반복되는 일상의 단정함이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을 깨달았다. ‘집이 깨끗하길 바라는 이유는 그 곳에 머무는 가족들의 편안한 쉼을 위해서’라는 저자의 글처럼 소중한 이들이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귀가한 집에서 따뜻하고 안락함을 느끼기를 바란다. 사랑하기에 기꺼이 잘 해내고 싶은 마음, 그래서 수고로움을 감내하는 것이 살림이란 말에 공감한다.

머무는 공간을 가꾸는 일은 비단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것만은 아니다. 잘 정돈된 침구와 제자리에 놓인 물건들, 제철음식으로 해먹는 건강한 한 끼 식사는 나 자신을 아껴주는 일이다. 단정하고 다정한 하루를 만드는건 결국 자신의 몫이니까.

절대 소소하지 않은 저자의 살림 팁을 매일 한 장씩 넘기다보면 어느 순간 나의 일상이 더 없이 다정해질 것만 같다. 12월은 저자가 소개해준 제철 식재료인 매생이를 이용해서 매생이 굴떡국에 도전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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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빛 2023-11-30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생이굴국 정말 맛있죠. 저도 매년 겨울엔 매생이 굴국 먹었어요. 이번 겨울에도 먹어야겠네요.
 
덕후 일기 - 시간 죽이기 현대문학 핀 시리즈 에세이 2
송승언 지음 / 현대문학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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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후란 이미지는 어느 순간 180도로 달라진 듯 하다. 한 분야에 몰두하여 전문가 이상의 지식을 갖춘 사람들로 조금은 괴짜같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놀라운 지식과 경험을 자랑하는 덕후, 나는 늘 몰입하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애정하는 아이돌 한 명쯤은 있을 청소년기에도 딱히 흥미가 없었고 꾸준히 오래 하는 취미생활도 없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몰두하는 사람이 멋있고 대단해 보인다.

저자의 ‘시간 죽이기-덕후생활’에 공감하는 것은 시간을 죽이기 위해 쓴 방법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물론 저자만큼은 아니지만, 나 역시 주로 게임과 영상물을 본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흥미를 금방 잃어서 오래 시간을 죽이지는 못한다. 이런 점은 죄책감이 작용하는 탓도 있는데 시간 떼우기용의 게임이나 영상관람이 생산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을 읽으며 쓸모없음의 관점을 조금 비틀어본다면 삶에 활력을 주고 애정을 쏟을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싶다.

약간의 우울감으로 힘든 요즘 내 마음을 앗아갈 수 있는 하나가 얼마나 소중한지 느낀다. 아주 익숙한 것이라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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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PT 사피엔스 - 인공지능을 가장 잘 활용하는 신인류의 탄생 내 인생에 지혜를 더하는 시간, 인생명강 시리즈 14
홍기훈 지음 / 21세기북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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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을 가장 잘 활용한 신인류의 탄생이란 부제목이 눈에 띈다. IT 문외한이라도 세상 돌아가는데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블록체인, 비트코인, 메타버스, NFT, 챗GPT 등의 인공지능 기술에 대해 들어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IT처럼 직관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기술을 이해하기는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하나의 개념을 설명하는 문장에 모르는 단어가 또 여러 개 등장하기 때문이다. 「GPT 사피엔스」는 난해한 기술적 설명보다는 IT기술이 사회적 맥락에서 어떤 영향력을 가지며 삶의 변화를 가져다주는지를 중점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결국 엄청난 기술이더라도 사회적 소용이 없다면 무용지물이란 글에 공감하며 신기술에 대한 접근 방법에 대해 고민해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기술이 발전한다고 해서 그게 우리한테 무조건 도움이 될까? 그렇지 않다. 발전한 기술을 활용할 수 있어야 우리 삶에 도움이 된다. 전문가나 기업 혹은 투자자들은 막연히 "기술이 발전하니까 우리는 돈을 벌 거야. 이런 엄청난 기술을 갖고 있으니까."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기술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고민 없이는 인류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것이다.

처음 챗GPT가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열광했다. 그 영향으로 소액 매수한 IT주가가 상승하는 덕을 보았다. 방대한 양의 정보를 논리정연하게 요약하여 사람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인공지능이라니 짧은 시간 내 적확한 정보를 찾아내는데 유용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물론 그 이면에는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도 존재하지만 말이다. 열광 속에 출현했다 사그라든 블록체인 기술과 같이 새로운 기술의 출현을 과장하여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기술은 세상을 변화시키지만 유용한 도구로서 인간의 삶에 적용되기 위해서는 현명함이 요구되는 것은 지금의 시대에 가장 중요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기술의 발전은 분명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지만, 동시에 기술의 발전으로 새로운 직업이 창출되기도 한다. 이런 기술의 중립성을 우리 인간이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어떻게 인간을 위한 방향으로 이끌 것인지가 언제나 중요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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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 인간
알도 팔라체스키 지음, 박상진 옮김 / 문예출판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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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가벼운 사람, 연기 인간의 이야기는 굴뚝 위에서 33년을 살다 인간의 삶에 들어오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어느 날 갑자기 매일 들리던 목소리의 주인공들, 페라! 레테! 라마!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고 장화 한 켤레가 놓여 있어 그것을 신고 인간이 사는 마을로 내려오게 된 연기 인간을 본 사람들의 관심은 지대했다. 잿빛 연기의 형상으로 군중 속에 놓여진 그는 속절없이 쏟아지는 질문에 간신히 답변하며 정제되지 않은 호기심이란 물살에 거세게 쓸려갔다. 그는 본인의 존재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았지만, 타인들에 의해 그의 존재는 정의내려졌다. '페렐라'란 이름을 얻었고 그의 특별함에 왕은 법전 편찬위원회의 3번째 위원이라는 직함을 내린다. 그의 영광이 계속될 것 같은 나날, 모든 국민에게 칭송받는 페렐라에게 모두가 등을 돌리는 한 사건이 벌어진다. 결국 그는 높은 탑의 감옥에 갇히는 벌을 받게 되지만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33년을 머문 굴뚝을 떠난 연기인간이 인간의 삶에 들어왔을 때, 그 특별함은 부여된 것이었다. 다름에 대한 호기심과 부러움 그 어딘가에 머무는 군중들이 연기인간에게 부여한 것! 그는 군중이란 파도에 쓸려 솟아올랐다가 바다 깊은 곳으로 내쳐졌을 뿐이다. 처음에는 환한 얼굴로 그에게 존경을 표하던 사람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욕지거리와 침, 오물을 던지며 그를 조롱한다. 문득 이 고전문학이 1911년에 쓰여졌단 사실이 떠올랐다. 100년도 전의 소설이지만 군중의 광기는 여전히 유효한 것 같다. 그 어떤 논리적 사고는 사라지고 인간의 잔혹함만 남은 이야기를 많이 접하고는 한다. 씁쓸한 기분이다.

마을 사람들의 태도는 가벼운 연기 인간과 비교하여 한없이 가볍다. '가볍다'라는 정의를 다시 하고 싶다. '진정으로 가벼운 이는 누구인가?' 그들 하나하나의 언행은 눈쌀이 찌푸려질 정도지만 군중이란 이름으로 존중받으며 힘을 얻는다. 가벼움에 하나를 더 보탠다면 폭력이다. 다름을 이유로 가해지는 숱한 폭력, 모든 문제가 피해자로 귀결되는 잔혹함에 인간 사회에 무력함을 느끼기도 한다. 잣대와 고통이 없는 드넓은 하늘로 연기인간이 날아올랐기를.

*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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