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레 사진관 - 상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네오픽션 / 2011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미야베 미유키의 책은 「모방범」이 후 두 번째이다. 아내가 추리 소설을 워낙 좋아해 선물을 자주 하기는 하는데 나는 잘 보지 않는다. 그런데 미유키의 책은 좀 달랐다.

일본 추리소설계의 신화적 존재인 ‘에도가와 란포’와 ‘오코미조 세이지’의 책은 읽으려 해도 그 소재나 구성이 너무 불편하고 무서워 읽을 수 없었다.

「모방범」은 그간 일본 추리소설에 대해 갖고 있던 선입견을 완전히 깨트린 작품이었다. 사회의 모순과 병폐를 날카롭게 파헤치면서도 상처받은 인간에 대한 탁월한 묘사와 포용성으로 단숨에 작품 안으로 흡입되게 만들었다. 물론 조금 무섭기는 했지만(?)

 

이번 작품 「고구레 사진관」은 「모방범」처럼 장편이다. 두 권의 책에 4개의 에피소드가 담겨 있었는데 작년 미유키씨가 이 책을 출간하면서 책 표지에 “신인 미야베 미유키”라는 홍보문구를 선보였다고 한다. 이유는 기존의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 세계와 확고하게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말 그랬다. 비록 나는 두 권 밖에 읽지 않았지만 미유키씨의 책을 많이 읽은 아내의 이야기를 듣고 블로거들의 리뷰를 보면 그녀만의 확실한 색깔이 있었다.

굳이 「고구레 사진관」의 장르를 말해보자면 [감성 미스터리 성장소설]이라고 하고 싶다.

 

주인공 에이이치에게 일어난 일은 우연이 아니다. 미야베씨의 작품이 늘 그랬듯 따로 떨어져 있어 연관이 없는 듯 한 사건과 소재가 어느 순간 큐브가 맞춰지듯 들어맞는다.

에이이치의 가족이 지은 지 33년이나 된 오래된 ‘고구레사진관’에 이사오게 되고 한 여고생으로부터 심령사진을 받게 되고 그 사진에서 미심쩍은 부분을 발견해 사건을 해결하려 동분서주 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그물처럼 촘촘히 얽혀있다.

 

등교거부나 신흥종교의 폐해 같은 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소재도 등장하지만 책의 초점은 에이이치가 만나서 이야기하는 많은 등장인물들의 억울함과 하소연 상처들에 대한 토로이다. 또 그것을 마치 자신의 일인 것처럼 들어주는 에이이치의 따뜻함과 포용력을 통해 오히려 심령사진의 미스터리가 풀려나가게 된다.

 

“더 이상 살인은 쓰고 싶지 않다!” -2010년 7월 20일자 아사히 신문

 

일본에서 작년에 책을 출간하며 저런 말을 했다고 하는데, 진심으로 한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고구레 사진관」에서는 그렇다.

 

행복해 보이는 가족사진 옆에 찍힌 여성의 슬픈 얼굴, 활짝 웃고 있는 가족사진 뒤로 찍힌 똑같은 가족의 울고 있는 표정, 케이크를 둘러싼 아이들 위로 누가 봐도 ‘봉제 인형’인 갈매기가 날아‘가고’ 있는 모습이 책에 등장하는 심령사진들이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고 들어 왔던 목이 없는 여자가 등장하는 수학여행 단체사진이나 다리가 없이 공중에 떠 있는 눈 없는 남자가 등장하는 가족사진 따위가 아니다. 무섭지만 기괴하지 않고 2차원의 사진 표면에서는 볼 수 없지만 사진에 등장하는 인물의 3차원적인 삶의 구석구석에 녹아 있는 아픔과 슬픔, 상처를 들여다보면 결코 무섭지만은 않은 애달프고 마음 짠한 우리들의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 오히려 성인보다는 청소년들이 이 책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얼마 전 대구에서 있었던 무시무시한 학교폭력의 사례를 보았다. 친한 친구를 한 순간에 왕따로 만들어 버리고 학대하고 폭력과 폭언을 가하는 아이들.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고 동물을 대하듯 물건 짝 취급하듯 해버리는 인간이 가져야 할 감성을 가지지 못했거나 아니면 한 순간에 그러한 집단 폭력에 동조되어 양심과 죄의식 따위는 팽개쳐버리는 아이들이 있다.

 

학교에서 유명한 일명 ‘노는 애들’이 아니었다는 것이 더욱 충격적이었다. 흔히 보고 만나는 그 ‘평범한 아이들’도 한 순간에 그런 괴기하고 흉측한 괴물로 변해버릴 수 있다는 사실이.

 

책의 주인공 에이이치도 심령사진을 들고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얘기를 듣고 이해하고 공감하면서 성장하게 된다. “사진에 찍힌 것은 피사체만이 아니”듯 친구를 죽게 만든 그 아이들도 괴물만은 아닐 것이다.

 

에이이치처럼 최소한 남의 말을 귀담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면 소설 속에 등장하는 마지막 에피소드처럼 남의 일 뿐만이 아니라 나의 일도 해결할 수 있게 된다. 에이이치의 가족 간에 있었던 묵은 갈등과 오해, 반목이 서로의 말과 입장을 그대로 수용하고 들어주면서 점차 풀리게 된다. 에이이치 가족이 겪고 입었던 상처를 그대로 고백하면서 오히려 그것이 가족 내에서 아픔으로 동변상련으로 받아들여지게 되고 유대가 형성되는 것이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가장 아픈 상처 내지는 가장 부끄러운 치부를 드러내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 상처와 치부 그대로를 누군가 알아주고 있는 그대로 수용해 주기를 바란다.

우리는 완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로에게 조금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상대방의 얘기를 들어주려 노력해야 한다.

내가 하고 싶은 말만 실컷 떠들어대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너도 나와 같은 상처 입은 사람이구나’라는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책을 읽는 동안 내 주변을 돌아봤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 친한 친구들, 가족...

최소한 상처를 주는 사람은 되지 않아야겠다.

물론 내가 알지 못하고 의도하지 않는 사이 또 누군가에게 생채기를 낼 수 있겠지만 조심 또 조심하며 살아야겠다. 그리고 늘 입보다 귀가 앞서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고구레 사진관’의 심령사진 같은 것을 볼 수는 없겠지만 내게 던져질 나만의 심령사진을 외면하지 않기로 다짐한다.

 

 

“그녀가 그렇게 공격적인 건 사실은 두렵기 때문이야. 다른 사람을 대할 때는 어떻게든 강하게 나가야지 안 그러면 금세 당한다고 굳게 믿고 있는 거야. 상처 받기 전에 먼저 상처를 주려는 거지. 그런 인간관계밖에 모르는 것 같아, 지금껏.”

 

 

 

 

 

이 리뷰는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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