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 목걸이 - 딜쿠샤 안주인 메리 테일러의 서울살이, 1917~1948
메리 린리 테일러 지음, 송영달 옮김 / 책과함께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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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쿠샤 안주인 메리 테일러의 1917년부터 1948년까지 서울살이를 다룬 책이다. 딜쿠샤의 위치는 서대문과 사직공원의 사이에 있는 사직터널 뒤쪽에 있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니 붉은 벽돌에 1923년 건축연도가 표시된 건물이 보인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현재의 사진이 없는 것이 살짝 불만이었다. 역자가 현재 여러 가구가 살고 있다고 끝에 덧붙였지만 가장 확실한 자료 사진 한 장이면 될 텐데 하고 말이다. 덕분에 표지 그림과 사진을 비교하면서 그 동안 이 집이 어떻게 변했는지 볼 수 있어 색다른 느낌을 받았다.

 

저자가 이 책을 썼지만 책을 출간한 것은 아들이다. 그녀는 1889년 영국 첼트넘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출생연도와 가정 경제 내용을 적은 것은 그녀가 어떤 환경에서 자랐고, 이 환경이 그녀가 다른 국가를 보는 시각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의 집을 모험과 아름다움으로 가득 찼다고 표현한다. 아버지가 모험을, 어머니가 아름다움을 담당했다고 하면서 집을 찾아온 다양한 직업군을 말한다. 이때 경험이 그녀가 연극배우가 되어 세계를 돌아다닐 때 많은 영향을 준 것 같다. 그리고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은 호박 목걸이가 나온다. 가끔 영국 영화에서 보는 귀족들의 삶과 상당히 닮아 있는 풍경 등이다.

 

책은 그녀가 한국에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떠나게 되었는지로 시작한다. 바로 2차 대전 때문이다. 일본이 미국 진주만을 폭격하면서 한국에 있던 외국인들은 잠정적으로 포로가 된다. 한국에 이십 수 년을 머물면서 쌓아온 관계와 기억과 추억과 물건 등을 두고 떠나야 한다.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후 다시 돌아온다. 하지만 다시 돌아온 한국은 그녀가 기억하고 있는 그곳이 아니다. 사실 이 부분은 뒤에 나오는데 분단 후 풍경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물론 이 풍경은 그녀가 살아온 방식에 의한 것이다. 짧지만 강한 여운을 남긴다.

 

한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를 보낸 한국. 그곳을 바라보는 외국인의 시선을 보면서 갑자기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동남아 등에 나가서 바라본 그곳의 모습과 얼마나 닮았고, 얼마나 다를까 하는 것이다. 시대가 변했다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자신들이 위에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변화가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쩌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더 심할지도 모르지만. 이 시각을 생각하게 된 것은 그녀의 글에 등장하는 한국 사람들의 이름 대신 성만 나오는 것 때문이다. 또 어떤 장면들은 유럽인들이 동남아에서 그 나라 사람들을 하인 등으로 부리던 장면과 너무 닮아 있었다.

 

우리의 기록이 제대로 남아 있지 않는 현실에서 외부인의 시선과 기록은 당시 역사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이 책에 나오는 3.1운동이나 고종 황제 장례식 장면은 길지 않지만 그 시대 사람들의 마음 한 자락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녀가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타고 지나가면서 벌어진 에피소드들은 짧지만 강렬하다. 특히 스탈린 시대 소련의 모습은 거짓과 역설로 가득하다. 이런 모습이 그 당시 한국을 여행한 다른 사람들에게도 같은 모습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스쳐지나간다. 이것은 우리가 가끔 다른 나라를 여행하면서 짧게 경험한 것으로 그 나라를 평가하는 것과 아주 닮아 있다.

 

특권을 가진 외국인에 부유하기까지 한 그녀의 삶에서 결핍이란 자신이 살던 물건이나 문화가 존재하지 않으면서 발생한다. 더 좋은 문화나 방식이 있다 하여도 그녀는 그것을 따르려고 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문화를 그대로 유지할 만한 부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생활의 방식을 바꾸려고 하면서 생기는 불편함도 무시못할 것이다. 그렇게 많지 않은 돈으로 여러 명의 하인을 두고 집을 가꾸고 밖을 돌아다니는 그녀를 보면 어느 정도 거부감도 생긴다. 하지만 이것을 탓할 수 없다. 그녀의 삶이자 문화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그녀 주변 사람들이 받게 될 문화의 충격은 또 다른 문화의 형성과 발전을 가져온다. 그리고 그녀가 완전히 한국의 문화를 거부한 것이 아니다. 인정하고 있다. 그 장면을 볼 때면 암울했던 그 시대가 그대로 느껴진다.

 

한국 서울에 딜쿠샤란 집을 지어놓았지만 그녀의 여행과 모험은 세계를 누빈다. 일본에서 남편 브루스를 만났고, 결혼은 인도에서 했다. 시베리아를 횡단했고, 유럽과 미국을 다녀왔다. 그 시대를 생각하면 쉬운 일정이 아니다. 한국으로 온 후도 그녀의 여행은 금강산, 원산, 금광 등으로 계속된다. 이 때문에 독자는 그녀의 시선을 통해 그 시대 그 나라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그리고 당시 한국에 체류하던 외국인들의 모임이 어떤 사람들이 참가했는지 간단하게 알 수 있다. 아쉬운 것은 역시 단편적인 소식이나 정보에 머물면서 그 시대의 역사와 문화를 좀더 깊이 있게 파고들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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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김중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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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자신이 죽은 후 다른 사람에게 밝히고 싶지 않은 물건이나 비밀이 하나씩 있을 것이다. 죽기 전에 이 물건 등을 본인이 직접 없애면 될 텐데 무슨 이유 때문인지 그것을 가지고 있다. 이 처럼 죽은 후 걱정을 위해 자신이 원하는 물건 등을 없애주는 직업이 있다. 딜리터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탐정 구동치의 직업이 바로 이것이다. 이 직업을 하게 된 것은 유명 작가의 부탁 때문이다. 사실 읽으면서 노 작가의 주장을 보면서 어디까지 작가의 생각이 담겨 있는지 의문이었다. 그리고 이상한 냄새로 가득한 악어빌딩에 한 남자가 찾아오면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이영민. 다른 고객의 소개로 구동치를 찾아왔다. 이야기의 전개에 강한 인상을 주는 부분이 없다 보니 그냥 지나가는 사람 중 한 명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계속 등장한다.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물건을 가지고 있고, 이 물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게 된다. 약간 끈적거리면서 나른한 분위기에서 시작하여 처음에 예상한 것과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작가의 이력을 생각하지 않고 읽는다면 한 편의 탐정소설을 읽는 느낌일 것이다. 사실 마지막 장면에 그가 다른 일을 처리하기 위해 출장 갈 때 선택한 소설이 추리소설인 것을 감안하면 전혀 연관성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전직 형사였던 구동치는 딜리팅하면서 얻은 물건 중 일부를 자신이 보관한다. 계약 위반 사항이지만 죽은 자들이 이 사실을 알 리 없다. 남의 비밀을 엿보는 재미에 그는 빠져 있다. 물론 자신이 죽게 되는 경우 이 물건들을 없애달라는 요청을 다른 딜리터에게 해 놓은 상태다. 하지만 자신이 다른 사람들의 물건을 보관하는 것처럼 딜리팅을 요청받은 사람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이 모순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그리고 사건이 터진 후 누군가가 자신의 사무실에 침입한 후 흔적을 남겨 놓은 적이 있다. 일종의 경고였지만 가져가려고 하면 충분히 가능했다.

 

그의 귀는 아주 깊은 우물이다. 딜리팅을 하면서 비밀을 이 깊은 우물에 넣는다. 그런데 평소와 다르게 이번 딜리팅은 문제가 생긴다. 죽은 자의 태블릿 피시가 사라진 것이다. 죽은 자의 이름은 배동훈이다. 이 소설의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존재가 바로 배동훈의 태블릿 피시다. 이 피시에 담긴 동영상 때문에 몇 사람이 죽고, 구동치는 충격 받고 고뇌에 빠진다. 그의 적으로는 천일수 회장과 이영민이 있다. 이들은 함께 테니스를 치지만 뒤로는 살벌한 싸움을 벌인다. 자신들이 가진 모든 것을 활용해 적을 무너트리려고 한다. 초반에는 원수도장 수련생들의 도움을 받는 천 회장이 압도적이지만 정보는 또 다른 위력을 발휘한다.

 

소설은 등장하는 인물들을 허투루 사용하지 않는다. 별로 중요하지 않는 사람도 단역을 맡아 강한 인상을 남긴다. 악어빌딩의 세입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무술도장 원장과 철물점 사장이 티격태격 싸우지만 이 둘이 합쳐 이룬 사건 하나는 구동치에게 아주 중요한 일이 된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것은 드라마 작가 오윤정의 비중이 거의 사라진 것이다. 이것은 구동치가 딜리팅할 때 그를 목격한 여자 정소윤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아침 드라마 작가로 끝부분에 다시 등장한다. 아침 드라마라면 이 세 사람의 삼각관계에 박찬일 셰프까지 엮인 관계로 발전할 수 있지만.

 

흔히 정보가 돈이자 힘이라고 말한다. 배동훈의 죽음 뒤 그의 태블릿 피시에 든 동영상은 최고의 돈이 된다. 쫓고 쫓기는 전개 속에 구동치는 자신도 모르게 엮인다. 그런데 여기에 형사 한 명도 같이 엮인다. 배동훈의 죽음을 조사하는 김인철 형사다. 그는 구동치의 선배 형사다. 처음에는 그냥 보통의 형사처럼 다가왔는데 뒤로 가면서 강한 개성을 품어낸다. 이렇게 엮인 관계가 단숨에 풀릴 리 없다. 물론 좋게도. 욕망이 어긋나고 비밀의 문이 열릴 때 가장 원초적인 감정들이 수면 위로 튀어오른다. 이것을 대표하는 두 인물이 바로 천 회장과 이영민이다.

 

등장인물들의 강한 개성과 함께 원수도장의 사연도 시선을 끈다. 무도를 추구하는 그들의 과거를 생각하면 불행하기 그지없다. 그들의 대사형이 원수도장을 유지하가 위해 천 회장의 더러운 손발이 되는데 어느 순간 원래의 의도보다 유지라는 욕망의 그림자에게 잡아 먹혀 버렸다. 마지막 부분에 가면 이것은 아주 중요한 이야기의 시발점으로 변한다. 나비효과 같은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그리고 작가가 가장 보여주고 싶은 장면은 정소윤이 눈밭에 넘어진 후 기분이다. 자신이 누웠던 자리가 선명해서 그림자를 남겨두고 가는 기분이었다는 표현이다. 비밀의 그림자는 월요일처럼 길고 기니까.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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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겐슈타인의 조카]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비트겐슈타인의 조카
토마스 베른하르트 지음, 배수아 옮김 / 필로소픽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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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대로 소설 속 등장인물인 파울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조카다. 제목처럼 단지 그의 조카란 것만으로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 것은 아니다. “루트비히는 그의 철학으로 유명해졌고 파울은 그의 광기로 유명해졌다.”란 말처럼 소설 속 파울은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았다. 그의 삶을 살짝 들여다보면 그의 삼촌처럼 엄청난 돈을 거부하고, 오히려 이 돈을 순수한 인민들에게 뿌리면서 자신이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구원은 돈의 탕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빈털터리가 된 그를 친척들 중 누구도 반겨주지 않았고, 정신병자로 병원에 가둬두는 빌미를 제공했다.

 

작가의 자전소설이란 소개처럼 이 둘은 병원에서 환자로 서로의 소식을 듣는다. 작가 베른하르트가 폐병 환자라면 파울은 정신병자로 입원한 상태다. 이 우연이 친구의 소식으로 두 병실을 이어주지만 그 왕래가 그렇게 쉽지 않다. 이런 이 둘의 인연을 시작으로 작가와 파울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이 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 결코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음을 알게 된다. 파울이 광기를 띄고 있다면 작가는 냉소와 증오로 가득 차 있다. 특히 오스트리아 문화계에 대한 증오와 냉소는 한 에피소드에 잘 나타나 있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는 얼마나 다를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읽으면서 생각하지 못했는데 한 문장으로 이루어진 소설이다. 깊은 몰입에 빠지지 않으면 아무 것도 건질 수도 느낄 수도 없다. 단지 몇 가지 에피소드 정도만이 남을 뿐이다. 하지만 집중도를 높이면 이 둘의 묘한 관계와 이들이 지닌 열정이 곳곳에서 피어난다. 클래식과 오페라에 대한 그들의 견해는 문외한이 듣기에도 수준이 높아 보이고, 파울의 오페라 여행은 얼마나 열정적이어야 가능한 일일까 하는 의문과 감탄이 생긴다. 그리고 이 둘의 우정이 나이 차이를 뛰어넘어 철학과 관점의 유사성에서 비롯한 것임을 알게 될 때 부러워지기 시작했다.

 

작가는 파울을 천재라고 부른다. 철학계의 천재이자 삼촌인 루트비히와 다른 점을 루트비히는 책을 출간하였고 파울은 하지 않았다고 말할 정도다. 물론 파울도 잠시 글을 쓴 적이 있다. 하지만 어느 하나 완성을 보지 못했다. 출간하지 못하게 태어난 사람이란 표현처럼 그의 철학과 높은 식견은 단지 그와 대화한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사치가 된다. 읽으면서 혹시 그가 글을 썼다면 얼마나 대단한 작품일까 하는 의구심이 생겼지만 이런 상상은 언제나 즐거운 법이다. 그리고 말년의 삶을 들여다보면 비루함 속에 자기 삶의 여유와 낭만을 지켰다. 그의 마지막 장난이 보여주는 것은 그가 가진 것들, 가졌던 것들에 대한 향수이자 마지막 발악이다.

 

파울의 재미난 이야기 중 하나는 그가 보인 반응에 따라 흥행의 여부가 갈라졌다는 것이다. 한 개인이 오페라에서 냉소를 보이면 그때부터 흥행은 끝이 된다. 그런데 이 반응이 자신의 음악관이나 심미안에 의해 결정나는 것이 아니라 기분이나 장난에 의해서도 변했다는 것이다. 순간 와인평론가 로버트 파커의 이미지가 살짝 떠올랐다. 한 분야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이 어떤 재미난 모순을 불러올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그리고 세계적인 지휘자였던 카라얀에 대한 엄청난 호평은 순간 다른 평가와 충돌하면서 이들의 취향이 나와 완전히 다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겨우 140여쪽에 불과하지만 수많은 에피소드가 실려 있다. 이 에피소드는 이들의 철학과 음악관 등을 아주 잘 드러내준다. 물론 이 둘의 관계도. 특히 하나의 잡지를 사기 위해 수백 킬로미터를 달린 이야기는 열정과 광기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둘이 병원에 입원한 후 12년 간의 우정과 관찰을 풀어낸다. 작가는 관찰자로서, 혹은 동반자로 등장하여 자신과 파울의 삶을 하나씩 녹여낸다. 이 과정에 흘러나오는 냉소와 경멸과 증오와 열정과 존경과 사랑은 가슴 한 곳에 조용히 자리 잡는다. 그러다가 갑자기 다시 펼친 한 쪽에서 발견한 한 문장 때문에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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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신부 진이
앨랜 브렌너트 지음, 이지혜 옮김 / 문학수첩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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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뒤적였던 것은 바로 작가의 이력이다. 읽기 전에 작가가 한국계 미국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읽으면서 혹시 하는 마음이 계속 생겼다. 그것은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작가의 이해와 표현이 한국 작가의 그것과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어떤 부분에서는 오히려 더 한국적이었다. 19세기 말 경상도 보조개골에서 태어난 한 여자 아이의 일생을 함축적이면서 파란만장하게 표현하였기 때문이다. 또 읽으면서 몇 번이나 눈시울을 붉혔고, 그 시대의 한계에 분노했다.

 

이 소설을 읽기 전 멕시코 등 이주 노동자를 다룬 작품을 읽은 적이 있다.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분노와 애절함으로 가득 차 있다. 물론 사람 사는 곳이다 보니 사랑도 넘쳐난다. 하지만 이 작품 이전에는 하와이 이주와 사진신부라는 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미국 본토와 다른 곳은 기억하고 있었지만. 그리고 사진신부로 중매가 이루어지고, 이 결혼으로 먼 타국으로 홀로 간 여성들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이 사신신부가 한국만의 문화적 현상이 아니라는 것은 일본 사진신부들을 통해서 알게 되었지만 그 시대의 풍경과 문화를 아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사진신부 진이의 본명은 섭섭이다. 흔한 한국 이름처럼 아들이 아니라 섭섭하다는 의미에서 지은 것이다. 이 이름을 평민이 지었다면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생각했겠지만 양반 가문에서 이렇게 지었다. 이 부분에 대한 고증은 좀더 필요하지만 조선 시대 이후 자주 보아왔던 이름이라 크게 거부감은 없다. 그리고 당연하게 아버지는 여자에게 글을 가르치지 않는다. 출가외인이란 인식 때문에 일곱 살이 되면 밖에 놀게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느날 신문 조각을 줍고 이것을 오빠에게 읽어달라고 요청한다. 이것을 듣고 바깥 세상에 대한 동경과 갈망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낯가림이 심하던 한 소녀에게 변화의 바람이 분다.

 

그녀가 글을 배우게 되는 곳은 집이 아니라 병든 이모 댁에 갔다가 만난 기생 석란이다. 석란 선생을 통해 한글을 배우고 읽게 된다. 글을 한 번 배우게 되면서 배움에 대한 갈증은 더 커진다. 하지만 아버지에게 말할 수는 없다. 그러다가 친구 선이가 하와이 사진신부를 말한다. 공부를 더 하고 싶은 섭섭이는 아버지에게 공부하고 싶다고 말했다가 맞게 된다. 이 날 이후 선이를 통해 사진신부를 구하는 매파가 다가온다. 매파가 부채질하는 환상과 공부에 대한 열정 때문에 예쁘게 화장한 후 사진을 찍는다. 여성 억압적인 현실을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에서 아주 큰 결심을 한 것이다.

 

스스로 못생겼다고 생각한 그녀를 선택한 남자가 있다. 노 씨다. 사진을 보면 나쁘지 않다. 그녀의 사진처럼 그의 사진도 윤색되어 있다. 진실을 알게 되는 것은 하와이에 도착해서 그를 보았을 때다. 그와 함께 하룻밤을 보내고 농장에서 본격적인 부부생활을 하면서 그녀의 삶은 새로운 억압 속으로 굴러떨어진다. 남편의 주사와 폭력과 도박이 이어지고, 아내가 돈 벌어오는 것을 자기 위신 깍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때린다. 임신한 아이가 유산된다. 이민 온 한국 남자들의 가정은 한국의 그것과 별 다른 차이가 없다. 그녀는 공포를 벗어던지고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 농장을 떠난다. 그녀의 진실된 삶이 펼쳐지는 것은 바로 이때부터다.

 

섭섭이란 이름 대신 진이라고 불러준 것은 기생 석란이다. 이때의 기억이 그녀가 창녀촌에서 일하는 거부감을 덜어주었는지 모른다. 어머니에게 배운 바느질로 돈을 번다. 그녀의 가슴 한 곳엔 민며느리로 들어온 송이가 있다. 돈을 벌어 그녀를 데리고 오고 싶어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녀의 바람을 그대로 이어주지 않는다. 파란만장한 그녀의 삶이 하나씩 펼쳐진다. 하와이 행 배를 같이 탄 여자 친구들과의 인연과 새롭게 하와이에서 사귄 친구들의 이야기가 다양하게 풀려나온다. 그 속에서 만나게 되는 사연들은 그 시대의 한계를 그대로 보여준다. 역사를 생각하지 않으면 전혀 알 수 없는 아픔들이다. 그렇지만 사랑과 우정도 같이 이어진다.

 

짧은 시간이 아닌 한 여성의 일생을 다루다보니 분량과 상관없이 가슴 한 곳에 무게감이 생긴다. 그녀가 경험했던 사건들이 시대의 한계를 드러낼 때는 같이 분노하고 가슴 아파한다. 인종차별이 아직 만연했던 시대다. 한인 이주 1세대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자연스럽게 한인들의 삶이 어떤 고난과 역경을 딛고 현재에 이르렀는지 알게 된다. 단순히 성공담이 아니라 삶이 오롯이 녹아있다. 이 소설의 가치는 바로 이 부분에 있다. 한국인보다 더 한국적으로 글을 쓴 것보다 더 중요한 부분이다. 홀로 잘되겠다고 하지 않고 서로 연대하면서 같이 성장하는 모습을 볼 때 지금 한국의 모습이 대비된다. 한국 작가가 아닌 미국 작가가 이런 소설을 썼다는 사실에 부끄러움과 부러움을 느낀다. 우리의 역사가 점점 잊혀지는 것 같다. 오랜만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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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즈 보르코시건 : 남자의 나라 아토스 마일즈 보르코시건 시리즈 6
로이스 맥마스터 부졸드 지음, 최세진 옮김 / 씨앗을뿌리는사람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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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행복한책읽기에서 출간한 마일즈 보르코시건 시리즈를 사놓고 천천히 읽어야지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러다 그 시리즈가 중단되고 다른 출판사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사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시리즈가 다른 출판사에서 나오고 있다는 것도 몰랐다. 다시 출간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1권부터 읽어야지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 시리즈를 읽을 기회가 본편이 아닌 외전 성격의 이 작품이 먼저 왔다. 혹시 가끔 읽는 sf중 조금 무거운 소설이 있는데 그런 종류가 아닌가 하는 의문도 있었다. 하지만 읽기 시작하면서 이런 생각은 단숨에 사라졌고 이야기 속에 빨려 들어갔다.

 

남자의 나라 아토스란 제목만 보면 뭔지 알 수 없다. 그런데 나라란 말 대신 행성이란 단어를 넣으면 의미가 달라진다. 남자들만 살고, 아이들은 인공자궁을 통해 태어나는 행성이다. 여자들은 단 한 명도 없고, 태어날 때부터 여자를 죄악이라 생각하고 여자의 영상조차 금지된 행성이다. 그런데 이 아토스에 문제가 생긴다. 난소배양조직들이 오래되어 제대로 아이들을 태어나게 만들지 못하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른 행성에서 여자들의 난소조직 등을 구입한다. 그런데 도착한 조직이 인간의 것이 아니다. 아토스가 멸망할 수도 있는 엄청난 사건이다.

 

새로운 난소조직을 구하기 위해 재생산본부의 에단 박사가 선택된다. 단 한 번도 외부 행성에 나간 적도 없고 여자를 본 적도 없는 그가 아토스를 대표해 클라인 우주정거장으로 파견된다. 이 이야기의 초반부는 사실 이런 아토스와 문화 충격으로 힘들어하는 에단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하지만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은하계를 뒤흔들 수도 있는 사건의 회오리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순진하고 약간 맹한 듯한 그가 덴다리 용병대의 엘리 퀸 대령과 엮이면서 이때까지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모험 속으로 뛰어 들어간다. 물론 그의 의사는 전혀 상관없는 모험이다.

 

아직 이 시리즈를 제대로 읽지 않아서 엘리 퀸이 소속된 용병대의 장군이 시리즈의 그 마일즈인지는 잘 모르겠다. 맞다면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이미지와 너무 다른 모습이다. 그것과 별개의 전개를 펼치는 이 작품은 에단의 시점으로 진행된다. 남자들만의 행성에서 왔다는 소식에 남자들은 비웃고, 누군가는 호모들의 행성이라고 비아냥거린다. 이때 분명하게 이 행성의 탄생과 통치 이념이 머릿속에 들어왔다. 그리고 처음부터 가지고 있던 몇 년 전 일본 애니 한 편과 이 소설이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그 애니는 남자만의 행성과 여자만의 행성의 우주선이 만나는 것인데 끝까지 보지는 못했다. 시간 순서만 보면 이 작품이 먼저인데.

 

난자조직을 구하려는 에단과 아토스가 자신들이 원하는 난자조직을 가지고 있을 것이란 의심을 가진 세타간다의 밀리소르 대령의 만남에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오해와 착각에서 비롯한 이 만남은 에단에 대한 고문으로 시작한다. 에단은 아무것도 모른다. 그를 죽이려고 하는 데 그 순간 퀸이 나타나 구해준다. 이 구출은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킨다. 에단을 중심으로 첩보전이 펼쳐지고 텔레파시 능력을 가진 테렌스 씨가 등장하면서 문제는 더 커진다. 이때 왜 이런 문제가 발생했고,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 드러난다. 읽는 속도가 빨라지고 몰입도가 점점 높아진다.

 

sf라고 하지만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우리와 별 차이가 없다. 아토스가 게이들의 행성으로 건국되고, 다른 행성의 게이들을 받아들이고 여성을 죄악시하는데 이것은 이 소설이 나올 당시 사회 분위기와 연관성이 있을 것이다. 에단이 여자에 대한 두려움을 보여줄 때 웃게 되는 것은 우리의 어린 시절 외국인을 대할 때와 별 차이가 없다. 선입견과 공포가 마음과 행동을 제약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에단이 여자를 두려워하지 않게 성장하는 과정을 다룬 성장소설로도 읽을 수 있다. 다른 것을 대입하면 또 다른 성장이겠지만. 외전으로 나를 사로잡았는데 원래 시리즈는 더한 재미를 줄 것 같다. 현재 총 열여덟 권이 출간되었고 한국엔 여섯 권이 번역되었는데 모두 다 나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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