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물
김주욱 지음 / 황금테고리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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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가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최근에 이런 표지로 나온 책을 본 적이 거의 없다. 책 내용을 감안해도 표지와의 관계가 별로 없어 보인다. 조금 아쉬운 부분이다. 이런 아쉬움과 별개로 7편의 단편은 낯설고 기이하고 불편했다. 이 불편함은 최근에 읽은 다른 작품들과 다름에서 비롯한다. 분명한 관계 설정이나 상황 설명보다 의식의 표현에 더 집중했기에 더욱 그런지도 모르겠다. 읽다 보면 현실과 상상의 간극이 쉽게 채워지지 않아 혼란스러웠다. 또 어떤 인물은 광기를 표출하면서 나로 하여금 어떤 상황으로 변할지 긴장하게 만들었다.

 

표제작 <허물>은 가장 분량이 많고 기술적인 설명이 충실하다. 미용실 원장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미용기술 부분을 읽다보면 혹시 이 분야에 종사한 적이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커트와 펌이나 염색 등의 묘사와 설명이 너무 사실적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두 의식으로 나눠 진행되는 이야기는 스산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뱀을 사 집에서 키우는 그녀가 제목처럼 허물에 집착하는 광기로 발전하는 순간은 한 편의 호러물을 보는 것 같았다. 한 인물의 성공 뒤에 남겨진 수많은 일들은 어쩌면 허물벗기였는지도 모른다.

 

첫 작품 <아무나 지을 수 없는 밥>은 생각하지도 못한 장면을 보여준다. 플라스틱으로 밥을 짓고 이것을 먹는다. 이것이 가능한지는 남겨두고 그의 이야기에 집중하면 한 인물의 불행한 삶이 조용히 드러난다. 행복했던 순간도 있었지만 남겨진 자에게는 아쉬움이 더 큰 법이다. 열악한 산업 환경 속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삶이 바닥에 흐르는 와중에 이 밥이 중첩되면서 무력한 삶의 무거움과 힘겨움을 전한다. 마지막 문장은 읽을수록 비극적이다. <추억의 여자만>은 정말 비루하고 멍청한 남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차를 타고 달리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는 결코 낯설지 않다. 여자만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하는 의문이 계속 따라온다.

 

<한 가닥의 터럭>은 집착과 페티시로 가득하다. 그가 등에 난 한 가락의 터럭을 뽑기 위해 하는 행동은 전 여친의 페티시와 연결되면서 공감대가 형성된다. 하지만 전체적인 무력함과 남자의 졸렬함은 어쩔 수 없다. <개새끼>의 화자는 분명히 혼혈이다. 그런데 아버지의 출신이 명확하지 않다. 중요한 것도 아닌데 괜히 궁금하다. 부산의 한 지역을 무대로 일어나는 몇 가지 에피소드는 <아무나 지을 수 없는 밥>과 이미지가 이어진다. <고백>은 한 남자의 순정(?)이 드러나는 이야기다. 다 읽은 지금 왜 <한 가닥의 터럭> 속 화자와 겹쳐보이는 것일까? 그의 무력함과 연약한 의지 때문일까? 아니면 그가 처한 현실과 상황들 때문일까?

 

<우리 사이>는 뒤틀린 부부 사이와 불륜의 한 장면이 나란히 표현된다. 내가 하면 로맨스지만 너가 하면 불륜이라는 남편의 마음이 성욕으로 표출되는 장면은 강압적이다. 그의 성기 크기를 둘러싸고 두 여성의 반응이 다른 것은 감정의 차이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경험의 차이일까? 남자의 의심이 마지막 장면과 이어질 때 조금 혼란스러웠다. 분명하게 인식하지 못한 나의 판단 때문이다. 틈에 집착하는 남자의 모습이 부부 사이의 균열과 이어진다. 어쩌면 흔하게 보고 들은 우리 사이 이야기다. 이 남자의 모습이 <추억의 여자만> 속 남자들과 연결되는 것은 과한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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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초지로 - 고양이와 집사의 행복한 이별
고이즈미 사요 지음, 권남희 옮김 / 콤마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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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완견이나 애완묘를 직접 길러 본 적이 없다. 예전에 고양이를 집에서 기를 때도 그냥 집밖에 놓아두고 길렀다. 개들도 마찬가지다. 지금도 본가로 가면 어머니가 몇 마리의 개들을 기르시고, 집밖에 있는 길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주신다. 내 기억이 맞다면 한 번 집 안에서 개를 키우려고 한 적이 있다. 치와와였다. 아마도 하루만에 돌려주신 것으로 기억한다. 아직 우리집에서는 최소한 집안에서 키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주변에 조금만 눈을 돌리면 집에서 키우는 사람들이 많다. 개도 고양이도, 혹은 다른 무언가도.

 

이런 나에게 예쁜 강아지나 고양이를 집에서 키우는 사람들이 이해가 되지 않은 시절이 있었다. 그들의 집에 놀러 가면 달려와서 짖어대고, 물고, 할퀴는 그것(?)들이 결코 귀여울 수 없었다. 단독주택도 아니고 공동주택에서 키울 때는 더욱. 하지만 시대는 바뀌었고, 주거 환경도 바뀌었다. 홀로 살거나 애완견이나 애완묘를 좋아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공동주택에 사는 비율도 더 높아졌다. 당연하게도 집에서 같이 사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방송에도 이런 연예인들이 얼마나 많이 나오나. 나의 인식도 이렇게 조금씩 변해갔다. 이해하는 쪽으로.

 

이 책의 저자는 늘 고양이를 키웠다. 반려묘나 반려견의 평균 수명은 사람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질병이 생겨도 사람보다 치유하기가 힘들다. 우리집에서도 몇 마리가 죽었는지 모른다. 이때의 상실감과 고통은 그 애정에 비례한다. 그리고 늘 다시는 키우지 않겠다고 말하지만 또 금방 데리고 와서 키운다. 저자도 마찬가지다. 초지로와 라쿠도 이런 과정 속에 저자의 집으로 들어왔다. 물론 남편과도 상의했다. 가족의 구성원이 된 두 반려묘는 가정의 활력이 되었고, 행복 바이러스를 사방에 뿌렸다. 아이가 태어난 후에는 형과 누나가 되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개나 고양이를 집안에서 키울 때 생긴 문제만 생각하는 사람들의 인식이 얼마나 일방적인지 알 수 있었다.

 

사람도 나이를 많이 먹으면 아픈 곳이 늘어난다. 예전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아픔과 고장으로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이 책 속 초지로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랑 속에서 살고 있다고 해도 병은 어쩔 수 없다. 친구의 촉진으로 시작된 검사는 종양으로 결론난다. 단순하게 생각했을 때 안락사가 떠올랐다. 비관계자가 볼 때 경제적으로 인도적으로 가장 효율적인 선택이다. 하지만 가족들에게는 다르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수술도 하고, 좋은 음식도 먹이고, 더 많은 패드를 깐다. 읽을 때는 못 느낀 것인데 이 모든 과정이 하나의 이별 준비다. 실제 초지로가 죽었을 때 보인 반응은 나의 기억 하나를 건드렸다. 남의 시선을 생각하지 않고 길 한 가운데서 죽은 개를 안고 울었다는 어머니의 모습이다.

 

솔직히 말해 읽는 동안 저자의 감정에 푹 빠지지 못했다. 몇몇 장면만 나의 경험과 기억이 맞물려 눈시울을 붉히게 만들었다. 가족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수많은 사람들이 키우기 힘들다는 이유로 애완동물을 집밖에 버리는 현실이다 보니 더 냉정하게 봤다. 보험처리가 되지 않는 반려묘를 수술할 때는 그 비용이 먼저 떠올랐다. 현실에서 사람들에게도 가장 핵심적인 문제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들이 부질없다고 느낀 것은 초지로에 대한 저자의 끝없는 애정과 걱정을 보면서다. 초지로가 그들의 삶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반려묘 장례를 치르는 장면은 이제 조금은 낯익다. 아마 다른 책에서 본 적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며칠 전 단숨에 읽었는데 그 여운이 아직도 가슴속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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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프 보이스 - 법정의 수화 통역사
마루야마 마사키 지음, 최은지 옮김 / 황금가지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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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표지만 놓고 보면 이 소설이 의미하는 바를 전혀 알 수 없다. 아니 정확하게 말해 미스터리라는 것을 알 수 없다. 데프와 보이스를 연결한 것만 놓고 보면 말이 되지 않는다. 단순히 소리라면 다르겠지만. 하지만 이 소설은 농아인을 전면에 내세운 미스터리물이다. 그렇다고 주인공이 농아인 것은 아니다. 나름대로 생각해보면 제목은 중의적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소설 속에 나오는 농아인의 목소리와 수화로 말이다. 실제로 이 소설을 끌고 나가는 주인공 아라이 나오토는 코다이다. 코다(CODA)는 Children Of Deaf Adult의 약자로 청각 장애인 부모를 둔 건청인을 말한다.

 

아라이는 현재 단기 알바로 생계를 유지한다. 그의 이전 직장은 처음에는 나오지 않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경찰서 사무직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일선 경찰이 아니라 회계, 총무 등을 담당한다. 철밥통이라고 할 수 있는 직장을 그만두고 현재 야간 경비를 한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 중반 이후에 나오는데 한국 공무원의 나쁜 습관과 몇 번이나 겹쳐보였다. 중년이 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실제로 많지 않다. 그러다 수화 통역사 자격증이 있으면 더 좋은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말에 시험을 친다. 소설의 시작은 이때부터다.

 

아라이의 일상과 연인이 나온다. 그의 뛰어난 수화 실력은 자격증을 따는데 전혀 무리가 없다. 당연하다. 청각장애를 안고 있는 가족들 사이에서 자랐으니 수화가 능숙한 것은 당연하다. 앞에서 말한 코다인데 그가 자랄 때는 이런 용어가 있는지도 몰랐다고 한다. 당연히 자신 같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몰랐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게 되는 당연함이 또 한 번 무너지는 순간이 생긴다. 다른 집을 뒤지다 잡힌 농인 스가와라를 통역하면서다. 그는 표준적인 수화를 전혀 몰랐다. 자신의 가족들과는 어떻게 의사소통이 되었는지 모르지만 세상과는 단절된 상태다. 이것을 보면서 수화가 또 하나의 언어라는 것을 인지하게 되었다.

 

스가와라의 변론을 통역하는 장면을 유심하게 보는 여자가 있다. 펠로십이란 비영리단체의 대표인 루미다. 그녀의 요청으로 그는 펠로십의 전속 수화 통역사가 된다. 가장 먼저 할 일은 스가와라가 장애인 등록을 하고, 일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돕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이전 직장 근처 공원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그에게 17년 전 살인사건의 용의자 행방을 묻는 형사의 전화가 온다. 형사의 방문을 통해 17년 전 기억의 문이 열린다. 농아시설 원장의 살인자를 수화 통역하는 일이었다. 살인자는 자신의 죄를 자백했는데 아라이가 보기에는 이상하다. 그리고 그는 범인의 요청 한 가지를 들어준다. 바로 가족 면회다. 아내와 두 딸이 찾아와 수화로 대화를 나눈다. 떠날 때 작은 딸이 묻는다. “아저씨는 우리 편? 아니면 적?”이라고.

 

이번에 생긴 살인사건의 피해자도 역시 그 농아시설의 원장이다. 그때 원장의 아들이다. 형사가 17년 전 사건의 범인을 강력한 용의자로 삼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아라이가 그의 행방을 알 수는 없다. 그런데 펠로십이 운영하는 건물에서 그 용의자를 본다. 단순히 비영리단체의 도움인가? 아니면 다른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리고 17년 전 작은 딸의 물음은 그를 사로잡는다. 이번 살인사건에 대한 의문과 궁금증이 폭발한다. 이 때문에 연인 미유키와의 관계도 틀어진다. 미유키의 전남편에게서 정보를 얻다가 사고가 생겼기 때문이다. 그러다 다시 생긴 기회도 다른 의혹을 풀기 위해 날려버린다. 이렇게 이 소설의 한 축을 강하게 흘러간다.

 

실제 이 소설에서 미스터리 부분은 굉장히 약하다. 읽다 보면 범인이 누군지,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금방 파악할 수 있다. 작가가 단서를 충분히 많이 던져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주 놀라운 반전이 없다. 하지만 코다인 아라이가 농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수많은 사건, 사고를 말할 때 우리의 단순화된 인식에 틈이 생긴다. 청각장애인이란 단어를 농아인들이 싫어한다거나 일본 수화가 두 종류(한국은 한 종류다)가 있다거나 선천적인 농아인과 중도실청자 사이의 갈등 등이 새롭게 다가온다. 농아인들이 우리 편인가를 묻는 것이 단순한 편가르기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도 역시.

 

이 소설을 읽으면서 예전에 본 일본 드라마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여주인공이 청각장애가 있는데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기르는 장면이다. 아이가 우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장면을 보면서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그 장면에 아주 놀랐던 기억이 났다. 이것이 아라이가 넘어져 울 때 엄마가 그 소리를 듣지 못하고 앞으로만 걸어갔다고 했을 때 겹쳐져서 다가왔다. 수화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고 한 아이의 아버지가 막말을 할 때는 나의 행동을 돌아보게 되었다. 혹시 하고. 아라이가 이 아버지에게 아주 심한 욕설을 수화로 했을 때는 통쾌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씁쓸했다.

 

정밀하게 짜인 구성과 놀라운 트릭이나 반전으로 충격을 주는 소설이 아니다. 코다의 시선으로 자신이 속한 사회를 새롭게 보게 만들고,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다시 한 번 더 돌아보게 한다. 수많은 주석이 달려 있는데 이번에는 이 주석들이 이해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특히 아라이의 가족사와 결혼 문제 등은 단순히 청각장애인의 문제만은 아니다. 단순히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하기에는 그가 자라면서 받은 모욕과 충격과 아픔 등이 결코 모자라지 않다. 이 때문에 ‘우리 편인가?’라는 물음이 평범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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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임수
샤를로테 링크 지음, 강명순 옮김 / 밝은세상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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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많이 봤지만 처음 읽는 작가다. 워낙 인기가 있어 몇 권 사놓기도 했다. 얼마 전 읽은 다른 작가의 작품과 가끔 헷갈린다. 같은 출판사에서 나왔고, 제대로 읽지 않고 제목만 보다보니 둘을 순간적으로 혼동했다. 하지만 그 작가의 책을 읽은 후 최소한 작가에 대한 착각은 하지 않는다. 많은 권수를 읽지 않은 두 작가의 선호도는 현재까지는 샤를로테 링크가 더 높다. 이 작가의 작품을 인터넷서점에서 검색하니 예상하지 못한 작품도 보인다. 샀지만 읽지 않아 이름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반가웠던 것도 사실이다. 이 작품을 통해 다른 작품도 기대하게 된 것도 사실이다.

 

처음에 조금 당혹스러웠다. 분명 독일작가인데 영국이 무대인 것이다. 뭐 이런 일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많은 작가들이 국적과 상관없이 한 지역을 무대로 연작을 쓴다. 꼭 자기 나라만 무대로 해야 한다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그런데 작가 이력을 읽다가 대부분의 작품 배경이 영국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왜 영국을 무대로 글을 쓸까 하는 의문이 잠시 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작품이 엄청나게 많이 팔린 것에 놀랐다. 이 정도까지 팔린 작가가 한국에 이렇게까지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또 한 번 놀란다.

 

이야기는 속도감 있다. 한 사람의 시선을 따라가지도 않고, 범인을 분명하게 드러내지도 않는다. 기본적으로 형사 측과 피해자 측과 가해자 측을 나누어서 이야기를 진행한다. 하지만 얼마 읽지 않아 이들이 모두 한 사건과 관계된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작가는 이 차이를 독자에게 알려주지만 현장의 경찰이 이것을 금방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은퇴한 형사 리처드 살인이 하나의 축으로 진행된다면 그 곁에서 또 다른 살인이 벌어진다. 연쇄살인사건이다. 이 사건만 따라가도 부족할 텐데 작가는 시나리오 작가 조나스 가족을 이야기 속으로 끌고 들어온다. 이 가족을 둘러싸고 사건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은퇴한 형사 리처드는 자택에서 살해당한다. 누군지도, 왜 자신을 죽이는지도 모른 채.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죽는 순간 알게 된다. 그의 인생에서 단 한 번(?)의 실수를. 그는 스카보르 경찰서의 전설이었다. 하지만 은퇴한 후 자신의 집에 침입한 살인자에게 너무 무력하게 무너진다. 자신이 늘 피해자 등에게 주의시켰던 것을 지키지 않음으로 인해서. 그리고 이 사건은 케일럽 반장이 담당한다. 그는 알코올 중독 치료를 받고 방금 돌아온 상태다. 여기에 리처드의 딸이자 런던경찰청 형사인 케이트 형사가 휴가를 받아서 집으로 돌아온다. 그녀는 세상과 원만한 관계를 맺지 못하는 성격이다. 삶의 많은 부분을 아버지에게 의존하고 있었다. 고향집으로 온 것은 범인을 잡기 위해서가 아니다.

 

조나스는 심리적 압박감에 휩싸인 채 살고 있다. 의사는 통신매체와 떨어진 곳에서 홀로 휴가를 보내라고 조언한다. 벌어놓은 돈도 없고, 여덟 차례의 인공수정으로 빚만 늘었다. 정규직도 아닌 프리렌스 시나리오 작가다. 재능이 있어 현재까지 찾는 곳이 많지만 언제까지 이 능력이 빛을 발할지는 모른다. 불안하다. 아내 스텔라가 인공수정을 포기하고 선택한 것은 입양이다. 새미를 입양한다. 하지만 이 입양은 문제가 있다. 실제 엄마인 테리가 한 번 찾아갔다가 나중에 다시 돌려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열여섯 소녀가 홀로 키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비밀입양이 입양가족의 정보노출로 바뀌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 테리가 새미의 다섯 번째 생일에 남자 친구 닐과 함께 나타난다. 그는 결코 평범하지 않은 남자다.

 

리처드 살인은 자연스레 리처드가 담당했던 과거 사건들에 집중한다. 그러다 한 범죄자를 발견한다. 리처드에게 잡힌 후 복수하겠다고 말한 남자다. 데니스 쇼브가 용의자로 떠오른다. 현재 위치도 파악되지 않는다. 경찰의 시선은 데니스 쪽으로 옮겨간다. 그러다 케이트에게 한 통의 전화가 온다. 아빠의 비밀 연인이었던 멜리사다. 리처드의 죽음을 보고 그 딸에게 뭔가를 말하려고 한다. 약속 시간을 잡고 집으로 갔지만 만나지 못한다. 학교로 간다. 그곳에서 그녀의 죽음을 발견한다. 두 번째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연쇄살인이다. 형사는 아직 어떤 단서도 찾지 못한다. 다만 멜리사의 아들을 통해 리처드와 그녀가 연인이었다는 사실만 알뿐이다. 이것이 아버지에 대한 의존이 심했던 케이트에게는 큰 충격이다.

 

이후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이 혼란스러운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들고, 이것을 하나씩 풀어내는 것이다. 또 다른 시체가 발견되고, 차량 탈취와 총격이 벌어진다. 동떨어진 두 사건이 흘러가는 와중에 이에 휘말린 사람들의 현재와 복잡한 심리 상태가 아주 잘 표현된다. 중심적인 인물들 모두는 평범한 모습으로 삶을 살아가지 않는다. 알코올 중독이거나 아버지 의존적이거나 강한 심리적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이 모두 단숨에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와중에 가장 이성적이면서 현실에 잘 적응하는 인물들은 모두 여성이다. 형사 제인과 조나스의 부인 스텔라가 대표적이다. 끈기와 인내가 없었다면 결코 해결할 수 없었다.

 

작가는 독자에게 사실 하나를 숨긴 채 이야기를 끝까지 끌고 간다. 리처드와 멜리사의 비밀 말이다. 이 살인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단서가 바로 이것이다. 그런데 이 사실이 너무나도 쉽게 케일럽 반장에게 드러난다. 이야기의 흐름 상 전혀 무리가 없는 범위 안에서 진행되지만 잠시만 진정하고 돌아보면 부자연스러운 구성이다. 어쩌면 괜한 트집일 수도 있다. 비록 케일럽이 알기 전에 너무 쉽게 알았다고 해도 말이다. 그래서인지 강한 충격을 주지는 않았다. 다만 조금 다른 장면이 나와 놀랐다. 이런 구성과 전개보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은 등장인물들의 심리적 내면을 잘 그려낸 것이다. 앞에서 말한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인물들의 마음을. 그리고 나 자신에게 묻는다. 이 한 번의 실수를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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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오늘부터 일하러 갑니다! - 15년 만의 재취업 코믹 에세이
노하라 히로코 지음, 조찬희 옮김 / 꼼지락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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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20년 전만 해도 한국 기업의 대부분 여성들은 결혼과 동시에 퇴사했다. IMF 이후 삶이 힘들어지면서,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가족을 꾸릴 수 없는 상황이 많아지면서 아이들을 맡기고 직장으로 나가는 엄마들이 늘어났다. 몇 십명 되지 않는 현재 직장에도 직장맘들이 몇 명이나 있고, 또 몇 명은 임신을 하고 있다. 이들의 경우 아이를 낳고 출산 휴가 3개월을 사용하면 회사로 복귀한다. 그런데 이들 대부분이 아이들을 시댁이나 친정에서 돌봐준다. 그렇지 않으면 육아휴직을 사용해야만 한다. 인원이 많지 않은 회사에서 이런 경우가 생기면 그 인원을 보충하는 일이 쉽지 않다. 그래서 대부분의 중소기업들은 이를 거부하는 것도 현실이다. 이 만화 에세이를 읽으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이 바로 주변에서 일하는 직장맘들이다.

 

이 만화의 도입부는 두 아이를 누가 돌볼 것인가 하는 문제와 남편의 호기로 시작한다. 전업주부로 계속 살아온 그녀가 점점 자라는 아이들과 늘지 않는 혹은 줄어드는 남편의 급여 걱정을 하면서 생각이 조금씩 바뀐다. 현실의 불만족과 미래의 불안감이 아르바이트라도 구하라고 말한다. 어릴 때 아이들은 엄마들의 손길과 관심이 필요했지만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서 그것이 필요 없어졌다. 직장 구하는 것을 막던 남편도 이제는 은근히 바란다. 이 변화가 그녀로 하여금 구직활동하게 만든다. 이때부터 쉽게 생각했던 일들이 높은 벽이 되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 만화를 보면서 많은 부분 공감했다. 어린 아이들을 둔 엄마의 전업주부화와 이 아이들이 성장한 후 재취업의 어려움 등이 대표적이다. 15년 만의 재취업인 것도 쉽지 않은데 이전의 경력도 특별한 것이 없다. 전문직이었다고 해도 빠르게 변화는 시대에 그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쉽지 않은데 어떤 경력도 특별한 능력도 없다. 당연히 쉽지 않다. 그리고 이 만화에서 핵심을 짚어주는 것 중 하나가 있다. 엄마가 원하는 직장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원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회사 입장에서는 기왕이면 젊고 아이가 없는 엄마를 더 선호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것이 비록 전문적인 능력이 필요없다고 해도 말이다. 그러니 매번 면접에서 떨어진다. 그래서 요구 조건을 조금 바꾼다. 재취업에 성공한다.

 

재취업에 성공했다고 바로 행복 시작이 아니다. 첫 직장은 그녀의 적성도 능력도 맞지 않는 회사였다. 남들이 볼 때 너무 쉽게 선택했다고 할 수 있지만 수없이 면접에서 떨어진 그녀에게는 한줄기 빛과도 같은 일이다. 나름 열심히 노력해보지만 현실을 인정한다. 그 회사를 그만둔다. 그리고 다른 직장을 알아본다.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 료칸의 청소부다. 이전 직장이 자판을 두드리면서 책 편집하는 회사였다면 이번에는 몸을 빨리 놀려야 하는 일이다. 이 두 직장에서 모두 열심히 일하지만 그 스트레스 강도나 느낌이 완전히 다르다. 전 직장이 온갖 스트레스를 받았다면 이번 직장은 육체적인 힘은 들지만 자신의 삶을 계획하는 즐거움이 있다. 놀라운 변화다.

 

이런 변화가 화자의 관점이라면 부록에 나오는 딸의 관점은 또 새롭다. 일상이 가정에 한정되었을 때 엄마와 밖에 나가서 일을 하는 엄마의 모습은 다르다. 말이 더 많아졌고 내용도 다르다. 이전에는 엄마에게 집안 일 모두를 맡겼다면 이제는 가족들이 조금씩 분담해야 한다. 그리고 보너스 컷에서 보여주는 문장은 관점의 차이가 사람을 어떻게 만드는지 아주 잘 보여준다. 이런 것들이 많은 부분 공감하게 만들었다면 현실 속에서 이렇게까지 열심히 하는 직원을 보는 경우는 그렇게 흔하지 않다. 많은 부분 개인의 열정과 노력을 요구하는 부분도 약간 눈에 거슬린다. 그래서인지 료칸의 할머니 청소부들이 일을 빠르게 끝내고 칼퇴근하는 모습이 아주 멋지게 보인다. 하지만 경력단절 문제나 양질의 일자리를 구할 수 없다는 현실을 짚고 넘어가지 않은 것은 조금 아쉽다. 어떻게 보면 현실 만족을 다룬 판타지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장을 구하기 전이나 구하는 과정이 아주 현실적이다.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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