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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럼 다이어리
에마 치체스터 클락 지음, 이정지 옮김 / 비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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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개를 싫어하지 않지만 집안에서 키운 적이 딱 한 번 있다. 어머니가 치와와를 며칠 동안 키운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그 외는 항상 밖에서 키웠다. 진돗개, 풍산개, 잡종개 등 다양했다. 몇 마리는 가출을 했고, 몇 마리는 병으로 죽었다. 지금도 3마리를 키우고 있다. 어느 한동안을 제외하면 고향집에는 늘 개가 있었다. 한 번은 새끼를 여러 마리 낳아서 그 귀여운 강아지들이 집안을 뛰어다니는 것을 지켜본 적도 있다. 그때의 귀여움이란 정말!!! 반려동물에 관한 책을 읽을 때면 늘 이 기억들이 먼저 불쑥 튀어 오른다.

 

플럼은 후셀 종이고 잭러셀과 푸들이 섞인 휘핏의 잡종이다. 이 문장 속에 나온 품종 중 내가 아는 것은 푸들 밖에 없다. 그러나 어떤 모습일까 걱정할 필요 없다. 작가는 그림으로 플럼의 모습을 보여준다. 상당히 귀엽게 생긴 개다. 이 책은 작가가 블로그에 1년 동안 플럼의 이름으로 연재한 것을 책으로 낸 것이다. 그 시작은 1월 1일이고, 끝은 당연히 12월 31일이다. 실제로 이야기를 진행하는 것은 에마이겠지만 구성 상 플럼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런데 일반적인 만화처럼 컷을 구분해서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이 아니다. 한 컷 속에 하나의 상황을 그려낸 후 플럼을 의인화해서 그 감상을 나타낸 것도 적지 않다. 일반적인 만화의 구성과 완전히 다르다. 일기라는 것을 생각하면 당연한 구성일 텐데 말이다.

 

어떤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이 그리고 말하고 싶은 것을 블로그에 올린 것이다보니 날짜가 들쑥날쑥한다. 처음에는 이 날짜에서 어떤 규칙을 찾아볼까 하는 마음도 있었다. 보통 3~4일 간격이 많다 보니 더 그랬다. 하지만 플럼이 보여주는 다양한 활동과 모험과 친구 관계를 읽다가 놓쳐버렸다. 여기에 작가가 감정이입을 상당히 잘 해서인지 작가의 의견일 줄 빤히 알면서 플럼의 생각인 것처럼 착각하는 부분도 많았다. 플럼이 좋아하는 놀이 중 하나인 물놀이는 이 책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개들이 목욕을 싫어하고, 물도 싫어하는 것으로 알고 있던 나의 상식을 깨트리는 행동이었다. 실수로 물에 빠진 것처럼 보였다는 작가의 관찰이 나올 때는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 책은 정말 플럼에 대한 애정이 가득하다. 일상에 대한 정밀한 관찰과 애정이 없다면 결코 나올 수 없는 이야기다. 가끔 애견인이나 애묘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내가 상상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단순히 귀엽고 예쁘다는 평가를 뛰어넘어 함께 살고 같이 호흡해야만 알 수 있는 것들 말이다. 이럴 때면 늘 한 마리 키워볼까 하는 마음이 생긴다. 물론 금방 이성이 ‘정신차려!’라고 외쳐 그 마음이 사그라들지만.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왜인지 모르지만 플럼을 계속 수컷으로 생각했다. 나중에 암컷인 것을 알았을 때 이전까지 보여준 몇 가지 반응들이 새롭게 다가왔다. 특히 로켓과의 몇몇 장면은 더욱더!

 

간결한 선이지만 등장인물과 개들의 특징을 잘 잡아낸 그림은 수채화로 그렸고 전체적으로 화사하다. 반복되는 일상과 다양한 이벤트가 교차하는데 상당히 재밌다. 수컷으로 착각한 것처럼 처음에는 배경 지역이 뉴욕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영국이다. 작가의 직업이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보니 일반적인 직장인과 다른 시간대를 나온다. 이것이 이 일상을 낯설게 만들지만 플럼에게는 상당히 좋은 듯하다. 플럼의 행동에서 그 행복이 가끔 보이기 때문이다. 처음 몇 장을 아무 곳이나 펼쳐 읽었을 때는 낯설고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차분히 첫 장부터 읽으면서 그 낯섦은 반갑고 즐겁고 유쾌한 것으로 바뀌었다. 단숨에 읽을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그리고 실제 플럼의 모습이 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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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타이완에 가는 사람이 가장 알고 싶은 것들 - 2015~2016년 전면개정판 First Go 첫 여행 길잡이
정해경 지음 / 원앤원스타일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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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사실 몇 년 전에 타이베이를 한 번 다녀왔다. 3박 4일 일정으로 급하게 크리스마스 시즌에 갔다 왔다. 날씨가 좋은 편이 아니었다. 비도 오고, 생각보다 싸늘한 날씨였다. 급하게 가다 보니 숙소도 역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역까지 택시를 타고 나왔다. 그 후에 이동하는 것은 큰 무리가 없었다. 택시비도 그렇게 비싸지 않았고, 역 이름만 말하면 택시 기사가 잘 데려다 주었다. 하지만 제대로 준비하지 않고 떠난 탓에, 느긋한 일정으로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탓에 많은 곳을 보지 못했다. 대표적인 것이 예류에 너무 오래 머물다가 지펀을 놓친 것이다. 만약에 그때 이 책이 내 손에 있었다면 밤에 숙소에서 인터넷 검색을 하면서 일정을 짜는 일이 상당히 줄었을 것이다.

 

첫 타이완 여행 이후 몇 번 정도 다시 가려고 일정을 짰다. 그때마다 비행기 값이 너무 비싸거나 호텔 등이 없어 포기했다. 꽃보다 할배 대만 편이 나온 후는 더 힘들었다. 출장가는 직원들의 좌석이 없을 정도였으니 뭐 말할 필요도 없다. 추위에 약한 아내를 생각하면 겨울은 피하고 싶다. 그런데 이 동네 태풍도 자주 온다. 작년에 대만을 다녀온 직원 중 한 명은 비를 3일 동안 맞았다고 한다. 뭐 우리도 겨울에 부슬비를 맞고 다니기는 했지만. 이런 저런 날짜를 빼면 사실 갈만한 날은 많지 않다. 그 유명한 망고빙수를 먹기 위해서는 10월 전에는 가야 한다. 점점 시간 짜기가 힘들어진다. 하지만 대만 여행 서적을 보면서 먹고 싶은 것과 가고 싶은 곳이 늘어났다.

 

이 책은 정말 첫 타이완 여행을 가려고 하는 사람에게 맞추었다. 얼마 전에 본 <오사카 편>과 도입부는 비슷하다. 일정은 기본적으로 5박 6일인데 일반 직장인이 타이완을 이렇게 다녀오기는 쉽지 않다. 저자도 일정에 맞춰 이 책에 나온 여행지를 조정하면 된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부지런 사람들이라면 하루에 한두 곳 정도를 더 돌아다닐 수 있을 것이고, 나처럼 느긋한 사람은 늦게 움직이면서 하루에 한두 곳 정도 그냥 놓칠 것이다. 자유여행의 묘미가 바로 여기에 있으니 큰 불만은 없다. 늘 말하는 것이지만 다음에 다시 오면 된다. 뭐 몇 년째 다시 오면 된다고 말해 놓고 못가고 있는 현실이기는 하지만.

 

갑자기 떠난 타이완 여행이었던 지난 여행은 몰라도 너무 몰랐다. 이 책에 나오는 몇 곳을 돌아다녔지만 빡빡한 일정은 아니었다. 인터넷 검색으로 첫 목적지와 다음 목적지를 연결했는데 실수를 하면서 걷다가 유명한 곳을 방문하게 되기도 했다. 101빌딩은 전철이 개통되지 않았을 때라 전철역에서 걸어갔다. 걸어가는 동안 본 것은 수많은 백화점과 럭셔리 브랜드 매장들이었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때라 그런지 젊음의 열기가 가득했다. 솔직히 101빌딩은 그렇게 매력적이지 않았다. 빌딩 안에 있다는 거대한 추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보기는 했는지. 생각나는 것은 101빌딩 딘다이펑에서 1시간 이상 기다려 밥을 먹었다는 것 정도다.

 

사실 최근에 읽은 책이나 꽃할배를 통해 본 대만의 음식은 너무 맛나 보였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 중국 음식 특유의 향이 너무 강해 스린 야시장에서 산 지파이도 사실 먹다가 버렸다. 화덕에 구운 빵은 맛있게 먹었지만 야시장을 감싸 도는 향기가 너무 강해 쉽게 적응할 수 없었다. 준비없이 간 곳이다 보니 음식을 제대로 선택할 수도 없었다. 지파이 정도가 유명했고 다른 음식은 잘 몰랐다. 예류에서 그냥 들어간 식당의 음식이 예상 외로 잘 맞았지만 수세미 조각이 나오면서 기분을 버렸다. 시먼딩을 돌면서 주전부리를 몇 개 사먹었지만 역시 잘 모르다보니 책 등에서 본 맛나 보이는 음식들을 그냥 지나갔다. 솔직히 이 책을 보면서 가장 아쉬웠던 것은 바로 이 음식들이다.

 

내가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간단하다. 다시 타이완을 가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때 놓친 장소와 음식을 이번에는 한 번 경험해보기 위해서다. 생각보다 세밀한 정보가 있어 책을 기본으로 하고, 인터넷 검색을 한다면 더 좋은 여행이 될 것 같다. 물론 간 곳 중 좋았던 곳은 다시 가고 싶고, 그때 가지 못한 곳은 이번에는 시간을 내서 꼭 가고 싶다. 몇몇 식당 정보를 자세히 조사해서 그 음식들을 맛보고 싶다. 처음 타이완에 가려는 사람에게는 기본 안내서가 될 것이고, 나처럼 한 번 이상 갔다 온 사람은 추억과 함께 아쉬움을 남긴 장소와 음식을 찾아가는 계기가 되는 책이다. 아! 빨리, 다시, 조금 더 길게, 그곳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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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 뺏기 - 제5회 살림 청소년 문학상 대상 수상작 살림 YA 시리즈
박하령 지음 / 살림Friends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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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 소설은 좋아하지만 청소년 문학은 잘 읽지 않는 편이다. 흔한 말로 빤한 내용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 소설도 그런 점이 없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다. 5회 살림 청소년 문학상 대상 수상작이란 타이틀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통의 청소년 소설이 지닌 그 시절의 먹먹하고 한숨이 절로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란 부분에 눈길이 갔다. 내가 걸었던 길을 답습하는 청소년의 모습이 아니라는 소개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기대는 어느 정도 맞아떨어졌다. 나와 다른 삶을 살아가는 청소년들의 모습은 알게 모르게 나의 과거와 비교하게 되고, 현재의 청소년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살짝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의자 뺏기. 제목만 보면 치열한 경쟁을 다룬 소설 같다. 하지만 이 의자 뺏기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것이 아니다. 작가는 주인공 은오를 통해 살아남기 위해 남의 것을 빼앗자는 살벌한 의자 뺏기가 아닌 자생력을 가지고 자기 의지로 몸소 움직여 자기 몫을 낚아채자는 의미의 건장한 의자 뺏기를 말한다. 그것을 위해 일란성 쌍둥이 자매 은오와 지오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 둘은 다른 환경에서 자랐고, 현재도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지오가 부모님 밑에서 소위 말하는 엘리트 코스를 밟고 살았다면 언니 은오는 외할머니와 함께 부산에서 살아야만 했다. 이 차이는 이 자매가 서로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뺏는 역할을 한다.

 

처음엔 지오를 질투하는 승미의 작은 음모가 진행된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식 자뻑에 빠져 있는 지오는 이 음모를 무시한다. 이때 승미는 은오를 살짝 자기 편으로 당긴다. 상대적으로 지오에 대한 열등감과 반감이 있던 은오는 살짝 거리를 둔 채 승미 편에 기댄다. 부산에서 전학 온 후 제대로 된 친구가 없던 그녀에게 반의 실세인 승미를 거슬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초등학교 때 엄마가 임신한 동생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은오를 외할머니 곁에 놓아둬야 한다고 설득하고 갔고, 그 후 오랫동안 부산에서 살아야만 했다. 어머니가 죽은 후 전학을 했다. 보통은 동생 지오가 언니와 친해지고 서로 도움을 줘야 하는데 이 둘은 서로 낯설기만 하다. 은오는 지오를 부러워하고 질투한다. 부산에서 살게 된 것이나 그 후 주변 가족이 그녀에게만 일방적으로 희생과 양보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승미는 자신이 가담한 밴드 짜장의 분장을 은오가 맡아줄 것을 요구한다. 당연히 콜이다. 그곳에서 어린 시절 낯선 부산 생활의 힘겨움을 조금이나마 덜어주었던 소년 선집을 다시 만난다. 선집과의 기억은 어린 시절 그녀의 기억을 풀어내는 역할을 한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소녀의 일상을 즐거움으로 채워주었던 그 소년은 이제 그녀 가슴 속에 살랑살랑 봄바람처럼 파고든다. 감정은 자신이 생각하지 못한 순간 거대한 존재가 된다. 하지만 선집은 좋아하는 아이가 따로 있다. 바로 지오다. 이 둘이 만나게 된 것은 지오 탓이었는데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은오가 이 둘을 만나게 한다. 이후 여고생의 마음고생과 방황이 아주 짧게 나온다. 자기 몫을 찾으려는 소녀의 노력이 펼쳐진다. 당연히 쉽지 않다. 하지만 읽으면서 그녀의 밝은 성격과 행동이 그녀에게 빠져들게 만든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경쟁의 의자 뺏기가 아닌 건강한 의자 뺏기가 시작한다.

 

단순히 청소년들만 나오지 않는다. 은오의 삶에 영향을 미친 것은 당연히 부모의 삶이다. 은오를 할머니에게 맡긴 것도 다른 속내가 있었다. 일거양득을 노린 것인데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모성애의 진한 모습은 사라지고 자신의 욕망만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 현실이 사실 불편하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상황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엄마의 재혼을 막고, 그 돈으로 한 재산을 쌓지만 한 순간 다 날려버린다. 사고도 생긴다. 그 이후의 몫은 살아남은 아이들과 할머니 것이다. 아주 참혹한 삶의 환경은 아니지만 안타까운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리고 각자가 자신의 몫을 찾으려고 하고, 그 와중에 누군가의 희생과 양보를 요구하는 일이 생긴다. 은오가 폭발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녀가 더 많이 분노할수록 자신의 삶을 제대로 보고 제 자리를 찾게 된다. 이 부분은 아주 좋았다. 다만 이 자매가 화해하는 것이 너무 급하고 도식적이라 아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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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진실을 말하는가 -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이 쓴 음모론과 위험한 생각들
캐스 선스타인 지음, 이시은 옮김 / 21세기북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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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론에 대한 책으로 잘못 알고 선택했다. 음모론이란 단어가 강하게 나와 있어 착각했다. 물론 음모론도 나온다. 원제도 ‘음모론과 다른 위험한 생각들’이다. 하지만 음모론은 열한 개 장 중에서 겨우 한 장만을 차지할 뿐이다. 음모론을 본격적으로 다룬 듯한 제목 때문에 목차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 실제 내용은 위험한 생각들에 대한 것이 더 많다. 그 위험한 생각들이란 것도 정치적 견해나 철학이나 인식의 차이에서 발생한 것들이다. 조금 가볍게 읽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했는데 상당히 무거운 주제들이 나왔다. 단숨에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분명 아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게 읽은 장은 역시 음모론을 다룬 1장이다. 여기서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사건은 9·11 사태다. 저자는 이 사건이 음모론에서 주장하는 대로 진행된 것이라면 그 많은 조사원들을 어떻게 모두 속일 수 있는지 의문을 드러낸다. 그리고 음모론에 대해 명백한 허위 음모론과 사실인 음모론을 구분한다. 당연히 9·11 사태는 명백한 허위 음모론이다. 지금까지 나온 수많은 음모론 모두가 사실무근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정보가 개방적인 사회에서는 음모론이 정당성을 잃게 되고, 정보 창출 기관이 편향되거나 왜곡된 사회에서는 모든 공식적인 발표를 전부 혹은 대부분 불신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최소한 미국은 전자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그럼 우리나라는 어떨까? 아마도 후자에 가까울 것이다. 정치와 사회 문제에 관련해서 무수히 많은 음모론이 나오지만 이를 명확하게 밝혀주는 자료는 너무나도 없다. 발표된 것조차 너무 허술하다.

 

2장은 정부의 개입을 다룬다. 신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시장 우선과 최소한의 정부 개입은 자신들의 부만을 보호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정부의 개입을 가장 소리 높여 비난하는 사람들도 매일같이 정부에 의존한다. 그들의 권리는 정부의 산물이므로 정부를 최소화해서는 보장될 수 없다.” 그들의 부를 지키기 위해 가장 자주, 또는 성공적으로 정부의 개입을 요청한 한 것도 바로 이들이다. 한국의 재벌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자주, 얼마나 많이 법을 이용하거나 공권력을 동원했는지 생각하면 너무나도 분명하다. 이후 이어지는 장들은 바로 이런 정부의 역할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비용·편익 분석이 이익집단의 압력을 막아내는 안전장치 역할을 하고, 정책의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한국에서 이 과정이 생략되면서 어떤 문제가 생겼는지 돌아보면 더 분명하다.

 

이후 동물권, 동성결혼, 기후협약, 종교집단의 성차별, 신진보주의, 최소주의자, 중도주의자 등에 대한 주제를 다룬다. 각 장에서 다루는 내용들이 어떤 것은 비교적 쉽게 다가오는 반면 어떤 것은 그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힘들었다. 아마 신진보주의부터가 아닌가 생각한다. 정책보다 정치 또는 헌법의 문제로 넘어가면서 저자가 주장하는 바가 뚜렷해지기보다 논점에 더 비중을 두면서 머릿속이 복잡해진 것 같다. 그가 동물권을 주장하고, 동성결혼을 찬성한다고 했을 때는 쉽게 다가왔지만 기후협약을 둘러싸고 논쟁거리를 나열할 때 명확한 답보다 문제점들이 더 많이 떠올랐다. 물론 이 문제들이 나와야 해결책도 나온다. 저자의 생각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도 물론 아니다.

 

종교집단의 성차별을 다룬 장에서 종교와 법률의 충돌을 말한다. 기본적으로 법의 테두리 안에서 종교가 작용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기본적인 큰 틀은 법과 종교가 상충하지 않지만 문화와 종교 간의 차이가 발생하면서 사회적 문제로 발전한다. 얼마 전 프랑스에 있었던 테러는 이 문제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건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현실에서 아직 여성들이 종교의 지도자 위치에 오르는 경우가 거의 없다. 천주교도 불교도 마찬가지다. 이슬람교는 더 하다. 이 성차별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 하는 것도 중요한 논쟁거리다. 저자는 종교의 자유는 자유 사회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므로 종교 집단에 성차별 금지법을 적용을 요구하면 지나치다고 살짝 한 발 물러난다. 그렇지만 이것을 정당화할 설득력 있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

 

나의 생각과 다른 부분이 많은 탓인지 아니면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이 나와 맞지 않은 탓인지 조금 힘들게 읽었다.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부분도 많다. 미국적인 내용이 대부분이다보니 많이 낯설었다. 논쟁들을 충돌시켜 그 의미를 깊게 파고들면서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기보다 나열하는 방식을 택하면서 깊게 생각하면서 읽지 않으면 길을 잃을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잘 모르는 용어들이 많이 등장하면서 의미를 파악하기가 힘들었다. 이것은 후반부가 특히 심했다. 음모론만을 생각하고 읽으면 큰 실망을 할 수 있지만 정부와 정책과 다양한 사회, 문화적 논쟁거리를 생각하고 읽는다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미국 보수주의자의 저자에 대한 평은 개인적으로 너무 과한 평가가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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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할런 코벤 지음, 이선혜 옮김 / 문학수첩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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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런 코벤의 2013년 작품이다. 그의 이전 작품처럼 평범한 사람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복잡한 이야기 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이번 작품의 주인공이자 화자인 제이크는 정치학 교수다. 제목에 나오는 6년은 그가 너무나도 사랑했던 운명의 여자 나탈리가 갑자기 그를 버리고 다른 남자와 결혼한 날로부터 지나온 시간이다. 이 소설의 시작도 바로 6년 전 그녀가 결혼하던 장면부터다. 그곳에서 그녀는 제이크에게 말한다. “약속해줘요. 우리를 내버려두겠다고 약속해줘요”라고. 제이크는 약속한다. 그 약속은 6년 동안 지켜졌다. 그 약속을 깨트린 것은 학교 홈페이지에 뜬 한 명의 부고 소식이다.

 

제이크는 그날 이후 나탈리를 잊지 못하고 있다. 교수로서의 본분을 다하면서 학교생활을 충실히 수행한다. 학생들과 면담을 하던 중 학교 홈페이지에 토드 샌더슨의 부고 소식이 뜬다. 평온했던 그의 세계가 잠시 흔들린다. 겨우 자신의 업무를 마쳤지만 그의 마음은 토드의 부고에 가 있다. 아니 정확히는 토드의 아내인 나탈리에게 가 있다. 6년 전 그녀와의 약속을 기억하지만 토드의 죽음이 그녀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란 단어였음을 상기하면서 자신의 욕망에, 사랑에 따라 움직인다. 토드의 장례식장에 간다. 그가 바란 것은 나탈리를 한 번 보는 것이다. 하지만 그곳에서 나탈리를 보지 못했다. 토드의 아내는 다른 여자였다. 그럼 나탈리와 결혼한 토드는 누구지?

 

토드의 죽음은 나탈리 찾기로 이어진다. 제이크가 원하는 것은 바로 나탈리다. 학교 교수 중 한 명이자 전직 요원인 산타에게 나탈리에 대한 최신 정보를 부탁한다. 그런데 그 어떤 정보도 나와 있지 않다고 말한다. 출입국 기록도, 세금을 낸 기록도, 신용카드를 사용한 기록도 없다. 인터넷 검색으로 다양한 정보를 검색할 수 있는 시대에 그녀는 6년 전 그날부터 완전히 사라진 것이다. 이제 제이크는 그녀를 찾기 위한 첫 단계로 그들이 처음 만난 곳으로 간다. 다시 간 버몬트 휴양소는 아무 것도 없다. 그녀를 처음 소개시켜 준 쿠키도 자신을 모른 척한다. 그 당시 그녀와 함께 한 사람들이 그녀를 모른 척한다. 이상하다. 왜 이들은 그녀를 모른 척할까?

 

어느 밤 한 남자가 그를 찾아온다. 나탈리를 찾아온 남자다. 그가 알고 싶은 것은 나탈리가 어디 있는 가 하는 것이다. 제이크가 가장 알고 싶어하는 것을 그도 알고 싶어 한다. 제이크가 차에 타기를 거부하자 밥이란 남자는 총을 꺼내고 폭력을 휘두르고 협박을 한다. 어쩔 수 없이 차를 타고 간다. 그런데 차 속에 있는 도구와 바닥을 보니 고문을 한 장소 같다. 거의 2미터의 키에 클럽 기도 역할을 했던 적이 있던 제이크는 빠르게 상황 판단을 한다. 그리고 이들과 싸운다. 잘못하면 총에 맞을 수도 있다. 이 격투는 오토라는 남자를 죽이고, 힘들게 달아나는 것으로 끝난다. 이제 사건은 단순히 추억 속 사랑했고 사랑하는 여자 찾기에서 폭력과 살인과 고문이 뒤섞인 사건으로 바뀐다.

 

보통의 남자라면, 보통의 연인이라면 여기서 아마도 나탈리 찾기를 멈췄을 것이다. 그도 마음속으로 몇 번이나 포기하려고 했다. 하지만 몸은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바라던 것을 향해 움직이게 만든다. 이제 그만해야지 하고 마음먹지만 얼마 가지 않는다. 밥을 만난 날 있었던 폭력 사건 때문에 휴직을 해야 하는 사태까지 생겼다. 이때 그녀를 소개시켜 주었던 쿠키에게서 연락이 온다. 그녀를 찾아간다. 알 수 없는 사람들이 그를 잡는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그들이 제이크를 협박한다. 나탈리는 이들과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그리고 토드는 과연 무슨 일을 한 것일까? 의문이 점점 쌓여간다. 그 사이로 조금씩 단서가 흘러나온다.

 

나탈리를 가장 찾고 싶어하는 사람은 당연히 제이크다. 하지만 나탈리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또 있다. 이들의 정체는 마피아의 하수인이다. 잔혹한 킬러다. 그리고 경찰도 나탈리를 찾는다. 제이크가 만나는 사람들은 모두 나탈리를 찾는다. 그에게 나탈리가 있는 곳을 말하라고 요구한다. 모두가 바라지만 누구도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다. 이런 와중에 제이크는 추억과 기억을 더듬어 단서를 하나씩 발견하고 비워져 있던 퍼즐을 하나씩 채워나간다. 하지만 어디에도 나탈리는 보이지 않는다. 믿었던, 알고 있던 사실이나 관계가 흔들리고 새로운 사실이 나온다. 어느 순간 나탈리가 과연 살아있는지, 실재했는지 의문이 생긴다. 제이크가 원하는 것은 단 하나 나탈리다. 하지만 그녀의 적들도 그녀를 원한다. 전형적인 미스터리 공식대로라면 제이크를 따라가서 나탈리를 찾겠지만 이 소설은 그 형식을 따라가지 않는다. 속도감 있는 전개와 잘 짜인 구성은 역시 코벤이란 감탄을 자아내게 만든다. 이들의 사랑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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