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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진실을 말하는가 -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이 쓴 음모론과 위험한 생각들
캐스 선스타인 지음, 이시은 옮김 / 21세기북스 / 2015년 2월
평점 :
음모론에 대한 책으로 잘못 알고 선택했다. 음모론이란 단어가 강하게 나와 있어 착각했다. 물론 음모론도 나온다. 원제도 ‘음모론과 다른 위험한 생각들’이다. 하지만 음모론은 열한 개 장 중에서 겨우 한 장만을 차지할 뿐이다. 음모론을 본격적으로 다룬 듯한 제목 때문에 목차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 실제 내용은 위험한 생각들에 대한 것이 더 많다. 그 위험한 생각들이란 것도 정치적 견해나 철학이나 인식의 차이에서 발생한 것들이다. 조금 가볍게 읽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했는데 상당히 무거운 주제들이 나왔다. 단숨에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분명 아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게 읽은 장은 역시 음모론을 다룬 1장이다. 여기서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사건은 9·11 사태다. 저자는 이 사건이 음모론에서 주장하는 대로 진행된 것이라면 그 많은 조사원들을 어떻게 모두 속일 수 있는지 의문을 드러낸다. 그리고 음모론에 대해 명백한 허위 음모론과 사실인 음모론을 구분한다. 당연히 9·11 사태는 명백한 허위 음모론이다. 지금까지 나온 수많은 음모론 모두가 사실무근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정보가 개방적인 사회에서는 음모론이 정당성을 잃게 되고, 정보 창출 기관이 편향되거나 왜곡된 사회에서는 모든 공식적인 발표를 전부 혹은 대부분 불신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최소한 미국은 전자에 해당한다고 주장한다. 그럼 우리나라는 어떨까? 아마도 후자에 가까울 것이다. 정치와 사회 문제에 관련해서 무수히 많은 음모론이 나오지만 이를 명확하게 밝혀주는 자료는 너무나도 없다. 발표된 것조차 너무 허술하다.
2장은 정부의 개입을 다룬다. 신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시장 우선과 최소한의 정부 개입은 자신들의 부만을 보호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정부의 개입을 가장 소리 높여 비난하는 사람들도 매일같이 정부에 의존한다. 그들의 권리는 정부의 산물이므로 정부를 최소화해서는 보장될 수 없다.” 그들의 부를 지키기 위해 가장 자주, 또는 성공적으로 정부의 개입을 요청한 한 것도 바로 이들이다. 한국의 재벌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자주, 얼마나 많이 법을 이용하거나 공권력을 동원했는지 생각하면 너무나도 분명하다. 이후 이어지는 장들은 바로 이런 정부의 역할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비용·편익 분석이 이익집단의 압력을 막아내는 안전장치 역할을 하고, 정책의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한국에서 이 과정이 생략되면서 어떤 문제가 생겼는지 돌아보면 더 분명하다.
이후 동물권, 동성결혼, 기후협약, 종교집단의 성차별, 신진보주의, 최소주의자, 중도주의자 등에 대한 주제를 다룬다. 각 장에서 다루는 내용들이 어떤 것은 비교적 쉽게 다가오는 반면 어떤 것은 그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힘들었다. 아마 신진보주의부터가 아닌가 생각한다. 정책보다 정치 또는 헌법의 문제로 넘어가면서 저자가 주장하는 바가 뚜렷해지기보다 논점에 더 비중을 두면서 머릿속이 복잡해진 것 같다. 그가 동물권을 주장하고, 동성결혼을 찬성한다고 했을 때는 쉽게 다가왔지만 기후협약을 둘러싸고 논쟁거리를 나열할 때 명확한 답보다 문제점들이 더 많이 떠올랐다. 물론 이 문제들이 나와야 해결책도 나온다. 저자의 생각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도 물론 아니다.
종교집단의 성차별을 다룬 장에서 종교와 법률의 충돌을 말한다. 기본적으로 법의 테두리 안에서 종교가 작용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기본적인 큰 틀은 법과 종교가 상충하지 않지만 문화와 종교 간의 차이가 발생하면서 사회적 문제로 발전한다. 얼마 전 프랑스에 있었던 테러는 이 문제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건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현실에서 아직 여성들이 종교의 지도자 위치에 오르는 경우가 거의 없다. 천주교도 불교도 마찬가지다. 이슬람교는 더 하다. 이 성차별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 하는 것도 중요한 논쟁거리다. 저자는 종교의 자유는 자유 사회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므로 종교 집단에 성차별 금지법을 적용을 요구하면 지나치다고 살짝 한 발 물러난다. 그렇지만 이것을 정당화할 설득력 있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
나의 생각과 다른 부분이 많은 탓인지 아니면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이 나와 맞지 않은 탓인지 조금 힘들게 읽었다.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부분도 많다. 미국적인 내용이 대부분이다보니 많이 낯설었다. 논쟁들을 충돌시켜 그 의미를 깊게 파고들면서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기보다 나열하는 방식을 택하면서 깊게 생각하면서 읽지 않으면 길을 잃을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잘 모르는 용어들이 많이 등장하면서 의미를 파악하기가 힘들었다. 이것은 후반부가 특히 심했다. 음모론만을 생각하고 읽으면 큰 실망을 할 수 있지만 정부와 정책과 다양한 사회, 문화적 논쟁거리를 생각하고 읽는다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미국 보수주의자의 저자에 대한 평은 개인적으로 너무 과한 평가가 아닌가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