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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서 온 아이
에오윈 아이비 지음, 이원경 옮김 / 비채 / 2016년 6월
평점 :
품절
1920년 알래스카에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이 소설을 이끌어 가는 두 인물, 메이블과 잭이 번갈아 가면서 등장한다. 이 둘은 부부고, 메이블이 낳은 아기가 바로 죽은 후 더 이상 아이를 가지지 못하고 있다. 나이가 들고, 아이가 없다는 이유로 메이블은 주변 사람들의 쑥덕거림 속에서 살아야 했다. 쉽지 않은 삶이다. 견디기 힘들어 선택한 곳이 알래스카다. 둘 만이 살 수 있는 더 넓은 대지에 농장을 개척할 수 있다는 유혹에 넘어가 온 곳이다. 아니 정확하게 표현하면 도피다. 하지만 차가운 대지인 알래스카는 쉬운 곳이 아니다. 더 이상 젊지 않은 잭에게는 더욱 힘들다. 부부 사이는 하루하루 힘겨움만 존재한다. 이런 그들에게 변화가 오는 것은 눈으로 한 소녀를 만든 다음부터다.
러시아의 ‘눈 소녀’ 이야기를 바탕으로 대자연 속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눈 소녀는 잭과 메이블이 눈사람을 만든 후 나타났다. 메이블 둘러 준 옷 등을 입고. 처음에 이 소녀가 등장했을 때 둘은 환상으로 생각했다. 나중에 이 소녀 파이나를 만난 후에 다른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었을 때는 그들이 이 소녀를 환상으로 생각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이들의 반응은 당연하다. 그 추운 알래스카의 겨울에 소녀 혼자서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파이나는 실재했다. 비록 현실과 환상 사이에 살아가는 그녀지만.
개척민이 되어 농지를 개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이가 있기에 더욱 그렇다. 이런 그들에게 이웃이 생긴다. 조지와 에스더 가족이다. 메이블은 홀로 살기를 원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녹하지 않다. 긴 알래스카의 겨울을 보내기 위한 준비조차 되어 있지 않아 어쩌면 탄광에서 일해야 할지 모른다. 이런 그들에게 겨울을 날 방법을 가르쳐 주는 사람이 조지다. 사냥으로 잡은 무스 고기로 긴 겨울을 보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잭은 사냥에 서툴다. 이런 그에게 행운이 다가온 것은 파이나를 만난 다음이다. 파이나를 좇다가 거대한 무스를 잡은 것이다. 이 일은 조지의 아들 개렛으로 하여금 잭을 존경하게 만든다.
척박한 대지에서 홀로 산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메이블과 잭의 처음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조지가 찾아와 서로 돕자고 했을 때, 조지의 아내 에스더를 만나 이야기를 나눌 때 이 부부 사이에 얼어 있던 감정이 녹아내린다. 그리고 눈에서 온 아이 파이나가 등장하면서 자신들이 잊고 있던 감정들을 되살린다. 이후 메이블 부부는 에스더 가족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는다. 잭이 곰에게 놀란 말에 끌려다니는 큰 상처를 입었을 때도 이 부부가 없었다면 죽거나 옛집으로 돌아갔어야 했을 것이다. 외롭고 힘든 곳일수록 공동체가 왜 필요한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에스더 가족이 보여준 행동은 점점 사라지고 있는 공동체의 참모습을 떠올려주었다.
판타지 소설이 아니다. 현실의 무거움을 바탕으로 힘들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다. 하지만 파이나의 존재는 현실을 뛰어넘는다. 메이블은 자신이 읽은 동화의 기억으로 파이나를 눈 소녀로 생각하고, 잭은 파이나의 아빠를 묻어준 것 때문에 자연 속에 힘들게 살아가는 소녀로 생각한다. 이 차이는 둘의 충돌을 불러오기도 한다. 서로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나중에 서로 이 사실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때부터 메이블의 행동이 바뀐다. 눈 소녀를 버려진 소녀로 생각하는 것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방식으로 파이나를 키우려고 한다. 소녀는 거부한다. 늘 그렇듯이 파이나는 겨울이 끝나면 사라졌다가 첫눈과 함께 돌아온다.
눈에서 온 소녀 파이나의 성장은 현실적이다. 하지만 어떻게 그녀가 홀로 그 긴 겨울을 보냈는지는 명확한 답이 없다. 그녀가 사냥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 그 추운 한 겨울을 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와 대비되는 현실의 모습을 보여주는 인물이 메이블 부부다. 땅을 갈고, 씨앗을 뿌리고, 수확하는 힘든 일을 반복한다. 충분한 수확이 없으면 사냥으로 고기를 비축해야 한다. 외롭고 긴 겨울을 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현실적인 묘사가 섬세하게 그려져 있다. 고되고 힘든 삶의 모습이다. 하지만 ‘눈이 와’란 마지막 문장을 읽고 난 후에는 강한 울림이 가슴에 와 닿았다. 그들이 겪은 힘들고 고되었던 일들은 뒤로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