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오름 여행 - 제주의 속살로 떠나는 특별한 감성 여행
김다니엘 글.사진 / 북카라반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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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름을 처음 의식한 것은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7> 제주편을 읽었을 때다. 하지만 읽고 2년이 지난 후 가면서 책보다는 그곳에 사는 후배의 정보에 더 의존했다. 2박 3일의 짧은 일정 속에 제주 일주를 하면서 꽤 많은 곳을 둘러보았고, 맛있는 음식도 많이 먹었다. 인터넷 검색과 현지인의 정보가 결합한 결과다. 이때 일정을 짜면서 오름에 관심을 두었지만 오름이라고 부르는 곳을 간 곳은 한 곳이다. 바로 윗세오름이다. 후배의 강력한 추천이 있어 반나절을 투자해 다녀왔다. 힘들지만 멋있었다. 지금도 가끔 생각난다. 그런데 이 책에 그 오름이 나오지 않는다. 가장 유명한 곳인데 왜일까? 이 책의 목차를 보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 중 하나다.

 

목차를 보면서 낯익은 곳이 몇몇 보인다. 성산일출봉, 수월봉, 송악산 등이다. 이 세 곳 모두 다녀왔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한 성산일출봉이 만족도가 가장 떨어졌고, 송악산이 만족도가 가장 높았다. 기대치와 비교했을 때 이야기다. 그런데 내가 이곳을 여행할 때 단 한 번도 이곳이 오름이란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나의 오름에 대한 지식은 오름이란 이름이 붙어야만 오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목차를 보면서 둘러본 곳이 나와 괜히 반가웠다. 얼마 전 송악산 정상에서 찍은 사진을 다시 볼 기회가 있어 더 반가웠는지 모른다.

 

제주에는 320여개의 오름이 있다고 한다. 그 중에서 내가 둘러본 곳은 정말 몇 되지 않는다. 많은 오름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오름 여행을 제대로 해볼 생각은 거의 하지 못했다. 그러다 윗세오름을 다녀온 후 살짝 오름에 대한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왔다. 5월의 뜨거운 햇살과 강한 바람과 멋진 풍경 등이 자연스레 떠올랐기 때문이다. 눈을 감아도 그때의 풍경 중 몇몇이 그냥 스쳐지나간다. 좋은 후배 덕분에 알찬 일정을 보냈다는 생각을 늘 하는데 이번에 한 번 더 느꼈다. 그리고 그가 추천한 곳 중 가보지 못한 몇 곳이 떠오른다. 다시 제주에 가면 한 번 둘러볼 생각이지만 현실의 여건이 그렇게 녹녹하지 않다. 하지만 바람은 조용히 가슴속으로 불어온다.

 

모두 35곳의 오름을 다루는데 이 모든 오름을 저자는 한 달 동안 다녔다. 실제는 60여곳을 다녔다고 한다. 목적의식이 꽤 괜찮은 안내서 한 권을 만들었다. 물론 오름에 대한 정보로 가득한 사이트가 있을 수 있지만 책으로 묶여 나온 것은 그렇게 흔하지 않다. 그리고 아주 가끔 봤던 예능에서 나왔던 오름이 말해질 때 올해 다녀올 수 있을까 하는 바람이 생겼다. 혼자 다닌다면 부담없이 다녀올 수 있는 오름들이지만 가족과 다리가 불편한 장모님을 모시고 갈 예정이다 보니 갈 수 있는 곳이 굉장히 한정적이다.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난이도를 확인해야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너무 생각이 많은 것일까?

 

구성은 간단하다. 각 오름별로 난이도와 평점을 표시했다. 개인적인 의견일지라도 이 정보가 내가 갈 경우 하나의 척도가 된다. 평점보다 난이도에 더 비중을 두겠지만. 개인적으로 이 책에 실린 사진들이 오름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살렸다는 느낌이 없다. 아쉬운 대목이다. 하지만 기획에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그리고 하나의 오름이 끝난 후 한쪽으로 정리한 ‘보일 듯 말 듯 제주 속살’은 제주에 대한 간략한 정보를 전해준다. 단편적으로 알고 있던 것을 정리하게 하고, 잘못 알고 있던 것을 다시 배운다. 알 수 없는 것은 네 장으로 나눈 것의 기준이다. 나만 모르나?

 

이 책을 선택했을 때 가장 중요했던 것은 정보다. 다시 제주도에 가면 둘러볼 오름을 찾는 것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몇몇 곳을 찜해 놓았다. 다시 제주에 간다면 가보고 싶은 곳이다. 송악산은 한 번 더 가보고 싶은데 산 정상을 막은 듯해 아쉽다. 다랑쉬오름, 용눈이오름, 금오름, 붉은오름, 영주산 등이 대표적으로 가보고 싶은 곳이다. 물론 언제 이곳들을 둘러볼지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제주 여행을 꿈꾸었고, 일정을 머릿속에 그려봤다. 너무 많은 제주 여행 방송 중 오름에 대한 것은 거의 보지 못했는데 누군가 이 책을 읽고 제주 오름을 기획하고 만든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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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혜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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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책장에 편혜영의 책이 몇 권 있다. 그런데 한 권도 제대로 읽은 적이 없다. 한참 한국 소설을 모을 때 산 책들이다. 최근 십 년 동안은 장르소설에 빠져 한국 문학을 열심히 읽지 않았다. 물론 여기에는 몇 번이나 말한 지극히 사적이고 감상적인 문학들에 지쳤던 기억도 한몫했다. 그 사이에 좋은 작가들이 계속 등장했고, 어떤 문학상은 거의 끊었다. 좋아하는 문학상 작품은 비교적 열심히 읽었다. 그 사이에 편혜영의 작품은 없었다. 어딘가에서 읽은 듯한 자극과 엽기란 단어가 왜 이 작가에게 붙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늘 순서가 뒤로 밀렸다. 그러다 처음으로 이 작가의 소설을 읽었다.

 

장편소설이라고 하지만 겨우 200여쪽에 불과하다. 한쪽의 분량도 다른 책의 삼분의 이 정도다. 시간이 나면 단숨에 읽을 수 있는 분량이란 말이다. 개인적인 일이 바빠 며칠 동안 읽었는데 가독성이 좋았다. 문장은 간결했다. 헤밍웨이의 소설을 읽을 때 받았던 느낌이랄까. 군더더기 없는 문장들은 주인공 오기의 몸 상태와 잘 맞다. 불필요한 대사나 묘사를 제외한 건조한 문장은 오기의 일인칭 서술을 통해 그 힘을 발휘한다. 처음 예상했던 몇 가지 추측은 뒤로 가면서 바뀐다. 그 사이를 채워주는 것은 흔한 장애인을 둘러싼 이해관계자들의 욕심이다. 하지만 이 욕심이 주된 내용은 아니다.

 

오기는 아내와 여행을 가다 교통사고를 당한다. 아내는 죽고, 그는 살아남았다. 살아남았지만 몸은 마비상태다. 안면은 재건수술을 받아야 할 정도고, 손발은 움직일 수 없다. 눈을 움직일 수 있지만 이것만으로 자신의 의사를 완전히 표현하는 것은 좋은 의사나 간호사를 만나는 영화나 소설 속의 환상적인 경우에만 해당된다. 눈꺼풀을 움직여 간단하게 예, 아니오 라고 표현할 수 있지만 그 어떤 소리도 내지 못한다. 그의 비극은 바로 이 지점에서 생긴다. 자신의 주변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대해 그의 의견은 하나도 반영되지 않는다는 것.

 

마비상태의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그에게는 가족이 없다. 부모는 모두 죽었고, 자식도 없다. 유일하게 가족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장모뿐이다. 처음 그의 사고를 듣고 나타난 장모의 모습은 보통의 장모와 다를 바가 없다. 아내의 다이아몬드 반지를 욕심낼 때도 그 소박함에 그럴 수도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장모가 그의 법적 대리인이자 보호자 역할을 하면서 그의 주변에 비이성적인 일들이 벌어진다. 그 첫 번째 일이 사이비 목사가 나타나 그의 완치 기도를 한 것이다. 적지 않은 금액의 기도비를 받아가면서. 이 정도는 소설 속 간병인과의 대화를 통해 흔히 일어나는 일들임을 알 수 있다. 의학보다 신앙의 힘에 기대 병을 완치하려는 사람들은 언제나 늘 있기 때문이다.

 

간병인의 아들이 나타나 집에서 술을 마시고, 그를 병신이라고 부를 때 감정이입되었다. 흔한 감상이다. 장모가 집에서 술 냄새를 맡고, 간병인이 딸의 보석들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 내쫓는다. 흔한 반응이다. 그리고 장모가 간병인 역할을 한다. 역시 흔한 일이다. 하지만 이 간병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장모는 사위의 자산을 관리하면서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고 말하고 줄여야 한다고 말한다. 숫자를 휙 하고 보여주지만 그 숫자를 볼 수가 없다. 겨우 왼팔을 조금 움직일 수 있게 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흔했던 일들이 정상적인 궤도를 벗어난다. 감상은 사라지고, 어느 순간 추리로 바뀐다. 한 편의 스릴러를 보는 것 같다.

 

장모가 간병인이 되면서 그에게 일어난 최악의 일은 외부와의 단절이다. 어둠이다. 외로움이다. 병원도 제대로 데리고 가지 않는다. 물리치료사도 그가 쓴 단어를 장모에게 보여준다. 상상력은 이때 힘을 발휘한다. 그리고 장모는 아내가 애써 가꾼 정원을 뒤엎고 구멍을 판다. 무슨 용도일까? 정원수를 옮긴다. 그의 시선을 외부와 차단시킨다. 이제 오기의 생각은 과거의 한 지점으로 향한다. 이 회상 속에서 독자는 이 구멍에 대한 상상력을 발휘하게 된다. 사고의 진실이 무엇인지 밝혀질 때도 오해와 사실은 미묘하게 뒤섞여 있다. 오기가 장모에 대해 느끼는 감정에 따라 상황의 분위기가 바뀐다. 어떤 때는 연민과 동정이, 어느 순간은 한편의 공포물 같다. 이 모든 것들 중에서 시선을 끄는 문장이 하나 있다. 마지막 문장이다. “그저 그럴 때가 되어서였다.”(209쪽) 삶의 한 모습을 아주 잘 표현한 문장이다. 여운을 남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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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그리고 엄마
마야 안젤루 지음, 이은선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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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 안젤루. 세계인의 영원한 멘토라고 하지만 나에게는 낯선 이름이다. 미국 문학에서 그녀가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 잘 모르고, 그녀의 작품 중 내가 기억하는 작품이 지금 당장 하나도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편협한 독서 이력이 그녀에 대한 무지로 이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사진을 보면 어딘가에서 본 듯도 하지만 자신은 없다. 물론 이런 홍보가 없다고 해도 이 책은 매력적이다. 자신과 엄마의 삶을 간결하면서도 진솔하게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부분에서는 너무 진솔해서 놀라울 정도다.

 

이 책은 그녀가 일곱 번째로 발표한 에세이이자 마지막 발표작이다. 문학가가 되기 전 그녀의 삶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이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게 된 것도 엄마의 영향이 크다. 이 책 속에서 만나는 엄마는 자라면서 늘 옆에서 앞에서 뒤에서 우리를 돌봐주시든 그 엄마 이상이다. 물론 이런 엄마가 있다고 해서 이런 삶을 살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녀 자신이 용기와 의지를 가지고 삶에 도전하고 노력해야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그녀가 십대에 흑인 중 아무도 하지 못한 차장을 하게 된 사연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엄마가 용기를 심어주었다고 해도 그녀의 의지와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 에세이는 그녀의 탄생부터 엄마의 죽음까지 다룬다. 한 인물의 일세기를 다루는 것에 비해 분량은 아주 적다. 손에 쥐고 조금만 집중하면 단숨에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읽는 동안 그녀와 엄마 비비언 백스터의 삶과 그 굴곡에 놀라게 된다. 그녀들의 사랑은 어떻게 사랑하게 되었는지에 더 집중하지 이전투구와 같은 이혼은 거의 다루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부분에서는 왜 이들이 이렇게 많은 결혼을 하게 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남아 있다. 혹시 이 부분을 알기 위해서 다른 책을 읽어야 한다면 읽을 용의가 충분히 있다.

 

그녀가 일곱 살에 성폭행을 당했다는 사실보다 열여섯에 아들을 낳았다는 사실이 더 놀랍다. 이 사실을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산달에 다가와 겨우 말하게 된 그녀와 이 사실을 안 엄마의 반응은 충분히 감동적이다. 한국이라면 보통 낳은 아기를 엄마와 함께 힘들게 키우고, 엄마의 도움을 많이 받겠지만 그녀는 자립한다. 엄마가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 와중에 한 남자의 오해와 질투가 그녀를 죽음에 이를 정도까지 만든다. 이때 그녀를 찾아 도와준 것도 엄마다. 그녀의 사업체가 도박장이었는데 보통의 여장부라면 감히 할 수 없는 일이다. 다혈질적인 모습을 보여주면서 살짝 긴장감을 심어주기도 한다.

 

마야도 평범하지 않지만 비비언은 더 대단하다. 남편과 이혼을 결정하고 이 아이들을 친할머니에게 맡긴 후 다시 찾아 키운다. 자신의 어리고 미숙한 부분을 인정하고 자신감을 드러내는 부분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마야를 때린 후 오빠가 보여준 행동에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섬세함도 있다. 마야가 스웨덴에서 영화를 촬영할 때 그녀의 요청으로 분위기를 반전시킨 것도 그녀다. 이것을 보면 엄마는 마야에게 최고의 해결사이자 멘토다. 이 에세이는 그런 엄마에게 바치는 헌사와도 같다. 자식을 키우는 부모에게는 자신의 자식을 어떻게 키워야 할지 고민할 때 많은 도움을 줄 것 같다. 어떤 부분에서는 너무 냉정하여 엄마가 맞나? 하는 의문이 생길 정도였다. 그러나 분명하게 엄마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최근에 본 혹은 읽은 것들 중 가장 멋진 엄마와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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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하는 모든 것들의 소음
후안 가브리엘 바스케스 지음, 조구호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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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 문학은 참으로 낯설다. 이 문장을 적어 놓고 인터넷으로 검색하니 낯익은 작가가 나온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다. 마르케스의 경우 늘 라틴아메리카 문학으로만 인식하다보니 콜롬비아 작가란 사실을 놓쳤다. 이 소설에서도 마르케스의 그 유명한 <백 년 동안의 고독>이 나온다. 실제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면 마르케스가 콜롬비아 문학가란 사실보다 작품에 대한 설명이 우선이다. 가끔 작품에 작가의 국적 등이 가려질 때가 많다. 왠지 조금 씁쓸하다. 이렇게 조금 검색하니 콜롬비아 문학이 완전히 낯선 것은 아니다. 마르케스의 소설을 두 권이나 읽었으니.

 

이 소설에 관심을 둔 것은 역시 오독의 힘이 컸다. ‘콜롬비아 암흑기의 잔상’을 ‘진상’으로 잘못 읽은 것이다. ‘마약과 폭력, 광기와 야만으로 점철된 콜롬비아의 현대사와 그러한 공포의 시대를 살아낸 개인의 운명을 절묘하게 교차시켜 직조한 작품’이란 설명에 눈이 돌아가 갱스터 문학으로 착각했다. 하지만 실제 내용은 ‘의문에 휩싸인 한 남자의 죽음과 그의 과거를 되짚어가는 과정’에 더 가깝다. 나의 기대는 콜롬비아의 <시티 오브 갓>이었으니 이 차이가 얼마나 큰가. 하지만 콜롬비아 암흑가의 잔상이 소설 처음부터 끝까지 드리워져 있다. 그 중심은 역시 그 유명한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있다.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전성기 시절, 그는 개인 동물원을 만들었다. 이때 수많은 사람들이 이 동물원을 방문했다. 책 속 내용을 보면 어지간한 나라의 국가 동물원보다 크다. 이 동물원에서 탈출한 하마 이야기로 시작하여 과거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그리고 1996년으로 돌아간다. 화자는 당구장에서 의문의 남자인 리카르도 라베르데를 만났다. 이때 라베르데는 감옥에서 풀려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그의 복무 기간은 20년이 넘었다. 당구가 아니었다면 이 둘이 만날 일도, 친구처럼 다니기도, 같이 총을 맞을 리도 없다. 하지만 이 만남이 한 인간의 삶을 되돌아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법대 교수인 화자는 라베르데에 그렇게 푹 빠진 것은 아니다. 자신의 삶이 우선이다. 하지만 몇 가지 질문과 의문은 그를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그렇게 긴 세월 감옥에 있은 이유와 그가 그리워하는 아내의 존재다. 그의 아내는 미국인이다. 아내는 그 당시 미국에 있었다. 그는 아내를 사랑하고 그리워한다. 풀려난 후 아내와 만나길 바란다. 그런데 크리스마스 전 아내가 탄 비행기가 추락한다. 죽었다. 라베르데는 어딘가에서 테이프 하나를 구했다. 이것을 듣기 위해 카세트를 찾는다. 무슨 내용일까? 이 테이프를 들은 그 날 밤 둘은 총격을 당한다. 화자는 겨우 살아났지만 라베르데는 죽었다. 이 총격은 그에게 트라우마를 안겨준다. 쉽게 풀릴 것이 아니다. 그러다 테이프 내용을 듣게 된다. 그의 딸 전화도 받는다. 만나러 간다. 이제 암흑가의 잔상과 한 남자의 과거를 되짚게 된다.

 

옛날에 수많은 미국 영화와 소설에서 콜롬비아는 마약의 보고였다. 이 소설은 그 태동기에 있었던 사건 하나를 중심으로 풀어간다. 처음에는 마리화나였다가 점점 무거운 마약으로 바뀐다. 이 과정에 운송수단도 바뀐다. 한 번에 큰 돈을 벌 수 있다 보니 비행기를 이용해 전달한다. 하지만 이 이야기 앞에 라베르데의 아내 일레인이 어떻게 콜롬비아에 오게 되었고, 둘의 사랑이 어떻게 꽃 피웠는지 보여준다. 순수와 열정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그런데 마약 재배에 큰 도움을 준 인물들이 백인들이다. 일레인이 소속되었던 미 평화봉사단 사람들이 콜롬비아의 소득 증대를 위해 도움을 준 것이다. 물론 이것이 현대사의 비극이 되지만 말이다.

 

에스코바르의 전성기 콜롬비아는 공포의 시기였다. 화자인 안토니오의 회상을 통해 잘 드러난다. 잘 모르는 아이들이 에스코바르의 동물원을 다녀오기 위해 부모에게 거짓말을 할 정도였다. 이 시기를 살아온 사람들은 그 강렬한 기억을 쉽게 뒤로 넘길 수 없다. 마약, 폭력 등이 난무하던 시절이다 보니 회상은 언제나 공포와 겹쳐진다. 이런 시절에도 사랑은 있다. 책의 반 정도는 이 사랑 이야기다. 하지만 사랑은 언제나 예상하지 못한 벽에 부딪힌다. 이것은 화자에게도 마찬가지다. 총을 맞은 충격이 그를 정상적인 삶으로부터 떨어지게 만들었다. 라베르데의 딸 마야를 만나러 간 것도 이 영향 때문이다.

 

어둡고 무거우면서 잔혹한 현대 암흑가 이야기를 기대한 나에게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 느끼는 사랑과 절망과 공포 등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콜롬비아 보고타에 대해 알면 알수록 더 많은 재미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구성도 보통의 장편과 조금 다르다. 현재와 과거가 교차하는 것도 아니고, 한 인물의 삶을 그렇게 깊게 파고들어 길게 나열하지도 않는다. 그냥 나와야 할 순간에 나와 그들의 삶과 죽음을 이야기 할 뿐이다. 그래서 어느 순간에는 조금 당혹스러웠다. 아마 이 당혹감은 나의 기대와 다른 전개에서 비롯했을 것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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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의 도시 케이 스카페타 시리즈 18
퍼트리샤 콘웰 지음, 권도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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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페타 시리즈 18권이다. 이 시리즈를 처음 읽은 것이 벌써 십 년이 넘었다. 늘 그렇듯이 한동안 열심히 읽다가 중단했다. 대부분의 시리즈가 나오다 잠깐 멈추면 연속성을 잃는다. 이 시리즈도 1권부터 읽지 않았다. 예전에 2권으로 나누어진 것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상당히 낯설고 특이했다. 아마 CSI 시리즈를 보지 않았다면 조금 더 힘들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긴 시리즈의 경우 중간부터 보면 앞에 나온 이야기의 흐름을 몰라 약간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이 시리즈도 그랬다. 하지만 법의학에 무지했던 그때는 스카페타의 이야기는 신기하고 놀라웠다. 지금도 가끔 그 무지의 순간들이 생각난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시리즈는 첫 권인 <법의관>이다. 시리즈 중간을 읽다가 첫 편을 보았는데 완전히 몰입했다. 그 후 이어지는 악당의 이야기가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순서를 정해서 읽어야 했다. 지금도 분권된 그 시절의 책들이 책장 한 곳을 차지하고 있다. 읽어주길 바라며. 그리고 이 시리즈를 다시 읽은 것이 참 오랜만이다. 앞에 나온 것을 읽어야 한다는 약간의 강박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끔 순서에 상관없이 읽다 보면 새로운 즐거움을 발견한다. 반가운 등장인물들과 낯선 이야기들이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이번 시리즈는 이전과 조금 다른 느낌이다. 오랜만에 시리즈를 읽었기 때문인지 모르지만 며칠 동안 벌어지는 사건들이 긴장감을 극도로 고조시키지 못했다. 미군의 CT를 이용한 가상 부검 훈련 프로그램에 참석한 후 집으로 돌아오면서 시작한다. 그녀의 연구실에서 일어난 이상한 죽음이 그녀의 귀환을 하루 앞당긴 것이다. 심장 부정맥 이상으로 죽었다고 판별한 시체가 갑자기 피를 흘렸기 때문이다. 혹시 연구실에 왔을 때 죽지 않은 것은 아닐까 하는 의혹이 있다. 그런데 이 시체가 가진 기계 등이 특이하다. 최첨단 나노공학이 적용된 기술이다. 극소형 기계로 녹화된 영상이 있다. 하나의 의혹이 그녀를 흔든다.

 

그녀가 연구실로 돌아온 것은 6개월 만이다. 그 동안 연구실에는 많은 문제가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인물이 있다. 잭 필딩이다. 부소장인 그는 제대로 연구실을 운영하지 못했다. 시체가 피를 흘린 것을 발견한 것도 그다. 그런데 그가 전화도 받지 않고 사라졌다. 그가 이전에 부검한 사건들의 의혹이 스카페타 앞에 하나씩 드러난다. 그 중 한 사건은 야스퍼스 증후군을 앓고 있는 조니 도나휴가 아이를 죽였다는 것이다. 이 아이는 머리에 못을 박고 죽은 채 발견되었고, 조니는 자신이 한 것으로 자백했다. 벤턴이 심리 검사를 한 결과는 조니가 범인이 아니다. 그럼 누가? 뻔한 전개로 가면 가족 중 한 명이 범인일 수도 있다.

 

자신의 연구실로 돌아온 그녀는 시체를 다시 조사하고 부검한다. 쉴 틈도 없다. 그녀 주변으로 마리오, 루시. 벤턴 등이 계속 오간다. 그녀에게 전달된 편지와 사람들의 잭에 대한 증언들이 그녀를 피곤하게 만든다. 사건의 나열, 증거 자료의 조사, 법의학 자료 등이 이어진다. 비전문가 입장에서는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기계에 대한 설명이 있다고 해도 이미지가 없다 보니 낯설다. 몇 개는 다른 소설이나 영화나 드라마가 본 것이다. 결국 나의 이미지는 CSI에서 빌려올 수밖에 없다. 머릿속에 이전에 본 CSI를 떠올리며 그녀의 활약을 본다. 증거가 누군가를 가리킨다. 여기에 과거 속에 봉인된 기억 하나가 떠오른다. 그녀가 장학금을 위해 선택했던 군 시절 남아공 파견이다.

 

이야기는 며칠 동안 스카페타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정보가 그녀에게 집중된다. 그녀가 발생시키는 정보도 있지만 아직은 그녀에게 오는 것이 많다. 4분의 3정도가 액션도 없이 이런 정보의 집중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이 정보가 어느 순간 하나로 이어지면서 올올히 풀린다.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새로운 용의자가 보인다. 왠지 막혔던 숨통이 트이는 시원함이 아니라 연료가 불완전하게 연소한 것 같은 느낌이다. 약간 답답함이 있는데 나의 몰입에 문제가 있나 하고 자책한다. 그리고 의문사 남자가 끌고 다닌 개 삭이 신경 쓰인다. 연구실을 둘러싼 역학관계부터 과거의 기억까지 뒤섞인다. 혼란 속에서 그녀의 논리는 힘을 발휘하고, 진실에 한 발 다가간다. 다시 역주행 한 번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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