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우리는 부정적인 방식으로 오로지, 음악의 아름다움이 감정의 표현에 있다는 잘못된 전제를 반박하고자 했다. 

이제 우리는 음악 작품의 아름다움이 어떠한 성질인가라는 질문에 답변함으로써, 그 윤곽에 긍정적인 내용을 채워 넣어야 한다. 

그것은[음악 작품의 아름다움이란] 특수하게 음악적인 것이다. 외부에서 주어진 내용을 필요로 하지 않고 거기서 독립적이며 오로지 음들 및 그것의 예술적 연관으로만 존재하는 그러한 아름다움이다. 매력 넘치는 소리들의 의미 있는 연관, 그 연관의 조화와 대립, 이탈과 도달, 상승과 소멸 등,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정신적 직관 앞에 자유로운 형식으로 나타나 미적 만족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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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이미 공장식 축사가 어떤 곳인지를 대개는 알고 있다. 그러나 너무 불편한 진실이기도 하거니와 생명의 본성과 멀어져 있는 소비문화에 젖어서 그것을 망각해버리기를 원한다. 그러면서도 사람들은 정작 그러한 소비를 위해 직장에서 자동기계처럼 일하는 자신의 상황이 비참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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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해야 할 점은 밀집 사육의 조건에 대해 정부가 권장하고 허용하는 가이드라인이 어느 정도인가를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이에 의하면 산란계의 경우 0.042제곱미터(A4 복사용지의 약 3분의 2 크기)가 적정 크기로, 돼지우리는 비육돈의 경우 0.8제곱미터, 임신돈의 경우 1.4제곱미터가 적정 크기라고 정부 고시는 발표하고 있다. 정부에서 권장하는 단위당 면적이 이 정도라는 것은 공장식 축사가 얼마나 열악한가를 반증하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선진화 방안은 겉으로만 ‘선진’이라는 이름을 붙였을 뿐 지옥이 가까이 있음을 보여준다. 어느 생명체가 그 면적에서 숨 쉬고 움직이며 살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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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삶 자체가 공장처럼 직조되어 있어서, 경쟁과 승자독식의 틀 안에서 꾸르륵거리며 움직이는 수많은 자동기계들을 보게 된다. 예전에는 기계를 멈추는 파업을 하게 되면 해방과 자율의 시간이 열렸지만, 지금은 사회가 요구하는 삶 자체의 작은 기계장치들이 고장 나거나 다른 작동 양상을 보이지 않는 한 좀체 자율의 시간이 생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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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식 축사에서는 동물을 생명의 존엄이 배제된 단어인 ‘도체’라고 부른다. 도체는 반도체나 물체와 유사하게 들리는 말이다. 사전적 의미로 도체(屠體)는 도살한 가축의 가죽, 머리, 발목, 내장 따위를 떼어낸 나머지 몸뚱이를 지칭하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 식육점에 걸려 있는, 내장을 발라낸 고깃덩어리를 지칭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공장식 축사 내부에서는 살아 있는 생명체를 지칭할 때도 도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이것은 고기를 만드는 기계일 뿐 존엄한 생명으로 간주하지 않겠다는 의도를 갖고 있는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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