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톨의 밀알 - 개정판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25
응구기 와 시옹오 지음, 왕은철 옮김 / 들녘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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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는 우리에게 가난과 고통, 내전의 이미지로 다가온다. 우리가 아프리카에 대해 상상할 수 있는 것은 고전영화 속에서 보이는 노예의 이미지거나 팔다리가 앙상하고 배만 불룩 튀어나온 아이의 모습뿐―그나마 가장 나은 경우는 스포츠 선수일 것이다―인지도 모른다. 아프리카의 이런 상황은 지형이나 기후와 같은 대륙의 근본적인 문제도 있겠지만 가장 큰 원인은 과거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주의 때문이기도 하다. 아프리카 대륙을 입맛대로 나누어 경제적인 수탈을 가했고 간신히 독립한 후에는 냉전의 영향으로 생긴 정치적인 갈등은 아직까지도 이어져 여전히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국가들이 적지 않다.

이처럼 멀게만 느껴지는 아프리카와 판박이처럼 꼭 닮은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식민지 독립투쟁의 모습이다. 제국주의 지배자의 모습이나 피지배자의 모습들은 국가나 지역이 닮은 것이 아니라 인간 군상들이 닮아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아시아건 아프리카건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별로 다르지 않다. 세계 2차 대전 이후에도 식민지를 반환하지 않은 영국에게 키쿠유족이 반란을 일으킨 사건이 마유마유 반란이며 영국은 이를 무자비하게 탄압해 수많은 케냐인들이 사망하였다. 응구기 와 시옹오의 『한 톨의 밀알』은 영국의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케냐의 독립투쟁과 그 중심에서 사람들이 겪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낯선 이름을 가진 작가의 먼 나라의 이야기지만 그 내용은 우리에게 전혀 낯설지 않은 이야기다.

백인정권에 대항해 단결을 호소하며 피의 저항을 하던 키히카는 어느 날 무고의 집에 숨어든다. 키히카는 자신을 숨겨준 무고에게 함께할 것을 권유하지만 무고는 키히카의 목에 걸린 현상금 때문에 배신하게 된다. 키히카의 여동생인 뭄비의 남편이기도 한 키뇨코도 비상사태 이후 수용소로 끌려갔지만 아내의 곁에 있고 싶은 마음 때문에 조직의 비밀을 누설하고 집에 돌아오지만 아내인 뭄비는 치안대장이 된 키란자의 아이를 낳아 키우고 있었다. 하지만 키란자는 짝사랑하던 키히카의 여동생인 뭄비를 지켜주기 위해 백인의 편에 선 것이었다. 결국 조직은 키히카를 죽게 만든 배반자로 키란자를 지목한다.


『한 톨의 밀알』은 진실을 고백하면서 갈등은 해소된다. 하지만 현실도 그럴까. 일제시대에 순사로 동족을 때려잡던 인간들은 여전히 높은 자리에서 호위호식하고 있으며 독립운동가의 후손은 그때나 지금이나 삶이 고달프다. 어디 그뿐일까. 군사정권에서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다 죽은 사람들의 가족은 피눈물을 흘리지만 권력에 붙은 배신자는 그 달콤함을 맛보고 있다. 가족이나 사랑을 위해서가 변명도 우스울 정도다. 오로지 개인의 탐욕을 위해서 행동했고 여전히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이제 바로잡기에는 이미 늦어버렸다는 사실이 씁쓸하다. 한 톨의 밀알이 뿌린 피를 쓰레기들이 빨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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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끝날 무렵의 라 트라비아타
이부키 유키 지음, 김해용 옮김 / 예담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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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지나가고 여름이 끝났다. 여름 내내 남편이랑 다른 대문으로 귀가하는 연애를 하고 싶어 몸살이 날 지경이었다. 결혼 이전에는 바깥에서 만나 조금이라도 더 오래 같이 있으려고 내내 어디를 갈까 고민했다. 그때는 그게 성가셔서 빨리 결혼하고 싶었다. 결혼은 헤어지는 시간 없이 남의 눈을 신경 쓰지 않고 온종일 둘이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는 말이니까. 그랬는데! 내가 워낙 집 안에 틀어박히는 기질이기도 하지만, 데이트를 하려고 집을 나섰다가도 금세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지는 것이다. 여름이면 더워서, 겨울이면 추워서…… 어떤 상황이든 우리는 이제 부부니까 목적 없이 거리를 헤맬 필요 없는 이유, 혹은 핑계가 무수히 떠올랐다. 그래, 우리에겐 둘만의 공간이 있잖아. ‘맞아, 맞아’ 맞장구치며 집으로 돌아오고 나면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애초에 헤맬 목적으로 집을 나선 건데. 그렇게 집이 없는 연인의 달달한 연애가 고플 때 이부키 유키의 『여름이 끝날 무렵의 라 트라비아타』가 내 손에 들어왔다. 이 소설은 서른아홉에 다시 사랑하고 연애하는 여자와 남자의 해피엔드를 이야기한다. 상처를 간직한 그들은 서로에게 가장 부드러운 마음의 속살을 내비치며 소박하게 다가선다. 책장을 넘길수록 서로에게 조금씩 더 각별해지는 그 친밀감은 사랑이라고 주장하지 않아도 사랑으로 녹아든다. 편안하고 따뜻하고 아름답다.

나이에 따라 사랑의 본질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분명 선호하는 사랑의 형태와 방식은 달라지는 것 같다. 좀더 어릴 때는 감각적인 밀어를 핑퐁처럼 주고받는 ‘밀당’의 짜릿한 긴장감 같은 것을 기대했다. 내 사랑은 조금이라도 더 특별해야 한다는 치기도 있었을 것이다. 드라마나 영화처럼 죽고 못 사는 사랑만 보였다. 나와 내 주변 지인들의 경험에 한정된 것이긴 하지만 현실 속의 사랑은 그다지 극적이지 않다. TV와 스크린에서 선남선녀들이 달콤하게 주고받는 사랑의 대사들은 실제로 재현하기에는 낯간지럽고 느끼하다. 부모들은 다 고슴도치이니까 제 자식의 흠보다 남의 자식의 흠이 더 크게 보여 한두 가지 불만들을 갖기 마련이지만, 그것이 연인을 갈라놓는 장애물이 되지는 않는다. 사랑을 모방했던 시절을 지나니 이젠 ‘그저 그런’ 사랑들이 모두 진짜 사랑이라는 것을 알 듯도 하다.

어쩌면 스가 테쓰지와 후쿠이 키미코의 사이는 그렇고 그런 불륜으로 비칠지 모른다. 테쓰지에게는 ‘펜딩(pending)’ 중인 아내 리카가 있으니까. 하지만 어머니의 죽음 이후 특별한 병명 없이 몸에 이상 증세가 갑작스레 찾아온 김에 요양 차 어머니가 살림하던 집과 유품을 정리하러 온 테쓰지와, 우연히 그 일을 도와주게 된 키미코는 사랑의 ‘사’ 자도 입 밖에 내지 않는다. 그런데도 자신이 진심을 내비쳐도 안전하다는 신뢰가 어느새 그들을 감싼다. 테쓰지는 키미코의 진심을 ‘중졸의 모르면서도 아는 체’라고 무시하지 않고, 키미코는 테쓰지의 진심을 ‘고작 목이 돌아가지 않는 정도로 수선이나 피우면서 모든 문제를 아내한테 떠넘기고 혼자 현실도피나 한다’고 오해하지 않는다. 상대방의 진심을 투명하게 들여다보고 자기 욕망으로 판단하지 않는 것, 상대방의 진심 그대로를 배려하고 아끼는 것은 굳이 사랑이라고 이름붙이지 않아도 사랑일 것이다. 그러니 키미코의 표현대로라면 ‘초엘리트’인 ‘최고급품 멜론’ 테쓰지와 ‘중졸’인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킨코 참외’ 키미코일지라도, 리카의 표현대로라면 (사회적) ‘레벨이 높은 은행원’ 테쓰지와 ‘레벨이 낮은 아줌마’ 키미코일지라도 어찌 그들이 위화감을 극복하고 자연스레 영혼의 짝꿍으로 서로에게 다가들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리고 또 하나, 테쓰지의 어머니가 남긴 ‘곶의 집’. 작고 한적한 해변 마을에 있는, 이 사랑스러운 집은 테쓰지와 키미코의 해피엔드를 예비하고 있는 공간이다. 지금까지 이런저런 말들을 장황하게 끌어다 댔지만, 사실 이 소설에 급격히 열광하게 된 이유는 ‘곶의 집’에 반해 버렸기 때문이다. 키미코가, 테쓰지의 아내 리카가 ‘자신이 번 돈으로 새 물건을 사서 언제든 교체할 수 있는 쓰레기’로 취급한 곶의 집과 그곳에 가득 찬 유품들을 보고 “이 집은 여자들이 동경하는 보물투성이에요” 하며 흥분했을 때 나도 덩달아 들떴다.


“키가 큰 그 건물은 3층쯤 되는 것 같았지만 정작 안에 들어가면 2층짜리였다. 방은 천장이 높아서 천창이 넉넉했고, 서양식 저택인가 했더니, 웬일인지 마당과 맞닿은 툇마루가 있었다. 일본풍이라고도, 서양풍이라고도 할 수 없는 신기한 건물이었다.” (49p)


“곶의 집 입구는 (…) 천창에서 빛이 쏟아져 내렸다. (바닥의) 먼지를 청소하면서 키미코는 서서히 드러나는 문양에 눈길을 빼앗겼다. 거기에는 선명한 색깔의 타일이 깔려 있어, 먼지를 한 번 훔칠 때마다 조개와 물고기의 모자이크 문양이 나타났다. 한구석에 몇 명 정도 되는 사람의 이니셜이 있고, 문양이 군데군데 일그러지거나 생뚱맞은 색깔로 배합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 이것은 이 집 주인이 친구들과 직접 만든 것인 듯했다. (…) 바닥은 온갖 색깔로 가득했는데, 벽에는 연필 그림의 액자 하나만 걸려 있어 흑백의 느낌이었다. (…) 하나는 미와시 풍경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 집 정원에서 차를 마시는 여자들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것은 왠지 화과자 가게의 포장지 안쪽에 그려져, 끝부분은 찢어지고 희미한 좀 자국까지 나 있었다.” (53~54p)


“시트를 벗겨내자 업라이트 피아노가 나타났다. 두 번째를 벗기자 소파였다. 세 번째로는 대화면 텔레비전과 오디오 기기가 나타났다. 네 번째는 흔들의자였고, 마지막으로 한쪽 벽면 전체의 천을 벗겨내며, 테쓰지는 어깨로 숨을 몰아쉬었다. (…) 한쪽 벽 전체에 천장까지 책장이 차지하고 있었다. 안에는 빽빽이 책과 레코드, CD 등이 꽂혀 있다.” (41p)


“당신, 이 집을 정리하려면 1년이 지나도 안 끝나요. 그게, 이 집 수납장 봤어요? 나는 어제 갈아입을 옷을 찾느라, 미안하지만 좀 여기저기 열어봤어요. 어마어마한 양의 물건들이 있어요. 그 모든 게 다 최고급품이었고요. (…) 주방에 있는 멋진 식기와 유리잔들은 어떡할 거죠? 수납장에 들어 있는 훌륭한 올리브오일과 발사믹 식초는요? (…) 유리잔 보셨어요? 설거지할 때 손가락으로 문질렀더니 예쁜 소리가 났어요. 그런 맑은 소리를 들어본 건 처음이에요. (…) 눈 크게 뜨고 보시라고요. 이 집은 여자들이 동경하는 보물투성이에요.” (42~45p)


“페리에 같은 미네랄워터와 리큐르를 보관해 두는 장소를 꼼꼼히 살펴보니 리몬첼로가 있었다. (…) 주방 한구석에 나무상자가 쌓여 있었다. (…) 역시나 화이트와인이 들어 있었다.” (68p)


“이 집의 정원에는 바다 쪽으로 커다란 나무 두 그루가 심어져 있었다. 그것이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약하게 만들어, 정원에 늘 부드럽고 기분 좋은 공기가 흐르도록 해주었다. (…) 황폐했을 때는 눈에 띄지 않았는데, 이 정원은 지금 여름 화초가 한창이었다. 하이비스커스와 부용에 섞여, 하얗고 노란 작은 꽃들이 수없이 피어 있었다. 청소의 마무리로 나무들 근처의 잡초를 뽑으려고 그 옆으로 갔다. 쪼그려 앉으니 상쾌한 향기가 났다. 주변을 둘러보다 그것이 자신의 발치에서 풍기는 것임을 깨닫고 땅바닥에 코를 바싹 가져가보았다. 청량감이 전해지는 향기가 났다. 바로 앞의 잎사귀를 움켜쥐자 박하향이 났다. 민트네, 하며 키미코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자 민트 옆에, 또 낯익은 풀이 무리지어 피어 있었다. 자연스럽게 손을 뻗어 이파리를 훑고 나서 냄새를 맡아보았다. 이탈리아 요리의 샐러드 같은 냄새가 났다. 바질 같았다. 감탄하며 일어나 풀숲을 바라보았다. 아마 여기에는 잡초에 섞여 다양한 허브가 자라고 있는 듯했다.” (54~55p)


길게 인용하긴 했지만, 곶의 집이 주인에게 얼마나 사랑받았는지 느낄 수 있다. 한 여인이 생전에 마지막 거처로 정하고, 집과 정원의 구석구석을 알뜰살뜰 가꾸고 집 안으로 물건 하나하나 허투루 들이는 법 없이 정성을 쏟아부은 집인 것이다. 세상의 냉정한 시선에 움츠러든 두 사람이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치유하기에는 이보다 더 아름다운 공간이 어디에 있을까? 사치스러운 최고급 휴양지에 비할 바가 아니다.


결국은 이렇게 다시 ‘공간’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테쓰지의 어머니만큼 나는 정성을 쏟아 우리의 공간을 사랑했을까? 어림없는 소리, 라는 것을 나는 안다. 워낙 살림에 젬병이긴 하지만, 사실 우리 집은 의식주의 실용적인 용도에만 철저하다. 게다가 우리가 욕심껏 사들인 책들과 각종 취미를 위한 물건들이 제멋대로 쌓여 있는 창고의 역할도 겸한다. 공간 탓이 아니었던 것이다. 서로 사랑하지만 미처 함께 살고 있는 공간까지 충분히 사랑하지 못한 우리 탓이다. 테쓰지와 키미코는 끝까지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함께 살고 싶다’고 말한다. 그 말은 평생 삶의 가장 은밀한 공간을 공유하자는, 그 공간을 같이 아름답게 가꾸자는 사랑 고백이나 다름없다. 그렇게 깨달아지니 더는 집 없는 연인이 하나도 부럽지 않다. 이젠 집을 가꾸면서 사랑도 더 크고 넓게 키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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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 편의 소설이 되었다 - 위대한 문학작품에 영감을 준 숨은 뒷이야기
실리어 블루 존슨 지음, 신선해 옮김 / 지식채널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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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어 블루 존슨은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영감을 받아 불멸의 작품이 탄생했는지 문학 텍스트 이면에 숨겨진 작가의 삶 그 한 단면을 들여다본다. 그녀는 50명의 작가, 50개의 작품을 여섯 가지 테마로 나누어 이야기하지만, 결국 그 모든 이야기는 작가의 ‘인생’으로 귀결된다. 작품의 씨앗으로 발아한 영감이 불현듯 뇌리를 강렬하게 스친 문장이든 환영이든 꿈이든, 원래 누군가에게 말로 들려주던 이야기든, 주변의 실존 인물이든, 범죄 세계든, 낯선 곳으로 떠났던 여행이나 모험이든, 생업이든 작가의 인생을 생각하지 않고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문학적인 영감이 떠오른 찰나의 순간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 순간은 작가가 살아온 삶을 자양분으로 잉태할뿐더러 오로지 그것만으로 작품이 완성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편의 소설이 되었다』를 여는 첫 작품일 뿐만 아니라 세계 문학 리스트를 작성할 때마다 첫손에 꼽히는 레프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만 해도 그렇다. 실리어 블루 존슨은 톨스토이가 깜박 조는 결에 찾아든 환영 “맨살이 드러난 여인의 팔꿈치”가 『안나 카레니나』를 존재케 한 결정적인 영감이었다고 말한다. 그것이 시작이었을지 모르지만, 톨스토이가 안나 카레니나의 외모를 형상화해 나갈 때 위대한 러시아 시인 알렉산드르 푸슈킨의 딸 마리아 하르퉁을 떠올렸으며, 무엇보다 ‘안나’라는 이름을 가진 여인이 애인에게 버림받고 기차에 뛰어들어 자살한 사건이 『안나 카레니나』의 뼈대를 이룬다. 톨스토이는 기차 자살 사건이 자신에게 미친 영향력을 부인하고 이전에 불륜녀에 대한 소설을 구상해 왔다고 말했지만, ‘안나’의 그림자는 『안나 카레니나』에서 끈덕지게 따라붙는다. 그렇다면 『안나 카레니나』의 문학적인 영감에 대해서는 ‘환영+실존 인물+범죄 세계’에 두루 걸쳐 이야기돼야 한다.

실리어 블루 존슨의 분류는 한 권의 책을 짜임새 있게 보이도록 하는 편의상 구성일 뿐 무의미하다. 게다가 한 작가의 한 작품당 서너 장 정도로 짧게 할애하여 독자의 호기심을 만족시키는 데 그칠 뿐 더 이상 깊이 나아가지 못한다. 문학적인 영감에 사로잡힌 작가의 생생한 영혼을 감동적으로 마주하기에는 턱없이 역부족하다. 줄거리 요약인 ‘작품 엿보기’도 본문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지 못하고 외따로 뜬금없으니 차라리 없는 편이 더 나았을 성싶다. 하지만 이런 결점들이 분명하게 드러나는데도 『그렇게 한 편의 소설이 되었다』는 재미있고 흥미롭다. 개인적인 기호를 내세우자면 충분히 매혹적이다. 익히 알려진 에피소드도 꽤 있지만 어디에서 이 책에 담긴 것만큼 많은 작가들의 깨알 같은 사생활을 한꺼번에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인가?


가령 잉클링스 문학회에서 C. S. 루이스는 J. R. R. 톨킨이 확신 없이 『호빗』을 쓰고 있을 때 열렬한 찬사를 보냈지만, 톨킨은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사자와 마녀와 옷장)』에 대해 심드렁해했다고 한다. 게다가 루이스가 없는 자리에서 “아무래도 망할 것 같아!”라고 악평했고, 심지어 루이스가 나니아 이야기를 할 것 같은 날에는 아예 문학회에 참석조차 하지 않았다. 친구의 뒷담화를 하는 톨킨이 상상되어 우스웠는데, 이것은 (나는 새롭게 알게 됐지만) 톨킨과 루이스의 우정을 이야기할 때 꼭 짚고 넘어가는 유명한 일화인 듯하다. 친구의 작품이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노골적으로 자리를 피할 것까지 있나 하면서도, 작가의 대단한 자존심을 떠올리면 자신이 인정하지 않는 작품 이야기를 하는 자리에 벙어리처럼 머릿수만 채우는 것도 고역이겠다 싶어진다.


또, 윌리엄 S. 버로스가 마약에 취한 채 앨런 긴스버그에게 보냈던 편지들을 바탕으로 마약중독자 ‘윌리엄 리’의 이야기를 파격적으로 담은 소설 『네이키드 런치』를 쓸 때 잭 케루악이 타자기로 원고를 정서해 줬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잭 케루악은 ‘Naked Lust’라는 원제를 ‘Naked Lunch’로 잘못 읽고서는 오히려 그게 더 신선하다면서 소설의 제목마저 바꿔버렸다!


친구 이야기라면 『앵무새 죽이기』를 쓴 하퍼 리와 『인 콜드 블러드』를 쓴 트루먼 카포티도 기억에 남는다. 하퍼 리와 트루먼 카포티는 어린 시절부터 단짝 친구였나 보다. 하퍼 리의 아버지가 어린 두 아이에게 언더우드 타자기를 선물한 일화가 소개되어 있다. 또한 트루먼 카포티의 부탁으로 『인 콜드 블러드』를 위한 인터뷰를 하는 데 하퍼 리가 동행하기도 한다. 이성을 초월하여 언더우드 타자기를 두드리며 서로 작가의 길을 응원해 준 우정이라니, 멋지고 부럽다!


편집자(혹은 출판업자)의 이름도 눈에 띈다. 제임스 헨더슨(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보물섬』), 수전 대그널(J. R. R. 톨킨 『호빗』), 할 스미스(윌리엄 포크너 『소음과 격정(음향과 분노)』), 프레드릭 워버그(조지 오웰 『동물농장』), 로베르트 코틀리프(조지프 헬러 『캐치-22』), 맥스웰 퍼킨스(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세르지오 단젤로(보리스 파스테르나크 『닥터 지바고』), 모리스 지로디아(윌리엄 S. 버로스 『네이키드 런치』), 테레사 폰 호호프(하퍼 리 『앵무새 죽이기』), 마릴린 말로우(S. E. 힌튼 『아웃사이더』), 조지 브렛(잭 런던 『야성의 부름』), 조지 스미스(샬럿 브론테 『제인 에어』), 블랑슈 크노프(대실 해밋 『붉은 수확』), 해럴드 래섬(마거릿 미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말콤 코울리(잭 케루악 『길 위에서』, 켄 키지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파스칼 코비치(존 스타인벡 『생쥐와 인간』), 조나단 케이프(이언 플레밍 『카지노 로얄』). 대충 다 언급했나 모르겠다. 이들은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던 작가와 작품을 명민한 시선으로 알아보고, 작가가 작품을 완성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오늘의 내가 그 작품을 지금의 형태로 읽을 수 있도록 도와준 조력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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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것들
필립 지앙 지음, 윤미연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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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포기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다. 운동선수가 자신의 신체적 능력이 이젠 옛날같지 않음을 알고 포기하는 것에 능숙하다면 작가는 정반대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상상력은 메마르고 감성은 무뎌졌지만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 작가라는 존재들이다. 자신은 언제나 예전의 그 느낌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마음속으로 굳게 믿으며 미련을 떨쳐 버리지 못하지만 이미 늙어버린 몸처럼 마음에도 세월의 때가 덕지덕지 눌어붙어 이젠 떼어내기 힘들 것이라는 것을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상상력과 감성이 죽은 작가는 말 그대로 죽은 작가일 뿐이다. 작가를 되살릴 수 있는 것은 어쩌면 고통보다 더한 충격뿐일지도 모르겠다. 필립 지앙의 『나쁜 것들』은 한 작가와 그들을 둘러싼 사람들과, 그 가족의 숨겨진 이야기다.

프랑시스, 자동차 사고로 부인과 큰딸을 잃은 유명한 작가였다. 사고에서 살아남은 작은딸 알리는 충격 때문에 방황의 시기를 보냈다. 프랑시스 자신도 사고의 충격으로 영감이 완전히 바닥나 제대로 된 글 한줄 쓰지 못하고 능력있는 부인과 재혼한 것으로 생계걱정 없이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그는 살아가는 데는 큰 불편이 없게 되었지만 그가 꿈꾸는 것은 소설가로서의 재기뿐이다. 어느 날 작은딸 알리스가 실종된다. 프랑시스는 동창인 여자 사립탐정을 고용하고 딸을 찾으러 나서지만 단서도 찾을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알리스는 갑자기 돌아오게 되고 딸의 실종 원인이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이 자신에게 한 것이라는 이유 때문에 프랑시스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이 무너지고 만다. 알리스가 사라진 뒤 떠올랐던 부인과 큰딸의 교통사고의 기억과 현재의 아내에 대한 의심은 새로운 소설과 글쓰기에 몰두하는 것으로 도피하려 한다. 하지만 자신의 방패막이와도 같은 글쓰기가 계속될수록 지난날의 과오를 깨닫게 되고 그 상처는 자신에게 돌아오게 된다.

사람들은 상처를 덮고 살아간다. 하지만 그 상처는 온전한 것이 아니어서 조금만 건드려도 쉽게 피가 난다. 프랑시스의 상처는 재혼으로 다 아물어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것을 보호해 줘야 한다고 믿었던 사람들이 헤집은 것이어서 아픔은 더욱 컸다. 하지만 그 상처를 낸 사람이 자기 자신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슬픔이 더욱 컸을 것이다. 자신은 다른 사람에게 더 큰 상처를 줬는지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자신이 피를 본 후에야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을 되돌릴 수는 없다. 아내와 큰딸은 죽었고 살아남은 딸은 아버지를 멀리하고 글 쓰는 것은 괴로움의 연속이고 아내는 의심스럽고 자신은 늙어버렸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은 다 나쁜 것들이었다. 심지어 자기 자신마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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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월은 붉은 구렁을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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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초판본에는 별로 연연하지 않지만(쇄를 거듭할수록 내용의 오류가 조금이라도 더 바로잡히지 않겠는가) 절판본에 대한 집착에는 헤어나지 못하겠다. 더 이상 서점에서 새 책으로 살 수 없다는 것은 내가 원하는 시간에 읽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헌책방이 있다지만 책값을 온전히 지불할 의사가 있어도 그 책이 없기 쉽다. 이젠 읽을 수 없다고 생각하면 조바심이 절로 나서 더 읽어보고 싶어진다. 마치 그 책을 읽기 위해 지금껏 살아왔는데 눈앞에서 부주의하게 기회를 잃어버린 것 같아 분하다. 그 책은 아마도 당장 읽을 수 없는 책에 대한 탐욕스러운 환상을 둘러쓰고 실제보다 더 굉장한 이야기로 애서가들 사이에 무성한 입소문을 뭉게뭉게 피워 올릴 것이다. 사사키 아타루는 어떤 책도 진실로 읽을 수는 없다고, 그렇지만 만의 하나 읽으면 미친다고 말했지만, 어쨌거나 시쳇말로 그 책을 ‘득템’하여 내 책장에 들이기 전까지는 입소문에 불안하게 휘둘리며 입에 침이 바짝바짝 마른다.

온다 리쿠의 『삼월은 붉은 구렁을』에는 그런 전설의 절판본이 등장한다. 성별도, 나이도, 유명인․무명인인지도 알려지지 않은 어느 작가가 딱 200부만 자비로 지인들에게 나눠줬다가 곧바로 절반가량 도로 거둬들였다는 소설책. 게다가 붉은 표지에 작가 이름도 없이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라는 묘한 제목만 검게 박힌 이 소설에는 이상한 조건이 붙어 있다. 작가를 밝히지 않을 것! 사본을 만들지 않을 것! 이 소설을 빌려주고 싶으면 (책 주인의) 단 한 사람의 친구에게만 단 하룻밤만 빌려줄 것! 첫 번째와 두 번째 조건이 지인들의 우정과 신뢰로 완벽하게 지켜진다고 가정하면, 세 번째 조건, 즉 일종의 대여 규칙에 따라 이 세상에서 《삼월은 붉은 구렁을》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은 많아야 200여 명뿐이다. 다른 사람들은 읽지 못하지만 나만은 읽었다는 자부심, 나는 읽었지만 두 번은 읽을 수 없다는 아쉬움, 누군가는 읽었는데 나는 읽을 수 없다는 부러움은 그 책의 실체와 상관없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덧입힌다. 어쩌면 그 소설은 이제 더는 아무도 읽을 수 없다는 신비주의 전략에 따라, 독자들의 끝없이 부풀려지는 환상과 조금도 채워지지 않는 탐욕 속에 고여 있을 때만 그 존재 가치가 눈부실지 모른다.

『삼월은 붉은 구렁을』은 똑같은 제목의 전설적인 소설책이 등장하는 이야기 4편이 옴니버스 구성을 이룬다. 미리 말한 《삼월은 붉은 구렁을》의 가장 기본적인 정체는 공유하지만, 각각의 독립적인 에피소드에 맞춰 조금씩 다르게 변주된다. 「기다리는 사람들」은 《삼월은 붉은 구렁을》의 네 가지 이야기라고 짐작되는 내용을, 「이즈모 야상곡」은 그 소설을 썼다고 짐작되는 작가를, 「무지개와 구름과 새와」는 그 소설을 쓰게 된 계기라고 짐작되는 비화를, 「회전목마」는 그 소설을 지금 쓰고 있는, 온다 리쿠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작가의 머릿속을, 흥미롭고 재미있는 에피소드 속에 잘 버무려놓았다.


아무튼 개인적인 취향으로 4편의 연작 중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는 「기다리는 사람들」과 「이즈모 야상곡」이다. 「기다리는 사람들」에는 활자중독증 건축가가 읽어치운 대로 던져놓은 책 더미가 방방마다 가득한 대저택이 있다. 그 저택에서는 오로지 “책을 읽는 인간과 읽지 않는 인간”으로 사람을 분류하는 회장의 초대로 해마다 3월이면 책의 무덤 같은 엄청난 책 더미들 사이에서 《삼월은 붉은 구렁을》을 찾는 게임이 벌어진다. 그곳에 초대되는 사람들은 우연한 기회에 《삼월은 붉은 구렁을》을 전부, 혹은 일부 읽었다는 회장의 지인 세 사람, 그리고 이력서의 취미란에 ‘독서’라고 적은 직원들 중 무작위로 한 사람. 이 에피소드의 대부분은 회장과 그의 세 지인이 각자 《삼월은 붉은 구렁을》과의 신기하고도 기이한 인연을 들려주면서 그 줄거리를 ‘취미가 독서’인 직원에게 소개하는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역시 4부작인 《삼월은 붉은 구렁을》의 1부는 ‘바람의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흑과 다의 환상>, 2부는 ‘밤의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겨울 호수>, 3부는 ‘피의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 4부는 ‘시간의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새피리>이다. 온다 리쿠의 4부작과, 그녀의 소설 속 익명의 작가가 쓴 이 4부작은 교묘하게 교차되고, 나중에 <흑과 다의 환상>은 또 다른 장편소설 『흑과 다의 환상』으로, 「회전목마」의 ‘미즈노 리세’ 이야기는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와 『황혼녘 백합의 뼈』로 확장된다.


「이즈모 야상곡」에는 책을 만드는 사람, 편집자가 등장한다. 아빠한테 하룻밤 빌려 읽은 《삼월은 붉은 구렁을》을 잊지 못한 편집자 도가키 다카코는 그 작가가 분명하다고 짐작되는 사람을 찾아 이즈모까지 기차 여행을 한다. 이 여행길에 성격도, 외모도, 출판사의 출간 경향도 다르지만 독서 취향은 비슷한 또 다른 편집자 에토 아카네가 동행한다. 야간 기차 침대칸에서 밤 깊도록 두 사람이 나누는 이야기들 중 대부분은 《삼월은 붉은 구렁을》과 그 작가가 차지하지만, 이 에피소드에서 등장인물의 직업이 편집자인 만큼 책과 편집자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섞여들어 있다. 편집(자)에 대한 책은 얼마든지 있다. 그 책들을 가득 채운 편집자로서의 의식과 철학과 확신이 부럽고도 신기하다. 그 근사한 말들이 다 어디에서 흘러나오는 것일까? 온전히 독자일 때만 얼마든지 수다를 늘어놓을 수 있는 나는 오늘도 그 괴리감을 어쩌지 못하겠다.


그런데 『삼월은 붉은 구렁을』을 다 읽는다고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 감춘 비밀이 속 시원하게 드러날까? 절대 아니다. 모든 것이 짐작일 뿐이다. 게다가 앞의 에피소드에서 확신했던 것이 뒤의 에피소드에서는 변형되기도 한다. 어쩌면 진실은 온다 리쿠의 손아귀마저 벗어나 안드로메다 저편으로 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여전히 제목의 의미조차 종잡지 못하겠다. 온다 리쿠는 애매하고 모호한 장치들을 모아서 신비로운 환상으로 거듭나게 하는 영리한 마술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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