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톨의 밀알 - 개정판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25
응구기 와 시옹오 지음, 왕은철 옮김 / 들녘 / 201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아프리카는 우리에게 가난과 고통, 내전의 이미지로 다가온다. 우리가 아프리카에 대해 상상할 수 있는 것은 고전영화 속에서 보이는 노예의 이미지거나 팔다리가 앙상하고 배만 불룩 튀어나온 아이의 모습뿐―그나마 가장 나은 경우는 스포츠 선수일 것이다―인지도 모른다. 아프리카의 이런 상황은 지형이나 기후와 같은 대륙의 근본적인 문제도 있겠지만 가장 큰 원인은 과거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주의 때문이기도 하다. 아프리카 대륙을 입맛대로 나누어 경제적인 수탈을 가했고 간신히 독립한 후에는 냉전의 영향으로 생긴 정치적인 갈등은 아직까지도 이어져 여전히 고통 속에서 신음하는 국가들이 적지 않다.

이처럼 멀게만 느껴지는 아프리카와 판박이처럼 꼭 닮은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식민지 독립투쟁의 모습이다. 제국주의 지배자의 모습이나 피지배자의 모습들은 국가나 지역이 닮은 것이 아니라 인간 군상들이 닮아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아시아건 아프리카건 그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별로 다르지 않다. 세계 2차 대전 이후에도 식민지를 반환하지 않은 영국에게 키쿠유족이 반란을 일으킨 사건이 마유마유 반란이며 영국은 이를 무자비하게 탄압해 수많은 케냐인들이 사망하였다. 응구기 와 시옹오의 『한 톨의 밀알』은 영국의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케냐의 독립투쟁과 그 중심에서 사람들이 겪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낯선 이름을 가진 작가의 먼 나라의 이야기지만 그 내용은 우리에게 전혀 낯설지 않은 이야기다.

백인정권에 대항해 단결을 호소하며 피의 저항을 하던 키히카는 어느 날 무고의 집에 숨어든다. 키히카는 자신을 숨겨준 무고에게 함께할 것을 권유하지만 무고는 키히카의 목에 걸린 현상금 때문에 배신하게 된다. 키히카의 여동생인 뭄비의 남편이기도 한 키뇨코도 비상사태 이후 수용소로 끌려갔지만 아내의 곁에 있고 싶은 마음 때문에 조직의 비밀을 누설하고 집에 돌아오지만 아내인 뭄비는 치안대장이 된 키란자의 아이를 낳아 키우고 있었다. 하지만 키란자는 짝사랑하던 키히카의 여동생인 뭄비를 지켜주기 위해 백인의 편에 선 것이었다. 결국 조직은 키히카를 죽게 만든 배반자로 키란자를 지목한다.


『한 톨의 밀알』은 진실을 고백하면서 갈등은 해소된다. 하지만 현실도 그럴까. 일제시대에 순사로 동족을 때려잡던 인간들은 여전히 높은 자리에서 호위호식하고 있으며 독립운동가의 후손은 그때나 지금이나 삶이 고달프다. 어디 그뿐일까. 군사정권에서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다 죽은 사람들의 가족은 피눈물을 흘리지만 권력에 붙은 배신자는 그 달콤함을 맛보고 있다. 가족이나 사랑을 위해서가 변명도 우스울 정도다. 오로지 개인의 탐욕을 위해서 행동했고 여전히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이제 바로잡기에는 이미 늦어버렸다는 사실이 씁쓸하다. 한 톨의 밀알이 뿌린 피를 쓰레기들이 빨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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