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펜하우어와 니체의 문장론 - 책읽기와 글쓰기에 대하여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홍성광 옮김 / 연암서가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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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최종적인 목적은 독자에게 읽히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애써 책으로 출판할 이유도, 애초에 글을 쓸 이유조차 없어지게 되는 것이 책이 가진 숙명일 것이다. 작가가 아무리 골머리를 앓으며 책을 쓴다 한들 독자가 읽어주지 않는다면 그 책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독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좋은 책의 기준은 읽기가 좋아야 한다는 것이 첫 번째로 꼽힐 것이다. 책의 외관은 과거에 비해 훨씬 화려해졌고 그 속에 담긴 서사 구조 자체도 훨씬 복잡해졌다. 클래식이라 불리는 작품 중에서도 현재의 작품을 기준으로 본다면 단순한 구조를 가진 것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 담긴 문장은 지금 읽어도 좋은 문장임에 틀림없다. 좋은 책은 언제나 좋은 문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쇼펜하우어와 니체의 문장론』은 독일 최고의 문장가로 알려졌고 헤르만 헤세, 프란츠 카프카, 토마스 만 등의 독일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 두 철학자의 문장론에 대한 글을 추려낸 것이다. 쇼펜하우어의 경우 직접적으로 글쓰기나 책에 관련한 글들―‘글쓰기와 문제’, ‘책과 글 읽기’ 등―도 많이 펴낸 반면에 니체의 경우 이렇게 직접적으로 글을 쓴 적이 없어서 그의 서적에서 잠언 형태로 된 것이 실려 있다. 엄밀히 말하면 니체의 경우 문장론이라기보다는 저자와 독자에 대한 잠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쇼펜하우어와 니체의 문장에 대한 생각은 서로 맞은편에서 한 점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차이가 있다. 쇼펜하우어의 경우 구체적이다. 그는 형편없는 저술가나 기자들이 독일어를 훼손하는 것에 분노했고 정확한 표현 방식이나 문체, 구두점과 같은 글쓰기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되어 있는 부분에서도 철저했다. 그가 번역가로 활동한 것도 이런 사실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훌륭한 작가란 자신의 문체가 있고 그것을 정확하게 표현해 낼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니체의 경우 자신의 글 자체가 이해하기 어려우며 잘 읽히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는 자신의 사상을 전달하기 위해 온갖 다양한 형식과 문체를 사용했다. 자신의 잠언들이 이해되기보다는 암송되기를 원했다. 이렇게 다르지만 둘이 후대의 작가들에게 미친 영향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가끔 번역서를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과연 내가 이 작가의 작품을 제대로 읽고 있는 것인가라는 것이다. 번역가에 의해 번역이 되고 편집자에 의해 수정된 문장은 어떤 이유에서건 저자로부터 중간 단계를 한 번 더 거쳐 나에게 읽히는 것들이다. 직접 작가의 글을 느낄 수 없다는 사실은 중간 단계에 위치한 번역, 편집을 하는 사람들의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말하고 싶다. 아무리 좋은 문장이라도 거쳐 가는 과정이 나쁘다면 작가와 독자 모두에게 서글픈 일이 될 것이다. 이 책은 좋은 문장에 대해서 이야기하지만 정작 이 책에 실린 문장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가끔 보이는 번역투의 어색한 문장들이 저자의 생각을 잘 전달하기 위한 의미였다면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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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낙엽
토머스 H. 쿡 지음, 장은재 옮김 / 고려원북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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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어떤 작품이라도 하나의 틀에 가두기는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다른 장르도 마찬가지겠지만 소설 속에서의 장르는 단지 쇼핑몰의 카테고리 분류를 위해 필요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여러 장르가 뒤섞인 작품들이 많다. 몇 십 년 후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가 모두 SF가 아닌 것처럼 사건이 발생하고 이것을 해결하는 과정이 등장한다고 해서 모두 추리소설인 것은 아니다. 당연하게도 추리소설협회에서 주는 최고의 상을 받았다고 추리소설의 카테고리에 묶어버리는 것 역시 어리석은 일이다. 다시 말하지만 장르의 구분은 이제 큰 의미가 없다.

토머스 H. 쿡의 『붉은 낙엽』이 바로 이런 이야기다. "이 작품은 미국추리작가협회상, 앤서니상, 배리상 수상에 빛나는 토머스 H. 쿡의 장편 추리소설이다"라는 책 소개가 첫머리에 등장하지만 이 작품은 추리소설과 거리가 멀다. 하지만 저 많은 상들은 뭐냐고? 그들은 추리 요소가 있는 좋은 작품에 상을 안겨줬을 뿐이다. 좋은 작품에 상을 주는 것이 상 자체의 권위를 높이는 일이기도 하니까. 『붉은 낙엽』은 좋은 작품이지만 추리소설이라기보다는 순문학에 가까운 작품이다. 당연하겠지만 둘 사이의 가치 평가의 기준에 따른 이야기가 아니다. 순문학이 추리소설보다 우월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 작품이 추리소설이라는 장르에서 너무 멀다는 이야기일 뿐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나 자체가 추리소설의 굉장한 마니아이기 때문이다.

에릭은 자신의 가족에 큰 애착을 가지고 있다. 사랑하는 부인 메러디스와 조용한 아들 키이스가 있는 가족은 에릭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이미 그에게는 가족을 잃은 아픈 과거가 있으며 다시는 그런 일을 겪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조용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으나 옆집의 에이미가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사건이 발생하던 날 에이미의 베이비시터 역할을 했던 아들 키이스, 수사는 시작되고 경찰은 키이스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게 된다. 에릭은 아들을 믿지만 조금씩 커져가는 의심과 거짓에 절망한다. 사소해 보였던 행동들마저도 오해가 쌓여 의심스러울 뿐이었다. 이처럼 자신의 아들에 대해 커져가는 의심 속에서 과거 자신의 어머니의 자살과 아버지, 죽은 여동생과 착하지만 무기력하게 남아 있는 형…… 과거의 가족이나 현재의 가족 모두가 의심스러운 상황이 된다.


제 아무리 단단해 보이는 차돌이라 하더라도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실금이 있다면 부서지기 쉬운 법이다. 약간의 충격만 가하면 그 실금을 따라 갈라지고 많다. 인간이라고 다를까. 아니 인간처럼 어떤 계기로 무너질 수 있는 존재도 찾기 힘들 것이다. 게다가 인간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존재다. 사랑으로 바라보는 상대는 아름답고 견고하지만 의심으로 바라보는 상대는 어둡고 불길하다. 결국 의심의 눈길은 그 상대를 물들여 파괴하고 자신마저 파괴할 것이다. 피처럼 검붉은 낙엽이 떨어져 쌓이듯 결국 상대에 대한 의심은 당연하게도 비극으로 끝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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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당신도 깨닫게 될 이야기 - 내 인생을 바꾼 성찰의 순간들
엘리자베스 길버트 외 119명 지음, 래리 스미스 엮음, 박지니.이지연 옮김 / 라이팅하우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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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특히 책에 관해 관심을 보이는―을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면 자기계발서를 좋아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눌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자기계발서류를 끔찍이도 싫어하는 사람이라 그런 비슷한 종류의 책만 봐도 짜증이 밀려온다. 요새는 무슨 유행인지 TV에서조차 이런 강의가 넘쳐나니 TV를 즐겨보지 않는 게 다행스럽기까지 하다. 애초에 성공을 위해 다른 것을 희생해도 된다는 강의라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그런데도 이런 류들이 계속 생겨나는 것은 자기계발서 시장이 충분해진 것이 이유일 테고 꾸준히 잘 팔리고 있다는 증거도 될 것이다. 어쨌거나 이런 사회적인 현상 때문이 딱히 별 상관없는 것마저 자기계발류로 포장되는 것이 정말 싫다. 강사가 아닌 작가의 경우 조금 더 세련된 방식을 사용한다. 그들은 무언가를 강요하지도 않고 그런 방식을 싫어하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독자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을 것이고 무언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게 한다.

이 책 『어느 날 당신도 깨닫게 될 이야기』는 직접적으로 강요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라고 이야기하는 책이다. 물론 이것이 자기계발서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어느 날 당신도 깨닫게 될 이야기』는 여러 작가들의 순간(『The moment』)에 대한 에세이다. 수많은 작가들의 자신의 인생에서 깨달음을 얻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책은 바로 ‘그 순간’에 대한 이야기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살다 보면 크건 작건 깨달음의 순간이 있다. 사랑이나 직업에 대한 것일 수도 있다. 이런 순간들은 긴 삶에서 그것이 최고의 순간은 아닐 수 있겠지만 삶에 꾸준히 영향을 주는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수많은 작가의 이야기를 모아놓은 만큼 작가의 성향에 관계없이 편차도 심한 편이다. 읽다  보면 그저 기억에 남던 일들을 삶에 연관시켜놓은 것 같은 이야기나 억지로 써낸 짧은 이야기 같은 것들도 제법 보인다. 세 살 때 부모님이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듣고 자신은 혼자라고 느낀 이야기―세 살인데!―나 첫 운전의 경험으로 어른이 된 것 같다는 이야기, 화장실에서 자신의 얼굴을 볼 때마다 무너져 내리는 것 같다는 이야기, 첫 키스를 하고 어려움도 있지만 잘살고 있다는 이야기―실제로 이게 한 페이지로 끝나는 글이다. 옆에 사진 한 장이 있지만―를 읽다 보면 그 작가에 대한 진실성에 의심마저 들어버린다. 당연한 사실이겠지만 여기에 쓰인 작가의 글들이 자기 인생 최고의 순간이 아니다. 왜냐고? 당신이 작가라고 상상을 해보자. 당신이 겪은 최고의 순간을 이런 짧은 에세이에 담고 싶겠는가? 만일 나라면 그 순간을 오로지 나만의 이야기로 채워 넣을 것이다.


이 책이 자기계발서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런 느낌을 받은 이유는 깨달음과 감동을 강제하는 듯한 문구들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성공한 작가들의 삶을 바꾼 이야기가 흥미롭고 때로는 감동적이기도 하지만 이 책은 너무 빽빽하면서도 짧고, 가끔은 작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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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타라이 기요시의 인사 미타라이 기요시 시리즈
시마다 소지 지음, 한희선 옮김 / 검은숲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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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홈즈라면 추리소설에 딱히 관심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알고 있을 것이다. 게다가 TV 드라마로도 방송된 덕분에 어찌 되었건 홈즈야말로 탐정의 전형처럼 되었고 그것을 부정할 수도 없을 것이다. 일본 쪽의 탐정이라면 어떨까? 평범한 사람들에겐 김전일이나 코난 정도만 탐정의 모습으로 기억할 듯싶다. 하지만 외국의 경우처럼 일본 역시 매력적인 탐정들이 존재한다. 대부분 김전일의 할아버지로 알려진 긴다이치 코스케를 떠올릴 것이고 일본 탐정의 원형 쯤 되는 아케치 고고로를 꼽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 또 한 사람의 탐정을 꼽자면 바로 시마다 소지의 작품에 등장하는 미타라이 기요시일 것이다. 시마다 소지라면 누구나 『점성술 살인 사건』을 꼽게 되고 여기 등장한 탐정―조수 콤비에 눈길이 가게 되지만 이 단편집인 『미타라이 기요시의 인사』에서 비로소 둘의 시작을 보여준다. 이 둘은 과거 홈즈―왓슨, 포와로―헤이스팅즈 콤비의 클래식한 모습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괴짜 탐정인 미타라이 기요시와 조수 겸 기록자인 이시오카 콤비야말로 탐정―조수 모델의 일본식 완성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특히 이 단편집 속에는 둘의 만남 뿐 아니라 미타라이 기요시에게 영향을 준 개인적인 사건도 포함되어 있어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숫자 자물쇠」 추리소설의 영원한 고전적 테마인 밀실이 등장한다. 출입이 가능한 유일한 문에는 피해자만 알고 있는 숫자 자물쇠가 달려 있는 밀실. 미타라이 기요시는 왜 커피를 마시지 않고 홍차를 마시는가에 대한 서글픈 이유가 등장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질주하는 사자死者」 기괴한 사건에 기괴한 탐정의 등장. 11층의 맨션에서 사라져버린 시체가 얼마 지나지 않아 고가선로에서 발견되었다. 인간의 힘으로는 절대 갈 수 없는 곳에서 나타난 시체. 과연 사자는 질주한 것인가. 기괴한 인상을 풍기는 미타라이 기요시를 처음 만난 이시오카는 그의 재즈 기타 실력에 감탄하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의 머리였다.


「시덴카이 연구 보존회」 제2차 세계대전에 활약했던 전투기를 복원한다는 기인이 등장에 도무지 알 수 없는 부탁을 한다. 봉투에 이름을 쓰라는 협박 같은 부탁의 의미는 무엇일까? 홈즈가 등장하는 「붉은 머리 연맹」을 읽은 독자라면 이것이 이야기의 내용은 다르지만 그 본질은 똑같은 사건이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 개」 일본 부호에게 몸값을 받아내려는 납치범의 기묘한 트릭의 등장. 미타라이 기요시의 개 사랑과 탐정에게 의존하고 탐정을 비웃는 경찰 콤비도 등장한다.


외국의 경우 그 찬란했던 탐정들을 이젠 찾아보기가 힘든 것 같다. 지식과 논리로 무장했던 탐정들은 하드보일드 탐정들에게 자리를 내주었다가 이젠 과학수사대들이 그 자리를 점령했다. 소설 속의 탐정은 찾기 힘들어졌으며 앞으로도 미래는 어두워 보인다. 오히려 일본 쪽에서 이런 전통적인 형태의 소설 속 탐정들이 꾸준히 등장한다는 점이다. 본격파 추리소설 이후 유행했던 사회파 미스터리 속에서 탄생해 신본격파라는 이름을 남길 정도로 대단했던 미타라이 기요시인 만큼 그의 활약이 조금 더 지속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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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0만의 글쓰기
조제희 지음 / 들녘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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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들이 아니라도 글 쓰는 행위 자체가 간편해진 것만은 틀림없다. 종이와 펜에서 디지털기기로의 전환은 그 간편함만큼이나 글 자체의 무게도 가벼워진 것만은 사실이다. 그 대신 자신의 글을 보여 줄 수 있는 공간은 무한대로 늘어났다. 사실 직업이 아닌 경우 평범한 사람들은 글을 쓸 만한 경우가 거의 없다. 어린 시절 독후감을 쓰거나 리포트를 내는 경우가 전부였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게다가 독후감이나 리포트의 경우 글의 대상이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종이의 시절에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불특정한 다수에게 자신의 글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었다. 현재는 어떠한가, 자신의 홈페이지와 블로그 등을 통해 자신의 글을 누구에게나 보여 주는 것이 가능하다. 글쓰기 자체가 쉬워진 만큼 폐쇄성만큼은 완전히 없어져 버렸고, 글의 수준도 평균적으로 저하되었다. 이유는 단순하다. 저자가 지적한 것처럼 사람들이 '글을 많이 쓰지 않기 때문'이다. 글 쓰는 행위는 간편해 졌지만 SNS 같은 초단문을 제외한다면 여전히 글을 많이 쓰지 않는다. 『5000만의 글쓰기』에서 저자는 글쓰기란 글쓴이 혼자서 모든 악기를 연주해야 하는 오케스트라라고 정의하고 이 모든 것을 지휘하는 글쓰기의 과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글쓰기는 생각나는 대로 편하게 쓴 저널이 아닌 구조적이고 조직적인 글인 에세이를 쓰는 방식에 중점을 둔다. 쉽게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인 블로그를 예로 든다면 맛집에 관한 글이라면 저널일 것이고 사회나 문화에 관한 평이 들어간다면 에세이에 가까울 것이다. 이 둘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무엇일까. 그것은 메시지일 것이다. 맛집 기행에는 메시지가 없다. 감상만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제일 먼저 고려해야 할 사항은 자기가 어떤 글을 쓰는지를 알아야 한다. 주제가 되는 개념을 전문가 수준으로 알고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영화에 대한 평을 쓰기 위해서는 그 출연 배우는 물론 시나리오나 감독에 대한 것도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널은 사전 지식을 필요로 하지 않지만 에세이를 쓰기 위해서는 사전 지식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사전 지식이 없는 글은 편협하거나 조잡해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두 번째로 고려해야 할 것은 독자들이다. 독자의 수준에 맞게 글을 쓰는 것, 어린이가 보아야 할 글에 고도의 지적 능력을 요구하는 글을 쓰는 것처럼 가치 없는 일이 있을까. 사전 준비가 끝났다면 실제 글을 쓰게 된다. 에세이는 크게 두 가지 구조를 가진다. 문제 제기와 해결책이 그것이다. 문제가 어떤 것인지 원인을 파헤치고 문제 해결을 위해 어떤 노력이 있었는지 설명해야 한다.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읽기, 생각하기, 그리고 글쓰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수많은 예시와 방법론에도 불구하고 그 기본은 간단하다. 많이 읽고 생각하고 직접 써보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만이 자기만의 글쓰기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이 책은 이런 기본 조건이 갖추어졌다는 것을 전제로 이후의 글쓰기 과정을 상세히 다루어 더 좋을 글로 다듬는데 좋은 지침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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