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한 편의 소설이 되었다 - 위대한 문학작품에 영감을 준 숨은 뒷이야기
실리어 블루 존슨 지음, 신선해 옮김 / 지식채널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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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어 블루 존슨은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영감을 받아 불멸의 작품이 탄생했는지 문학 텍스트 이면에 숨겨진 작가의 삶 그 한 단면을 들여다본다. 그녀는 50명의 작가, 50개의 작품을 여섯 가지 테마로 나누어 이야기하지만, 결국 그 모든 이야기는 작가의 ‘인생’으로 귀결된다. 작품의 씨앗으로 발아한 영감이 불현듯 뇌리를 강렬하게 스친 문장이든 환영이든 꿈이든, 원래 누군가에게 말로 들려주던 이야기든, 주변의 실존 인물이든, 범죄 세계든, 낯선 곳으로 떠났던 여행이나 모험이든, 생업이든 작가의 인생을 생각하지 않고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문학적인 영감이 떠오른 찰나의 순간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 순간은 작가가 살아온 삶을 자양분으로 잉태할뿐더러 오로지 그것만으로 작품이 완성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편의 소설이 되었다』를 여는 첫 작품일 뿐만 아니라 세계 문학 리스트를 작성할 때마다 첫손에 꼽히는 레프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만 해도 그렇다. 실리어 블루 존슨은 톨스토이가 깜박 조는 결에 찾아든 환영 “맨살이 드러난 여인의 팔꿈치”가 『안나 카레니나』를 존재케 한 결정적인 영감이었다고 말한다. 그것이 시작이었을지 모르지만, 톨스토이가 안나 카레니나의 외모를 형상화해 나갈 때 위대한 러시아 시인 알렉산드르 푸슈킨의 딸 마리아 하르퉁을 떠올렸으며, 무엇보다 ‘안나’라는 이름을 가진 여인이 애인에게 버림받고 기차에 뛰어들어 자살한 사건이 『안나 카레니나』의 뼈대를 이룬다. 톨스토이는 기차 자살 사건이 자신에게 미친 영향력을 부인하고 이전에 불륜녀에 대한 소설을 구상해 왔다고 말했지만, ‘안나’의 그림자는 『안나 카레니나』에서 끈덕지게 따라붙는다. 그렇다면 『안나 카레니나』의 문학적인 영감에 대해서는 ‘환영+실존 인물+범죄 세계’에 두루 걸쳐 이야기돼야 한다.

실리어 블루 존슨의 분류는 한 권의 책을 짜임새 있게 보이도록 하는 편의상 구성일 뿐 무의미하다. 게다가 한 작가의 한 작품당 서너 장 정도로 짧게 할애하여 독자의 호기심을 만족시키는 데 그칠 뿐 더 이상 깊이 나아가지 못한다. 문학적인 영감에 사로잡힌 작가의 생생한 영혼을 감동적으로 마주하기에는 턱없이 역부족하다. 줄거리 요약인 ‘작품 엿보기’도 본문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지 못하고 외따로 뜬금없으니 차라리 없는 편이 더 나았을 성싶다. 하지만 이런 결점들이 분명하게 드러나는데도 『그렇게 한 편의 소설이 되었다』는 재미있고 흥미롭다. 개인적인 기호를 내세우자면 충분히 매혹적이다. 익히 알려진 에피소드도 꽤 있지만 어디에서 이 책에 담긴 것만큼 많은 작가들의 깨알 같은 사생활을 한꺼번에 들여다볼 수 있을 것인가?


가령 잉클링스 문학회에서 C. S. 루이스는 J. R. R. 톨킨이 확신 없이 『호빗』을 쓰고 있을 때 열렬한 찬사를 보냈지만, 톨킨은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사자와 마녀와 옷장)』에 대해 심드렁해했다고 한다. 게다가 루이스가 없는 자리에서 “아무래도 망할 것 같아!”라고 악평했고, 심지어 루이스가 나니아 이야기를 할 것 같은 날에는 아예 문학회에 참석조차 하지 않았다. 친구의 뒷담화를 하는 톨킨이 상상되어 우스웠는데, 이것은 (나는 새롭게 알게 됐지만) 톨킨과 루이스의 우정을 이야기할 때 꼭 짚고 넘어가는 유명한 일화인 듯하다. 친구의 작품이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노골적으로 자리를 피할 것까지 있나 하면서도, 작가의 대단한 자존심을 떠올리면 자신이 인정하지 않는 작품 이야기를 하는 자리에 벙어리처럼 머릿수만 채우는 것도 고역이겠다 싶어진다.


또, 윌리엄 S. 버로스가 마약에 취한 채 앨런 긴스버그에게 보냈던 편지들을 바탕으로 마약중독자 ‘윌리엄 리’의 이야기를 파격적으로 담은 소설 『네이키드 런치』를 쓸 때 잭 케루악이 타자기로 원고를 정서해 줬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잭 케루악은 ‘Naked Lust’라는 원제를 ‘Naked Lunch’로 잘못 읽고서는 오히려 그게 더 신선하다면서 소설의 제목마저 바꿔버렸다!


친구 이야기라면 『앵무새 죽이기』를 쓴 하퍼 리와 『인 콜드 블러드』를 쓴 트루먼 카포티도 기억에 남는다. 하퍼 리와 트루먼 카포티는 어린 시절부터 단짝 친구였나 보다. 하퍼 리의 아버지가 어린 두 아이에게 언더우드 타자기를 선물한 일화가 소개되어 있다. 또한 트루먼 카포티의 부탁으로 『인 콜드 블러드』를 위한 인터뷰를 하는 데 하퍼 리가 동행하기도 한다. 이성을 초월하여 언더우드 타자기를 두드리며 서로 작가의 길을 응원해 준 우정이라니, 멋지고 부럽다!


편집자(혹은 출판업자)의 이름도 눈에 띈다. 제임스 헨더슨(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보물섬』), 수전 대그널(J. R. R. 톨킨 『호빗』), 할 스미스(윌리엄 포크너 『소음과 격정(음향과 분노)』), 프레드릭 워버그(조지 오웰 『동물농장』), 로베르트 코틀리프(조지프 헬러 『캐치-22』), 맥스웰 퍼킨스(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세르지오 단젤로(보리스 파스테르나크 『닥터 지바고』), 모리스 지로디아(윌리엄 S. 버로스 『네이키드 런치』), 테레사 폰 호호프(하퍼 리 『앵무새 죽이기』), 마릴린 말로우(S. E. 힌튼 『아웃사이더』), 조지 브렛(잭 런던 『야성의 부름』), 조지 스미스(샬럿 브론테 『제인 에어』), 블랑슈 크노프(대실 해밋 『붉은 수확』), 해럴드 래섬(마거릿 미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말콤 코울리(잭 케루악 『길 위에서』, 켄 키지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파스칼 코비치(존 스타인벡 『생쥐와 인간』), 조나단 케이프(이언 플레밍 『카지노 로얄』). 대충 다 언급했나 모르겠다. 이들은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던 작가와 작품을 명민한 시선으로 알아보고, 작가가 작품을 완성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오늘의 내가 그 작품을 지금의 형태로 읽을 수 있도록 도와준 조력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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