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것들
필립 지앙 지음, 윤미연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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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포기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다. 운동선수가 자신의 신체적 능력이 이젠 옛날같지 않음을 알고 포기하는 것에 능숙하다면 작가는 정반대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상상력은 메마르고 감성은 무뎌졌지만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 작가라는 존재들이다. 자신은 언제나 예전의 그 느낌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마음속으로 굳게 믿으며 미련을 떨쳐 버리지 못하지만 이미 늙어버린 몸처럼 마음에도 세월의 때가 덕지덕지 눌어붙어 이젠 떼어내기 힘들 것이라는 것을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상상력과 감성이 죽은 작가는 말 그대로 죽은 작가일 뿐이다. 작가를 되살릴 수 있는 것은 어쩌면 고통보다 더한 충격뿐일지도 모르겠다. 필립 지앙의 『나쁜 것들』은 한 작가와 그들을 둘러싼 사람들과, 그 가족의 숨겨진 이야기다.

프랑시스, 자동차 사고로 부인과 큰딸을 잃은 유명한 작가였다. 사고에서 살아남은 작은딸 알리는 충격 때문에 방황의 시기를 보냈다. 프랑시스 자신도 사고의 충격으로 영감이 완전히 바닥나 제대로 된 글 한줄 쓰지 못하고 능력있는 부인과 재혼한 것으로 생계걱정 없이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그는 살아가는 데는 큰 불편이 없게 되었지만 그가 꿈꾸는 것은 소설가로서의 재기뿐이다. 어느 날 작은딸 알리스가 실종된다. 프랑시스는 동창인 여자 사립탐정을 고용하고 딸을 찾으러 나서지만 단서도 찾을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알리스는 갑자기 돌아오게 되고 딸의 실종 원인이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이 자신에게 한 것이라는 이유 때문에 프랑시스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이 무너지고 만다. 알리스가 사라진 뒤 떠올랐던 부인과 큰딸의 교통사고의 기억과 현재의 아내에 대한 의심은 새로운 소설과 글쓰기에 몰두하는 것으로 도피하려 한다. 하지만 자신의 방패막이와도 같은 글쓰기가 계속될수록 지난날의 과오를 깨닫게 되고 그 상처는 자신에게 돌아오게 된다.

사람들은 상처를 덮고 살아간다. 하지만 그 상처는 온전한 것이 아니어서 조금만 건드려도 쉽게 피가 난다. 프랑시스의 상처는 재혼으로 다 아물어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것을 보호해 줘야 한다고 믿었던 사람들이 헤집은 것이어서 아픔은 더욱 컸다. 하지만 그 상처를 낸 사람이 자기 자신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슬픔이 더욱 컸을 것이다. 자신은 다른 사람에게 더 큰 상처를 줬는지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자신이 피를 본 후에야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을 되돌릴 수는 없다. 아내와 큰딸은 죽었고 살아남은 딸은 아버지를 멀리하고 글 쓰는 것은 괴로움의 연속이고 아내는 의심스럽고 자신은 늙어버렸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들은 다 나쁜 것들이었다. 심지어 자기 자신마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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