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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끝날 무렵의 라 트라비아타
이부키 유키 지음, 김해용 옮김 / 예담 / 2012년 8월
평점 :
품절
태풍이 지나가고 여름이 끝났다. 여름 내내 남편이랑 다른 대문으로 귀가하는 연애를 하고 싶어 몸살이 날 지경이었다. 결혼 이전에는 바깥에서 만나 조금이라도 더 오래 같이 있으려고 내내 어디를 갈까 고민했다. 그때는 그게 성가셔서 빨리 결혼하고 싶었다. 결혼은 헤어지는 시간 없이 남의 눈을 신경 쓰지 않고 온종일 둘이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는 말이니까. 그랬는데! 내가 워낙 집 안에 틀어박히는 기질이기도 하지만, 데이트를 하려고 집을 나섰다가도 금세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지는 것이다. 여름이면 더워서, 겨울이면 추워서…… 어떤 상황이든 우리는 이제 부부니까 목적 없이 거리를 헤맬 필요 없는 이유, 혹은 핑계가 무수히 떠올랐다. 그래, 우리에겐 둘만의 공간이 있잖아. ‘맞아, 맞아’ 맞장구치며 집으로 돌아오고 나면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애초에 헤맬 목적으로 집을 나선 건데. 그렇게 집이 없는 연인의 달달한 연애가 고플 때 이부키 유키의 『여름이 끝날 무렵의 라 트라비아타』가 내 손에 들어왔다. 이 소설은 서른아홉에 다시 사랑하고 연애하는 여자와 남자의 해피엔드를 이야기한다. 상처를 간직한 그들은 서로에게 가장 부드러운 마음의 속살을 내비치며 소박하게 다가선다. 책장을 넘길수록 서로에게 조금씩 더 각별해지는 그 친밀감은 사랑이라고 주장하지 않아도 사랑으로 녹아든다. 편안하고 따뜻하고 아름답다.
나이에 따라 사랑의 본질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분명 선호하는 사랑의 형태와 방식은 달라지는 것 같다. 좀더 어릴 때는 감각적인 밀어를 핑퐁처럼 주고받는 ‘밀당’의 짜릿한 긴장감 같은 것을 기대했다. 내 사랑은 조금이라도 더 특별해야 한다는 치기도 있었을 것이다. 드라마나 영화처럼 죽고 못 사는 사랑만 보였다. 나와 내 주변 지인들의 경험에 한정된 것이긴 하지만 현실 속의 사랑은 그다지 극적이지 않다. TV와 스크린에서 선남선녀들이 달콤하게 주고받는 사랑의 대사들은 실제로 재현하기에는 낯간지럽고 느끼하다. 부모들은 다 고슴도치이니까 제 자식의 흠보다 남의 자식의 흠이 더 크게 보여 한두 가지 불만들을 갖기 마련이지만, 그것이 연인을 갈라놓는 장애물이 되지는 않는다. 사랑을 모방했던 시절을 지나니 이젠 ‘그저 그런’ 사랑들이 모두 진짜 사랑이라는 것을 알 듯도 하다.
어쩌면 스가 테쓰지와 후쿠이 키미코의 사이는 그렇고 그런 불륜으로 비칠지 모른다. 테쓰지에게는 ‘펜딩(pending)’ 중인 아내 리카가 있으니까. 하지만 어머니의 죽음 이후 특별한 병명 없이 몸에 이상 증세가 갑작스레 찾아온 김에 요양 차 어머니가 살림하던 집과 유품을 정리하러 온 테쓰지와, 우연히 그 일을 도와주게 된 키미코는 사랑의 ‘사’ 자도 입 밖에 내지 않는다. 그런데도 자신이 진심을 내비쳐도 안전하다는 신뢰가 어느새 그들을 감싼다. 테쓰지는 키미코의 진심을 ‘중졸의 모르면서도 아는 체’라고 무시하지 않고, 키미코는 테쓰지의 진심을 ‘고작 목이 돌아가지 않는 정도로 수선이나 피우면서 모든 문제를 아내한테 떠넘기고 혼자 현실도피나 한다’고 오해하지 않는다. 상대방의 진심을 투명하게 들여다보고 자기 욕망으로 판단하지 않는 것, 상대방의 진심 그대로를 배려하고 아끼는 것은 굳이 사랑이라고 이름붙이지 않아도 사랑일 것이다. 그러니 키미코의 표현대로라면 ‘초엘리트’인 ‘최고급품 멜론’ 테쓰지와 ‘중졸’인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킨코 참외’ 키미코일지라도, 리카의 표현대로라면 (사회적) ‘레벨이 높은 은행원’ 테쓰지와 ‘레벨이 낮은 아줌마’ 키미코일지라도 어찌 그들이 위화감을 극복하고 자연스레 영혼의 짝꿍으로 서로에게 다가들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리고 또 하나, 테쓰지의 어머니가 남긴 ‘곶의 집’. 작고 한적한 해변 마을에 있는, 이 사랑스러운 집은 테쓰지와 키미코의 해피엔드를 예비하고 있는 공간이다. 지금까지 이런저런 말들을 장황하게 끌어다 댔지만, 사실 이 소설에 급격히 열광하게 된 이유는 ‘곶의 집’에 반해 버렸기 때문이다. 키미코가, 테쓰지의 아내 리카가 ‘자신이 번 돈으로 새 물건을 사서 언제든 교체할 수 있는 쓰레기’로 취급한 곶의 집과 그곳에 가득 찬 유품들을 보고 “이 집은 여자들이 동경하는 보물투성이에요” 하며 흥분했을 때 나도 덩달아 들떴다.
“키가 큰 그 건물은 3층쯤 되는 것 같았지만 정작 안에 들어가면 2층짜리였다. 방은 천장이 높아서 천창이 넉넉했고, 서양식 저택인가 했더니, 웬일인지 마당과 맞닿은 툇마루가 있었다. 일본풍이라고도, 서양풍이라고도 할 수 없는 신기한 건물이었다.” (49p)
“곶의 집 입구는 (…) 천창에서 빛이 쏟아져 내렸다. (바닥의) 먼지를 청소하면서 키미코는 서서히 드러나는 문양에 눈길을 빼앗겼다. 거기에는 선명한 색깔의 타일이 깔려 있어, 먼지를 한 번 훔칠 때마다 조개와 물고기의 모자이크 문양이 나타났다. 한구석에 몇 명 정도 되는 사람의 이니셜이 있고, 문양이 군데군데 일그러지거나 생뚱맞은 색깔로 배합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 이것은 이 집 주인이 친구들과 직접 만든 것인 듯했다. (…) 바닥은 온갖 색깔로 가득했는데, 벽에는 연필 그림의 액자 하나만 걸려 있어 흑백의 느낌이었다. (…) 하나는 미와시 풍경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 집 정원에서 차를 마시는 여자들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것은 왠지 화과자 가게의 포장지 안쪽에 그려져, 끝부분은 찢어지고 희미한 좀 자국까지 나 있었다.” (53~54p)
“시트를 벗겨내자 업라이트 피아노가 나타났다. 두 번째를 벗기자 소파였다. 세 번째로는 대화면 텔레비전과 오디오 기기가 나타났다. 네 번째는 흔들의자였고, 마지막으로 한쪽 벽면 전체의 천을 벗겨내며, 테쓰지는 어깨로 숨을 몰아쉬었다. (…) 한쪽 벽 전체에 천장까지 책장이 차지하고 있었다. 안에는 빽빽이 책과 레코드, CD 등이 꽂혀 있다.” (41p)
“당신, 이 집을 정리하려면 1년이 지나도 안 끝나요. 그게, 이 집 수납장 봤어요? 나는 어제 갈아입을 옷을 찾느라, 미안하지만 좀 여기저기 열어봤어요. 어마어마한 양의 물건들이 있어요. 그 모든 게 다 최고급품이었고요. (…) 주방에 있는 멋진 식기와 유리잔들은 어떡할 거죠? 수납장에 들어 있는 훌륭한 올리브오일과 발사믹 식초는요? (…) 유리잔 보셨어요? 설거지할 때 손가락으로 문질렀더니 예쁜 소리가 났어요. 그런 맑은 소리를 들어본 건 처음이에요. (…) 눈 크게 뜨고 보시라고요. 이 집은 여자들이 동경하는 보물투성이에요.” (42~45p)
“페리에 같은 미네랄워터와 리큐르를 보관해 두는 장소를 꼼꼼히 살펴보니 리몬첼로가 있었다. (…) 주방 한구석에 나무상자가 쌓여 있었다. (…) 역시나 화이트와인이 들어 있었다.” (68p)
“이 집의 정원에는 바다 쪽으로 커다란 나무 두 그루가 심어져 있었다. 그것이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약하게 만들어, 정원에 늘 부드럽고 기분 좋은 공기가 흐르도록 해주었다. (…) 황폐했을 때는 눈에 띄지 않았는데, 이 정원은 지금 여름 화초가 한창이었다. 하이비스커스와 부용에 섞여, 하얗고 노란 작은 꽃들이 수없이 피어 있었다. 청소의 마무리로 나무들 근처의 잡초를 뽑으려고 그 옆으로 갔다. 쪼그려 앉으니 상쾌한 향기가 났다. 주변을 둘러보다 그것이 자신의 발치에서 풍기는 것임을 깨닫고 땅바닥에 코를 바싹 가져가보았다. 청량감이 전해지는 향기가 났다. 바로 앞의 잎사귀를 움켜쥐자 박하향이 났다. 민트네, 하며 키미코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자 민트 옆에, 또 낯익은 풀이 무리지어 피어 있었다. 자연스럽게 손을 뻗어 이파리를 훑고 나서 냄새를 맡아보았다. 이탈리아 요리의 샐러드 같은 냄새가 났다. 바질 같았다. 감탄하며 일어나 풀숲을 바라보았다. 아마 여기에는 잡초에 섞여 다양한 허브가 자라고 있는 듯했다.” (54~55p)
길게 인용하긴 했지만, 곶의 집이 주인에게 얼마나 사랑받았는지 느낄 수 있다. 한 여인이 생전에 마지막 거처로 정하고, 집과 정원의 구석구석을 알뜰살뜰 가꾸고 집 안으로 물건 하나하나 허투루 들이는 법 없이 정성을 쏟아부은 집인 것이다. 세상의 냉정한 시선에 움츠러든 두 사람이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치유하기에는 이보다 더 아름다운 공간이 어디에 있을까? 사치스러운 최고급 휴양지에 비할 바가 아니다.
결국은 이렇게 다시 ‘공간’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테쓰지의 어머니만큼 나는 정성을 쏟아 우리의 공간을 사랑했을까? 어림없는 소리, 라는 것을 나는 안다. 워낙 살림에 젬병이긴 하지만, 사실 우리 집은 의식주의 실용적인 용도에만 철저하다. 게다가 우리가 욕심껏 사들인 책들과 각종 취미를 위한 물건들이 제멋대로 쌓여 있는 창고의 역할도 겸한다. 공간 탓이 아니었던 것이다. 서로 사랑하지만 미처 함께 살고 있는 공간까지 충분히 사랑하지 못한 우리 탓이다. 테쓰지와 키미코는 끝까지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함께 살고 싶다’고 말한다. 그 말은 평생 삶의 가장 은밀한 공간을 공유하자는, 그 공간을 같이 아름답게 가꾸자는 사랑 고백이나 다름없다. 그렇게 깨달아지니 더는 집 없는 연인이 하나도 부럽지 않다. 이젠 집을 가꾸면서 사랑도 더 크고 넓게 키워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