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레트 브렌델 피아노를 듣는 시간
알프레트 브렌델 지음, 홍은정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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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생각해 보면 음악처럼 가볍게 접할 수 있는 예술이 있을까 싶다. 우선 음악은 아무 데서나 흐른다. 일상적인 하루를 생각해 보자. 깨어나면서 부터 잠들기 전까지는 우리는 항상 음악과 함께 살아간다. 이렇게 우리는 음악과 함께 살아가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 음악을 제대로 듣는 적이 있던가? 다른 일을 하면서 듣는 배경으로가 아니라 음악 자체를 듣는 것에 집중하면 들리지 않던 소리가 들리고 이것이 진짜 음악을 듣는 것이구나 하고 느끼게 될 것이다. 곡에 깔리는 묵직한 베이스 소리, 심벌의 소리, 호흡 소리, 피아노의 명징한 울림 소리. 이런 것들이 모여 음악을 이룬다.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에 묻혀 들리는 음악도 좋겠지만 음악 자체의 소리는 그것보다는 훨씬 낫다.

알프레트 브렌델의 『피아노를 듣는 시간』은 음악 에세이다. 브렌델은 묵묵히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다. 그는 튀는 개성보다 전통을 중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의 피아노는 음악 그 자체일 뿐이다. '과감한 극단적 시도는 음악이 전정으로 요구하는 지점에서만 이루어져야 합니다(p. 57) ' 책은 A에서 Z까지의 키워드 속에 악센트, 아르페지오, 싱커페이션 등의 피아노 연주 기법과 바흐, 브람스, 슈베르트 등의 작곡가들의 소개, 또한 브렌델의 음악에 대한 여러 생각을 드러내고 있다. 엄격한 그의 음악적 해석과는 달리 책은 오히려 부드럽게 쓰여 있다. 하지만 그 부드러움 속에서도 음악과 관련된 엄격함을 찾아볼 수 있는데 이는 그의 음악에 대한 확고한 신념 같은 것인가 보다. 그는 조화와 균형을 중시한다. 작은 소리는 작게 큰 소리는 크게 들려야 하고 음악 그 자체를 존중해 연주자의 개성이 너무나 넘치는 것을 경계한다. 작은 것보다는 크게 음악을 바라볼 것을 주문한다. 큰 호흡을 만들어 내는 것이야말로 연주자들에게 주어진 과제라고 이야기하는 브렌델의 글은 부드러움 속에서도 엄격함을 보여주고 있다.

피아노는 피아노포르테(Pianoforte)를 줄여 쓴 것으로 현을 망치로 때려 소리를 내는 악기이다. 건반을 눌러 음을 표현하는 악기로 피아노(약하게) 포르테(강하게) 를 표현할 수 있지만 다른 악기들에 비하면 연주자가 음에 개입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피아노는 음과 음들의 조화가 중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브렌델이 조화와 균형을 강조하는 것도 피아노 자체를 이해한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브렌델은 피아니스트의 손끝을 통해 인간의 목소리로 , 다른 악기의 음색으로 변화한다고 한다. 『피아노를 듣는 시간』은 음악 애호가들뿐 아니라 연주자―또는 연주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한 번쯤 읽어보면 좋을 책이라고 생각한다. 평생을 피아노와 함께해 온 음악가가 들려주는 부드럽지만 엄격한 이야기는 굳이 클래식이 아니더라도 음악을 대하는 우리의 느슨한 감정을 다시 한 번 되새길 자극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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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 밑의 책 - 잠들기 전까지 손에서 놓을 수 없었던 이야기
윤성근 지음 / 마카롱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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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한 신문사에서 직장인의 한 달 평균 독서량을 조사한 결과를 흥미롭게 봤다. 한 달 평균 1.8권이란다. 직장인의 빡빡한 생활을 감안하면 그리 나쁘지 않은 것 아닌가 했으나 이어지는 기사는 조금 우울한 기분을 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자기계발서 54%, 경제경영서 21%, 부동산재테크 9% 정도의 수치다. 외국어는 빼고 계산한다고 해도 1.8권의 84%가 자기계발서와 재테크 류의 책이다. 이것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겨우 0.3권 정도다. 전철을 타고 돌아다니다 보면 이런 조사 결과가 크게 틀리지 않음을 알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자기계발서 혐오주의자이기 때문에 자기계발서의 가치가 눈꼽만큼이라도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기계발서를 보느니 아동용 애니메이션을 보는 게 훨씬 낫다. 자기계발서란 게 아동용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이야기를 성인의 언어로 풀어놓은 것에 불과할 뿐이다. 긍정적 마인드, 사람 사이의 관계, 희망 같은 것들 말이다.

각설하고, 우리나라의 평균 독서량이 많다고는 할 수 없을 터이고 인구 자체도 많은 편이 아니어서 독서 인구 자체가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종류의 책들이 출판되는 것을 보면 신기한 생각이 자꾸 든다. 바로 다른 책들을 이야기하거나 독서 자체를 이야기하는 책들 말이다. 침대에서도 읽고, 여행지에서도 읽고, 기차에서도 읽고, 공원 벤치에서도 읽는다. 도무지 팔릴까 싶은 책들이지만 이런 책들을 살펴보는 것은 의외로 재미있는 일임에 틀림이 없다. 다른 사람의 비밀을 엿보는 듯한 느낌 때문일까?

윤성근의 『침대 밑의 책』도 이런 이야기다. 잠들기 전까지 손에서 놓을 수 없었던 이야기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은 다른 책들에 대한 이야기다. 책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는 이야기가 무슨 재미가 있을까 싶지만 의외로 이런 이야기들이 재미있다. 사람도 똑같지 않던가? 원래 다른 사람들 이야기가 재미있는 것처럼 다른 책 이야기를 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재미있다. 그리고 이 책은 가벼운 터치로 써 내려가 읽기 부담스럽지 않다는 점도 특이한 점이다. 좀비나 캠핑, 세계정복, 수집 같은 부분을 보면 이 책만이 보여주는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침대 밑의 책』은 다른 책들과는 달리 책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책이 아니다. 이 책은 저자 자신의 이야기다. 자신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하는데 그것이 책이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책을 등장시킬 수밖에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 현재는 헌책방 주인이기도 하면서 책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저자는 자신의 이야기도 책에 빗대어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찌 되었건 '침대 밑의 책'이라는 말처럼 느긋함과 만족감을 주는 것도 드물 것이다. 뒹굴거리며 재미있는 책을 읽다 잠들 수 있는 공간이 어찌 낙원이 아닐 수 있을까.


참고로 책의 각 페이지에 실려 있는 오른쪽 아래의 어여쁜 아가씨 그림은 책 애니메이션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어렸을 때 교과서에 움직이는 그림을 그려본 사람이 있다면 알 것이다. 책 사이에 껴 있는 돈을 찾을 때처럼 넘기면서 그림을 감상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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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성 없는 남자 1
로베르트 무질 지음, 안병률 옮김 / 북인더갭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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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해한 텍스트를 읽어내는 데에는 특별한 재주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포기하지 않고 읽을 수 있는 끈기, 어느 수준의 지적 능력, 그리고 충분히 사유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특별히 엉망인 번역서나 이해할 수 없는 지적 능력을 요구하는 이론이 아닌 다음에야 위의 조건들이 갖추어지면 읽어내지 못할 텍스트는 없을 것이다. 다만 이 과정이 지루하고 복잡하고 난해할 뿐이어서 견디어내기 힘들다는 것이 문제다.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 역시 마찬가지다. 몇 문장(또는 한 문장)을 읽고 그것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고 다음 문장을 읽어 내려가야 한다. 각각의 문장은 모호하며 갑자기 이런 문장이 왜 튀어나왔는지도 알기가 힘들다. 한 문장을 읽어 내려가는 게 고통스러울 정도다. 대체 누가 이것을 즐겁게 여길 것인가. 문제는 로베르트 무질의 이 작품은 난해한 텍스트뿐이 아니라는 것이다. 노력과 끈기로 극복하기 어려운 사유의 세계는 더 크게 앞을 가로막고 서 있다.

어떤 예술 분야에서건 다른 것들에 비해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는 작품들이 있다. 대개의 경우 저자가 고통 속에서 죽고 나서야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기 마련인데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우리나라에서의 평가는 더욱 그러하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는 달리 이 작품은 처음 들어본 독자들이 많을 것이고, 나 역시 마찬가지다. 밀란 쿤데라와 존 쿳시 같은 현대 작가들에게 지속적인 영향력을 끼친 20세기의 가장 독특한 ‘사유 소설’이라는 이 작품을 어떻게 읽어야 할 것인가.

무질이 활동하던 당시의 시대는 철학, 언어학, 음악, 미술의 온갖 문화 속에 사상이 넘쳐나는 곳이었고 이런 사상의 흐름을 작품에 투영시켰다. 뿐만 아니라 무질은 학문적 사고뿐만이 아니라 인간의 내적 삶에서 나온 ‘결정적 사유’를 자신의 소설에 투영시켜 연구실에서 나온 논문 같은 글이 아니라 소설로서 완성했다. 이런 작품의 배경 말고 실제 책은 어떨까? 사유 소설이 형식적으로는 어떤지를 알기 위해서라면 책의 첫 문단을 읽어보면 바로 알게 된다.


“대서양 상공 위로 저기압이 걸쳐 있었다. () 그리고 일정치 않게 변하는 월별 온도에 비해서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 대기 중 수증기는 최고의 장력을 유지했고, 습기는 아주 적었다.”


바로 이어 나오는 문장은 위의 이야기들을 한마디로 표현해 준다.


“좀 구식이긴 하지만 사실을 꽤나 잘 드러내주는 한마디 말로 하자면, 때는 1913년 8월의 어느 청명한 날이었다.”


평행운동이라 이름 붙여진 애국주의 운동은 주변국에 평화의 의지를 알리고 물질의 세계에 맞서 영혼을 구하자는 취지와는 달리 지식인들의 자기주장에 그쳐버리게 되고, 이미 몰락해 버린 귀족을 흉내 내던 자본과 결합된 시민 사회의 천박함과 허위의식은 욕망으로 넘쳐 전쟁과 같은 집단적인 분출 의지로 바뀐다. 지식인들이 꿈꾸던 이상은 주인공 울리히의 사유처럼 ‘불충분한 근거의 원리’에서 비롯되어 끊임없이 소비되는 ‘현대적 전율’에 불과했고 전쟁과 파시즘을 피할 수 없는 역사의 흐름이었다. 지식인이나 전문가 사회의 정신적인 과잉은 대중들에게도 의식의 무감각함을 전파하게 된다. 울리히는 이런 사회의 넘쳐나는 이상론의 무의미함을 깨닫고 정신과 영혼의 신음에 귀를 기울이는 자신만의 사유 속에 잠긴다.

누가 이 소설을 제대로 읽어낼까? 책을 잡게 되면 사유와 또 사유의 늪에서 허덕이게 되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고 그곳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길을 찾기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몰락한 귀족을 흉내 내는 천박한 시민들처럼, 이 이야기를 제대로 읽어내기에는 정신적으로 궁핍한 상황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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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와 니체의 문장론 - 책읽기와 글쓰기에 대하여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홍성광 옮김 / 연암서가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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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최종적인 목적은 독자에게 읽히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애써 책으로 출판할 이유도, 애초에 글을 쓸 이유조차 없어지게 되는 것이 책이 가진 숙명일 것이다. 작가가 아무리 골머리를 앓으며 책을 쓴다 한들 독자가 읽어주지 않는다면 그 책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독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좋은 책의 기준은 읽기가 좋아야 한다는 것이 첫 번째로 꼽힐 것이다. 책의 외관은 과거에 비해 훨씬 화려해졌고 그 속에 담긴 서사 구조 자체도 훨씬 복잡해졌다. 클래식이라 불리는 작품 중에서도 현재의 작품을 기준으로 본다면 단순한 구조를 가진 것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 담긴 문장은 지금 읽어도 좋은 문장임에 틀림없다. 좋은 책은 언제나 좋은 문장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쇼펜하우어와 니체의 문장론』은 독일 최고의 문장가로 알려졌고 헤르만 헤세, 프란츠 카프카, 토마스 만 등의 독일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 두 철학자의 문장론에 대한 글을 추려낸 것이다. 쇼펜하우어의 경우 직접적으로 글쓰기나 책에 관련한 글들―‘글쓰기와 문제’, ‘책과 글 읽기’ 등―도 많이 펴낸 반면에 니체의 경우 이렇게 직접적으로 글을 쓴 적이 없어서 그의 서적에서 잠언 형태로 된 것이 실려 있다. 엄밀히 말하면 니체의 경우 문장론이라기보다는 저자와 독자에 대한 잠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쇼펜하우어와 니체의 문장에 대한 생각은 서로 맞은편에서 한 점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차이가 있다. 쇼펜하우어의 경우 구체적이다. 그는 형편없는 저술가나 기자들이 독일어를 훼손하는 것에 분노했고 정확한 표현 방식이나 문체, 구두점과 같은 글쓰기와 직접적으로 연관이 되어 있는 부분에서도 철저했다. 그가 번역가로 활동한 것도 이런 사실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훌륭한 작가란 자신의 문체가 있고 그것을 정확하게 표현해 낼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니체의 경우 자신의 글 자체가 이해하기 어려우며 잘 읽히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했다. 그는 자신의 사상을 전달하기 위해 온갖 다양한 형식과 문체를 사용했다. 자신의 잠언들이 이해되기보다는 암송되기를 원했다. 이렇게 다르지만 둘이 후대의 작가들에게 미친 영향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가끔 번역서를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과연 내가 이 작가의 작품을 제대로 읽고 있는 것인가라는 것이다. 번역가에 의해 번역이 되고 편집자에 의해 수정된 문장은 어떤 이유에서건 저자로부터 중간 단계를 한 번 더 거쳐 나에게 읽히는 것들이다. 직접 작가의 글을 느낄 수 없다는 사실은 중간 단계에 위치한 번역, 편집을 하는 사람들의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말하고 싶다. 아무리 좋은 문장이라도 거쳐 가는 과정이 나쁘다면 작가와 독자 모두에게 서글픈 일이 될 것이다. 이 책은 좋은 문장에 대해서 이야기하지만 정작 이 책에 실린 문장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가끔 보이는 번역투의 어색한 문장들이 저자의 생각을 잘 전달하기 위한 의미였다면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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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낙엽
토머스 H. 쿡 지음, 장은재 옮김 / 고려원북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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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어떤 작품이라도 하나의 틀에 가두기는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다른 장르도 마찬가지겠지만 소설 속에서의 장르는 단지 쇼핑몰의 카테고리 분류를 위해 필요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여러 장르가 뒤섞인 작품들이 많다. 몇 십 년 후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가 모두 SF가 아닌 것처럼 사건이 발생하고 이것을 해결하는 과정이 등장한다고 해서 모두 추리소설인 것은 아니다. 당연하게도 추리소설협회에서 주는 최고의 상을 받았다고 추리소설의 카테고리에 묶어버리는 것 역시 어리석은 일이다. 다시 말하지만 장르의 구분은 이제 큰 의미가 없다.

토머스 H. 쿡의 『붉은 낙엽』이 바로 이런 이야기다. "이 작품은 미국추리작가협회상, 앤서니상, 배리상 수상에 빛나는 토머스 H. 쿡의 장편 추리소설이다"라는 책 소개가 첫머리에 등장하지만 이 작품은 추리소설과 거리가 멀다. 하지만 저 많은 상들은 뭐냐고? 그들은 추리 요소가 있는 좋은 작품에 상을 안겨줬을 뿐이다. 좋은 작품에 상을 주는 것이 상 자체의 권위를 높이는 일이기도 하니까. 『붉은 낙엽』은 좋은 작품이지만 추리소설이라기보다는 순문학에 가까운 작품이다. 당연하겠지만 둘 사이의 가치 평가의 기준에 따른 이야기가 아니다. 순문학이 추리소설보다 우월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 작품이 추리소설이라는 장르에서 너무 멀다는 이야기일 뿐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나 자체가 추리소설의 굉장한 마니아이기 때문이다.

에릭은 자신의 가족에 큰 애착을 가지고 있다. 사랑하는 부인 메러디스와 조용한 아들 키이스가 있는 가족은 에릭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이미 그에게는 가족을 잃은 아픈 과거가 있으며 다시는 그런 일을 겪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조용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으나 옆집의 에이미가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사건이 발생하던 날 에이미의 베이비시터 역할을 했던 아들 키이스, 수사는 시작되고 경찰은 키이스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게 된다. 에릭은 아들을 믿지만 조금씩 커져가는 의심과 거짓에 절망한다. 사소해 보였던 행동들마저도 오해가 쌓여 의심스러울 뿐이었다. 이처럼 자신의 아들에 대해 커져가는 의심 속에서 과거 자신의 어머니의 자살과 아버지, 죽은 여동생과 착하지만 무기력하게 남아 있는 형…… 과거의 가족이나 현재의 가족 모두가 의심스러운 상황이 된다.


제 아무리 단단해 보이는 차돌이라 하더라도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실금이 있다면 부서지기 쉬운 법이다. 약간의 충격만 가하면 그 실금을 따라 갈라지고 많다. 인간이라고 다를까. 아니 인간처럼 어떤 계기로 무너질 수 있는 존재도 찾기 힘들 것이다. 게다가 인간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존재다. 사랑으로 바라보는 상대는 아름답고 견고하지만 의심으로 바라보는 상대는 어둡고 불길하다. 결국 의심의 눈길은 그 상대를 물들여 파괴하고 자신마저 파괴할 것이다. 피처럼 검붉은 낙엽이 떨어져 쌓이듯 결국 상대에 대한 의심은 당연하게도 비극으로 끝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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