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낙엽
토머스 H. 쿡 지음, 장은재 옮김 / 고려원북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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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어떤 작품이라도 하나의 틀에 가두기는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다른 장르도 마찬가지겠지만 소설 속에서의 장르는 단지 쇼핑몰의 카테고리 분류를 위해 필요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여러 장르가 뒤섞인 작품들이 많다. 몇 십 년 후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가 모두 SF가 아닌 것처럼 사건이 발생하고 이것을 해결하는 과정이 등장한다고 해서 모두 추리소설인 것은 아니다. 당연하게도 추리소설협회에서 주는 최고의 상을 받았다고 추리소설의 카테고리에 묶어버리는 것 역시 어리석은 일이다. 다시 말하지만 장르의 구분은 이제 큰 의미가 없다.

토머스 H. 쿡의 『붉은 낙엽』이 바로 이런 이야기다. "이 작품은 미국추리작가협회상, 앤서니상, 배리상 수상에 빛나는 토머스 H. 쿡의 장편 추리소설이다"라는 책 소개가 첫머리에 등장하지만 이 작품은 추리소설과 거리가 멀다. 하지만 저 많은 상들은 뭐냐고? 그들은 추리 요소가 있는 좋은 작품에 상을 안겨줬을 뿐이다. 좋은 작품에 상을 주는 것이 상 자체의 권위를 높이는 일이기도 하니까. 『붉은 낙엽』은 좋은 작품이지만 추리소설이라기보다는 순문학에 가까운 작품이다. 당연하겠지만 둘 사이의 가치 평가의 기준에 따른 이야기가 아니다. 순문학이 추리소설보다 우월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 작품이 추리소설이라는 장르에서 너무 멀다는 이야기일 뿐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나 자체가 추리소설의 굉장한 마니아이기 때문이다.

에릭은 자신의 가족에 큰 애착을 가지고 있다. 사랑하는 부인 메러디스와 조용한 아들 키이스가 있는 가족은 에릭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이미 그에게는 가족을 잃은 아픈 과거가 있으며 다시는 그런 일을 겪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조용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으나 옆집의 에이미가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사건이 발생하던 날 에이미의 베이비시터 역할을 했던 아들 키이스, 수사는 시작되고 경찰은 키이스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게 된다. 에릭은 아들을 믿지만 조금씩 커져가는 의심과 거짓에 절망한다. 사소해 보였던 행동들마저도 오해가 쌓여 의심스러울 뿐이었다. 이처럼 자신의 아들에 대해 커져가는 의심 속에서 과거 자신의 어머니의 자살과 아버지, 죽은 여동생과 착하지만 무기력하게 남아 있는 형…… 과거의 가족이나 현재의 가족 모두가 의심스러운 상황이 된다.


제 아무리 단단해 보이는 차돌이라 하더라도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실금이 있다면 부서지기 쉬운 법이다. 약간의 충격만 가하면 그 실금을 따라 갈라지고 많다. 인간이라고 다를까. 아니 인간처럼 어떤 계기로 무너질 수 있는 존재도 찾기 힘들 것이다. 게다가 인간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존재다. 사랑으로 바라보는 상대는 아름답고 견고하지만 의심으로 바라보는 상대는 어둡고 불길하다. 결국 의심의 눈길은 그 상대를 물들여 파괴하고 자신마저 파괴할 것이다. 피처럼 검붉은 낙엽이 떨어져 쌓이듯 결국 상대에 대한 의심은 당연하게도 비극으로 끝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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