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드 모파상]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기 드 모파상 - 비곗덩어리 외 62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9
기 드 모파상 지음, 최정수 옮김 / 현대문학 / 201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수십 권짜리 대하소설 같은 것들을 보다 보면 짧은 단편소설에 과연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이 가능할까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콩트 형식의 장편(掌篇)이나 엽편소설들과는 달리 단편소설은 소설의 구조를 그대로 따른다. 호흡이 긴 장편과는 달리 짧은 이야기 속에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울지는 상상만으로도 짐작이 간다. 반대로 단편을 읽는 재미 또한 이런 것에 있다. 한 단어, 한 문장을 놓치지 않고 읽는 것. 등장인물의 대사나 사소한 배경에도 한눈을 팔 틈이 없다. 이야기 전체를 내 안으로 새겨 넣는 것이 가능해진다. 물론 이런 전제는 잘 쓰안 단편이라야 한다는 것이 먼저겠지만. 가장 좋아하기도 하고 단편소설로는 가장 유명한 작품이기도 할 에드거 앨런 포의 <도둑맞은 편지>를 보면 이런 단편의 미덕이 잘 드러난다. 에드거 앨런 포 뿐 아니라 안톤 체호프나 기 드 모파상도 단편으로 유명한 작가들인데 여기서 소개할 모파상의 경우 독특한 성향을 가진 작가였다. 초창기에는 프로이센과 프랑스의 전쟁인 보불전쟁을 소재로 한 것이 많았다. [비곗덩어리]와 같은 유명한 단편들이 이 보불전쟁의 이야기를 그려낸 것이다. 그리고 파리에 사는 사람들의 평범한 삶의 단면을 다룬 작품들과 시골 생활을 그려낸 작품들인데 당시의 모파상은 휴머니즘이나 인간적인 모습을 그려내기보다는 전쟁이나 삶의 리얼한 모습을 가감 없이 묘사했다. 이후 모파상의 소설은 환상소설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독특한 색채의 작품이 많아졌는데 이는 모파상이 걸린 매독으로 인한 것이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때 발표한 작품들은 후에 러브크래프트나 웰즈 등의 작가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하니 이 또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모파상의 작품들은 섬세하고 예리한 관찰력, 진지함과 유머가 함께 존재했던 단편들로 예술적 성취와 영향력을 동시에 가진 작가였다.


모파상 이야기의 특징은 반전에 있다. 추리소설이나 영화 등에서 깜짝 놀라게 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치밀한 반전이라기보다는 삶 속에서 흔하게 있을 법한 반전인데 그것이 주는 무게는 가볍지 않다. 잘 알려진 [목걸이]만 보아도 그렇다. 파티에 가기 위해 귀부인에게 빌린 목걸이를 잃어버려 10년 동안 이것을 갚기 위해 초라한 삶을 살았지만 부부를 기다리고 있던 진실은 무엇인가. [어느 농장 아가씨 이야기] 역시 독특하다.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숨기고 일을 하다 주인과 결혼한 하녀에게 아이가 생기지 않자 부부 사이에 불화가 생긴다. 아내가 된 하녀는 남편을 떠날 결심을 하고 자신이 숨겨 두었던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그 뒷이야기는 어떻게 될까. 또한 모파상의 이야기에는 사랑에 관한 것이 많다. 사랑이야 문학의 영원한 주제이기도 한데 모파상의 사랑 이야기는 보석처럼 빛나는 것이 아니다. 사랑으로 상처를 받는 사람들을 모파상 특유의 문체로 그려내고 있다.


평생을 환멸과 향락 사이에서 살아왔고 매독으로 인해 삶을 마감했지만 그의 묘비에 쓰여진 ‘인생의 온갖 것들을 탐했으나 그 어떤 것에서도 즐거움을 얻지 못했다’는 말처럼 그의 이야기는 그의 삶처럼 극적이지는 않다. 전쟁의 이야기, 삶의 이야기, 사랑의 이야기마저도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이야기 말미에 종종 드러나는 반전 역시도 삶에서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이기에 놀라면서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모파상이 그려낸 삶은 우리의 그것과 닮아 있다. 시대가 다르고 지역이 달라도 삶은 여전히 다르지 않은 것이다. 오히려 그가 매독을 앓게 된 후로 써낸 이야기들이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 많다. 그동안 모파상의 작품은 유명한 것 위주로 중복출판된 것이 대부분이었다고 하는데 이 단편집을 통해 최대한 많은 작품들이 소개되었다고 한다. 가능하다면 모파상의 나머지 단편들 모두가 소개되길 바라며 모파상과 단편의 매력을 함께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국의 목가]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미국의 목가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7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목가 Pastoral 牧歌 - 전원생활이나 목가적인 정서를 주제로 한 시문학. 목가라는 것은 고요하고 평화로운 시골의 한적한 느낌이 드는 것이 대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이 목가라는 단어에 반어적인 의미가 담긴다면 어떨까. 1960년대는 세계가 격동했던 시기였다. 특히 미국의 경우는 사회 전반에 걸쳐 격동적인 상황이 많이 펼쳐졌는데 ‘광기’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전쟁과 반전운동, 젊은 대통령의 당선과 암살, 흑인운동가의 암살, 패권주의와 우드록 페스티벌 등 미국의 당시 상황은 모든 것이 뒤섞여 있는 상태였다. 이런 와중에도 미국은 팍스 아메리카나라는 신제국주의 정책의 표방으로 여러 나라에 간섭을 하게 된다. 겉으로 내세운 것은 평화라는 이상이었지만 결국 미국이 걷게 된 길은 패권주의 말고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결국 미국과 소련의 끝없는 냉전과 타국의 공산화를 저지하고 패권을 지키겠다는 미국의 입장은 베트남 전쟁에 개입하는 것으로 이어져 쓰디쓴 실패를 겪게 된다. 필립 로스의 <미국의 목가>는 광기와 폭력으로 얼룩진 1960년대 말의 혼돈스러운 미국을 배경으로, 베트남전쟁의 실패와 맞물리며 한 개인이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몰락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그려낸다.

스위드, 마법처럼 불렸던 이름. 유대인이었지만 누구보다도 미국인 같았던 그는 스포츠의 영웅이었고 사랑의 대상이었다. 그는 전설로 통했고 실제 전설이 되었다. 미스 뉴저지 출신의 미국인 미녀와 결혼한 것이었다. 스위드는 결국 해내었다. 둘 사이에 소중한 딸인 메리가 태어나고 삶의 또 다른 소중한 가치가 된다. 하지만 메리가 자라고 미국인을 향해 저지른 사건으로 자신의 낙원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베트남전에 대한 반전운동으로 미국인들에게 폭탄테러를 가한 것이었다. 누구보다도 미국인다웠고 그걸 원했지만 결국은 완전한 미국인이 아니었던 그에게 딸의 행동은 무엇보다도 충격이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첫 번째 성공으로 여겼던 아름다운 부인이 바람을 피운 것이다. 스위드의 낙원은 완전히 몰락했고, 이렇게 몰락하고 나서야 스위드는 완전한 미국인이 될 수 있었다. 그는 대부분의 미국인이 겪었을 분노와 상처와 절망을 함께 똑같이 겪게 되었다. 유대인과 미국인의 이상은 한곳을 함께 바라보고 있었고 몰락 역시 함께였다.

어느 쪽이 옳은 가치인지는 알 수 없다. 참전용사인 아버지를 비난하는 반전주의자 아들, 피땀흘려 일군 가업을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흑인들의 폭동으로 어려워지게 되는 것, 규칙을 준수하는 것과 한없이 자유로워지는 것. 스위드의 딸 메리는 당시 미국에서 벌어졌던 폭력적인 운동을 직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패권주의로 타국의 전쟁에 개입한 미국과 메리의 폭력적인 운동을 두고 어느 것이 더 옳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미국으로 온 스위드는 평범하고 목가적인 삶을 꿈꾸었고 결국 이루어 냈지만 한순간에 몰락하게 된다. 아메리칸 드림은 지옥이 되었고 자신의 삶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필립 로스는 『미국의 목가』로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도약하게 된다. [기억 속의 낙원][추락][잃어버린 낙원]으로 이어지는 각 장의 제목은 주인공의 몰락의 과정을 그대로 드러낸다. 현재도 끊임없는 영토분쟁과 전시에 준하는 상황을 가진 이스라엘을 보면서 미국을 대표하는 유대인 작가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스위드의 이야기를 쓴 작가를 내세워 그 뒤에 숨으려는 필립 로스에게 언뜻 느껴지는 감정은 유대인의 이상이 내비치는 것 같아 부담스럽기까지 하다. 스위드는 팍스 아메리카나를 원했고, 질서를 원했고, 규칙을 원했다. 그에게는 미국의 가치를 반대하는 모든 것이 나락이었을 것이다. 작가는 스위드를 통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년이 온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평점 :
품절


세상은 불합리하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불합리하다. 더욱 슬프게 하는 것은 이 불합리한 세상이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불합리한 세상에서 살아온 우리는 너무나도 약하고 어리석고 약삭빨라서 불평도 하지 않고 묵묵히 살아가고 있다. 이런 이유로 피눈물을 흘렸던 80년의 광주는 폭동으로 매도되고 그것을 자행한 인간들은 오히려 배를 두드리며 얼굴에 기름을 번득이며 국회의원들에게 큰절까지 받아가며 여전히 잘 살아가고 있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는 80년 광주의 이야기다. 그리 오래 전의 일도 아닌데 이제는 벌써 잊혀버린 듯한 이야기. 하지만 그곳의 사람들에겐 죽을 때까지 피를 흘릴 수밖에 없는 상처에 관한 이야기다. ‘소년이 온다’ 그 소년은 누구한테 가는 것일까. 아니 왜 오는 것일까.

5.18 당시 중학생이던 동호는 친구 정대의 죽음을 목격한 것을 계기로 도청 상무관에서 시신들을 관리하는 일을 돕게 된다. 어린 그에게는 민주주의에 대한 가치보다 친구의 죽음을 외면했던 자신에 대한 뉘우침의 의미가 컸을 것이다. 그래서 동호는 상무관에 연이어 들어오는 시신들에게 촛불을 밝히며 친구를 떠올렸다. ‘너’는 ‘나’에게 온다. ‘너’인 동호는 ‘나’인 정대에게, 이미 죽어버린 우리들에게 온다. 동호는 도청의 상무관에서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은 동호와 마찬가지로 ‘너’인 존재들이었다. 살아남은 사람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살아남았다는  것. 온갖 고문을 당하고 하혈을 하고 감옥에 갇히고서야 살아남은 사람들. 이 사람들에게 영원한 고통과 함께 남아 있던 것은 당시의 잔인함 앞에 맞섰던 자기 안의 깨끗한 것, 양심뿐이었다.

‘역사는 되풀이된다’라는 이 짧은 경구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가? 같은 땅의 피 흘린 역사가 30년이 조금 지난 지금 다시 되풀이된다. 그런데 그 되풀이되는 역사는 과거의 그것보다 훨씬 끔찍하다. 나치의 선전, 선동 전문가인 괴벨스는 ‘사람들은 한 번 말한 거짓말은 부정하지만 두 번 말하면 의심하게 되고 세 번 말하면 이내 그것을 믿게 된다.’고 했다. 사십만의 광주에 지급받은 팔십만의 탄알, 필요하다면 팔백만의 탄알이라도 아낌없이 내주었을 과거. 시신이 있어야할 관마저도 모자랐던 과거.

 
너희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애국가를 부른 게 얼마나 웃기는 일이었는지, 우리가 깨닫게 해주겠다. 냄새를 풍기는 더러운 몸, 상처가 문드러지는 몸, 굶주린 짐승 같은 몸뚱이들이 너희들이라는 걸, 우리가 증명해주겠다. -p119


이렇게 광주의 사람들을 폭도로 매도했던 인간들이 여전히 광주의 진실을 왜곡하려 한다. 피해자만 있을 뿐 가해자는 존재하지 않는 이 우스꽝스러운 과거가 이제는, 이제는 인터넷을 보는 광주의 사람들에게 또 피눈물을 흘리게 한다. 은폐는 조롱으로 공포는 웃음거리로 전락했다. 총구 앞에서는 오줌이나 지릴 인간들이 키보드를 치는 손가락 하나로 총보다 무섭게 사람을 죽이고 있다. 세상은 불합리한데다가 잔인하다.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억울한 죽음마저 조롱하는 사람들과 함께 사는 이 땅이 가끔은 몸서리쳐질 정도로 무섭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자유로운 삶 1,2]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자유로운 삶 1
하 진 지음, 왕은철 옮김 / 시공사 / 201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민자의 삶은 고달프다. 실제 이민자가 아닐지라도 자신과 전혀 관계가 없는 낯선 땅에서 낯선 사람들과 살아간다는 것이 녹록치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특히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이 여전한 미국에서의 삶은 오죽할까.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다. 무엇일까? ‘아메리칸 드림’ 이라는 꿈처럼 느껴지는 말이 있다. 미국에 가면 무슨 일을 해도 더 잘 살 수 있으리라는 것. 하지만 이 꿈같은 말마저도 실제 하류층에 편입되는 이민자보다는 상류층을 위한 것이고 유색인종보다는 백인종에게 유리하게 적용되는 차별적인 말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람들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에 간다. 실제 그 꿈이 고달프다는 것을 알고 있더라도 말이다. 그 꿈은 자국에서 꿈꾸는 것보다는 낫다. 내전이 일어나고 반정부 시위로 유혈사태가 일어나고 최소한의 인간의 삶이 남아있지 않은 자신의 나라에서 무엇을 어찌할 수 있을까. 아무리 힘들고 고달플지라도 최소한의 인간다운 꿈을 꿀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자신의 나라를 떠나 미국에 건너온다. 하 진의 『자유로운 삶』은 중국 이민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가족의 이야기다.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던 난 우는 자국에서 일어난 텐안먼(천안문) 사태를 목격하고 돌아가는 것을 포기한다. 그는 아내 핑핑과 아들 타오타오를 미국으로 데려와 함께 생활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자유로운 미국에서도 삶을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다. 결국 난 우는 공부를 포기하고 경비원 같은 온갖 직업을 전전하게 된다. 이런 그를 견디게 해준 것은 아내와 아이가 있었음에도 자신을 버리고 가버린 첫사랑인 베이나를 생각하며 시를 쓰는 것이었다. 아내인 핑핑 역시 남편의 이런 모습에 불안해한다. 이후 식당을 운영하게 되며 어느 정도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지만 고달픈 시절에도 쓸 수 있던 시를 쓰지 못하게 된다. 난 우는 결국 첫사랑인 베이나를 찾아 만나게 되지만 그토록 기대하던 첫사랑과의 대화는 오히려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 준다. 아내의 병으로 안정적이던 식당을 처분하고 다시 직업을 구할 수 밖에 없었지만 그는 이제 시를 쓸 수 있게 된다.

영어로 글을 쓰는 작가들 중 노벨상에 가장 근접한 작가라는 평과 수많은 문학상을 수상했고 현재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하 진의 삶은 아메리칸 드림 그 자체다. 저자는 실제 자신의 삶과 소설 속 주인공인 난 우의 삶을 동일시하지 말아 달라고 이야기하며 작품 속에서 보이는 자신과 닮아 있는 주인공 난의 모습은 그 부산물일 뿐이라고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이것은 본인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저자는 자유로운 삶을 살게 되었지만 텐안문 등의 이야기를 한 덕에 정작 자신의 뿌리인 중국에서는 거부당했다. 계속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비자를 발급해 주지 않아 중국에 갈 수 조차 없었고 자신의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도 못했다. 중국 정부는 자국을 비난하는 전 중국인에게 영원히 비자를 내주지 않을 것이며 하 진은 아마 평생 중국에 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는 여전히 글을 쓰게 될 것이다. 중국인처럼 생각을 하고 미국인의 언어로 글을 쓸 것이다. 그의 독자는 유색인종보다 백인종이 더 많을 것이며, 그의 삶에 진정으로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은 정작 그의 이야기를 읽기에도 고달픈 이민자들과 유색인종이 전부일 수밖에 없으며, 중국인의 그의 이야기를 읽기 위해서는 번역을 통해야 할 것이다. 아무리 많은 상을 받고 편안한 삶을 살고 있더라도 작가로서의 그의 삶은 여전히 고단한 게 아닐까. 『자유로운 삶』이라는 제목이 어쩌면 반쪽뿐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자꾸 들게 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느리게 배우는 사람]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느리게 배우는 사람 창비세계문학 30
토머스 핀천 지음, 박인찬 옮김 / 창비 / 201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엄밀히 말하자면 우리나라에서의 SF(Science Fiction)는 ‘과학’이 아니라 ‘공상’에 더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과거 일본의 해석을 무차별적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이 퍼져 생겨난 오해일 것이다. 여전히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SF란 일본의 애니메이션이나 스타워즈 류의 스페이스 오페라를 SF의 전부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다행한 것은 요즘 들어 이른바 장르에 대한 편견 자체가 적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삼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는 결국 SF라는 장르 역시도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과학적 허구로 창조된 세계이며 이것 또한 현실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을 겨우 깨닫게 되어서인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장르의 구분 자체가 모호해진 지금에 와서야 좋은 작품 자체가 중요한 것이겠지만 말이다. 이와 더불어 장르의 경계를 허물어트렸다는 평판을 받는 작가들이 있다.

지금 이야기할 토머스 핀천 역시 이러한 평가를 받는 작가다. “영어로 글을 쓰는 현존 작가들 가운데 최고의 작가”, SF의 선조로 인정받는 작가로 『느리게 배우는 사람Slow Learner』는 초창기 그의 단편 모음집이다. <은밀한 통합>을 제외하고는 핀천이 대학생 때 쓴 작품들로 초창기 작품답게 거칠고 이후 작품의 방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단편 모음이다.

토머스 핀천을 이야기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엔트로피다. 엔트로피는 무질서량을 가리키는 말로 물질계의 열적 상태를 나타내는 물리량의 하나다. 후대의 작가들 가운데서는 과학적 이론을 자신의 메인 테마―양자역학을 기반으로 한 그렉 이건의 『쿼런틴』의 경우처럼―로 사용하고 있는데 핀천은 그의 작품 속에 엔트로피의 개념을 배경으로 주로 사용하였다. <엔트로피>는 제목처럼 이후 그의 작품에 빠지지 않는 엔트로피에 관한 이야기가 언급된 단편이다. 아파트를 배경으로 3층과 4층의 무질서·혼돈과 규칙·통제라는 극적인 대비와 갈등이 핵심을 이루는 이야기다. 이런 구조는 핀천 이야기의 큰 줄기가 된다. 이후 발표된 <은밀한 통합>역시 이러한 갈등구조를 가진다. 이 작품에는 관습과 규범을 강조하는 어른들과 이에 반발하는 십대들이 등장하는데 신구의 갈등과 더불어 기성의 질서로 대표되는 어른들의 정 반대인 알코올중독자인 흑인 음악가를 등장시켜 당시의 흑인에 대한 인종문제까지 함께 언급하면서 갈등구조를 심화시킨다. <이슬비>와 <로우랜드> 역시 마찬가지다. 기존의 질서에 순응하거나 대립하는 이야기들은 핀천 문학의 핵심이기도 하며 이는 엔트로피 이론과 맞물려 폐쇄된 사회에서 무질서로 증가하는 열린사회의 대비가 그 중심을 이룬다.


사정이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국내에서 SF라는 딱지를 달고 나오는 작품들은 수요가 많지 않다. 아는 사람은 알 만한 핀천의 『중력의 무지개』 때의 이야기도 결국은 수요 때문일 것이다. 특히 국내의 SF에 관련해서 독자들은 극단적인 반응을 보인다고 생각한다. 너무 유치하거나, 너무 딱딱하거나. SF에 별 흥미가 없는 사람들이라면 앞서 말한 것처럼 우주선이나 나오는 유치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다반사며 조금 관심이 생겨나더라도 추천 받은 작품들이 의외로 읽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SF는 낯설다. 오락을 전제로 한 것이 아닌 진지한 작품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의 수고를 더한다면 SF만큼 즐거운 것도 찾기 쉽지 않을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SF는 막연한 공상이 아닌 과학을 기반으로 하는 ‘허구’를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주선과 광선검이 쏟아지는 세계가 아닌 멀지 않은 근미래, 현재와 닮은 세계일지도 모른다. 더 이상 ‘과학’에 연연하지 말자.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