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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셋 리미티드
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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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간혹 예술가들에 있어서 가장 극적인 순간처럼 묘사되곤 한다. 특히 젊어서 자살한 예술가들이라면 이런 경향이 더욱 심한데, 죽음으로 그 예술가의 작품들이 주목받게 되고 가치가 올라가는 말 그대로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곤 한다. 하지만 어찌 실제의 삶이 그러할까? 예술가이건 평범한 사람이건 간에 자살은 가장 극적인 순간이 아니라 가장 극한의 고통에서 할 수 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말이다. 약물이나 술에 취해있지 않고 멀쩡한 상태에서 자살을 선택할 수 있을까? 자살을 하는 사람은 이미 정신 상태가 무너져 내려 버린 것이다. 죽을 용기로 열심히 살아 보라는 턱도 없는 충고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돈 때문에 죽은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성적 때문에 어린 나이에 죽은 아이들은 과연 살아 있을 용기가 없어서 자살을 할까. 그들은 이미 진작에 무너져 있던 것이다. 코맥 맥카시의 『선셋 리미티드The Sunset Limited』는 인간의 최후의 선택일 수밖에 없는 자살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삶과 자살에 관한 인류의 운명에 관한 논쟁은 과연 어떤 것일까.

선셋 리미티드(Sunset Limited). LA에서 출발해 뉴올리언스까지 시속 130킬로로 달리는 급행열차다. 한 백인 남자가 자살을 하기 위해 열차로 뛰어들지만 이를 본 흑인 남자가 구해 낸다. 백인 남자는 대학교수로 세상은 불합리하고, 앞으로 더 나아질 전망조차도 없는 무의미한 곳이기에 자살을 결심했다고 이야기한다. 그를 구해낸 흑인 남자는 목사로 교도소에서 살인을 할 뻔하다가 신의 목소리를 듣고 세상을 종교와 믿음으로 구원하고자 한다. 흑은 자살하려는 백의 마음이 타락했음을, 종교로 그를 구원할 수 있음을 증명하려 하고 백은 자신이 이러한 세상에서 죽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흑에게 납득시키려 한다. 완전한 죽음을 원하는 백과 그를 구하려는 흑의 논쟁은 좁은 방 안에서 계속 이어진다.

희곡의 형식으로 쓰인 이 작품은 작가가 소설이라고 하지만 연극적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동일한 좁은 공간인 방 하나 뿐인 무대와 둘을 대화로만 이어지는 이야기는 둘 사이의 논쟁을 돋보이게 하는 효과를 주고 있다. 『선셋 리미티드』에서 이야기하는 자살은 실제적이라기보다는 은유적이다. ‘세계가 무의미해서’ 죽으려 하는 ‘백인 교수’와 그를 다시 삶으로 이끌려는 ‘흑인 목사’가 주는 극적인 대비는 죽음 그 자체보다 오히려 더 강렬하다. 백-흑, 지성-종교, 무의미-욕망 등의 작가가 의도적으로 배치한 구도는 둘의 논쟁을 더욱 흥미롭게 만든다. 현실의 고통이 아니라 세상은 무가치하고 무너져 내릴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자살을 하려는 사람을 아무리 세상이 고통스럽고 어지러워도 살아 내려는 사람이 이해할 수 있을까. 세상은 흑처럼 늘 삶의 가치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백은 이를 전면적으로 부인한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삶이 좋다는 흑의 이야기에 세상이 온통 개똥밖에 없다는 죽음이 최선의 선택이라는 백의 대답은 삶과 죽음보다 세상의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달린 것으로 보인다. 소설 속의 죽음은 이런 것이다. 세상이 무의미해서 죽으려는 것. 하지만 이런 소설 속의 죽음도 현실과 같은 점이 있다면 자살은 설득과 신에 대한 기도만으로는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의 가장 강렬한 대비는 무의미해진 삶을 포기한 지성과 유일신에게 삶을 구하고 설득하는 종교다. 그리고 지성은 종교를 믿지 않기에 다시 한 번 자신의 의지대로 삶을 포기하게 될 지도 모르고 종교는 그를 위해 울어줄 수 있는 것 이외에는 실제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나는 어둠을 갈망합니다. 죽음을 달라고 기도해요. 진짜 죽음을. 죽은 다음에 내가 살아서 알았던 사람들을 또 만나야 하는 거라면 도무지 어째야 할지를 모르겠습니다. 그건 최악의 공포가 되겠지요. 최악의 절망이.” (p. 131)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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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모노프]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리모노프
엠마뉘엘 카레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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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의 삶은 말 그대로 파란만장하게 펼쳐진다. 인생의 바닥에서 기어올라 꼭대기까지 도달하는 삶도 있고 범죄자에서 성자가 되는 삶도 있을 것이고 거리의 폭력배에서 작가가 되는 삶도 극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삶의 특징은 대부분의 경우 평온한 사회에서는 어지럽거나 불안정한 사회일수록 더 부각된다. 하지만 우리의 역사가 기록되기 시작한 이래 평온한 시절이 얼마나 있었을까. 세상엔 늘 극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 역사 속에 몸을 던진 사람들. 이런 사람들은 위험한 삶을 통해 우리에게 무언가를 보여준다. 엠마뉘엘 카레르의 『리모노프』는 한 사람의 삶을 통해 사회가 사람을 얼마나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사람이 역사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한 시대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언제나 교차한다. 하지만 때때로 개인이 시대에게 줄 수 있는 영향은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인지 드러나기도 한다.

아버지를 동경하며 자랐던 리모노프는 아버지의 군화를 닦으며 전쟁 영웅이 된 자신을 상상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일개 하급 관리일 뿐이었고 결국엔 한적한 시골로 쫓겨난다. 리모노프는 아버지처럼 살기 싫었지만 공장에서 일을 하는 하층의 삶을 벗어나지 못한다. 시인 생활을 하던 그는 미국으로 망명해 노숙자의 삶을 살다가 억만장자의 집사에서 쓴 글 덕분에 문단에 화려하게 데뷔하게 된다. 문단에서 성공했지만 발칸반도의 사병으로 참전하고 러시아로 돌아가 정치활동을 시작하고 투옥되기도 한다. 그는 매력적인 사람은 아니었지만 극적인 삶을 사는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에 대해, 자신의 삶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개떡 같은 인생이지, 한마디로.”


엠마뉘엘 카레르의 『리모노프』는 온전한 전기라고 하기에는 작가가 실존 인물의 삶을 풀어 가는 방식이 아주 독특하다. 아름답든 추하든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동시에 카레르 자신의 인생과 감상이 섞여 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전기인 동시에 소설이기도 하다. 에두아르드 베니아미노비치 사벤코다. 레몬을 뜻하는 러시아어 ‘리몬’, 수류탄을 뜻하는 ‘리몬카’에서 따온 그의 이름은 그의 삶을 그대로 대변한다. 레몬과 수류탄을 오가는 삶, 극적인 삶. 레몬과 수류탄은 비슷한 생김새 말고는 모든 부분에서 대척점에 위치한다. 역사 속에서 대부분의 나라는 수류탄의 길을 걸어왔다. 평온한 역사를 가진 나라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세계의 역사는 피로 얼룩져 있다. 러시아, 아니 소련의 역사는 다른 나라에 비해 유독 피를 많이 흘린 역사다. 제정 시절과 세계 대전을 거치고 분리독립을 지나 현재에도 러시아의 역사는 피를 흘린다. 현재의 러시아는 어떠한가.


“공산주의를 복원하고 싶다면 머리가 없는 사람이다.

공산주의를 그리워하지 않는다면 심장이 없는 사람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이것이 현실이다. 러시아의 실세이자 공산주의를 그리워하고 심장이 뜨거운 푸틴은 정적을 암살하고 공산주의를 외치며 부를 축적하고 러시아를 피로 물들인다. 스탈린은 NKVD를 등에 업고 폭력을 통해 권력을 유지했고, 푸틴은 지금 거짓말을 통해 권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리모노프의 인터뷰는 러시아의 현재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푸틴이 주는 차를 마시지 말라는 씁쓸한 유머가 있다. 푸틴의 반정부 인사 암살계획을 폭로했던 연방보안국(FSB) 요원이 방사능이 든 차를 마시고 사망했다. 뿐만 아니라 얼마 전 푸틴의 정적이자 푸틴을 비판했던 야당의 보리스 넴초프가 암살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러시아는 푸틴은 역사 속의 사람들에게 리몬이 아닌 리몬카가 되기를 강요한다. 과연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리몬의 삶을 살고 있는가?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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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너리 오코너]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플래너리 오코너 - 오르는 것은 모두 한데 모인다 외 30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12
플래너리 오코너 지음, 고정아 옮김 / 현대문학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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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너리 오코너는 루푸스로 39세에 타계할 때까지 장편소설 2편과 단편소설 32편, 여러 권의 평론집과 에세이를 남겼다고 한다. 미국 문학사에서 남부 고딕계열 단편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는데 작가의 이름과 동일한 이 두툼한 한 권의 책 『플래너리 오코너』로 명단편을 접할 수 있을 것이다. 단편의 배경이 되는 미국 남부의 상황은 남북전쟁 이후 노예제는 없어졌지만 인종분리에 엄격하고 산업화에도 뒤처지고 프로테스탄트 신앙의 분위기가 깊게 남아 있는 빽빽한 분위기였다. 더해서 작가의 고딕적인 분위기는 결함을 갖거나 뒤틀린 인물들이 기괴한 배경으로 그로테스크한 사건을 일으키는 경우도 많다. 평온한 분위기에서 시작하지만 급격하게 변하는 상황은 단편이라는 짧은 호흡과 어울려 당황스럽고 깊은 인상을 준다. 작가의 병과 고립된 분위기, 고립된 종교(가톨릭) 등 작가의 경험으로 그려낸 세계는 비극적이고 격렬하며 그로테스크하다. 

어릴 적 총탄에 맞은 사고로 의족을 하고 있는 딸 조이와 함께 사는 호프웰 부인은 딸인 서른 둘이나 된 조이를 어린아이를 다루듯 한다. 조이는 헐가로 이름을 개명하는 등 반항을 해 보지만 그것이 전부이다. 하루는 집에 착하게 생긴 열아홉의 청년이 성경을 팔러 온다. 친절한 호프웰 부인은 청년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시골 사람이라 사모님 같은 분이 좋아할 리 없다는 청년의 말에 “좋은 시골 사람은 세상의 소금이에요! 게다가 우리는 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살아요. 세상에는 온갖 종류의 사람이 있는 법이에요. 그게 인생이에요!”라고 말한다. 좋은 시골 사람인 청년은 평범한 생활을 하지 못하고 뚱뚱한 조이에게 접근해 의족을 떼어 보여 달라고 하고 그것을 가지고 도망친다. 조이는 청년에게 이야기한다. “너는 그냥 좋은 시골 사람 아니었어?” 「좋은 시골 사람들」

플로리다에 가기 싫은 할머니는 신문을 꺼내들고 연방교도소를 탈출한 ‘부적응자’들이 플로리다 쪽으로 갔다는 기사를 보여주며 범죄자들과 같은 방향에 가기 싫다며 아들 베일리를 설득해 보려 한다. 하지만 결국 함께 집을 떠나 플로리다로 향하던 할머니는 도중에 예전에 살던 집을 가보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자신이 가는 길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한참을 가도 집은 나오지 않고 할머니는 예전 집이 다른 주에 있다는 것을 생각해 내고 부끄러워져 여행가방을 차는 바람에 사고가 난다. 도움을 요청하려고 지나가던 차를 세웠으나 내린 것은 교도소에서 탈옥했다는 부적응자들. 하지만 할머니는 자신의 가족들이 죽어나가도 부적응자들에게 설교를 멈추지 않는다. 부적응자들은 할머니에 총을 세 방 쏘아 죽인다. “할머니가 참 말도 많았어.” 「좋은 사람은 드물다」

위의 단편들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단편에서 풍기는 비극적이고 그로테스크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다. 또한 종교적 색채는 인간이 저지르는 온갖 죄악은 종교를 통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은연중에 드러낸다. 신에 대한 믿음을 잃은 인간들은 비극적이고 그로테스크한 사건을 통해서만 자신의 무지를 알게 되고 종교적인 깨달음을 얻는다. 흔히들 인간군상이라는 말을 하는데 오코너의 등장인물들은 흔하게 볼 수 있는 평범한 인간 군상들이 아닌 어둡고 탁한 전혀 다른 인간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플래너리 오코너가 앓았던 루푸스가 그녀의 작품 활동을 방해했지만 작품들에는 그 그림자가 전혀 비치지 않는다고 했지만 죽음을 앞둔 자신의 상황이 작품의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큰 의미가 있었을 것이고 종교적인 색채 역시 같은 이유로 납득이 간다. 죽음으로부터 저항하는 것. 어찌 따로 떼어놓을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한 가지 의문스러운 것은 책 뒷면의 글을 보면 전미도서상을 받은 『단편소설전집』을 기반으로 출간된 것이라고 되어 있는데 작가의 총 32작품 중 31편만 실려 있어 1작품이 부족한데 무슨 이유가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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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권수연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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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이란 얼마나 덧없는가. 광풍처럼 휘몰아치던 복고의 물결도 어느 정도 사그러들어 이것 역시 과거의 일이 되는 듯하다. 영화와 드라마, 노래까지 점령했던 과거의 모습은 분명 어느 정도 삶을 살아온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다. 10대를 갓 지나 20대가 된 사람들에게 복고는 아직 미래의 이야기겠지만 어느덧 30대를 넘긴 사람들에게는 과거는 추억이 된다. 나이를 먹을수록 사람은 무뎌지고 아픈 기억도 추억으로 남긴다. 이런 기억들이 사라지거나 단절되는 것은 삶의 흔적을 잃는 것이나 다름없다. 나는 과연 과거에 존재했던 사람일까. 파트릭 모디아노는 잃어버린 과거, 삶의 지난 모습들을 이야기한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에서 주인공은 과거를 잃은 자신을 탐색한다. 모디아노의 “기억의 예술”은 『지평L‘horizon』에서 어떤 모습으로 드러날까.

시위 현장의 어수선한 거리에서 지하철 입구로 내려가던 보스망스는 시위대에 밀려 트렌치 코트 차림의 젊은 여자를 붙잡고 벽에 부딪힌다. 눈두덩에 피를 흘리는 여자와 약국에 가서 반창고를 붙이고 고요한 거리를 함께 걸었다. 마르가레트 르 코즈. 반창고를 떼어 주고 대화를 나누었다. 마르가레트는 자신을 만나러 회사로 오라고 이야기한다. 이제부터는 자연스레 그리되는 것 아니냐는 듯. 보스망스는 어디에선가 사람과 사람의 첫 만남은 마치 가벼운 상처처럼 두 사람에게 남아 그들을 고독과 무감각으로부터 깨워 일으킨다는 말을 읽은 것을 기억해 냈다. 둘은 닮았다. 보스망스에게는 돈을 요구하며 자신의 삶을 짓밟는 어머니가, 마르가레트에게는 예전에 사귀었던 남자인 부아야발에게 쫒기고 있었다. 그렇기에 서로를 있는 그대로 보았으며 약한 부분을 보듬었다.

새로운 일자리를 얻은 마르가레트도 안정되었고 둘의 사이도 편안해지는 듯 보였으나 이별은 한순간에 다가왔다. 마르가레트를 고용했던 부부가 경찰에 체포되고 그녀도 출두를 요구받았지만 이를 거부하고 독일로 잠깐 피신하겠다고 보스망스에게 이야기하고 밤기차로 떠났다. 이마르가레트의 얼굴도 기차의 유리창 속에서 그에게 손을 흔들던 모습처럼 지평 너머로 사라졌다. 후 그녀는 아무런 연락도 하지 않았다. 40년이 흘렀다. 보스망스는 글을 쓰게 되었고 기억을 더듬어 마르가레트를 찾기 시작한다. 세월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머리가 하얗게 샌 어머니라는 이름의 여자의 폭력에도 웃어 넘겼으며 마르가레트가 두려움에 떨었던 부아야발은 그저 늙은 부동산 업자로 변해 있었다. 보스망스는 마르가레트의 마지막 일자리에서 질문을 떠올렸다. “두 사람은 미래 계획이 어떻게 됩니까?” 하지만 둘은 한 번도 미래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고 영원히 현재 속에 있으리라 생각했다. 미래, 40년 후의 베를린. 보스망스가 태어난 해에 다시 재건되기 시작한 도시, 마르가레트 르 코즈의 고향. 현재의 보스망스는 베를린의 한 서점 앞에 있다. 마르가레트는 거기 있을 것이다. 장 보스망스는 그녀에게 향한 서두르지 않는 발걸음을 옮긴다.


파트릭 모디아노는 “지평이란 현재와 미래가 포개져 혼재하는 시공간”이라 밝혔다. 과거를 탐색하지만 그 과거로 인해 현재의 정체성까지 모호해지는 이야기를 즐겼던 모디아노의 이야기는 이 작품에서는 조금 다르게 드러난다. 『지평』의 등장인물은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살고 있는 누구라도 미래를 보고 있다. 이제는 어둡지만은 않다.


하지만 이번에야말로 평온한 느낌과 함께, 그가 어느 날 떠나온 그 장소 그 지점으로 같은 시간 같은 계절에 돌아왔다는 확신이 들었다. 마치 시계의 두 바늘이 정오가 되면 하나 되어 만나는 것처럼. (P.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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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수인 잊힌 책들의 묘지 4부작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 지음, 김주원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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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의 분노>에서 불명확한 의문들이 <천국의 수인>에서 풀리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또 다른 의문만 더했다. 마지막 책을 언제까지 기다리라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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