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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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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불합리하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불합리하다. 더욱 슬프게 하는 것은 이 불합리한 세상이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불합리한 세상에서 살아온 우리는 너무나도 약하고 어리석고 약삭빨라서 불평도 하지 않고 묵묵히 살아가고 있다. 이런 이유로 피눈물을 흘렸던 80년의 광주는 폭동으로 매도되고 그것을 자행한 인간들은 오히려 배를 두드리며 얼굴에 기름을 번득이며 국회의원들에게 큰절까지 받아가며 여전히 잘 살아가고 있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는 80년 광주의 이야기다. 그리 오래 전의 일도 아닌데 이제는 벌써 잊혀버린 듯한 이야기. 하지만 그곳의 사람들에겐 죽을 때까지 피를 흘릴 수밖에 없는 상처에 관한 이야기다. ‘소년이 온다’ 그 소년은 누구한테 가는 것일까. 아니 왜 오는 것일까.

5.18 당시 중학생이던 동호는 친구 정대의 죽음을 목격한 것을 계기로 도청 상무관에서 시신들을 관리하는 일을 돕게 된다. 어린 그에게는 민주주의에 대한 가치보다 친구의 죽음을 외면했던 자신에 대한 뉘우침의 의미가 컸을 것이다. 그래서 동호는 상무관에 연이어 들어오는 시신들에게 촛불을 밝히며 친구를 떠올렸다. ‘너’는 ‘나’에게 온다. ‘너’인 동호는 ‘나’인 정대에게, 이미 죽어버린 우리들에게 온다. 동호는 도청의 상무관에서 사람들을 만난다. 그들은 동호와 마찬가지로 ‘너’인 존재들이었다. 살아남은 사람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살아남았다는  것. 온갖 고문을 당하고 하혈을 하고 감옥에 갇히고서야 살아남은 사람들. 이 사람들에게 영원한 고통과 함께 남아 있던 것은 당시의 잔인함 앞에 맞섰던 자기 안의 깨끗한 것, 양심뿐이었다.

‘역사는 되풀이된다’라는 이 짧은 경구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가? 같은 땅의 피 흘린 역사가 30년이 조금 지난 지금 다시 되풀이된다. 그런데 그 되풀이되는 역사는 과거의 그것보다 훨씬 끔찍하다. 나치의 선전, 선동 전문가인 괴벨스는 ‘사람들은 한 번 말한 거짓말은 부정하지만 두 번 말하면 의심하게 되고 세 번 말하면 이내 그것을 믿게 된다.’고 했다. 사십만의 광주에 지급받은 팔십만의 탄알, 필요하다면 팔백만의 탄알이라도 아낌없이 내주었을 과거. 시신이 있어야할 관마저도 모자랐던 과거.

 
너희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애국가를 부른 게 얼마나 웃기는 일이었는지, 우리가 깨닫게 해주겠다. 냄새를 풍기는 더러운 몸, 상처가 문드러지는 몸, 굶주린 짐승 같은 몸뚱이들이 너희들이라는 걸, 우리가 증명해주겠다. -p119


이렇게 광주의 사람들을 폭도로 매도했던 인간들이 여전히 광주의 진실을 왜곡하려 한다. 피해자만 있을 뿐 가해자는 존재하지 않는 이 우스꽝스러운 과거가 이제는, 이제는 인터넷을 보는 광주의 사람들에게 또 피눈물을 흘리게 한다. 은폐는 조롱으로 공포는 웃음거리로 전락했다. 총구 앞에서는 오줌이나 지릴 인간들이 키보드를 치는 손가락 하나로 총보다 무섭게 사람을 죽이고 있다. 세상은 불합리한데다가 잔인하다.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억울한 죽음마저 조롱하는 사람들과 함께 사는 이 땅이 가끔은 몸서리쳐질 정도로 무섭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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