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이것만 있으면 돼. 

담배 몇 개. 커피 한 잔. 그리고 얘기. 

너와 나. 그리고 5불." 


야 너히는 안 늙을 줄 아냐 

우리도 한땐 젊었어............  같은 주제로 생각날 영화 1위는 내겐 이 영화. 94년작. 

세상이 지금처럼 바뀌기 직전에 나온 영화같다. 







"신은 너와 나 사이에 있을 거야."

이 장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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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ssell six feet under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얼마 전 수업에서 

한국어와 영어에서 욕의 기능.. 이런 주제를 써보았다. 

일단 영어에서 예문은 Six Feet Under. 브렌다의 "Every time I believed in a happy ending, I've gotten severely fucked." 네이트의 "No offense, but your family is fucked up beyond comprehension." 혹은 94년인가 도쿄 공연에서 건즈앤로지스의 "Come on, Tokyo, let's just get this motherfucker on." 혹은 <마션>의 첫문장. I'm pretty much fucked. "아무래도 좆됐다." 


내 입장은 

영어에서 f-word, 강력하고 진실하게 쓰일 수 있다. 내게 나쁜 일이 일어났다면 그것이 나쁜 일임을 나도 

알고 너도 알게 말할 수 있다. 반면 한국어에선, 욕을 어떻게 하든 거의 언제나 사태의 사소화(trivializing) 일어난다. 브렌다의 말을 "이번엔 잘 될 거라고 믿을 때마다 난 어김없이 좆됐어(망했어)"라 말하면, severely fucked에 담길 절실함 거의 다 사라진다. (....) 지금 내 말이 조금이라도 맞다면, 그게 뜻하는 바는 무어냐. 


수업에서 토론을 해보면 주제가 무엇이든 깜짝 놀랄 때 많다. 사실 다들 

생각들도 많고 생각들을 나누고 싶은 욕망들도 커서, 예리하거나 아니면 재미있는 얘기들이 거의 언제나 나온다. 이 주제로도 어떤 얘긴 녹음하거나 받아 적어두고 싶기까지 했는데, 그러지 못했고 그래서 지금 기억이 가물가물. 집에 오자마자 서재 포스트로 쓸까 생각하다 그러지 않았고, 하튼 그래서 기억은 희미해지고 맘. 이성과 감성. 주관과 객관. 이들이 기준일 때 우리가 처해 있는 곤경에 대한 얘기들이 나왔다. 그것이 정확히 학생들이 해보길 내가 원했던 바로 그 방향의 고찰! ;; 


무엇이든 개인적, 사적인 걸로 축소되고 그래서 무시되는 일. 

언제나 영원히 일어나는 일 아닌가? 이건 내 얘기고 내 진실이지만, 나만의 얘기고 나만의 진실인 건 아니야. 그게 누구든 무엇이든 그래.... 같은 방향으로 사람들이 생각들을 잘 안하지 않나? 그게 무엇이든 거기엔 반드시 사적 동기가 있고 그러니 불순하고 그러니 밟자... 이쪽;;으로 사람들이 이끌릴 때가 정말 많지 않나? 나만 익숙한 경험인가. 


으아아아 ㅜㅠ 이 주제로 나중 더 잘. 

fail again, fail b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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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루카치의 리얼리즘론 읽다가 이런 노트를 남겼다. 


어제 대출했던 Meaning of Contemporary Realism. 여기 실린 "모더니즘의 이데올로기" 펴서

세 페이지쯤 읽다 쓰는 포스트.

 

인간의 고독이 '사회적 운명'이 아니라 '인간 조건'으로 본다는 게 모더니즘 문학의 이론과 실천의 기원이다 (20). 

이 뿐 아니라, 조금 똑똑하다면 학부생도 무자비하게 비판하기 어렵지 않을, 참 이상하고도 순진하고도 막무가내인 주장이 줄을 잇는다. 몇 주 전 정신없이 아도르노의 어떤 글을 읽는데, 루카치를 언급하면서 "<소설의 이론>과 <영혼과 형식>에서, 논의 전개에선 그리도 명석하고 관심사의 범위에선 그리도 방대하며 인간적 품격으론 그리도 존경스러웠던 루카치가, 그걸 목도하는 심정이란 형언이 불가하도록 망가지는 걸 그가 연달아 써낸 리얼리즘 선전문에서 계속 보아야했다" 쯤으로 (내 멋대로 되살린 기억. 아도르노야, 당연 무자게 뽀대나게 말씀하셨다) 문예 이론가로서 그의 커리어를 압축. 

 

특히 아도르노를 거명하면서 "그랜드 호텔 어비스"에 사는 지식인들을 비판하던 루카치.

최고의 음식과 예술의 세계, 가능한 모든 안락이 주어지는 그랜드 호텔 어비스. 그 곳의 즐거움은, 호텔 앞 심연을 보고 매일 그에 대해 사유할수록, 그럴수록 더욱 날카로워지는 즐거움이 아니겠는가.

 

나로선 "심연 호텔"에 살 수 있었음, 거기서 평생 살았음 (정신을 온전히 지켰음) 그 자체로

아도르노를 존경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루카치는 여러 저술에서 느슨하고 풀어지고 게으르고 그런데 오만한, 오만하기 짝이 없는 글을 썼겠지만, 아도르노는 거의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여태 읽은 바론, 단 한 문장도 그런 문장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물론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이, 아도르노가 오만해서 싫다고 하지. 아도르노가 오만하다고? 




이런 걸 옮겨 오면 

오늘의 인용할 양식으로 나를 ㅋㅋㅋ ;; 인용함이 되나. 

뭐 그게 그럴 수는 없고, 오늘 일과를 그만 마감할까 하면서 바슐라르의 몇 문단 읽고 있다가 

바슐라르, 그도 정말 심연 호텔 거주자셔서. 2차 대전 중, 2차 대전 후에 이런 책을 (역사와 사회에서 완전히 등돌리고 인간이 가진 자유의 역량을 찬미함, 자연의 아름다움을 숭배함 등) 씀은 야만이 아닌가? 라고 질문한다면 그게 바로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는 야만이다'와 공명하는 질문일 테고. 


그렇지만 나는 어떻게든 그를 옹호하겠. ;; 다는 결의의 포스트가 이 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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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yce carol oates husband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방금 나는 나가서 

맥주 두 캔과 담배 한 갑을 사왔다. 

이 둘은 무슨 조합? 오래 전 담배를 끊었을 때

중독을 이기는 유일한 길은 중독이라며, 담배의 사슬은 끊고 알콜에 ;;; 중독됐었다. 

담배 생각이 난다면 맥주를 빨리 많이 마셨다. 한 반 병을 한 모금으로. 취하면, 견딜만해지던 담배 못 피움. 

그러니까, 둘 다가 아니라면 하나는 끊을 수 있음을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음에도, 아니야 끊으려면 둘 다 끊어야 해. 하나만은 어렵지. 자신을 너무 몰아세우진 마. ;; 이러며 둘 다 하고 있다 5년째. 


조이스 캐롤 오츠 사진 찾아보다가 위의 사진도 보았다. 프린스턴 그녀 집에서 작업실이라고. 

놀라울 것 없는 방인데, 마음에 들었다. 



wonder boys ending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은근히 꽤 좋아했던 이 영화. Wonder Boys. 영화 끝날 때 

writer's block를 돌파한 마이클 더글러스. 그의 작업실. 오츠의 작업실, 더글러스의 작업실을 연상시킴. 

이 영화 배경은 피츠버그. 원작 작가인 마이클 셰이본이 피츠버그를 사랑하는 사람. 피츠버그에 며칠 있었던 적이 있는데, 그 며칠만으로도 그 도시의 매력을 알 수 있을 것 같았고 그 후 내게 이 영화는 (어쨌든 피츠버그에서 이 비슷한 상황, 계급일 사람들 관점으로 한정한다면) 미국의 삶 그것의 실감이 가득한 영화. 미국의 삶 그것의 실감 충만한 영화. 다른 영화로는 뭐가 있을까. 



Broken Flowers poster.jpg



이 영화? 이 영화가 그런가. 한 두 편 정도 '나한텐 그렇다';인 영화들이 있는 것 같은데 지금 떠오르지 않는다. 

나중 떠오르면 그걸 포스트 소재로 삼겠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츠와 그녀 첫남편이 했다는 것 같은 

무궁하게 읽어대는 책들에 대한 무궁한 대화. 

그런 게 가능하려면, 상대의 말을 할 수 있는 한 정확하고 공정하게 이해하고 

그에 대해 할 수 있는 최선의 반응을 하기... 같은 게 평소의 습관이어야 하지 않나. 

그런 습관은 타인의 정신을 존중함을 전제로 하고. 다른 사람의 말을 정확하고 공정하게 이해하기. 

그러는 사람을 본 적이, ㅋㅋㅋ 하여튼 드물다. 자기 맘대로 듣기가 자기 힘의 증거..... 라고 굳게 믿는 사람들은 

지금 바로 세 명 (생각을 할수록 숫자가 늘어나겠고) 떠오른다. 




*앗 불"목"이었.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아주 길었던 하루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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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dow's story memoir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오래 전에 어떤 인터뷰에서 

조이스 캐롤 오츠가 남편과 자신이 공유하는 삶에 대해서 

두 사람 모두 무궁무진하게 책을 읽는 사람들이며 무궁무진하게 읽은 책에 대해 얘기하는 사람들인데 

그래서 끝없이 쉴 새도 없이 얘기할 때가 자주 있다... 같은 얘기 읽은 적 있다. 딱 그 대목만 기억에 남음. 잘 모르는 작가고 읽은 것도 거의 없어서인가. 


("과부. 자신을 소진하는 단어. Widow. The word consumes itself." 

실비아 플라스가 저런 구절을 쓰기도 했다. 앞의 w가 구비구비 뒤의 w를 삼키는 과정이 보이는 것 같게도 하는 구절. 

그런데 한국어 "과부"는 지금은 쓰는 일이 드물기도 한 것 같지만 용례로 본다면 말 자체 멸칭일 듯. 영어 widow는 black widow, 이런 구절 덕분인지 왜인지, 덜 그런 반면). 


오츠의 저런 얘길 자주 기억했는데 

과연, 끝없이 쉴 새 없이 얘기해도 언제나 재미있는 사람과 같이 산다는 건 어떤 걸까. 알고 싶기도 했고. 

정말 그럴 수 있나, 읽던 당시부터 '음? 과장이 아니고?' 회의... 적이기도 했기 때문에. 지금 기억하면서, 위키피디아에서 오츠 찾아 보았다. 인터뷰에서 말한 남편은 그녀의 첫남편. 대학원에서 만나 결혼하고 두 사람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였다가 08년에 타계했다고. 남편이 타계하고 오츠는 거의 반년을 자살이 염려될만큼 깊이 슬픔에 빠졌다가, 파티에서 만난 프린스턴 대학 심리학과 교수와 09년에 재혼했다고. 




joyce carol oates charles gross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joyce carol oates husband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joyce carol oates husband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이런 사진들이 찾아진다. 

그 인터뷰를 읽던 때보다 지금은 더 

어떤 사람들이 그럴 수 있나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되긴 했다. 

예를 들면 entitled opinions에서 로버트 해리슨과 안드레아 나이팅게일. 이 두 분, 연인이셨는지 이신지 이실지 모를 두 사람이 얘기할 때, 전혀 상대에게서 지루함이나 어쨌든 번거로움이나 귀찮음 싫음 ;; 같은 거 없음이 명백하고, 상대의 존재에게서 기쁨을 느낌 또한 명백하면서, 쉼 없이 고차원적이다. 


한국에서는 (여자든 남자든) 누가 그럴까. 

그러는 일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면, 이유는 뭐라고 적어두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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