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이란 무엇인가
김세윤 지음 / 두란노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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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인 김세윤 교수는 한국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알려진 신약학자이다. 바울신학에 관한 권위자로 알려져 있다. 그가 1980년에 강의한 내용을 녹취하여 책으로 만든 것이 이 책이다.

 이 책은 먼저 우리가 구원받아야할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스스로 구원할 수 없는 사람임을 말한다. 그리고 구원의 사건으로서 예수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성경의 용례와 더불어 자세히 설명해 주고 있다.

 구원은 인간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필요한데, 그 중심은 "하나님같이 되고자 하는 의지" 곧 자기 주장하려는 의지이다. 그래서 자기가 스스로 주가 되어 자기 뜻대로 또는 자기 멋대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게 하고, 자기가 온 세상의 중심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죄이다. 하나님과 의존과 순종의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죽지 않고 살 수 있도록 한 하나님의 선한 의지(곧 사랑)에 대한 신뢰와 순종을 저버리고, 악과 고난만을 가져다 주는 사단에게 순종한 것이다. 이것은 불순종으로 곧 하나님에 의한 형벌을 야기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영원한 단절, 결핍 속에 살 수 밖에 없고, 죄에 대한 형벌과 댓가를 치루어야 한다. 그러나 나 스스로, 내재된 힘으로 구원할 수 없다. 우리 밖에서, 우리를 위해서 구원의 힘이 와야하는 것이다. 그것이 은혜이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서서 십자가에 죽게하셔야(그 죄에 대한 댓가를 대신 치루게 하셔야) 우리에게 죄의 값을 대신 치루신 그 사역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삼위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친히 이땅에 오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그 죄값을 대신 치루셨다. 이런 선포된 복음이 나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 가?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믿음으로 예수님과 연합된 우리는, 죄인에서 의인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과 영원토록 평화를 누리며, 그의 영원한 상속자가 되는 것이다.

 이 책은 이런 구원의 중심구도와 아울러서, 구원의 종말론적 구조와 예정,지키심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한번 읽고 모든 것을 이해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내가 믿는 성경과, 구원, 그리고 신앙에 대해서 더 깊이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꼭 권하고 싶다. 또한 기독교의 구원이 무엇인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에게 꼭 추천해서 읽게하고픈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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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속의 그리스도인
쟈크 엘룰 / 대장간 / 199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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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끄 엘룰에 대해서 들어본 적은 있으나 그의 책을 읽어보기는 처음이다. 그가 사회개혁적이고 공동체적인 기독교(한국의 김진홍 목사같은)를 내세우면서 현실에 대한 문제제기와 새로운 대안제시에 열정적이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주변에서 들은 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약간 현학적 논증들로 답답하고, 지루하지 않을 까 생각했는 데 가벼운 책들에 길들여져 있는 요즘 세태에 생각하게 하고, 고민하게 하고, 현실성있고, 바른 문제제기에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다. 전체적인 요약이 필요한 것 같아 요약을 하면서 중간중간의 소감들을 써 보았고, 마지막에 나의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1장 문제제기를 다루면서, 이땅의 기독교인으로서의 소명과 사명을 다루고 있다. 성경만이 그 ‘소명’이 무엇인가를 말해 줄 수 있으며, 구체적으로 어떻게 행동해야할 ‘역할’에 대해서 설명해 준다고 말한다. 성경은 이 역할을 세 가지로 정의하는 데,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고, 빛이며, 내가 너희를 세상에 보냄이 양을 이리가운데로 보냄과 같다고 말씀하신다. 곧 저자는 세상에서 감당할 특정한 역할, 즉 세상을 보존하고,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 가를 알려주며, 하나님의 어린양의 희생을 세상 속에서 계속 새롭게 보여주는 살아있는 ‘표징’의 삶의 역할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또한 모순적인 한 숙명에 놓여있다고도 말하는 데 그것은 우리가 이 세상의 죄를 감소시킬 수 없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죄된 현실을 묵인할 수도 없는 것이다. 이러한 모순앞에서 저자는 성경과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세상가운데서의 참여와 도전을 매우 중요시 여긴다.

‘세월을 아끼라’는 말을 그는 ‘보존’이라는 말로 쓰는 데, 하나님은 세상을 구원하심으로써 그것을 보존시키시며, 그 보존을 활용하심으로써 구원하신다는 것이다. 여기서 본문을 내가 헬라어 성경을 보며 사역(私譯)을 해본 바로는 ‘세월’은 하나님의 때,시간,사건으로 번역할 수 있고 아끼라는 ‘구속하라’‘값을 지불하고 구출해내다’라고 말할 수 있다. 즉 때가 악하기에, 시대가, 세상이 악하기에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주시는 지혜로운 삶의 대한 도전과 명령은 하나님의 사건이 이 시대에 임하게 하여서 하나님의 종말의 때를 오게하라, 댓가를 지불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그 나라가 오게하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그의 문제의식과 사상은 내가 사역(私譯)하고, 이해한 관점과 어느정도 상통한다고 볼 수 있겠다.  

 2장 기독교의 혁명성에서부터는 본격적으로 그의 진단을 시작하며 그가 쓰는 용어가 그의 사상을 대변해 준다. ‘혁명’. 공산주의만 혁명을 하는 줄 알았지, 또는 분에 쌓인 농노계급들만 그런 혁명을 하는 줄 알았지 유순한 양과 같은 우리의 한국 기독교인들이 이런 얘기들을 들으면 마치 딴 얘기하듯, 과격분자가 얘기하듯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의 진단은 단호한 어조로 세상이 보존되려면 진정한 혁명이 일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왜냐면 현재의 이 세상는 타락으로 인해 뒤틀려져 있으며, 세상과 하나님 나라사이에는 대립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대해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에서 행동하는데 필요한 세가지 지침을 설명하는데,  첫째로, 그는 하나님이 그에게 인간의 진상을 보여주시는 그 지점에서 출발하여야 한다. 그는 인간이 하나님의 질서와 일치되게 살 수 있는 정치 사회적 조건들을 발견하여야 한다. 둘째, 하나님이 제정하신 일정한 틀 안에서 작업하여야 한다. 그 한계를 벗어나게 되면 자신이 속한 사회에 해를 끼치게 된다. 셋째, 이 보존의 질서는 구원 선포를 목적으로 할 때만이 의미가 있게 된다. 그 지침에 따라서 하나님 나라를 도래케하고, 종말을 앞당기는 진정한 혁명(교회는 본래적으로 혁명적 성격을 띤다고 말함)이 일어나야 하며, 세상을 알아서 현대 문명의 억압에 대항하여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의 대안과 혁명적 상황을 창조할 것을 도전한다.

 3장은 세상을 알고, 우리가 실제로 살아가면서 어떠한 우상에 사로잡혀 있는 지를 말한다. 그것을 한마디로 ‘수단화’라고 말한다. 지금 우리문명에서는 ‘더 이상 목적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우리는 집단의 목표를 상실한 채 거대한 수단만을 갖고 있다고 분석한다.과학과 기술, 경제활동, 국가 등 자신을 섬겨야하는 그 수단이 자신을 지배하여 현대인의 우상이 되어 수단 앞에 목적을 상실하고 종속되었다는 것이다. 그 수단은 수단이 수단을 낳고, 수단이 자신을 정당화 시킨다. 그래서 인간이 전혀 수단을 통제하지 못하게 되고, 삶의 전영역으로 확산되며, 이 수단에 대해 인간이 부과하는 모든 목적은 명백히 가치없고 부적당하다는 것이다. 마치 덫에 걸린 것 같이 수단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현실앞에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 것인가? 먼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목적과 수단의 분리란 있을 수 없고 하나님의 사역은 수단과 목적이 동일하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현존이 하나님나라의 도래이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구원과 하나님나라의 설립을 위한 하나님의 수단이었던 것이고, 동시에 목적이요, 구원과 나라 그 자체인 것이다. 그런 세상의 반대상황되는 하나님 나라의 원리앞에 우리는 수단의 노예됨에서 극복해야 하며, 씨름하여야 하는 데 하나님의 원리는 하나님이 목적을 세우시고, 인간이라는 수단을 통해 그 목적을 이루시는 것이다. 그 목적이 인간 사회안에 실현되려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를 성경에서 찾아야 함을 저자는 역설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주권을 다시금 강조하며 하나님께 달려있고, 행동과 제도적 개혁을 우선하기 전에 하나님앞에서 자신의 존재됨을 온전히 자각함을 말한다. 즉, 우리는 살아있어야하든 데, 세상속에 메이지 않는 ‘자유’의식을 가져 목적을 바로 세우며 수단은 수단으로서 자기자리를 찾게 해야한다는 것이다.

 4장은 기독 지성인의 위치와 임무를 나타낸다. 3장에서는 영적인 삶의 존재됨의 회복과 그로인한 삶의 우선순위를 말했다면 이 장에선 지성의 제자도, 즉 ‘마음을 새롭게함’(롬12:2)을 말하고 있다. ‘마음’은 헬라어로 ‘누스’인데 이것은 지성적 마음을 나타낼 때 많이 쓰이는 단어이다. 저자는 우리의 믿음이 지성을 새로운 차원으로 변화시키며, 이러한 변화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삶과 관계가 있고, 성령의 사역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단순한 지적 차원의 변화가 아니라 성령께서 행하셔서 마음에 영감을 주시고, 새로운 사고방식과 살고있는 세상을 새롭게 이해하도록 도와주심으로 삶 자체의 변화를 가져다주는 것이다. 이 변화의 목적은 결국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만만치 않다. 현실 인식에 대한 거부함이 팽배해 있고, 전체를 보지 못하게 하는 그림자, 신화들이 우리를 가리우며, 혼란스러움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앞에 우리는 어떻게 간격을 좁힐 것인가? 세상과 자신에 대한 자각을 해야하며, 신화들, 이전 시대의 지적 교리들(공산주의, 정치적 자유주의...)을 무너뜨리고, 객관적 실재를 발견하려는 의지, 즉 삶을 구성하는 구체적 사실들을 발견하려는 의지를 갖는 것이다. 또한 인간적 차원에서 파악하고자 하며, 현대의 문제들을 깊이 들여다보고, 그 문제들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는 것이다. 그리고 참여하고 결단하는 것이다. 현대 세계를 인식하려는 이 노력은 결국 성령께서 우리가운데 행하셔야 한다. 성령을 통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사회적 차원에서는 세가지 정도로 우리의 할 중요한 일들을 요약해 볼 수 있는 데, 먼저 이웃을 재발견하는 것인데, 성령께서 진정한 인간 상호간에 의사소통을 가능케 하시기 때문에 그 언어를 발견하는 작업이 중요하다. 둘째는 그 사건, 그리스도의 사건의 재발견이다. 단순한 역사속의 사건 혹은 신화가 아닌 그리스도의 사건이 우리를 살리는 근거가 된다는 확신으로 인해 그 사건이 중심이되어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의 의미를 재발견토록 권면하는 것이다. 셋째는 거룩한 영역을 재발견하는 것으로, 인간지성의 한계를 진단하고, 그것이 거룩한 영역과 세속적 영역사이를 나누고 있는 경계선을 발견케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역할이다.    

 
마지막 5장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다룬다. 여기엔 이 책의 목적과 최종적 대안을 어느정도 제시하고 있는 데 그러나 저자의 말은 ‘이 책이 해결 방안을 내놓기 위함이 아니라 교회갱신을 위해 해야 할 일들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과거 이레네우스나 칼빈은 나름대로 그 시대에 맞는 대안을 제시함으로 나왔다. 그러나 현대의 그리스도인은 얼마나 이 시대를 분별하고 있는 가? 어떤 영적 통찰력으로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의 의미를 분별하고 있는 가? 사탄의 전략은 복음을 중립화 또는 무력화시키려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싸워야할 적은 누구이며, 우리의 전투는 어떤 성격의 것인가 또한 어떠한 무기들을 사용해야 할 것인가를 보여주며, 이 싸움에 동참할 것을 요청하고 있는 저자의 도전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 싸움을 하는 가운데 선포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복음이라는 진주를 세상 사람들에게 던지는 데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고 너희 진주를 돼지앞에 던지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은 단지 그들은 개와 돼지와 같은 들을 귀가 없는 사람이니 상종도 하지 말라라는 의미보다 적극적으로 그들에게 들을 귀를 만들어 줄 정도의 다양한 삶의 영역에 있어서 인간적인 수준의 회복과 복음에 대해 반응을 보여야할 책임이 그들에게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 아닐까? 그런 반응을 기대하기 어렵다면, 모든 인간을 돼지와 같이 존재케 만들어 거룩한 진주를 받아들일 능력을 상실했다면 우리는 그렇게 만든 현대 문명의 토대들을 공격하는 ‘혁명’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가 지향하는 목표에 도달하는 데 있어 두 가지 잘못(첫째, 기독교의 이상과 조화를 이루는 것처럼 보이는 세상의 이념들 중 하나를 채용하여 기독교의 입장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둘째, 성경 속에서 이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질서를 찾으려고 노력하며 그렇게 찾은 질서를 객관적으로 세상에 제시해놓고는 어떤 신비한 힘에 이끌려 세상이 그 질서를 받아들이고 복종할 것으로 기대하면서 그 정도의 작업에 만족하는 것이다.)을 피하며 새로운 삶의 양식을 창조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지나칠만한 사소한 문제에서부터 모든 것에 대해 신앙의 빛에 비추어 의문을 제기하고 재검토하여야하며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관점으로부터 재검토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작업을 통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변화된 삶의 방식을 발견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부단한 성경연구(Text)와 살고있는 이 세상을 올바로 파악하기 위한 다양한 연구(Context) 등을 통해 그러한 사상을 형성해가야 한다.  

그리고 저자는 여기서 자신이 서구 기독교에 대한 개혁과 혁명과 같이 생각하는 한 관점을 제시하는 데, 공동체적 차원의 과제를 말하면서 물질적 차원에의 도움, 공동체적 기독교를 말한다. 이것은 자본주의에 물든 기독교의 위기성을 진단할 뿐아니라 사유 재산에 대한 기독교적 대안을 살짝 엿보이고 있다. 그러나 또한 사회적인 운동으로의 변질을 우려하고 있는 데, 복음의 선포를 통한 영혼의 구원과 사회정의를 위한, 구조악을 대항한 복음에 대한 균형감각을 상실할 때 기독교가 영향력을 잃어갔다는 것을 반영한 저자의 목소리인 것 같다. 

  다른 책을 통해 이어져 갈만한 이 책에서 말한 다양한 문제의식과 약간의 대안에 대한 방향성을 맛보여줌과 구체적인 대안제시의 필요성(당위성)을 남겨 놓았다. 현대 사회의 모순성, 유혹, 우상에 대한 예리한 통찰이 돋보이며, 그것에 대한 유일한 대안은 기독교에 있고, 복음의 그 자체의 생명력에서 나온 혁명성과 영향력을 온전히 회복, 자각하여 세상에 정복해 나가는 것이다. 단순히 세상 조류에 흘러가지 않고 세상에 바른 대안과 기독교적 목소리를 내야할 때이다.

그러나 현 한국교회는 어떠한가? 서구 기독교가 자끄 엘룰이 말한 대로의 대안을 준비하지 못하고, 복음의 생명력과 신앙의 중심성을 잃어간 자유주의 기독교에 붙잡혀서 대안준비는커녕 탁상공론으로 일삼아서 그 혁명성은 잃어갔고, 결국에는 그가 우려했던 대로 유럽의 기독교는 폭삭 주저앉은 듯 보인다. 그에 비해 한국 기독교는 어떠한 가? 역사의 교훈을 되새기며 진실되고 깊이있는 성경에 대한 연구(Text)와 이시대의 흐름과 사상에 대한 진단(Context)에 동떨어진 민중이 좋아하는 복음을 선포하고, 왜곡된 목회 비전이라는 이름으로 내 교회의 교세 확장에 중점을 두진 않은 가? 카타르시스적인 자신이 받을 축복만을 추구하고 현실과 복음의 생명력에 대한 둔감과 그로인한 세상의 모순됨에 대항하는 하여 대안을 제시하고 바로 일으켜 세우려고 치열하고 고민하고 전진하는 혁명성은 찾아보기 힘들어진 것이 현실 아닌가? 안타깝다. 자끄 엘룰과 같은 유럽사회에 예언자와 같은 목소리를 우리 한국 기독교는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오히려 사회적인 연구나 발 빠른 대안제시보다 그의 기초 작업으로 바른 성경연구에서부터 시작해야할 것이다. 원어에서부터 차근차근 기초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본문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말하는 석의(exegesis) 없는 시대 적용적 해석학(협의의 해석학)이 무슨 소용이 있는 가? 신학교안에서만 석의작업을 하고, 졸업 후엔 교회 성장을 위한 다양한 도구에 대한 관심이 쏟아지는 현 흐름을 볼 때 안타깝기 그지없다.

깨어있는 몇몇의 교회의 지도자들, 목회자들부터 기반다지기 작업을 새로 시작하며, 현실의 모순과 실태에 대한 바른 진단과 치열한 적용과 영적 전쟁에 대한 싸움의 몸부림, 그리고 종말에 열어 가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비전을 가슴에 새기며 그에 따른 삶을 열어가야 할 것이다. 땅 끝까지 가는 미전도 종족 선교와 아울러 이 시대의 사회적 악에 대한 구석구석의 선교 또한 함께 진행하여 나가야 할 것이다.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하셨는데, 이 거대한 싸움과 과제 앞에서 우리의 교회가 하나 될 근거는 충분히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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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에서 확신으로
알리스터 맥그래스 / IVP / 199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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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저자 알리스터 맥그래드는 주변에 이 저자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로 인해 어느정도 알고있었고, 그의 글을 약간 접해봐서 낯설지는 않았다. 그는 어렵지 않고 매끄러운 문체와 체계적인 사고와 논리로 독자에게 접근해가는 사람이다. 이 책도 내용은 그리 많지 않고 작은 책이지만 신앙에 대한 의심과 회의를 가진 사람들에게 회의 그 자체와 자신에 대한 근본적인 진단과 하나님과 복음,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바른 지식과 시각을 가지므로 회의를 극복해 내고, 이러한 회의는 결국 우리의 정신을 잃게 하거나 당황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믿음과 지식을 자라게 하는 도구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회의에 대한 정확한 개념이 잡히지 않을 무렵 성경의 용어적 접근은 이해를 용이하게 하였다. 주저함, 우유부단함, 두마음을 갖는 것과 마음의 상태로 표현되는 회의라는 성경의 용어를 통한 예시는 이해를 도와주었고, 이 회의는 또한 성화의 과정속에 죄로인해 오염되어있고, 여전히 죄의 세력안에 있어서 지속적으로 싸워가야하는 과정속에는 필연적이며, 산발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올수 있는 마음의 상태임을 알게 되었다. 따라서 우리에겐 어떻게 이 회의를 극복할 것인가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만 남은 것이다.

 저자는 먼저 복음에 대해 회의를 가질 수 있음을 말하며, 복음은 인간 본성의 근본 문제 즉 사회가 아무리 진보할지라도 결코 변하지 않는 문제임을 말하고, 또한 복음의 배후에 진정 하나님이 계시기에 그 힘과 영향력은 잃지 않고 초대교회부터 지금까지 계속되어 오기에 신뢰할 수 있음을 말한다. 다음은 자기 자신의 대한 회의를 말하는 데, 우리 자신이 쉽게 가질 수 있는 신앙인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회의, 하나님에 대한 체험의 욕구, 열등감과 죄책감과 같은 하나님앞에서 자격미달의식에 대해서 하나님의 부르심과 주신 은사, 그리고 각자를 향한 놀라운 계획을 말하며, 인간의 연약을 통해 그 능력을 완전케 하시는 하나님을 말한다. 세 번째로 말한 예수님에 대한 회의는 예수님과 나와의 관계성, 부활의 확실성에 대한 증거가 분명하니 주를 신뢰하며, 회의를 극복하라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예를 든 하나님에 대한 회의는 ‘내가 이런데도 여전히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실까’라는 사람들이 쉽게 빠질 수 있는 회의감인데,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할 만한 이유가 있어야만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인과율’에 따른 하나님의 사랑으로 잘못 알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해 주고 있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회의 자체를 너무 열중하여 빠져들지 말고, 영적 성장의 촉진제로서, 그것을 통해 자라게, 성숙케 하실 주님을 바라보라고 말하고 있다. 가장 적극적이고, 효과적인 회의 치료책으로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보았던 돌밭에 떨어진 씨앗,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앗을 묵상하고, 적용함으로 치료할 수 있다고 말한다. 여기서 나는 저자의 탁월한 적용력과 내 삶의 연약한 부분들을 알게 되고, 회의에 들어있는 사람들에 대해 어떻게 상담하고, 도와줄 것인가에 대한 통찰과 교훈을 얻게 되었다.

 돌밭에 떨어진 씨앗과 같이 신앙이 깊게 뿌리내리지 못한 경우는 좋은 토양으로 바꿀 것을 권면한다. 이것은 곧 기독교 신앙에 대한 지식과 이해을 깊게하는 데 노력하고 시간을 들여야 함을 말한다. 회의를 가라앉히는 방법은 믿음을 성장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규칙적으로 성경을 공부하고, 연구하며, 믿음을 성장시키고, 자극과 도전을 줄 수 있는 책을 읽으라고 말한다. 또한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앗은 많은 유혹과 환난, 압력앞에 쉽게 무너지며 회의에 빠질 수 있기에 영적 지도자와 동역자들과 삶을 나누고 도움을 얻기를 권면한다. 또한 영적 훈련을 개발하여 어떤 어려운 상황 가운데도 하나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지며 그러한 과정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더욱 순종과 헌신이 깊어지도록 하는 것이 영적훈련의 목적이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성경을 통해서 출애굽의 광야의 과정을 거치는 가운데의 이스라엘 백성가운데 있었던 회의와 십자가이후 부활이전에 제자들의 회의를 다루며 그런 상황가운데에 우리도 있을 수 있으나, 믿음의 반대쪽으로 생각하게끔 하는 죄악된 본성이 우리에게 있음을 먼저알아 대처해야함을 말한다.

 내게도 이런 회의가 종종 찾아올 때가 있음을 고백한다. 사역중에 지칠때, 일에 쫓겨서 일이 앞서서 하나님을 바로 알고, 묵상함이 무너졌을때,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과 성품이 내게 멀리 느껴졌을 때, 그리고 규칙적인 영적 훈련과 영적 전투에 대해서 너무 쉽게 생각했을 때이다. 이 책을 보며 나의 분주함과 영적 훈련의 우선순위를 되새겨 보게 되었고, 회의에 있는 우리의 지체들에게 차분히, 그리고 성실하게 도와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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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삶을 위한 능력 100일 교리 묵상 - 구원과 하나님의 계획편
김남준 지음 / 부흥과개혁사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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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구원과 하나님의 계획의 자매편으로 그 책을 읽으면서 함께 이 책을 읽도록 되어있다. 그러나 나는 아직 시간의 부족을 핑계 삼아 그 책이 있음에도 꾸준히 보지 못하고, 이 책을 손에 들었다. 일단 가볍고, 휴대하기 쉽고, 내용도 간결하고 짤막짤막해서 정리되기도 쉬워보였다.

‘교리’라는 말은 언뜻 보기에는 딱딱하게 느껴지고, 꼭 그 공부를 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을 많이 본다. 나도 그런 사람들 중에 하나였다. 그러나 막상 성경의 진리를 누구에게 소개하거나, 복음을 전하는 자리에 섰을 때 이러한 성경진리에 대한 기본 체계가 안 잡혀 있으면, 성경 전체의 시각에서 본문을 풀어가지 못하고, 본문이 성경의 진리와 주제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지 헤멜 때가 많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의 진리를 통일되이 보고, 구속의 역사 속에 드러내신 하나님의 계시를 보는 성경신학적인 진리의 인식과 그 진리를 성경의 말씀을 엮어서 주제별로 체계화시키고, 조직화 시켜서 정리하는 조직신학적 진리의 인식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이 두 가지 신학적 인식을 종합하고, 통합해서, 심증에만 동감했던 지식이고 구체적으로 논증할 수 없었던, 그래서 누가 말해달라고 할 때 아는 진리를 어렵사리 풀었던 나에게 좋은 예화와 친절한 설명들로 시원하게 답변해 주었다. 머릿속에 맴돌던 성경의 진리들이 하나의 바늘코에 꾀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이 책에서 다룬 주제들은 창조, 죄, 언약, 복음, 구원....등이다. 우리가 많이 들어봤던 주제이고,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되는 주제들이지만 그만큼 잘못 알고 있는 주제이기도 하고, 오해하고 있기도 하고, 중요한 만큼 궁금해 하고 있는 주제들이기도 하다. 앞의 창조, 죄, 언약, 구원의 과정들의 부분들은 체계화되는 계기요 내가 받은 구원을 묵상하고 공감하는 계기가 되었고, 예화를 통해 쉽게 설명되어서 나에게 가까이에 있는 교리, 성경의 진리를 알게 되었다.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과 우리를 아들 삼으신 그 약속의 견고함들을 구체적인 성경의 언어를 통해 보게 되었다. 특별히 뒷부분에 ‘영화’에 대한 부분은 나에게도 큰 유익을 주었다. 다른 주제는  성경이나 설교를 통해 종종 접해보기도 하지만 ‘영화’의 주제는 쉽게 발견되거나 묵상하지 않는 주제이기도 하다. 나의 편식증도 볼 수 있었지만, 한국교회에서 이 천국과 지옥, 낙원과 음부, 종말과 심판에 대해서 성경을 증언하지 않는 편식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이렇듯 요즘의 크리스챤들, 그리고 한국교회의 젊은이들이 이런 성경의 주제와 말씀 자체에 대해서 묵상하고, 또 고민하고 연구하기보다 순간의 기쁨과 영적인 만족과 감정적 위로만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깝기도 하다. 교회에 나오는 것을 권면하면 ‘ 그 교회 재밌어요? ’ 라는 식의 응답은 우리시대의 젊은이들이 추구하는 재미, 즐거움, 현실에 쫓겨 다녀서 스트레스를 풀 곳을 교회로 생각하는 경향도 있는 듯하다. 물론 교회가, 성경의 진리가 우리의 삶에 궁극적인 즐거움과 기쁨과 만족을 준다. 그러나 이 땅에서는 궁극적인 기쁨과 만족과 즐거움이란 없다. 순간적인 쾌락이다. 사실 즐겁고, 끌리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더 허무로, 특히 혼자남게 되었을 때는 더 강하게 찾아온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역사 속에서 친히 구속의 행위를 계획하시고, 실행하시고, 지금 각자의 심령 속에 역사하셔서 이루어 가시는 성부,성자,성령의 삼위의 하나님을 알아가는 즐거움은 세상의 순간적 즐거움과는 다른 영원한 나라를 위한 거룩한 기쁨과 평화를 가져오는 즐거움임을 확신한다.

 마지막으로 교리묵상이라 그런지 실제적 삶의 적용면에서 조금의 아쉬움이 남는다. 구원받은 성도가 이 땅에 함께 이뤄가야 하고, 고대하는 하나님나라에 대한 관점과 어떻게 그 나라를 주와 함께 구속해 나갈 것인가? 이 시대의 영적 전투, 세계관의 싸움에 대한 부분을 각자의 삶의 처소에서 진리를 붙잡고 고민하는 가운데 적용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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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신학적 설교 어떻게 할 것인가
그레엄 골즈워디 지음, 김재영 옮김 / 성서유니온선교회 / 2002년 9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복음과 하나님 나라’라는 성경신학 입문서로 비교적 잘 알려진 그레엄 골즈워디의 저작이다. 제작년 이 책이 처음 나왔을 때 흥미롭고, 유익한 제목과 내용을 예상하여 구입하였다. 이 책을 처음 읽을 때의 첫인상은 글이 좀 딱딱하고 어렵다는 것이다. 이것은 나의 당시의 배경지식과 연관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조금 본문을 보기에 한결 수월해졌다. 나의 성경신학과 설교에 대한 전이해가 자라났기 때문에 그러리라 생각된다.

골즈워디는 복음시리즈로 알려져 있다. 복음과 하나님 나라, 복음과 지혜, 복음과 요한계시록...과 같은 책을 통해 성경신학적 내용을 소개해 왔다. 저자가 성경신학을 전공해서 그런지 성경신학의 보급과 대중화에 꽤 큰 공헌을 한 것 같다. 아마 이번 책은 그 내용이 중요한 만큼 그 내용을 전달하는 과정은 설교라는 행위를 통해 있어지기 때문에 설교에 대한 중요성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 설교는 성경신학적 내용의 중요성의 토대위에 전달하는 게 바람직하며, 거기에 따른 실제적인 내용을 곁들여 쓰면서 하나의 지침서로서 이 책을 제시한다.

  평가를 구체적으로 말하기 전에 이 책에 대한 전반적인 주제와 구조에 대해서 논해보고자 한다. 이 책의 주제는 말 그대로 성경신학적인 설교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가를 설명하면서 두가지 큰 주제인 성경신학과 설교를 말한다. 그 두 개의 주제를 연결하고, 그 연결되고 통합된 시각으로 복음주의의 바람직한 설교관을 역설하고 있다. 1부는 설교와 성경에 대한 기본적인 질문들을 다루면서 저자가 말하고자하는 두가지의 큰 주제에 대한 개념정리와 실제 성경을 통한 적용에 들어가기 전에 적용을 위한 기본 배경지식을 소개하고 있다.

2부는 설교에 대한 성경신학의 실제적인 적용이다. 여기서는 모든 성경 안에 있는 그리스도를 소개하며 기본적으로 성경의 모든 본문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가 그리스도이고, 그리스도로 인해 통합된다는 전제하에 장르별로 성경신학적 설교를 소개한다. 여기서는 문학을 성경 계시의 신학적 진리를 전하는 매개물로 보는 관점에서 성경의 주요 문예 장르들을 살펴본다.

1부의 내용에 대해서 살펴 볼 것인데, 여기에는 성경,설교,성경신학 등의 핵심적인 주제들을 다룬다. 성경신학의 핵심은 성경의 통일성이 있다는 것인데,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역사속에서 점진적으로 자신을 드러내시는 과정이 다양성속에서 일관성이 있다는 말이다. 즉 구속의 역사가운데 점진적으로 더욱 드러난 하나님의 계시를 통해 성경의 통일성을 보는 것이다. 이 사실은 성경의 짧은 본문을 보는 데 있어서도 이 큰 틀안에서 봐야한다는 것이 이 책의 논지이다.  

 이제 내가 읽으면서 나름대로 내린 평가를 쓰고자 한다. 이 책의 논지와 방향, 신학적 관점에 있어서는 대체적으로 동의한다. 그래서 부정적인 면보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많다. 또한 부정적인 평가도 내용에 대한 반대보다는 이 책의 한계성과 아쉬움에 대한 평가임을 말해둔다.

 긍정적인 평가는, 첫째로 저자가 성경신학적 설교라는 일관된 관점에 의해 체계적이면서도 다양하게 글의 논지를 풀어나가는 것이다. 성경신학과 설교라는 큰 두가지의 주제를 연결하는 것이 저자의 논지이다. 자칫 커다란 두가지 개념을 한꺼번에 설명하는 데 무리하다고 말할 지 모르겠지만 그가 말하는 진정한 설교는 성경신학적 설교인 것이다. 즉 계시의 역사성과 그에따른 통일성에 근거를 두고 큰 맥락에서부터 본문으로 들어가지 않는 설교의 위험성을 말하고자하는 저자의 의도에 동의하게 된다.

 둘째는 성경신학에 대한 함축적이면서도, 깊이있는 통찰과 해설이다. 조금 어렵게 느껴질 정도로 빡빡하게 성경의 통일성과 점진적 계시에 대한 설교(예표,약속과 성취,종말론적 목표), 공시적이면서도 통시적인(주기적이면서도 종말적인) 관점에서의 성경신학적 개념정리는 저자가 성경신학에 대해 많은 연구와 유익한 내용을 갖춘 사람임을 알려주었다. 또한 이를 통해 설교자가 하나님의 전체 경륜을 선포하는 묘미를 알려주었다. 

 셋째는 예수님 자신이 성경신학자이면서, 성경신학의 주제로서 인식하셨다는 통찰이다. 예수님이 성경의 주제이고, 성경신학의 주제임을 우리는 알고 있으나, 예수님 자신이 성경을 그렇게 바라보셨고, 말씀하셨고, 그렇게 사셨다는 것은 간과하기 쉽다. 그러나 저자는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라는 개념을 자신과 사역의 관점에서 명확하게 하였음을 지적하고 있다. 잘 생각해 보면 예수님은 구약의 예언의 성취자요, 완성자이다.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인자가 온 것은..., 율법을 폐하려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노라...’등의 예수님의 말씀들은 이 사실을 증명해 준다. 

 넷째는 복음에 대한 관점의 바른 제시이다. 현대의 교회가 갖고있는 교회에 대한 편협한 이해를 지적하고 있는데, 나는 그것이 복음에 대한 바른 이해라고 생각한다. 그 내용은 즉 복음은 자신의 개인의 주관과 감정에 따라서 예수께서 자기 안에 계신 느낌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하신 일에 초점을 두는 것이다. 또한 그 복음에 따른 제자도는 ‘실천되는 칭의’라는 말로 대변하면서 행하신 일이 의롭게 칭해진 내 삶속에 구현되는 것이다. 또한 복음으로 새롭게 적용될 윤리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점을 제시하는 데, 구약의 율법적으로 해석할 것이 아니라 완성하신 그리스도에 근거를 두고 해석해야 함을 말한다.

 다섯째는 3장에 나와있는 짧지만 성경의 통일성과 포스트모더니즘과의 비교이다. 성경은 통일성이 있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은 상대주의와 혼합주의로 인해서 통일성이 없는 단편화로 치닫거나 불교나 힌두교에서처럼 만물의 일원론적 일체성으로 치닫게 됨을 말한다. 이것은 하나님과 우주를 동일시하는 범신론과 관련이 있으며, 하나님과 피조물의 구별을 모호하게 한다. 이러한 물결은 18C 계몽주의에서 시작되는 데, 계몽주의는 하나님의 존재는 인정하더라도 성경과의 관계성에 대해 의문을 제시함으로 성경의 통일성의 관점에서 다원,상대,혼합,모호의 개념을 창출해 내었고, 인본주의,자유주의적 전제들을 만들어 성경에 대해 많은 손질을 가한 것을 저자는 바르게 바라보면서 분석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섯째는 도표를 통한 설명이다. p.166-167에 나와있는 ‘컨텍스트를 무시한 본문 사용과 맥락을 존중하는 본문사용’의 그림은 저자의 논지와 관점인 큰 문맥의 틀, 즉 성경신학적 틀이면서 핵심인 그리스도를 통과하면서 청중에게까지 가는 그림을 가시적이면서도 명쾌하게 제시하고 있다. 구원사와 예표론에 대한 도표또한 구속과 심판, 회복과 완성에 대한 개념과 창조와 새창조로 이어지는 구속사의 과정을 보기쉽고, 이해하기 쉽게 정리해 놓은 것은 이 책의 큰 장점중에 하나이다.

 부정적인 평가에 대해서 말하자면, 때때로 우리가 긍정적인 평가를 뒤집어보면 한편에서는 장점인 것이 뒤집어 생각하면 아쉬움도 함께 동반되어 나오는 경우를 종종 본다. 여기서도 그러한 예를 살펴볼 수 있는데, 첫째로 저자가 성경신학과 설교학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좇다보니 두가지 다 약간은 함축적이고, 어려운 예들을 급하게 표현해 내므로 읽는 독자가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책은 성경신학의 입문서가 아니다. 또한 설교학의 입문서도 아니다. 그래서 기본적이 개념정리를 하고 온 사람들이 보게 되는 책이지만, 전문적인 용어와 많은 내용을 짧은 양으로 표현하려 하니 내용이 빡빡한 감이 든다. 그래서 정작 무엇을 읽었는 지 설명하려면 어려움이 따르기도 한다.

 둘째로는 설교의 내용에 중점을 둔 나머지 설교하는 사람에 대해서, 설교를 듣는 청중에 대해서의 언급과 현시대상황 속에서의 설교적 과제는 상대적으로 약하게 제시되었다. 물론 저자가 요즘 나온 설교학에 관한 책들이 효과적인 전달과 설교 준비 방법들에 치중되어 있다는 사실에 대한 대안으로서 이 책을 기술한 것은 바람직한 시도이다. 그러나 대안이 될 만한 책은 대안이 될 만한 부분, 즉 그러한 책들에서 다루지 못한 부분들을 다루고 그러한 책이 다루는 부분도 포함해야 된다고 생각한다(물론 9장에 약간의 언급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이 책은 ‘성경신학적 설교의 내용에 대한 저술’이라고 생각하는 게 더 바람직하다.

 셋째로는 실질적인 설교 작성의 전 과정을 소개하는 예가 제시되지 못했다. 뒷부분까지 보았지만 맥락 속에서 설교의 주제에 대한 접근은 가능하지만 구체적인 주해에서 성경신학적 과정을 거치면서 청중을 이해하는 해석학을 통해 설교가 나오고 전달이 되는 전 과정에 대한 소개와 제시가 필요하지 않나 생각된다. 그렇게 될 때에 독자가 해석자로서, 그리고 계속적으로 설교를 통해 복음을 전해야하는 사람으로 실질적인 강단에서의 적용을 하는 데 가까이가지 않을 까 생각된다.

전체를 정리하면, 따로 분리되어 존재하기 쉬운 성경신학적 관점과 설교가 이 책을 통해 조금이라도 정리되고, 접목할 수 있는 관점을 갖게 되었다. 몇 가지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본문을 보는 힘, 성경의 계시의 큰 맥락 속에서 본문을 보는 힘이 길러준다는 면에서 유익하고  한국 강단에 꼭 필요한 부분이고, 훈련되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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